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0년. 9월2일(수). 맥체인 성경 읽기 표를 따라 성경 읽기. 1) 삼상26장. “의(義)와 믿음을 지키는 나라” ㈎ 다윗을 추격하는 사울(2-3) ㈏ 하나님 중심(9-11) ㈐ 생명을 귀중히 여기는 나라(21, 24) ㈑ 의로운 나라(23, 사26:1-2) ㈒ 반드시 네가 승리하리라(삼상26:25) ㈎ 사울 왕국과 다윗 왕국(메시아 왕국)의 차이. ㈀ 사울 왕국. 자기 정과 욕심을 추구하는 왕국(빌3:18-19). ㈁ 다윗 왕국(메시아 왕국). - 그 나라와 그 의를 추구하는 왕국(마6:33. 빌2:5. 3:20-21. 사26:1-2). 생명을 귀중히 여기는 나라(삼상26:13-25). “오늘 왕의 생명을 내가 중히 여긴 것 같이 내 생명을 여호와께서 중히 여기셔서 모든 환난에서 나를 구하여 내시기를 바라나이다 하니라”(삼상26:24). ㈂ 하나님께서 세우시려는 나라는 “구원”으로 성곽을 삼은 나라요, “의와 신”을 지키는 나라입니다. 그러므로 사울에게 회개를 촉구할지언정 죽이지를 않습니다. “그 날에 유다 땅에서 이 노래를 부르리라 우리에게 견고한 성읍이 있음이여 여호와께서 구원으로 성과 곽을 삼으시리로다. 너희는 문들을 열고 신 (믿음)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로 들어오게 할지어다”(사26:1-2). ㈃ 이는 다윗을 통해 세우시려는 왕국이 어떠한 나라인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나라. 믿음을 지키는 의로운 나라. 대속의 복음을 믿는 믿음.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믿는 그 믿음을 지키는 나라. 그 나라는 생명을 소중히 여기는 나라입니다. ㈄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의 사명은 메시아의 사명, 성육신과 대속죽음과 부활로 구속을 성취하신 우리 주님과, 주님의 복음(구속성취)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구하고 누리고 증거 하는 그 사명을 맡은 분들입니다. ㈅ 다윗은 그 사명을 감당하고 있고, 사울은 표면적으로 기름 부음을 받았으나 그 심령이 진정 거듭나지 못함으로 그 사명을 망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늘날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는 물(구속성취)과 성령으로 거듭난(엡1;13) 모든 성도가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시133. 롬8:9. 딛3:3-7. 벧전2:9)입니다. “다윗이 아비새에게 이르되 죽이지 말라 누구든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면 죄가 없겠느냐 하고 ....내가 손을 들어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치는 것을 여호와께서 금하시나니...여호와께서 사람에게 그의 공의와 신실을 따라 갚으시리니 이는 여호와께서 오늘 왕을 내 손에 넘기셨으되 나는 손을 들어여호와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 치기를 원하지 아니하였음이니이다”(9. 11. 23). “너희를 범하는 자는 그의 눈동자를 범하는 것이라”(슥2:8). “내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친히 원수를 갚지 말고 하나님의 진노하심에 맡기라(네가 대신하지 말고 그 자리를 하나님께 맡기라) 기록되었으되 원수 갚는 것이 내게 있으니 내가 갚으리라고 주께서 말씀하시니라 네 원수가 주리거든 먹이고 목마르거든 마시게 하라 그리함으로 네가 숯불을 그 머리에 쌓아 놓으리라 악에게 지지 말고 선(화목의 복음 전함으로)으로 악을 이기라”(롬12:19-21). 2) 고전7장. 여러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권면. 