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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심을 버려야 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건네본다... 기분 언짢지 않느냐 (명옥)" "ㅋㅋㅋ 똑똑한척하네 지피티... 괜히 어리광 부렸군... 건사합니다(감사도 아니고 건사가 뭐대?) 건사하다... 건강 무사하다(에스더)" "가다가 마주칠 수도 있겠네요(어서 오시라)... 저 한강 가요... 드셔요... 저 아침 먹었어요(재혁)" "국수 먹고 가!(나)" 어젯밤 소고기 600g 맥주 2병을 폭식하고서 자빠져 자고 났더니 상쾌합니다. 그러고 보니 배터리 충전하는데 먹방과 잠 만 한 것도 없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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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이 온다>가 5월 광주를 소재로 노벨문학상을 받았다면 <작별하지 않는다 We Do Not Part>는 제주 4.3 사건을 다룬 소설인데 이번에 NBCC(전미도서 비평가 협회) 상을 수상했어요. 개인적으로 맨부커상을 받은 <채식주의자>와 야한 책 <몽고반점>을 좋아합니다. 역사학자 토인비의 책 <도전과 응전>이 제시한 것처럼 필연적인 도전 앞에 응전이 중요합니다. 액션과 리액션이 되면 면역력과 함께 성숙해지는 것은 수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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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보니 생은 얼마나 잘 하느냐로 결정되지 않고 작은 일이 쌓이고 모이고 연결되어 인생을 끌고 가는 것 같습니다. 날마다 우리가 맺는 소소한 일상을 대하는 태도가 인생 전체의 질과 방향을 결정한다는 것을 기억하고 시간을 잘 살아야겠습니다. 내일이 4.3 사건이 일어난 지 79년이 되었네요. 이재명 대통령이 제주를 찾아 희생자를 추모한 가운데 "국가폭력의 재발을 막기 위해 민형사 시효 제도를 폐기하겠다"라고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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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제주 4.3사건‘을 ’여수 반란 사건’과 연결 지어 들었고 나름 충격을 받았어요. 오늘 그 마무리 특강을 도올 강의를 통해 들었는데 도올이 부르는 ‘부용 산’을 듣다가 설움과 억울함이 썸을 타면서 기어이 울음이 터졌습니다. UOOC! 내 이 잡 것들을 어찌 찢어 죽이냐. 도올에 따르면 원래 이 노래가 빨치산 노래가 아니었고 폐병으로 죽은 누이동생을 산에 묻고 내려오다가 오빠였던 박기동이 가사를 썼고 음악 선생 안 성현이 곡을 붙여' 5월 가'처럼 전해져 오다가 안 치환이(1997) 앨범을 냈다는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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룻기를 읽다 보면 우연의 연속은 필연이라고 했던가. 음악 선생이었던 안 성현마저 죽은 천재 제자(김 정희)를 추모하며 곡을 썼다지요. "아, 피어나지 못한 채 붉은(병든) 장미는 시들었구나." 제주 4.3민주 항쟁은 이승만과 미 군정의 야욕으로 제주 시민 3만 명이 토벌대에 의해 학살된 가슴 아픈 사건입니다(여순 1만 5천). 찬탁 반탁, 반쪽 정부, 우익 좌익, 빨치산까지 재다 4.3이후에 만들어진 프레임입니다. 우익인사들에게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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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발 ‘좌 빨’ ‘빨갱이’란 단어 좀 쓰지 마시라. 이승만 정부가 주도한 강경 진압 작전으로 제주도 중 산간 마을 95% 이상이 불타 없어졌으며, 가옥 3만 9285동이 소각됐다고 합니다. 왜 이런 대량학살이 일어났을까요? 이것이 잊힐 수 있었을까요? 이런 의문을 품은 채 4.3의 자취를 따라가 봅시다. 1945년 8월 우리 민족은 일본의 압제에서 벗어나 해방을 맞이합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별안간 미일전쟁에서 원폭으로 인한 항복 선언이었기에 졸지에 맞은 해방을 독립으로 맞지 못한 아픔을 간과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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쉽게 말하면 승전국 미국 입장에서는 한국을 일본에 속해있는 나라로 취급해 점령국이 패전국 다루듯 군정을 들어온 것입니다. 