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인 캠페인
규격화보다
상담소는 누구든지 찾아올 수 있으며 어떤 이유로든 접근할 수 있다. 그렇게 맞이하게 된 분들이 상담이 끝나고 나설 땐 들어올 때와 다른 모습으로 나가게 되는 것 같다. 처음 모든 것의 시작은 방문한 자가 만들어 놓은 틀에 맞게 진행된다. 대부분 그럴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왜 이곳에 왔는지 그들이 너무나 명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내 상담사로부터 안내를 아니 도움을 조금씩 받게 되면 그들이 만들어온 틀이 와르르 무너지는 것이 보인다. 상담사가 그렇게 잘 짜 놓은 틀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하기에, 그들이 우리의 도움을 받아들이는 순간 누가 왜 찾아왔는지가 더 명확해지게 된다. 필자의 생각에 상담소는 병원 응급실과 비슷하다고 생각한다. 정말 응급환자처럼 타인의 도움을 받아서 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스스로 응급사항이라고 생각하고 오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결국 응급실에 대기 중인 전문가에 의해 판단이 내려지면 그때부터는 응급처치가 아닌 제대로 된 치료를 받게 되는 것처럼, 우리 상담소도 늘 응급상황에 대해 대기 중이면서 응급처치와 같은 초기대면상담을 하고 나면 그 이후에야 제대로 된 상담을 진행할 수 있다. 지속상담을 해 줄 수 있는 인력과 기관은 많아 보이나, 어떤 연유로 응급상황에 놓였는지 판단하고 어떤 도움을 주면 되는지 판단해 줄 수 있는 인력은 턱없이 부족해 보인다.
어떤 사회복지사를 만나느냐에 따라 클라이언트에게 제시되는 솔루션이 다를 수 있을까? 달리 질문하면, 내가 아닌 다른 사회복지사를 만나게 되면 나의 클라이언트의 솔루션이 달라질 수 있을까? 인데, 이는 사회복지전문대학원에서 필자가 대학원생들에게 던진 질문이다. 그러면서 덧붙인 말이 성폭력‧가정폭력전문상담원들은 그렇지 않다 라고 했다. 매뉴얼에 따라 지원하는 것으로 개인 재량에 따라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게 대응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사회복지네트워크에서 항시 문제로 제기되는 것이 사례관리자가 바뀌게 되면 기존에 있던 네트워크 체계가 같은 기능으로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으로 이를 늘 경계하고 이렇게 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된다고 했다. 기관과 기관 간의 네트워크도 결국은 조직원 간의 네트워크라 보듯이 누군가를 돕는 일을 하는 사람들은 전문가적인 관점으로 상황을 접근하고 도울 수 있어야 하는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객관화를 요구받게 되거나 또는 의지하게 되면서 내담자들을 또는 클라이언트를 틀에 끼워 맞추게 되는데 여기에는 부작용이 있었다. 틀에 맞추어진 상담을 선호하게 된다는 것이다. 이를 규격화된 상담이나 내담자를 규격화 하는 것이라고 말하고 싶다. 일전에 상담소들의 상담실적통계를 본 공무원이 ‘기타상담’이 많다는 말을 했다는 것을 거론한 적이 있다. 가정폭력‧성폭력상담소에 기타상담이 많다는 것을 보고 가슴을 쓸어내리고 다행이라고 생각하는게 아니라 폭력피해상담이 적고 기타상담이 많다는 수치 자체를 논한 것에 대해 필자가 그렇다면 기타상담전문상담소를 차리라고 말한 적(129호)이 있었다. 틀에 맞춰지지 않는 사람들은 아예 운영실적으로도 보지 않는다는 것으로 정부의 관리‧감독을 받는 입장에서 상담소들은 이 말에 자유로울 수도 없을 것이다.
상담소의 정체성에 대해 내부적으로도 더 많이 고민하고 있고 공존하는 사회복지시설들과 협업할 수 있는 영역은 넓어지고 있고 유관기관과 서로 네트워크가 형성되어 있어 내담자들에겐 더없이 좋은 세상이 되었지만, 이는 내담자를 규격화해야 하는 또 다른 이유가 되었다. 다른 영역의 전문가들에게서 상담을 전문으로 하는 기관들의 차이가 무엇인지를 필자에게 물어온 적이 있다. 어느 기관으로 연계를 해줘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역시 내담자들도 어디로 가야 하는지 잘 모르겠다고 한다. 각 기관들이 존재하게 된 기원도 관련체계도 다 다르지만 사회복지의 영역에 같이 있으며 결과적으론 같은 방법들을 쓰고 있기에 일어날 수 있는 혼란이라고 본다. 위의 질문에 대해 필자는 이런 답을 해주었다. 문제해결만을 원한다면 어느 기관이든 갈 수 있다. 상담을 받고 프로그램 지원을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폭력피해자의 피해정도가 심해 피해회복을 하기 위해서는 우리 상담소로 와야 한다고 했다. 상담소는 상담 대상자를 모집하지 않는다. 하지만 예방프로그램 제공 및 캠페인을 통해 상담소 홍보는 한다. 인식개선을 통해 피해자를 지원하기 위해서 이다. 피해의 정도를 우리가 파악하고 지원하는데 있어 다른 기관과 분명 차이가 있다고 본다.
내담자들이 찾아와 하는 이야기를 듣고 호소하는 주요 내용을 정리하고 지원 가능한 정도를 사정하는 과정이 있다. 얼마나 솔루션이 잘 제시 되었는지는 이 과정을 얼마나 중요하게 잘 다뤘는지에서 차이가 난다고 본다. 그래서 인지 3년마다 받는 기관평가 내용에 전화 모니터링 부분이 있는데, 이는 평가기관에서 사례를 제시하고 어떤 솔루션을 제시하는지 평가하는 내용이다. 기관마다 답변에 차이가 없겠지만, 일정수준을 평가기관에서 정해놓고 그에 따라 만족과 미흡으로 평가를 하는 것 같다. 평가받는 기관들이 필자가 앞서 말한 내담자 규격화를 얼마나 잘 해야 하는지를 볼 수 있는 항목이라고 본다. 필자는 가끔 사례관리 내용에 대해 즉, 규격화 과정이 끝나고 지원내용이 정해진 솔루션을 보면서 반대로 내담자의 상황을 유추해 보곤 한다. 전문기관 임을 드러내는 것에 내담자의 규격화 과정이 필수이므로 기계적으로 이 과정을 상담사들이 하고 있지만, 진정으로 한 개인을 돕는다는 것에는 그 개인의 특수성을 고려할 수 있는 이해력이 보다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다. 이는 규격화 과정을 거치면 더욱 잘 드러나는 요건이라고 본다. 상담소가 사람들을 규격화하고 분류하여 지원하는 역할을 하는 곳으로 오해하면 안 된다고 말하고 싶다. <행가래로 162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