바울이 고린도교회에 편지를 쓰는 목적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이 됩니다. ㈀ 첫째는 고린도 교회가 안고 있는 “분쟁, 음행, 소송 문제” 등을 시정해주기 위한 것과, ㈁ 둘째는 저들이 제기한 질의에 답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바울은 1-6장을 통해서 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부터 다루었습니다. ㈂ 문제들을 복음에 입각해서 치료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게 한 후에 7장부터는, “너희의 쓴 말에 대하여는”(1) 하고 질문에 답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 7장에서 다루고 있는 문제는, ㉠ 기혼자의 부부관계(1), ㉡ 홀아비와 과부 문제(8), ㉢ 이혼문제(10), ㉣ 부부가 합심 되지 못했을 경우(12), ㉤ 처녀에 대한 문제(25) 등에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한마디로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행하라” 하십니다. 7장을 해석하는 키워드는,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17)입닏다. ㈎ 첫째 단원(1-16) 여러 처지에 있는 사람들에 대한 권면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이 사람은 이러하고 저 사람은 저러하니라 내가 결혼하지 아니한 자들과 과부들에게 이르노니나와 같이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7-8). ㈏ 둘째 단원(17-24)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행하라 “오직 주께서 각 사람에게 나눠 주신 대로 하나님이 각 사람을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 내가 모든 교회에서 이와 같이 명하노라”(17). “각각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하나님과 함께 거하라”(24). ㈐ 셋째 단원(25-40) 처녀에 대한 권면과 그 의도 “주께 합당히 행하여 범사에 기쁘시게 하고 모든 선한 일에 열매를 맺게 하시며 하나님을 아는 것에 자라게 하시고”(골1:10) “범사에 네 자신이 선한 일의 본을 보이며”(딛2:7) “사랑하는 자여 네 영혼이 잘 됨같이 네가 범사에 잘 되고 강건하기를 내가 간구하노라”(요삼1:2) * 묵상 ⒜ “그냥 지내는 것이 좋으니라” 하는 바울의 의도에 대해서. 본문에 나타난 바울의 사상을 요약하면 첫째는, ㉠ “임박한 환난” 때문이요, 둘째는, ㉡ “육체의 고난”(28) 때문이요, 그리고 결정적인 이유는, ㉢ “마음이 나누이기”(33)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장가가지 않은 자는 주의 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주를 기쁘시게 할꼬 하되 장가간 자는 세상일을 염려하여 어찌하여야 아내를 기쁘게 할꼬 하여 마음이 나누이며”(32-33) 합니다. 바울의 일편단심은, “그런즉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10:31)에 있는 것입니다. 결혼을 해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지 않는 자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라는 뜻입니다. “날을 중히 여기는 자도 주를 위하여 중히 여기고 먹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으니 이는 하나님께 감사함이요 먹지 않는 자도 주를 위하여 먹지 아니하며 하나님께 감사하느니라”(롬 14:6) . ③ 권면의 의도가, “너희의 유익을 위함이요 올무를 놓으려 함이 아니니 오직 너희로 하여금 이치에 합하게 하여 분요함이 없이 주를 섬기게 하려 함이라”(35)는 말씀 속에 나타나 있다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다 “잘하는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더 잘하는 것”(38)이 무엇인가 하는 선택은 각자의 믿음의 분양이 내릴 일입니다. ⒝ 7장의 권면이 현대교회에는 어떤 의미가 있는지 대해서. 문화적인 면은 변할 수가 있어도 그리스도인의 인생관이나 가치관은 변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6:20)는 말씀이 불변의 진리라면, 7장의 말씀도 더욱 적실성이 있다 하겠습니다. “ 마음이 나누이며”라는 말씀에 공감을 하여,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7상, 8하)한 독신으로 부름을 받는 목회자들이 있다면 “ 더 잘하는 것이니라”(38) 말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각각 하나님께 받은 자기의 은사가 있으니 하나는 이러하고 하나는 저러하니라”(7 하) 한 “은사”로 될 일이지 가톨릭과 같은 의문으로 되는 것은 아닌 것입니다. 