실제로는 일본은 자치를 하도록 두고 한국만 미 군정이 통치를 한 꼴이지요. 이 일이 '얄타'회담에서 미. 소가 38도선을 경계로 각각 한반도에 주둔하는 것으로 계약되면서 복잡해지기 시작합니다. 한국은 이미 1950. 6.25. 전에 원치 않는 분단 상황이 조성되고 만 겁니다. 미군이 제주도에 진주한 것은 1945년 9월 28일, 실질적인 군정 업무를 담당할 제59군정 중 대가 도착한 것은 11월 9일이었다고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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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59군정에 중대는 인력 부족과 정보 부재로 원만한 통치 업무를 수행할 수 없었습니다. 따라서 영향력이 강했던 ‘인민위원회’의 지원을 받을 수밖에 없었어요.‘인민위원회’란 어떤 조직일까요? 광복 직후 자주독립적인 국가를 세우기 위한 건국준비위원회(약칭, 건 준)가 전국적으로 조직되었고, 제주에서도 45년 9월 10일에는 제주도 ‘건 준’이 결성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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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3일 건 준은 인민위원회로 개편되었고 이를 계기로 45년 말까지 청년동맹・부녀동맹・농민위원회・소비조합 등 각종 사회단체가 속속 조직되었어요. 제주도 인민위원회가 가장 주력한 것은 치안 활동이었습니다. 일본군 패잔병의 횡포를 막는 일, 토지・산업체 등 적산 및 군수물자를 감시하는 일에서 지역별로 초등학교・중학원 등을 설립하여 자치교육을 실시하기까지 인민위원회는 실질적으로 도내 행정을 주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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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식적으로는 미 군정에 의해 행정이 실시되었지만 여러 마을에서 인민위원장이 이장이 되었고, 인민위원회는 주로 마을 향사를 사무실로 사용하였다고 합니다. ‘인민위‘는 동네 사람들이 만든 자치회 성격으로 보면 됩니다. 당연히 미 군정이 ‘인민위원회’를 공식적인 행정 기관이나 통치기구로 인정하지 않았어요. 도리어 미 군정은 도청과 경찰의 요직에 친일파 관리를 그대로 앉혔으며, 서서히 우익인사들을 조직화시켜 인민위원회에 대항할 세력으로 키워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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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년 말부터 미 군정은 인민위원회를 노골적으로 탄압하기 시작하는데 이것이 제주 4.3의 근본 원인이라 할 수 있습니다. 1947년 3월 1일은 해방 후 두 번째 맞이하는 3・ 절로서 앞선 2월 17일에 관공서를 비롯한 사회단체・교육계・유교 계・학교 단체 등 각계각층이 망라된 ‘3・1투쟁 기념행사 제주도 위원회’가 결성되었고 전도적인 기념행사를 치르기로 했습니다. 그러나 미 군정은 3・1절 행사 때 시위는 절대 불허한다는 방침과 집회 사전 허가 원칙을 정하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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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 군정 당국과 수차례 협상하였으나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3・1절 행사는 시민주도로 강행될 수밖에 없었어요. ‘큰넓궤’는 제주 4.3당시 동 광리 주민들이 2개월가량 집단적으로 은신생활을 했던 곳입니다. 1948년 11월 중순 중산 간 마을에 대한 초토화 작전이 시행된 이후 주민들은 야산을 흩어져 숨어 있다가 이곳으로 들어왔어요. 그러나 40여 일 후 토벌대의 집요한 추적 끝에 발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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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민들은 한라산을 바라보며 무작정 산으로 들어갔으나 인근 ‘볼레오름’ 지경에서 토벌대에 총살되거나, 생포된 후 정방 폭포나 그 인근에서 학살되었습니다. ‘3.1발포 사건’으로 민심은 극도로 악화되었고, 미 군정에 대한 불만 여론은 폭발하고 말았습니다. 반면 미 군정과 경찰은 사태 수습보다는 시위 주동자를 검거하는 일에 주력하였고 이것이 결국 제주 4.3으로 가는 단초가 되고 맙니다. 