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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이 승지에게 말했다. “요즘 소통시키는 일은 순조롭게 이루어지고 있다. 병신년(1776, 정조 즉위년)의 역적을 다스릴 때 이열치열(以熱治熱) 하였으므로 아직도 남은 자가 있다. 만약 이수치열(以水治熱) 하였다면 남은 사람이 없었을 것이니, 어찌 오늘날 소통시키는 일이 있겠는가. 막아야 하는 자는 막아야 한다지만, 하늘의 도 역시 십년이면 조금 변하는 법이다. 하물며 영구히 금고할 필요가 없는 자는 어떻겠는가.”
上謂承旨曰: "近日疏通事順成矣。 丙申治逆, 以熱治熱, 故猶有存者, 若或以水治熱, 則人將無餘, 豈有今日之疏通乎? 雖曰可塞者塞之, 天道猶云十年少變, 況不必永枳者乎?”
-『정조실록』 17년(1793) 5월 7일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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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있다. 무더운 여름일수록 더운 음식을 먹거나 몸을 덥게 해야 한다는 뜻으로 알려져 있다. 그렇지만 이열치열은 어떠한 의학 서적에도 보이지 않는다. 혹자는 『동의보감(東醫寶鑑)』에 나온다고 하는데, 『동의보감』에는 덥다고 찬 음식만 먹으면 여름 감기에 걸린다고 하였을 뿐, 날이 더울수록 뜨거운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말은 없다.
중국에서 가장 오래되고 권위 있는 의서라는 『황제내경(黃帝內經)』에도 “추위는 더위로 다스리고 더위는 추위로 다스린다.[治寒以熱, 治熱以寒]”라고 하였다. 추위로 생긴 병에는 더운 성질의 약을 사용하고, 더위로 생긴 병에는 차가운 성질의 약을 써야 한다는 말이다. 이열치열과는 정반대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더운 약재를 써서 열을 잡기도 하지만, 이것은 열증을 가장한 한증을 치료하는 방법일 뿐, 진짜 열증을 치료하는 방법은 아니다. 더위는 추위로, 추위는 더위로 치료하는 것이 상식적이다. 중국이나 일본에서도 이열치열이라는 말은 거의 쓰지 않는 듯하다.
이열치열은 우리 고유의 속담이다. 그리고 그 의미는 지금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정조실록』에는 이열치열이라는 말이 세 번 나온다. 이열치열은 ‘이수치열’의 반대말이다. 열기가 피어나는 곳에 찬물을 끼얹으면 열기가 금방 식겠지만, 열기에 열기를 더해봐야 별다른 변화가 생기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역적을 다스릴 때 역적의 상대 당파 사람에게 처리를 맡긴다면 피의 살육이 벌어진다. 반면 역적과 같은 당파 사람에게 처리를 맡기면 비교적 온건하게 처리한다. 이것이 바로 더위로 더위를 다스리는 이열치열이다.
윗글에서 ‘병신년의 역적’은 정조의 대리청정을 방해한 홍인한(洪麟漢) 등을 말한다. 당시 홍인한의 단죄를 담당한 사람이 대사헌 김상익(金相翊)이다. 두 사람 모두 노론이자 왕실의 인척이다. 이 때문에 사간 신응현(申應顯)이 상소하여 “대사헌 김상익은 홍인한과 한통속이니 김상익에게 홍인한의 죄를 다스리게 한다면 이열치열과 다름없다.”라고 하였다.(『정조실록 즉위년 7월 1일』) 이열치열이 온건한 처리를 의미한다는 사실을 거듭 확인할 수 있다.
그렇다면 우리가 알고 있는 이열치열은 도대체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문헌을 살펴보면 민간에서 이열치열을 일종의 처방으로 이해하고 있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것은 열증을 가장한 한증을 치료하는 열인열용(熱因熱用)의 처방을 오해한 탓일 수도 있다. 『황제내경』의 ‘治寒以熱, 治熱以寒’을 잘못 해석하여 앞뒤 두 글자를 빼고 가운데 네 글자를 붙여 읽었기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어쨌거나 오해에서 빚어진 잘못된 처방은 끔찍한 결과로 이어지기도 하였다.