바울은 주님이 주신 은사로 혼자 살았지만, 방종(放縱)도 엄격히 경계(7)하고 있지만 금욕주의자(禁慾主義者)는 아닙니다. 목회서신에서, “어떤 사람들이 믿음에서 떠나 미혹케 하는 영과 귀신의 가르침을 쫓아, 혼인을 금하고 식물을 폐하라 할 터이나 하나님께서 지으신 모든 것이 선하매 감사함으로 받으면 버릴 것이 없나니 하나님의 말씀과 기도로 거룩하여짐이라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따르는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딤전 4:1-6)하십니다. ⒞ 부르심을 받은 그대로 최선을 다하고 있는지? 바울의 청지기론은 두 가지로 요약이 된다 하겠습니다. ㈎ 첫째는 “부르신 그대로 행하라”는 것이고, ㈏ 둘째는, “무슨 일을 하든지 마음을 다하여 주께 하듯 하라”(골 3:23)는 것입니다. ㉠ 아내에게는 남편에게 “주께 하듯 하라”(엡 5:22) 합니다. ㉡ 남편들에게는 아내에게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시고 위하여 자신을 주심같이 하라”(엡 5:25) 합니다. ㉢ 종들에게도 “육체의 상전에게 순종하기를 그리스도께 하듯 하라”(엡 6:5) 합니다. ㉣ 상전에게는 “저희와 너희의 상전이 하늘에 계심”(엡 6:9)을 명심하라고 말씀합니다. 왜 이렇게 해야만 하는가? “이는 범사에 우리 구주 하나님의 교훈을 빛나게 하려 함이라”(딛 2:10) 합니다. 그렇게 하노라면 “이는 각 사람이 무슨 선을 행하든지 종이나 자유 하는 자나 주에게 그대로 받을 줄을 앎이니라”(엡 6:8), 즉 주께서 그 노고를 갚아주신다는 말씀입니다. ⒟ 부부 사이에 갈등은 없는지에 대해서 ⒠ 무 율법주의자와 금욕주의자에 대해서. 혼자 산 바울의 삶과 카톨릭 신부, 수녀의 삶의 차이점에 대해서. ⒡ 바울과 같은 독신을 생각해 본적이 있는지 3) 겔5장. 가증한 일로 성소를 더럽힌 죄로 인한 징벌. = 복음을 거역함으로 인하여 오는 인생의 종말이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주심. “그러므로 나 주 여호와가 말하노라 내가 나의 삶을 두고 맹세하노니 네가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일로 내 성소를 더럽혔은즉 나도 너를 아끼지 아니하며 긍휼을 베풀지 아니하고 미약하게 하리니”(11). “전능자를 우리가 찾을 수 없나니 그는 권능이 지극히 크사 정의나 무한한 공의를 굽히지 아니하심이니라”(욥37:23). ㈎ 첫째 단원(1-4) 에스겔 선지자의 행위 계시 머리털과 수염을 깎는 상징 ㈏ 둘째 단원(5-9) 이방인보다 더욱 악한 선민 ㈐ 셋째 단원(10-17) 기근 온역 흩으심의 징벌 ⑴ “가증한 일로 성소를 더럽힌 죄에 대한 징벌”. ㈀ “이는 그들이 내 규례를 버리고 내 율례를 행치 아니하였음이니라”. ㈁ 율례는 율법과 규례. 규례는, 성막 규례. 곧 율법의 저주를 극복하는 성막의 규례. 성막에 나타난 메시아 언약.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말합니다. ㈂ 내 규례, 내 율례를 행치 아니함의 신약적 의미는, 율법의 저주를 담당하신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과 대속죽음 부활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거역한 죄입니다. ⑵ 교회가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 곧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못 박힌 복음을 거역하게 되면, 이방인보다 더욱 악해지는 것은 순식간입니다. ㈀ “그가 내 규례를 거슬러서 이방인보다 악을 더 행하며 내 율례도 그리함이 그를 둘러 있는 나라들보다 더하니 이는 그들이 내 규례를 버리고 내 율례를 행하지 아니하였음이니라...너희를 둘러 있는 이방인들의 규례대로도 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6. 7하). ㈁ 십자가 복음을 알지 못한 고린도 교회(고전5:1. 6:7-10)가 그러하였습니다. 라오디게아 교회(계3:15-17), 사데 교회(계3:1하 )가 그러하였습니다. ⑶ 세상의 중심인 교회(겔5:5. 마5:13-14)가 그 본질(고전1:23. 2:2. 