다랑쉬굴은 제주시 구좌읍 세화리에 위치한 길이 30m인 용암동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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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은 4.3사건으로 피신해 있던 지역 주민 11명이 토벌대에 의해 희생된 현장으로 1992년 발견 당시 유골과 당시 동굴 내부에서 쓰였던 항아리, 가마솥, 질그릇, 물 허벅 요강 등의 생활용품과 낫, 곡괭이, 도끼 등의 농기구가 발견되었다고 해요. 당시 토벌대는 굴 입구에 불을 피워 연기를 불어넣어 입구를 봉쇄했고 굴속의 주민들은 연기에 질식되어 죽어갔습니다. 다랑쉬굴은 1991년 12월 발견되어 1992년 4월 1일 공개했으며, 11구의 희생자 유해는 45일 만인 5월 15일 한 줌의 재로 바다에 뿌려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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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랑쉬굴은 유해들이 밖으로 꺼내진 뒤, 나머지 유물들을 그대로 남긴 채 입구는 다시 콘크리트로 봉쇄되었다고 합니다. 제주도민들은 미 군정과 경찰의 탄압을 폭로하며 희생자 구호금 모금에 나섰고, 이어 3월 10일에는 제주도청을 시발로 민・관 총파업이 시작되었습니다. 도청 등 관공서는 물론 은행・회사・학교・운수업체・통신 기관 등 도내 156개 기관, 단체, 회사 직원들이 파업에 들어갔고 현직 경찰관까지 파업에 동참하는 전도적인 파업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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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월 14일, 미 군정 경무부 장 조병옥이 제주도에 와서 총파업을 와해시켜 나갔습니다. 미 군정은 3월 15일 전남・북 응원경찰 222명, 3월 18일 경기도 응원경찰 99명을 증파하여 총파업에 강경 대응하였고, 조 병옥 경무 부장은 3월 19일 담화문을 통해 경찰의 발포는 정당방위였으며 3.1절 집회가와 총 파업이 북조선과의 통모로 발생했다는 내용을 공표하여 제주도를 ‘빨갱이 섬’으로 조작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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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사건 직후 미 군정 보고서에는 “제주도는 70%가 좌익 정당에 동조적이거나 가입해 있을 정도로 좌익의 본거지”라고 기록되었으며, 미 군정은 3월 15일부터 파업 주모자들을 검거하기 시작했는데 3・1발포 사건 이후 1948년 제주 4・3 발발 직전까지 1년 동안 2,500명이 검 속되었고, 이것이 ‘Red Hunt’ 즉 빨갱이 사냥의 시작입니다. 조병욱이나 이승만의 씻을 수 없는 원죄를 어찌하오리까? 예주야! 면허 따고 담양 갔다가 가마골-지리산 자락을 경유하면서 올 때 말하던 그곳을 기억하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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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용 산 산허리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만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붉은 장미는 시들었구나.
부용 산 산허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부용 산 산허리에
잔디만 푸르러, 푸르러
솔밭사이 사이로 회오리 바람타고
간다는 말 한마디 없이
너만 가고 말았구나.
피어나지 못한 채
붉은 장미는 시들었구나.
부용 산 산허리에
하늘만 푸르러, 푸르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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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의 거리 7회> 차입니다. 옥상에서 빨래로 창만과 유나가 티격태격 하다가 다영의 연극 대사 연습하는 것을 목격합니다. 빨래 너는 일 나도 잘합니다. 피존 냄새와 수건을 탈탈 털 때 나는 소리가 치명적 중독성이 있다고 봅니다. “연극 제목이 뭐에요?(유나)“ ”원래 길어요(창만) "한때 사랑했던 여자에게 보내는 구소련 우주비행사의 마지막 메시지(The cosmonaut's last message to the woman he once loved in the former Soviet Un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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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나가 심통이 나서 창만과 다영 이가 얘기하는 정중앙 홍해를 가릅니다. "이 아저씨가 씨부리는 영어가 맞아요?