엊그제 시애틀에 손오공이 나타났다. 바위산이 폭발하면서 튀어나온 손오공이 불로장생의 천도를 멋대로 따먹으며 난장판을 벌이다가 부처의 손바닥에 잡힌 후 천축국(인도)으로 불경을 얻으러 가는 삼장법사의 보디가드가 되는 장면을 앉아서 구경했다. 고우영의 장편만화 ‘서유기’에 나오는 손오공이 아니라 5분짜리 단막 ‘발레’에 출연한 손오공이었다.
중국 전통 가무극단인 신운예술단이 이번 주 시애틀의 맥코우 홀(발레극장)에서 두 차례 공연을 가졌다. 신운(神韻)은 중국말로는 ‘션윈,’ 영어로는 ‘셴윤(Shen Yun)’으로 불리는 세계적 공연단체이다. 지난 달 뉴욕 링컨센터에서 가진 5차례 공연도 모두 표가 매진됐다. 신운(신이 빚어내는 운치)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오케스트라 연주에 맞춰 전통 춤을 발레 스타일로 화려하면서도 섬세하게 펼치는 이 공연단은 사실은 중국과는 상극이다. 해외의 중국 예술인들이 2006년 뉴욕에서 설립한 비영리단체다. 중국 공산당의 문화대혁명으로 철저하게 파괴된 중국의 5,000년 문화를 되살린다는 것이 신운예술단의 창립취지이다.
그래선지 이날 공연 프로그램 중엔 파룬궁(法輪功)을 탄압하는 중국정부를 비판하는 내용이 자주 등장했다. 파룬궁은 원래 일종의 기공이다. 불교와 도교 사상을 기초로 건강향상을 도모하는 수련법인데, 중국정부는 이를 반체제단체로 간주하고 탄압한다. 작년 1월 신운의 부산-대구-고양 순회공연 때 주한 중국대사관이 방해공작을 했던 것도 그 때문이다.
신운 공연에는 무대장치가 없다. 천정에서 무대까지 이어지는 초대형 스크린의 화려한 동영상이 무대장치다. 두 시간가량 이어진 공연에 손오공 이야기를 포함한 22개의 짤막짤막한 쇼가 이어졌다. 키가 똑 고른 남녀 무용수 40명이 다양한 시대, 다양한 지방의 전통춤을 다양한 의상차림으로 선보였다. 배경 스크린은 관객을 천상세계부터, 사찰과 전쟁 터, 연꽃이 흐드러진 호수, 몽골의 광야, 베이징의 천안문 광장과 대만의 농촌 등으로 계속 안내했다.
동서양 악기 혼성의 오케스트라도 인상적이었다. ‘얼후’라는 중국의 2줄 전통 현악기 소리를 사회자가 특별히 소개했다. 연주된 음악은 모두 공연을 위해 창작된 오리지널 곡이었다. 성악가 3명(소프라노, 바리톤, 테너)이 나와서 역시 오리지널 가곡을 열창했다. 소위 ‘집체예술’의 극치를 맛보는 느낌이었다. 매년 공연마다 춤과 음악이 달라진다니 놀라웠다.
구경은 좋았으나 귀가길에 입맛이 좀 씁쓸했다. 한인사회도 그런 전통예술단이 있으면 좋겠다는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현실적으로 기대하기 어려운 일이다. 시애틀엔 샛별 문화원 공연단이 있고 다른 주요도시에도 전통예술 무용단이 나름대로 활동을 벌이고 있지만 신운과는 규모와 수준면에서 비교가 안 된다. 재정상태도 허약해서 현상유지에 급급하다.
한국정부라면 얘기가 다르다. 반만년 고유문화의 정수를 체현하는 현대식 전통가무단을 구성해 해외 순회공연을 펼칠 수 있다. 세종대왕, 이순신, 홍길동, 춘향전, 흥부놀부, 삼일절, 6․25 등을 소재로 배달민족의 긍지, 정의, 사랑, 의지, 자주정신 등을 무대예술로 발현할 수 있다. 한류와 K팝이 한국문화의 전부가 아님을 외국인들이 금방 깨달을 수 있다.
재외동포재단 같은 정부기관이 주관하면 신운을 능가하는 가무단을 쉽게 만들 수 있다. 재능있는 젊은이들이 국내외에 얼마든지 있다. 컴퓨터 왕국답게 배경 스크린의 그래픽 이미지도 훨씬 더 세련되게 만들 수 있다. 그런 가무단이 맥코우 홀에서 공연을 갖는다면 시애틀 한인들의 어깨가 으쓱해질 것이다. 엊그제 신운 공연장의 중국인 관객들이 그랬다.
해외공연만이 목적이 아니다. 북한이 자랑하는 ‘피바다 가무단’은 작년 중국 공연에서 큰 호응을 받은 것으로 알려졌다. 물론 김일성을 신격화한 내용이다. 공산당에 철저하게 쇠뇌돼있는 북한 동포들의 통일 후 정서순화용으로도 전통 가무단은 필요할 것 같다. 그러나 역시 공상 같은 얘기이다. 손오공에게서 여의봉이라도 빌어 와야 이뤄낼 수 있을 것 같다. 2-11-12
첫댓글 한국의 가무단도 속히 세계를 놀라게 해줄 공연을 할 수있으면 좋겠습니다.
션윈 공연을 못봐서 아쉽습니다. 한국의 가무단도 세계를 누비는 날이 오기를 기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