고전15:3-4)을 잃어버리게 되면(겔5:11. 고전 3:17,갈1:8), 그 결과가 얼마나 참혹한지(겔5:8-17)를 보여주십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공의) 앞에 주님의 대속의 복음이 없이 설 수 있는 자는 아무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시기 이전에 공의의 하나님이심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와 같이 내 노가 다한즉 그들을 향한 분이 풀려서 내 마음이 가라앉으리라 내 분이 그들에게 다한즉 나 여호와가 열심으로 말한 줄을 그들이 알리라” (13). “임금이 손님들을 보러 들어올새 거기서 예복을 입지 않은 한 사람을 보고 이르되 친구여 어찌하여 예복을 입지 않고 여기 들어왔느냐 하니 그가 아무 말도 못하거늘 임금이 사환들에게 말하되 그 손발을 묶어 바깥 어두운 데에 내던지라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 하니라”(마 22:11-13). “그들의 진노의 큰 날이 이르렀으니 누가 능히 서리요 하더라”(계6:17). ⑷ 교회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복음으로 중심을 지키는 나라입니다. 교회가 복음에 굳게 서 있을 때 그 어떤 세력도 감히 대적하지 못합니다(계7:9-10. 눅10:19. 롬8:32-39). * 나누어 보겠습니다. ⒜ “전무후무”한 징벌을 당하게 된 주원인(主原因)이 “가증한 일”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세워주신 메시아 언약을 망각하고 우상을 숭배 한 죄. ⒝ 왜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세워주신 메시아 언약을 망각하고 우상을 숭배한 죄가 그렇게 가증한 죄가 되는 지에 대해서. 욥37:23. 계 6:12-17.아8:6-7. 갈2:16. 히12:18-21. ⒞ 이방인보다 더욱 악하다는 규례와 율례를 범함에 대해서, ⒟ ㈀ 머리털과 수염을 깎는 상징에 함의된 의미에 대해서, ㉠ 하나님은 에스겔의 머리털과 수염을 깎아서 저울에 달아 삼등분(三等分)하라 명하십니다. ㉡ 이 행위 계시에서도 에스겔은 백성들을 대신(代身) 하고 있습니다. ㉢ 본래 “제사장들은 머리털을 깎아 대머리 같게 하지 말며 그 수염 양편을 깎지 말라”(레 21:5) 하셨습니다. “머리털과 수염을 미는” 일은 문둥병자에게 하는 규례(레 14:9)입니다. ㉣ 암몬 왕 하눈이 다윗이 보낸 조문객들의 “수염을 깎아”(삼하 10:4) 돌려보낸 사건이 있었는데, 이를 크게 부끄러운 일로 여겨 수염이 자라기까지 성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였습니다. ㉤ 하나님께서 제사장인 에스겔의 머리털과 수염을 밀라 하심은 “제사장 나라”인 이스라엘을 이방의 수치와 조롱거리가 되게 하실 것에 대한 상징이었던 것입니다. ㉥ “저울에 달라” 하심은 이 예언의 진실성과 정확성을 나타냅니다. ㉦ 이와 결부하여 기억해야 할 점은 우리 죄를 인하여, “나를 때리는 자들에게 내 등을 맡기며 나의 수염을 뽑는 자들에게 나의 뺨을 맡기며 수욕과 침 뱉음을 피하려고 내 얼굴을 가리우지 아니 하였느니라”(사 50:6) 한 그리스도의 수난 예언입니다. ㈁ “너는 터럭 중에서 조금을 가져 네 옷자락에 싸라”(3) 하신 의미에 대해서. ㉠ “옷자락에 싸라” 하심은 남은 자가 있을 것을 나타냅니다. 6장에서도 “이방 중에 남아있는 자가 있게 할지라”(6:8) 하십니다. ㉡ 그런데 “조금”이라 하십니다. 그리고 “또 그 가운데서 얼마를 가져 불에 던져 사르라”(4) 하심은 “남은 자” 중에서도 또 추리시겠다는 뜻이 됩니다. ㈂ 이점을 이사야 선지자는 예언하기를, “사람들이 여호와께 멀리 옮기워서 이 땅에 폐한 곳이 많을 때까지니라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오히려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삼키운 바 될 것이나 밤나무,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사 6:12-13) 합니다. “어떤 사람이 여짜오되 주여 구원을 받는 자가 적으니이까 그들에게 이르시되 좁은 문으로 들어가기를 힘쓰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들어가기를 구하여도 못하는 자가 많으리라”(눅13:23-24). ㈃ “남은 자”의 교리가 신약에 이르러서도, “이제도 은혜로 택하심을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롬 11:5). “두려워하지 말며 침묵하지 말고 말하라내가 너와 함께 있으매 어떤 사람도 너를 대적하여 해롭게 할 자가 없을 것이니 이는 이 성중에 내 백성이 많음이라 하시더라”(행 18:9-10). “그러므로 내가 택함 받은 자들을 위하여 모든 것을 참음은 그들도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원을 영원한 영광과 함께 받게 하려 함이라”(딤후2:10). 