(유나)" "예, 맞아요. 확실해요(다영)" 창만이 이놈 제법입니다. 유나, 다영, 나 다 놀랐습니다. 이번이 처음은 아닙니다. 무엇이든 척척 고치고 다방면에 해박한 성실함까지 지닌 그의 매력에 누구라도 호감을 갖게 될 것입니다. 다영은 창만을 키 큰 오빠라고 부르기 시작합니다. “네가 언제부터 창만을 오빠라고 불렀어?(아빠)” “오늘부터요(다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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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도 되게 좋고 똑똑한 오빠예요. 솔직히 그 오빠는요 콜라텍에서 일하기 아까운 오빠예요(다영)" 7회에서는 그동안 한 사장에게 끌려다니던 창만이 퇴사를 선언하며 새로운 국면을 맞았습니다. "제가 그동안 사장님이 배려를 해주셔서 보증금도 없이 방값도 반만 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보니 주눅이 들어서 사장님께서 시키는 일은 뭐든지 막 했습니다." 더 이상 검은 양복 입고 건달 노릇하기 싫다는 그는 시세대로 방값을 지불하고 떳떳하게 입주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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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새 출발(?) 하게 된 창만은 칠복 내외와 함께 삼겹살을 먹으며 뼈 있는 말을 주고받습니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방값 반만 내고 들어와 있다는 자체가 너한테 함정이야. 머슴 살러 들어온 건 줄 알고 막 부린다니까(칠복). “ "반면교사란 말 있잖아요. 한 사장님은 사람은 이렇게 살면 안 된다는 걸 온몸으로 보여주시는 것 같아요(창만)“ 조금 더 가졌다는 이유로 자신의 처남이나 대선배인 장 노인, 창만을 머슴처럼 다뤘던 만복은 과연 달건이 맞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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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방이 내 뜻을 들어주지 않는다고 해서 무조건 윽박지르고 폭력을 행하면 70년대 건달 클리셰인데 맘보라서 어울립니다. 예, 건달 캐릭터는 그렇게 해야 합니다. 칠복의 말마따나 세상에 공짜는 없고, 누군가에게 분에 넘치는 대접을 받았다면 그것은 곧 독이 되어 나에게 돌아올 수 있음을 명심해야 할 것입니다. "남의 지갑 뺏는 거랑, 남의 남편 뺏는 거랑 어떤 게 더 나쁠까?" (유나) 표면적으로는 소매치기인 유나가 더 나쁘다고 보는 쪽도 있을 것이고 돈을 뜯어낼 목적으로 유부남에게 접근하는 미선이 더 나쁘다고 생각하는 쪽도 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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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태 악동인 저는 둘 다 좋습니다. 푸 하하하. 미선의 사주를 받고 작업 들어갑니다. 정 사장을 만나 말을 전하게 하거나 정 사장의 부인을 만나 자신의 몸값을 흥정할 때도 미선은 유나를 내보냈었지요. 졸지에 유나는 불륜 여가 돼서, 정 사장 부인의 가족에게 된 통을 맞고 도망쳐 나옵니다. 유나가 도망칠 수밖에 없었던 이유가 미선 언니의 콩가루를 얻어먹고 산 죄책감도 있었을 것입니다. 미선은 꿀꿀한 기분을 풀기 위해 호스트 빠를 찾아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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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남자 호스트 빠 단골 고객은 유흥업소에 나가는 언니들입니다. 2019년 봄에 터졌던 ‘클럽 버닝 썬(Burning sun)’은 불타는 태양, 불금쯤 될 것입니다. 이곳의 주인이 두 명인데 그중 한 명이 빅뱅의 멤버 승리라고 합니다. 승리가 실 주인이든 양 사장이 밀어주는 클럽이든 YG는 엿 됐습니다. 그날 이후 YG는 직격탄을 받고 징역살이를 했고 서열이 JYP 밑으로 떨어졌다고 봅니다. 과거 세금 문제로 1박2일에서 빠져나온 호동이나 이 승기는 십년감수했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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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닝 썬이 언론에 알려진 것은 클럽에서 작은 소동이 난 일로 가드와 손님이 시비가 붙었습니다. 