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 산 22-2 의령 남씨 가족묘소에는 병인년 서소문 밖에서 치명한 성 남종삼(南鐘三, 1817-1866년)의 묘소가 있다.
성인 남종삼(南鐘三) 요한은 남항교(南恒敎)의 아들로서 종형 남상교(南尙敎, 1784-1866년)의 양자로 들어갔고 양가가 다 천주교에 입교하여 자기도 요한의 교명으로 영세하였다. 1838년에 과거 급제하여 승진을 거듭하여 승지가 되면서 정3품까지 올랐다. 상교 아오스딩은 충주 목사를 지낼 때 미신 행위를 해야만 해서 신앙생활에 저촉되므로 벼슬을 그만두고 배론 산넘어 묘재라는 곳으로 이사하여 세속과 인연을 끊고 살았다. 종삼(요한) 또한 현감직을 수행하는데 청렴결백하고 선정을 베풀므로 지방민의 칭송을 받았다. 그러나 향교 제사에 불참으로 말썽이 일게 되자 관직에서 물러났다.
그때에 두만강을 사이에 둔 큰 나라 러시아는 1860년경 연해주에 블라디보스톡 항구를 구축하고 조선을 먹어볼 차비를 해 1864년 2월에 5명의 러시아인이 얼음을 타고 건너 경흥으로 와 통상을 요구하자 이에 당황한 대원군은 어떤 고관을 통하여 국내에 와 있는 불국인 천주교 주교가 러시아인들을 물러나게 해주면 신교 자유를 주겠다는 뜻을 말하였다. 또 1865년 9월에 러시아인 수십명이 두만강을 건너와 중국인 한 사람을 시켜 필담을 통해 국서(國書)를 가지고 함경도 감사 방문을 요구하였다.
급보를 접한 대원군은 크게 놀랐고 장안은 술렁거렸다. 이때 김면호 토마스가 러시아인들은 몰아낼 대책의 건의서를 써 대원군에게 올렸으나 묵살 당하게 되었다. 내용인즉 국내에 있는 불국 주교의 주선으로 불국과 영국과 동맹을 맺는 것이라고 설명했던 것이다. 이에 홍 토마스 봉주가 남승지를 찾아가 새로운 건의문 작성을 부탁하였다. 그는 새로운 건의문을 가지고 직접 대원군에게 바쳤다. 대원군은 그 건의서를 읽고 또 읽어보고 만족하고 주교를 빨리 만나게 해 줄 것을 간곡히 부탁했다. 그때 장 주교는 북쪽에서, 안 주교는 남쪽에서 전교 중이었다. 이 소식을 접한 안 주교는 1866년 1월 25일(음력 1865년 12월 9일)에 장 주교는 이보다 나흘 후에 돌아왔다. 음력 12월 15일 남승지가 이 소식을 전하러 운현궁으로 대원군을 찾아갔더니 자기도 알았다고 하면서 급하지 않으니 두었다가 보자고 하며 아주 냉대하고 물러가게 하였다.
주교가 당장 서울에 없어 한탄하며 빨리 기쁘게 만나고 싶다고 부탁까지 했던 대원군이 십여일만에 돌변하여 박해자 폭군으로 등장하였다. 종삼은 20일간 묘재집에 있었다. 그동안 서울에서는 박해가 일어나 장 주교와 모모 교우들이 잡혀 옥에 갇혔다. 종삼은 서울에 올라오는 도중 1866년 3월 1일(양력) 체포되어 의금부에 수감되어 다음 날부터 혹독한 문초를 받았다. 안 다뷜뤼 주교님과 함께 형을 받은 성인은 병인년 3월 서소문밖 네거리에서 치명한다. 그의 아버지 남상교는 공주에서 그의 아들은 전주에서 전주천에 수장되어 순교하고 그의 처인 이소사도 창녕에서 순교한다. 청령에 귀향 갔던 둘째 아들 방지거는 탈출하여 서울로 가서 결혼하여 아들 상철(相喆)을 두어 남씨 집안의 대를 이었다.
충청북도 제천시 봉양읍 학산리에는 성 남종삼(南鐘三, 1817-
1866년)이 살던 묘재가 있다. 묘재성지는 성인 남종삼의 생가터를 보존해 놓은 성지이다. 남종삼 요한은 1968년 병인 순교자와 더불어 복자 품에 오르셨고, 1984년 5월 6일 성인 품에 오르셨다.
◆ 남종삼 성인 묘역 안내 표지석 설치
서울대교구 한국순교자현양회는 성 남종삼(요한) 순교자 묘역 성역화 작업의 일환으로 2004년 12월 30일 경기도 양주시 장흥면 울대리 산 22-2 의령 남씨 가족묘소 진입로에 남종삼 성인 묘역 안내 표지석 4개를 설치하고 묘 안내 와비(누운 비석) 4기에 대한 축복식을 거행했다.
이날 축복식은 순교자현양위가 지난해 1월 울대리 길음동본당 공원묘원 인근에 자리한 의령 남씨 가족묘에 있는 성인의 묘 소재지를 파악한 후 성역화 작업을 추진하기로 함에 따른 것이다. 이에 따라 현양위는 지난 3월부터 길음동본당 및 의령 남씨 종친회와 협의를 거쳐 성인 묘역 성역화의 첫 단계로 안내 와비 설치사업을 진행해왔다. 가로 70cm, 세로 24cm, 두께 12cm 크기의 오석에 「천주교 순교 성인 승지 남종삼 요한 묘」라고 새겨진 와비는 길음동본당 공원묘원 안팎에 설치돼 순례자들의 발길을 이끌게 된다.
이날 와비 설치로 묘역 성역화의 첫 단추가 꿰어짐으로써 그간 성인의 후손들을 중심으로 이뤄져온 성역화 사업이 교구 차원으로 본격화할 것으로 보인다.설치된 표지석은 윤기있는 검은색 빛깔을 내는 오석(烏石)을 사용했다.
이날 행사는 한국순교자현양위원회 위원장 최창화 몬시뇰 주례로 거행됐으며, 이정윤 회장을 비롯한 현양회 위원과 서울 길음동본당 신자 등 20여명이 참석했다.
◆ 인천교구 성 남종삼 유해 봉안식
인천교구가 병인박해 때 순교한 남종삼(요한) 성인의 유해 일부를 교구 내 성지에 봉안했다. 이 유해는 성인의 후손인 남기윤(베네딕도)씨가 큰고모인 남형우 수녀(샬트르 성 바오로 수녀회)에게 인도받아 기증한 것으로 척추뼈 1점, 치아 4점, 슬개골 1점, 머리카락과 부위가 불명확한 부스러기 뼈 등이다.
인천교구 남종삼 요한 유해 봉안 위원회(위원장=제정원 신부)는 2004년 8월 31일 오전 10시30분 남기윤씨 자택에서 제정원 신부 주례로 유해 봉안예식을 거행, 주교관 경당 감실로 옮겼다. 유해중 일부는 방부 처리 후 9월 7일 제1회 교구 순교자현양대회 때 갑곶성지에 봉안됐으며, 일부는 한국일만위순교자현양동산에 나눠 봉안될 예정이다. 성인의 유해는 현재 로마 교황청과 서울 절두산순교성지 지하묘소, 경기도 양주시 의령 남씨 가족묘역 등에 각각 일부씩 안장돼 있다.(가톨릭신문 2004.9.12)
[내용, 사진 출처 : 오영환, 한국의 성지 - http://www.paxkorea.co.kr, 20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