4) a) 시42편. 상한 마음의 치유. ㈀ 시42편과 43편은 원래 한 편의 시였으리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인생의 문제와 해답이 담겨 있습니다. 상한 마음의 치유.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내가 오히려 찬송하리로다(5).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11). ㈏ ㈁ “하나님의 구하시는 제사는 상한 심령이라 하나님이여 상하고 통회하는 마음을 주께서 멸시치 아니하시리이다”(시51:17). ㈎ 첫째 단원(1-5) 자신이 자신에게 설교함 ㈀ “하나님이여 사슴이 시냇물을 찾기에 갈급함 같이 내 영혼이 주를 찾기에 갈급하나이다”(1) ㉠ 우리 육의 문제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 그러나 사람들은 영혼의 문제보다 육의 문제에 정신이 팔리는 이유에 대해서 ㉢ 성경은 근본적으로 우리 인생의 무엇에 대한 문제에 대한 해답인지에 대해서. 42편에는 “영혼”이라는 말이 5번(1, 2, 5, 6, 11)이나 등장합니다. 이는 본문의 갈급함이 육신만의 문제가 아니라, “내가 너희에게 이른 말이 영이요 생명이라”(요 6:63) 하신, 영혼의 갈망임을 나타냅니다. 이점이 어째서 중요하냐 하면 오늘의 염려와 낙망이 육의 문제일 뿐 영혼의 갈망에 대해서는 너무나 모르는 경향이 있기 때문입니다. ㈁ “내 영혼이 하나님 곧 살아 계시는 하나님을 갈망하나니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의 얼굴을 뵈올까...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내가 전에 성일을 지키는 무리와 동행하여 기쁨과 감사의 소리를 내며 그들을 하나님의 집으로 인도하였더니 이제 이 일을 기억하고 내 마음이 상하는도다”(2-4). ㉠ 죄인된 우리들이 어떻게 의롭다함을 얻어 거룩하신 하나님 존전에 나아가는 길이 열리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 그런데 지금 시편 기자의 형편이 어떠한 처지에 놓이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 왜 에스겔 시대와 방불한 이러한 재앙과 징벌과 고난을 당하게 되었는지에 대해서 ㉣ 시편 42편의 기자의 아픔과 시137편 기자의 공통점에 대해서. ㈂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5). ㈀ 시편 기자가 지금은 비록 고난 가운데 있지만 그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이유가 어디 있는지에 대해서. 왕상8:35-50. ㈁ 예레미야가 고난 중에서도 소망을 가지게 된 이유에 대해서. 렘29:10-11. 31;22. 31;131-34. ㈂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가 여전히 찬송하리로다”(5하) 이러한 은혜는 언제 체험하게 되는지에 대해서. 오직 메시아 언약,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복음 앞에 죄를 자복하고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를 의지하고 주님의 통치를 구할 때, 주님의 말씀을 묵상할 때 진정한 찬송이 나오게 됩니다. ㈏ 둘째 단원(6-11) 기억하고 기도하고 찬송하라 ㈎ 둘째 단원의 중심 단어는 “기억하나이다(6), 기도하리로다(8), 찬송하리로다”(11) 한, “기억, 기도, 찬송”에 있습니다. ㈀ “내 하나님이여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되므로 내가 요단 땅과 헤르몬과 미살산에서 주를 기억하나이다”(6) 합니다. ㉠ 시편 기자는 하나님의 성막이 있는 예루살렘에서 멀리 떨어져 있는 북쪽 헤르몬 산 지경을 유리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첫째 단원(1-5)을 통해서 상한 마음이 치유를 받은 줄 알았는데 또다시,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된다” 하고 말합니다. 