12월 20일 무렵, 네가 명곡으로 이사하였을 때 나와 네 장인이 의원 몇 사람을 데려와 의논하였는데, 모두 ‘음하고 허한 기운이 빌미가 되었으니 그러한 약을 써야 합니다.’라고 하였으나 효과가 없었다. 올봄까지 병이 계속되자 비로소 열을 다스리는 약을 썼는데, 조금 효과가 없지 않았으니, 습열(濕熱) 때문에 배가 부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때 차가운 약제를 많이 썼더라면 조열(潮熱)이 그쳤을 것이며 부기도 빠졌을 것이다. 그런데 내가 병의 이치에 어두워 의원의 말에 현혹되어 더운약[溫劑]을 써야 한다는 말을 따르는 바람에 나도 모르게 ‘이열치열’ 하여 원기를 갉아먹었으니, 이것이 나의 세 번째 죄이다. [臘月念間, 汝移往明谷, 吾與汝婦翁, 迎數醫問難, 皆云陰虛所祟, 用其藥, 亦不驗. 延至今春, 始投治熱之劑, 不無少效, 盖緣腹脹, 出於濕熱. 若於其時, 多施冷劑, 則潮熱似止, 脹氣亦减. 而吾昧於病理, 眩於醫言, 遂從溫補之言, 不覺以熱治熱, 潛銷暗鑠, 此吾之罪三也.] - 홍우채(洪禹采), 『관수재유고(觀水齋遺稿)』 부록 권2, 「제문(祭文)」 조선 후기 문인 홍우채가 죽은 아들 홍계영(洪啓英)을 애도하며 지은 제문이다. 홍우채는 아들이 병을 앓던 초기에 의원의 말만 믿고 더운 약제를 썼다. 그러나 이 처방은 결과적으로 증상을 악화시켰다. 그렇지 않아도 몸속이 열기로 가득하여 배가 부었는데, 더운 약제를 썼으니 당연한 결과였다. 홍우채는 이열치열의 처방이 원기를 손상하여 아들의 죽음을 초래하였다며 후회하였다. 이열치열이 항상 좋은 처방이 될 수는 없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뜨거운 것을 유난히 좋아한다. 방바닥은 등을 델 정도로 뜨거워야 하고, 목욕물은 피부가 익을 정도로 뜨거워야 한다. 음식은 더하다. 그러고 보면 펄펄 끓는 음식을 손님 코앞에 들이미는 음식 문화는 우리나라 아니고는 찾아보기 어렵다. 외국인들은 뜨거운 음식을 먹으면서 시원하다고 하는 한국인을 이해할 수 없다고 말한다. 이 모든 현상의 배경에는 이열치열에 대한 그릇된 믿음이 자리하고 있다.
이열치열은 과연 효과가 있을까? 뜨거운 음식을 먹고 땀을 흘리면 일시적으로 시원한 느낌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의사들은 하나같이 뜨거운 음식의 위험성을 경고한다. 뜨거운 음식은 식도암과 위암 그리고 치아 질환의 원인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더위를 잡으려다 사람을 잡을 판국이다. 이열치열은 건강의 비결이 아니다. 이열치열에 대한 잘못된 믿음으로 건강을 해치는 일이 없도록 주의가 필요하다. |
글쓴이장유승 단국대학교 동양학연구원 선임연구원
주요 저·역서
- 『현고기』, 수원화성박물관, 2016
- 『일일공부』, 민음사, 2014(공저)
- 『동아시아의 문헌교류 - 16~18세기 한중일 서적의 전파와 수용』, 소명출판, 2014(공저)
- 『쓰레기 고서들의 반란』, 글항아리, 2013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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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새로운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좋은 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