이 과정에서 경찰이 출동을 했는데 과잉 진압을 한 모양입니다. 경찰이 업소 편을 들어 손님 손목에 수갑을 채우고 반항하는 남성의 몸을 몇 대 때리면서 남성이 상황을 사진과 함께 커뮤니티에 올렸고, 이것이 일파만파 된 것으로 압니다. 오락실을 할 때 영장도 없이 들이닥친 강력 팀에게 뒤로 은 팔찌를 찬 나쁜 기억이 있는데 무지 열받는 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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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이 일어난 버닝 썬은 르메르디앙 호텔 로비 층으로 강남 봉은사와 코엑스 뒤쪽에 위치한 속칭 물 좋은 곳입니다. 10년 전만 해도 '박카스' '돈 텔 마마' 가 있던 곳입니다. 내가 '자이언트' 호텔 사우나에 다닐 때 그곳은 카지노를 중심으로 범 단 넘버 10위 안에 있는 호남 조폭들이 관리하던 구역입니다. 우리가 아는 대로 형님들은 돈을 따라서 몰려들기 때문에 조폭들이 득실거리면 그곳이 핫 플 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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르네상스호텔과 콘티넨탈 호텔 같은 5성급 호텔이 있는 버닝 썬 에어리어는 여성들은 제휴 MD를 통해 입장료나 시간제한 없이 무료 게스트 입장이 가능한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남성들 또한 클럽 정책과 시간 및 상황적인 여건에 따라 입장 여부가 결정되는데 외모, 스타일은 필수 체크 사항입니다. 동생 용민이란 놈이 이곳의 단골일 것입니다. 참고로 1시 이전에는 꼰대들이 오고 1시 이후에는 젊은 애들이 출입을 하는 것은 어장 관리 차원일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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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이블 가격 예약이 가능하며 남자 여자 가릴 것 없이 서로가 모르는 사람들과 엔 빵 테이블 조각 참여도 가능합니다. 버닝 썬은 가보지 못했고 '박카스'가 회사 바로 앞에 있었기 때문에 불금 때 당시 300만 원 하는 룸이 만 땅 된 것을 자주 보곤 하였습니다. 무려 1500평짜리 홀이 빈틈이 없을 만큼 성황이었는데 텐 프로도, 박카스도 자취를 감춰버렸습니다. 요새는 아레나, 강남 메이드 클럽, 청담 메이드 클럽, 클럽페이스, 클럽 바운드, 클럽 에디트, 강남 매스 클럽, 이태원 메이드 클럽, 부티크 호텔 등이 물 좋은 클럽이라고 합디다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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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도 코로나19 때 습격 받고 물장사는 완전 죽 쑤고 있는 모양입니다. 승리의 카 톡 방이 스모킹 건으로 떠오르자 정준영이 연애 계 은퇴 선언을 할 수밖에 없었고 FT아일랜드 최 종훈까지 달려가게 되었습니다. 사면초가에 몰린 경찰이 수사를 확대하면서 이것저것 뒤지다 보니 음주운전 무마 건과 2013년 양평 성 접대 사진까지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나는 버닝 썬이든 양평 성 접대든 "아니 땐 굴뚝에 연기 날 리 없다"라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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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정 동 안 가는 박통 때부터 전력이 있고, 페미니즘 바람을 타고 남자 꽃 미남들은 버닝 썬의 여성 고객들에게 인기가 있었을 것입니다. 한류도 톡톡히 한몫을 했을 것이고, 양 사장의 패션 취향은 저랑 비슷합니다. 이 말의 의미를 아는 사람은 알 것입니다. 사설이 길었는데 하고 싶은 말은 여자든, 남자든 호스트 바나 술집을 찾을 땐 외로워서 갑니다. 그리고 그 외로움이란 존재감과 긴밀한 관련이 있다고 봅니다. 돈만 내면 나를 주인공(존재감)으로 만들어 주기 때문에 술집을 찾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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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머슴 같은 유나는 특이한 케이스입니다. 나는 유나 캐릭터가 중성에 가깝다고 보았습니다. 집적거리기 따위에 흥미가 있을 리 없는 유나는 먼저 들어가겠답니다. 남자는, 좀 더 솔직히 말하자면 저는, 여자를 볼 때 합리적인 '감성과 섹시함'을 봅니다. 물론 합리적인 여자는 섹시함이 없거나, 섹시한 여자는 합리적일 리가 없어요. 어차피 불가능하다면 섹시한 상대를 만나 합리적인 상대를 만드는 건 어떨까?
2.