왜 그런가? 그리스도인의 마음속에서는 , “육체의 소욕과 성령의 소욕”이 서로 대적하고 있기(갈 5:17) 때문입니다. ㉡ 그러므로 본문을 주목해보면 “낙망과 불안”해하는 육신의 자아와, 하나님을 바라는 성령의 “나”가 대결하듯이 나타나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 ㉮ 3-4절에서는 “눈물을 흘리며 마음이 상해” 있습니다. ㉯ 그런 나를 향해서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오히려 내가 찬송하리로다”(5) 합니다. ㉰ 그런데 6절에서는 또다시, “내 영혼이 내 속에서 낙망이 된다” 하고 말하고, ㉱ 그런가 하면 8절에서는 “여호와께서 베푸시는 인자(仁慈)를 생각하며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 합니다. ㉲ 그런데 9절에서는 또다시,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합니다. ㉳ 11절에서는 그런 나를 향해서,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합니다. 이런 갈등이 반복되는 것이 인간의 심령인 것입니다. ㈏ 이처럼 영적 전쟁이란 사람의 “마음”을 차지하기 위한 두 세력간의 싸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인류의 시조는 부족함이 없는 에덴 낙원에서 사탄에게 마음을 빼앗겼던 것입니다. 그런데 죄악이 관영한 이 세상에서 “무릇 지킬 만한 것보다 더욱 네 마음을 지키라”(잠 4:23) 한, “마음을 지키는 일”이란 생각보다 훨씬 치열한 싸움입니다. ㈀ 7절에서는 “주의 폭포소리에 깊은 바다가 서로 부르며 주의 파도와 물결이 나를 엄몰하도소이다”(7) 하고 말씀합니다. ㉠ “폭포소리”라고 말하고 있는데, 기자는 헬르몬 산의 어떤 폭포소리를 듣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 그런데 “폭포소리, 깊은 바다, 파도 물결” 등의 표현을, “나를 엄몰하도소이다” 하는 말씀과 결부시켜 볼 때, 심령의 평강을 흔들어 놓기 위해서“폭포같이, 성난 파도 같이” 몰아치고 있는 심적인 갈등을 나타내는 비유임을 알게 됩니다. ㈁ “낮에는 여호와께서 그 인자함을 베푸시고 밤에는 그 찬송이 내게 있어 생명의 하나님께 기도하리로다”(8) 합니다. ㉠ 8절 안에는 “인자(仁慈)와, 찬송과, 기도”가 있습니다. 어떠한 처지와 형편에서도 하나님의 인자(仁慈)를 생각하노라면 “찬양하고 기도” 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많이 친 후에 옥에 가두고 간수에게 분부하여 든든히 지키라” 했습니다. 그런데 “밤중쯤 되어 바울과 실라가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미하매 죄수들이 듣더라”(행 16:23, 25) 합니다. ㉡ 그런데 육신의 자아는, “내 반석이신 하나님께 말하기를 어찌하여 나를 잊으셨나이까 내가 어찌하여 원수의 압제로 인하여 슬프게 다니나이까 ”(9)하면서, “내 뼈를 찌르는 칼 같이 내 대적이 나를 비방하여 늘 말하기를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10) 하고 조롱하나이다 하고 항변하듯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 그리하여 42편은,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고 너는 하나님을 바라라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내 하나님을 오히려 찬송하리로다”(11) 하고, 또다시 자신이 자신에게 설교하는 것으로 마치고 있습니다. ㈀ 왜냐하면 상한 마음을 치료하는 다른 방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는 단순히 5절의 반복만은 아닙니다. 5절에서는 “그 얼굴의 도우심을 인하여” 하고, 하나님의 얼굴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11절에서는 “나는 내 얼굴을 도우시는” 하고, “내 얼굴”에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그러면 어떤 차이가 있는가? ㉠ 5절의 얼굴은 하나님께서 나를 바라보시는 얼굴이요, ㉡ 11절의 얼굴은 내가 하나님을 바라보는 얼굴이라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 “폭포소리”와 같은 파상적인 시련 중에서도 얼굴을 들어 하나님을 바라보노라면 자비(慈悲)히 나를 바라보고 계시는 하나님의 얼굴을 대할 수가 있다는 뜻이 됩니다. 