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복음 22~24장은 예수님의 마지막 날들에 대한 기록입니다. 예수께서 수난을 당하시는 장면과 십자가 처형, 그리고 부활과 승천에 대한 이야기까지 수록되어 있습니다.
22장에는 가룟 유다가 유대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을 넘겨주겠다고 약속하는 장면과, 예수님이 제자들과 유월절을 준비하며 마지막 만찬을 갖는 장면, 그리고 만찬 자리에서 베드로가 부인할 것을 예고하시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간절히 기도하시는 장면에 이어, 가룟 유다를 앞세우고 온 유대지도자들에게 체포되시고 재판을 받는 장면까지 이어집니다.
이 본문들은 마태복음 26장과 마가복음 14장에도 수록되어 있습니다. 마가의 원본을 마태와 누가가 가져간 것인데, 마태와 마가의 본문과는 다른 누가만의 특색이 담긴 본문이 두 군데 나타납니다. 22장의 전체적인 내용에 대한 설명은 마태복음 26장 강해를 참조해주시고, 여기서는 누가의 특색이 나타나는 두 본문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먼저 24~30절을 보겠습니다.
24 제자들 가운데서 누구를 가장 큰 사람으로 칠 것이냐는 물음을 놓고, 그들 사이에 말다툼이 벌어졌다.
2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민족들을 지배하는 왕들은 백성들 위에 군림한다. 그리고 백성들에게 권세를 부리는 자들은 은인으로 행세한다.
26 그러나 너희는 그래서는 안 된다. 너희 가운데서 가장 큰 사람은 가장 어린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하고, 또 다스리는 사람은 섬기는 사람과 같이 되어야 한다.
27 누가 더 높으냐? 밥상 앞에 앉은 사람이냐? 시중 드는 사람이냐? 밥상 앞에 앉은 사람이 아니냐? 나는 시중드는 사람으로 너희 가운데 와 있다.
28 너희는 내가 시련을 겪는 동안에 나와 함께 견디어 온 사람들이다.
29 내 아버지께서 내게 왕권을 주신 것과 같이, 나도 너희에게 왕권을 준다.
30 그리하여 너희로 하여금 내 나라에 있으면서 내 밥상에서 먹고 마시게 하고, 보좌에 앉아서 이스라엘의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하겠다."
누가 크냐는 문제를 놓고 제자들이 다투는 이야기는 복음서 여기저기에 많이 수록되어 있습니다. 이 본문은 그 문제에 대해 매듭을 지어야 할 필요성이 있어서 최종적으로 정리를 한 것 같은 느낌이 듭니다.
이 본문에는 일세기 후반의 교회 상황이 반영되었을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 파워게임이 벌어지면 하나님의 나라 건설은 물 건너가게 됩니다. 그래서 본문의 예수님은, 세속의 나라는 권력을 기반으로 하지만 하나님의 나라는 섬김을 기반으로 한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나 본문 후반부로 가면 예수님의 제자들을 보좌에 앉게 하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게 하겠다는 약속을 해주십니다. 예수님과 교회를 핍박하는 유대교와 그 지도자들에 대한 일세기 교회의 원한이 담겨있는 내용입니다.
이어지는 본문 가운데 제자들을 파송했던 일을 회고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그런데 흘러가는 내용이 그때와는 전혀 다른 양상으로 전개됩니다. 35~38절을 보겠습니다.
35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희를, 돈주머니와 자루와 신발이 없이 내보냈을 때에, 너희에게 부족한 것이 있더냐?" 그들은 대답하기를 "없었습니다" 하였다.
36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이제는 돈주머니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챙겨라. 또 자루도 그렇게 하여라. 그리고 칼이 없는 사람은, 옷을 팔아서 칼을 사거라.
37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그는 무법자들 속에 끼어서 같은 무리로 몰렸다'고 기록된 이 성경 말씀이, 내게서 반드시 이루어져야 한다. 과연, 나에 관하여 기록한 일은 이루어지고 있다."
38 제자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주님, 보십시오, 여기에 칼 두 자루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넉넉하다" 하고 말씀하셨다.
이 본문이 실제로 예수께서 하신 말씀일 가능성은 거의 없다고 말하는 학자들이 많습니다. 누가의 철학과 일치하는 본문이 아니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마치 젤롯당원들의 글이 흘러들어온 것 같은 느낌인데, 젤롯당은 로마제국을 무력으로 몰아내고자 결성된 열성당원들로 구성된 조직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애국적 테러리스트 집단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본문은 누가복음 원본이 발표된 후,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복사된 초기 사본에 누군가 이 본문을 삽입했고, 이후에 이 사본이 주류가 되어 마치 누가복음 원본에서부터 있었던 글처럼 간주되었을 가능성이 있어보인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다른 해석도 있습니다. 일부 학자들은 이 본문이, 예수운동의 원형은 비정치적 무저항운동이 아니라, 젤롯당과 이념을 공유하는 저항운동이었을 가능성이 있음을 보여준다고 주장합니다. 그런데 서기 70년에 예루살렘이 처참하게 파멸된 후에, 로마제국에 대항하는 것은 곧 자멸의 길임을 깨달은 예수공동체들이 노선을 바꾸었다는 것입니다. 그 증거로 젤롯당원인 가룟 유다가 예수님의 최측근 중의 한 명이었다는 점과, 성전에서 장사하는 사람들의 상을 예수님이 뒤엎으셨다는 기록 등을 예로 듭니다. 만일 그 주장이 옳다면,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배반했다는 복음서의 본문들은 교회의 입김을 탄 기록이었을 가능성이 있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