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가정사
넉넉한 집안에서 태어나 일정시대로서는 드물게 정규 교육을
받은 사람이다. 일본 식민지 시절에 공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대전사범학교(당시는 성적이 우수한 학생들이 사범학교 진학)에
진학하여 이수하고, 다시 경성사범학교(서울대학교사범대학)에
입학하여 수학하다가 가정사로 인하여 육군사관학교로 옮겼다고 한다.
- 1926. 1. 7 ~2018.6.23 (92세),
- 7남중 5남
- 아버지(김상배) : 충남부여군규암면 면장 역임(일정시대)
○ 군복무
육군사관학교를 8기로 졸업하고 장교로 임관되어 대부분 육군본부
정보 부서에서 근무
○ 결혼
초등학교 교사였던 박정희의 형 박상희의 딸과 결혼하여 평생을 반려자로
살았다. (장인이 공산주의자라는 평가를 받고 있으며 대구 폭동시 사망?)
-아들 : 김진(金進, 57). { 며느리: 과테말라 여성 리디아 마로킨 }
- 딸 : 예리(金禮利, 67)
○ 정치사
육군중령으로 군사쿠데타에 참여하여 혁명세력으로 정치에 입문한 사람
이다. 정부 직제에 없던 중앙정보부를 만들어 부장을 역임하고, 공화당을
창당하는데 중추 역할을 맡아 당의장, 총재, 국회의원, 국무총리 등을
역임했다.
○ 정치 변곡사
제15대 대통령 선거에서 DJP 연합 체제를 구축하여 김대중을 당선 되게
하므로서 대한민국 역사에 크나 큰 변곡점을 만들었다. 결국 노무현과
문재인이 대통령 되는데 그림자가 되었다고 할 것이다.
● 평가
건국과 빈곤의 굴레에서 벗어나려는 실용주의적인 정치사를 지워버리고,
공리공론과 출세 지향적인 정치인들이 국가권력을 획득 하는데 일조했다는
지적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고 할 것이다.
김종필의 정치 인생을 등소평식으로 평가한다면 공3과7로 기록될 것으로
본다. 현대 한국 정치사를 얼룩지게 만든사람이라고 아니 할 수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