그러면 이렇게 외칠 수가 있는 것입니다. “보라 하늘이 열리고 인자가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노라”(행 7:56) 아멘. 이것이 상한 마음을 치유하는 비결입니다. ㈑ 적용 : 이제 자신이 자신에게 설교하는 법을 훈련해야 하겠습니다. 명심할 점은 그렇게 하려면 먼저 하나님의 말씀이 심비에 기록이 되어 있어야만 한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탄을 물리치는 성령의 검이요, 심령을 살찌게 하는 보약이요, 상한 심령을 치료하는 양약입니다. 다른 비법이란 없습니다. ㈒ 묵상 ㉠ 42편의 사람은 어떤 처지에 있는가? ㉡ 그가 겪고 있는 심적인 갈등이 어떻게 묘사되어 있는가? ㉢ 그에 대한 치료책이 무엇인가? b) 시43편.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3). a) 주의 빛도 복음(요1:4. 골1:13-14. 말4:2. 마4:16. 눅1:78). 주의 진리도 복음(요14:6. 8:32)을 의미합니다. 복음 진리가 성령을 통해 내 마음에 깨닫게 하시고, 그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나를 인도하소서. 주의 성산, 주의 장막. 곧 주님의 몸 된 교회. 하나님 나라. 새 하늘과 새 땅에 이르게 하소서. 이 은혜는 오직 자기 죄를 알고, 그 죄에 대한 진노의 두려움을 알고, 상하고 통회한 심령으로 주님의 복음을 의지할 때 가능합니다. 복음을 주신 주님을 영접할 때 가능합니다.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고후4:6). b) 복음이 무엇입니까? 창3:15절의 여자의 후손. 그 여자의 후손의 성육신과 대속죽음과 부활(고전15:3-4)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복음입니다. 그 여자의 후손이 아브라함의 자손(창22:18)으로, 다윗의 자손(삼하7:13. 16)으로, 영광의 광채, 하나님의 본체의 형상이신 그 분이 성경대로, 성육신과 대속죽음과 부활로 이루신 복음입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세계라”(마1:1). - 아브라함과 다윗에게 언약하신 그 언약의 자손, 하나님의 아들의 성육신과 대속죽음과 부활로 구속을 성취하신 예수 그리스도가 오시기까지 그 오심을 보여주는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로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나의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이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으리라내가 받은 것을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이는 성경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시고 장사지낸 바 되었다가 성경대로 사흘 만에 다시 살아나사”(고전15:1-4). “예수는 우리 범죄 함을 위하여 내어 줌이 되고 또한 우리를 의롭다 하심을 위하여 살아나셨느니라”(롬4: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3:25-26).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 그 아들 안에서 우리가 구속 곧 죄 사함을 얻었도다”(골1;13-14). 빛은 흑암의 권세를 물러가게 하는 복음입니다. c) 성경을 올바로 분별하여, 그 성경을 가지고 뜻을 풀어 반드시 되리라 말한 이것,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성취와 그 적용으로 이루어지는 하나님 나라(눅24:44-49. 요5:39. 행1:3. 28:23)를 증거 해 주시는 분들(마13:52. 마16:19. 24:45. 눅 12:42.행17:2-3. 26:22-23. 28:23. 고전1:18. 23. 2:2)이 빛의 사자들입니다. 복음의 빛을 전하는 그 분들을 통해 그 영혼을 치유해 주십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42:11). “또 보니 다른 천사(빛의 사자들)가 공중에 날아가는데 땅에 거주하는 자들 곧 모든 민족과 종족과 방언과백성에게 전할 영원한 복음을 가졌더라”(계14:6. 