“기억하지 않는 시대는 다시 죽인다” 우리는 왜 비극을 반복하는가? 망각 때문인가, 아니면 ‘이름 붙이기’의 폭력 때문인가? 이 글은 국수 한 그릇과 폭식 이후의 상쾌함에서 출발한다. 그러나 그 가벼운 일상은 곧, **제주 4.3이라는 집단적 상처의 심연으로 급격히 추락한다. “우연의 연속은 필연이다.” 이 문장은 단순한 문학적 감상이 아니라, 역사와 존재를 꿰뚫는 통찰이다. 먹고 자는 행위—그것은 단순한 생리적 회복이 아니라, 존재가 자신을 유지하는 가장 원초적인 방식이다. 그러나 이 글에서는 그 회복이 곧바로 집단적 고통을 기억하는 계기로 이어진다. 왜일까? 인간은 배부를 때 비로소 기억하기 때문이다. 굶주림 속에서는 윤리도, 역사도 사치다. 따라서 이 글의 구조는 이렇게 읽힌다. 육체의 충전 →감정의 개방 →기억의 소환 →역사적 진실과의 대면 이 흐름은 곧 <존재의 윤리적 각성 과정>이다.
1) 이름 붙이기의 폭력: ‘빨갱이’라는 프레임
이 글의 핵심은 단순한 역사 서술이 아니다. 진짜 핵심은 “이름 붙이기”에 있다. “제발 ‘좌 빨’ ‘빨갱이’란 단어 좀 쓰지 마시라.” 이 문장은 감정적 외침이 아니라 존재론적 저항이다. 왜냐하면 이름은 존재를 규정하기 때문이다. ‘빨갱이’라는 이름은 → 인간을 제거 가능한 대상으로 바꾸고 → 학살을 정당화하는 언어가 된다. 즉, 언어가 먼저 죽이고, 총은 나중에 쏜다. 이 점에서 이 글은 단순한 역사 비판이 아니라 언어의 신학, 혹은 존재론적 언어 비판에 가깝다.
2) 제주 4.3: 우연이 아닌 구조적 필연
글쓴이는 4.3을 감정적으로만 다루지 않는다. 그는 구조를 본다. 미 군정/인민위원회/우익 조직화/프레임 조작/Red Hunt 이 흐름은 단순 사건이 아니라 권력 구조가 만들어낸 필연적 비극이다. 여기서 우리는 아놀드 토인비의 통찰을 떠올릴 수 있다: “문명은 도전에 어떻게 응전하는가에 의해 결정된다.” 그러나 제주 4.3에서의 응전은 성숙이 아니라 폭력의 증폭이었다.
3) 부용산: 개인의 슬픔이 집단의 비극으로 확장될 때
이 글에서 가장 강렬한 장면은 ‘부용산’이다. 개인의 죽음을 애도하던 노래가 집단의 죽음을 상징하는 노래로 변한다. “피어나지 못한 채 붉은 장미는 시들었구나.” 이 문장은 단순한 시가 아니다. 이것은 <존재가 가능성 상태에서 소멸된 사건>이다. 태어나지 못한 삶/피어나지 못한 역사/기록되지 못한 이름들, 이 글은 묻는다. “죽은 것은 사람이 아니라 가능성이다.”
4) 외로움과 욕망: 현대의 또 다른 ‘은폐된 비극’
글은 후반부에서 갑자기 클럽, 유흥, 버닝 썬 사건으로 이동한다. 이 전환은 산만해 보이지만, 사실 매우 정교하다. 왜냐하면 과거의 학살 → 권력과 폭력, 현재의 유흥 → 욕망과 공허로 둘은 본질적으로 같은 뿌리를 갖기 때문이다. “사람은 외로워서 술집을 찾는다… 존재감 때문이다.” 이 문장은 이 글 전체를 관통하는 핵심이다. 과거에는→ 존재를 제거당했다면, 현재는→ 존재를 돈으로 확인한다. 즉, 우리는 더 이상 총에 의해 죽지 않지만 존재의 공허 속에서 서서히 소멸하고 있다.
5) 결론: 기억하는 자만이 인간이다
이 글은 결국 하나의 윤리로 귀결된다. 기억하라. 그리고 이름을 바로 부르라. 망각은 단순한 무지가 아니다. 망각은 <폭력의 공범>이다. 그리고 잘못된 이름은 <또 다른 학살의 시작>이다. 이 글은 ‘제주 4.3’이라는 역사적 사건을 넘어, 언어·기억·욕망 속에서 인간이 어떻게 사라지고 다시 태어나는지를 묻는 존재론적 기록이다.
2026.4.2.thu.앙팡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