행1:8).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시43:3). * 시편에는 부르짖고 탄원하는 내용들이 많습니다. 그런데 시43편의 탄원이 결론에 이르러서는 찬양으로 바뀌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어떻게 이것이 가능하여지는가? 대답은 “시편에 나를 가리켜 기록된 모든 것이 이루어져야 하리라”(눅 24:44) 하신, 그리스도를 만남으로 가능해지는 것입니다. 이것이 “내 얼굴을 도우시는 하나님”이요, 해답은 “빛과 진리를 보내어 인도하소사”에 있는 것입니다. * 적용 : 우리도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나의 큰 기쁨의 하나님께 이르게 되었음을 확신하게 되었다면, 낙망과 불안이 변하여 오히려 찬송하게 될 것입니다. * 묵상 ㈎ 42편과 43편이 공통적으로 제기한 문제가 무엇인가? 42 편과, 43 편에는 공통된 문제 제기가 있는데 그것은, “내가 어느 때에 나아가서 하나님 앞에 뵈올꼬(42:2),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43:3) 하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게 해달라는 문제(問題)입니다. 그런데 “43편에서는 “빛과 진리를 보내어 나를 인도하사 주의 성산과 장막에 이르게 하소서”(3)합니다. 빛과 진리가 무엇인지에 대해서. ㈏ 43편이 말씀하는 진전된 계시에 대해서, 본래 43편과 42편이 한 편의 시(詩)였으리라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 근거로 43편에는 표제가 없는 것과, 후렴과 같은 “네가 어찌하여 낙망하며 불안하여 하는고”(5) 하는 구절이 있는 것을 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점은 43편이 보다 진전(進展)된 계시를 말씀함으로 42 편에 대한 명백한 해답(解答)을 제시해주고 있다는 점입니다. 그 해답이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어” 달라는데 있습니다. ㈐ 아담 안에 있는 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와 그 해답에 대해서. 렘17:9. 사59:2. 요19:30. 34. 히10:10. 18-22. 고후 4:6. 아담안에 있는 모든 자들이 풀어야 할 숙제는 심히 부패하고 가증한 죄 문제입니다.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사 59:2)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가리셨던 휘장은 주님께서 십자가상에서 “다 이루었다” 하고 선언하셨을 때에 제거가 되었고(히10:20), 제거하여 주신 그 복음을 누군가 우리에게 전해 주었을 때, 성령께서 내 죄와 죄로 인한 진노의 두려움의 해답 우리 주님의 복음을 깨닫게 하심으로 의롭다함을 얻게 되었습니다. 성경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복음의 빛을 내 마음에 비추어 주셨습니다. “어두운데서 빛이 비취리라 하시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취셨느라”(고후 4:6). 아멘. * 찬송. 502장. 빛의 사자들이여 ⑴ 빛의 사자들이여 어서 가서 어둠을 물리치고 주의 진리 모르는 백성에게 복음의 빛 비춰라 ⑵ 선한 역사 위하여 힘을 내라 주 함께 하시겠네 주의 넓은 사랑을 전파하며 복음의 빛 비춰라 ⑶ 주님 부탁하신 말 순종하여 이 진리 전파하라 산과 바다 건너가 힘을 다해 복음의 빛 비춰라 ⑷ 동서남북 어디나 땅 끝까지 주님만 의지하고 어두워서 못 보는 백성에게 복음의 빛 비춰라 <후렴> 빛의 사자들이여 복음의 빛 비춰라 죄로 어둔 밤 밝게 비춰라 빛의 사자들이여. * 낙심할 일이 많은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오직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여 우리 마음에 찬송이 울려 퍼지길 기도드립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해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 시4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