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므’가 무엇인가
文 熙 鳳
봄을 만끽하기에는 고궁만한 곳도 드물다. 사오월은 그야말로 꽃 대궐이다. 옛 조상들의 체취와 꽃향기가 봄바람에 짝짜꿍을 하고 어깨동무하고 있는 요즘이다. 참 좋은 계절이다.
살랑살랑 불어오는 바람과 함께 산책하다 보면 근심 걱정은 싹 달아나고 옛 시간과 현재가 어우러지는 오묘한 멋을 느낄 수 있다. 아이들과 함께 온 젊은 부부는 신이 났다. 아이들이 좋아하니 덩달아 좋은 것이다. 뒤뚱뒤뚱 걷는 아가의 뒤를 따르는 엄마의 얼굴은 미소로 가득하다. 세상이 다 그들만의 것인 것 같다.
볼 것도, 귀담아 들을 것도 많아서 사진으로 담아두려는 이들이 줄을 선다. 삼삼오오 모여서 깔깔거리다가도 근엄한 태도를 보이기도 한다. 여기저기서 휴대폰 셔터 터지는 소리가 부드럽게 들린다.
그중, 건물 네 귀퉁이에 놓여있는 청동빛깔의 넓적한 독이 눈에 들어온다. 세 개의 손잡이 고리가 달린 그것의 이름은 '드므'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다. 설명서를 읽어 본다.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그곳에 담은 물을 방화수(防火水)로 썼다고 한다. 불을 끄기 위한 용도였겠지만, 주술적인 의미도 있었단다. 모두 잠든 밤, 화마(火魔)가 슬며시 내려왔다가 ‘드므’에 얼굴을 비춰보고는 제 험상궂은 얼굴에 놀라 도망쳤다고 한다.
우리의 민속신앙에는 문신(門神)이란 것이 있다. 문간에 처용상을 그려 붙이거나 글씨를 써서 붙여놓는 것이다. 이는 대문에 존재하는 신으로서 대문으로 들락거릴 수 있는 잡귀나 부정 등 액살(厄煞)을 막아주거나 복을 들여오는 구실을 하는 신을 일컫는 말이다.
생각해보면, 사람들 마음속에는 저마다의 ‘드므’가 있어서 그것에 자신을 들여다보지 않을까. 그 ‘드므’는 무형의 거울, 양심의 거울이어서 자신을 비춰보면 얼굴이 화끈거리는 때가 분명히 있다. 그래서 사람이 동물과 다른 것이겠다. 누군가는 도둑질 한 적 없는데 기차소리만 들어도 가슴이 벌렁벌렁 한다 했다. 그런 사람의 가슴속에는 느티나무가 살고, 플라타너스가 살고, 장미도 산다.
부끄러움을 느낀다는 것은 양심이 있다는 말이기도 하다. 양심이 없는 사람은 행복도 없다. 행복의 비결은 필요한 것을 얼마나 갖고 있는가가 아니라 불필요한 것에서 얼마나 자유로워져 있는가 하는 것이다. ‘위에 견주면 모자라고, 아래에 견주면 남는다.’란 말이 있듯이 행복을 찾는 방법은 내 몸속 양심이란 그릇 속에 있다.
가끔 양심 없이 행동하는 사람들이 있어 문제가 되곤 한다. 모든 것을 자기 위주로 생각하고 판단하는 사람들 때문에 사회생활이 역겨워질 때가 있다.
어떤 선생님이 제자들에게 새 한 마리씩을 주고 아무도 보지 않는 곳에서 죽여가지고 돌아오라 했단다. 그런데 맹구란 제자만 제일 늦게 살려가지고 돌아왔다.
“너는 왜 그 새를 아직까지 살려 두었느냐?”
“예, 어느 누구도 보지 않는 곳을 찾아다녀도 그런 곳은 없었습니다.”
“제 자신이 보고 있었습니다.”
의미하는 바가 크다. 맹구의 양심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그렇다. 백정도 도살하는 칼을 버리면 당장 부처가 된다.
이 자리에서는 이 얘기로 주위 사람들의 혼을 빼놓고는 다른 자리에 가서는 완전히 다른 얘기로 갈피를 못 잡게 한다. 두 곳에서 그 사람의 얘기를 들은 사람은 혼란에 빠진다. 이럴 때 그 사람의 얼굴에 홍당무 빛깔의 색이라도 칠해 주면 좋으련만 바탕색과 홍당무는 견원지간이라 배색이 안 된다. 그러고도 이튿날은 또 다른 얘기로 듣는 사람을 어리둥절하게 만든다.
어느 마부가 양심을 속이는 행동을 했다. 주인의 꾸지람이다.
“네가 타고 간 말은 검었는데 왜 저 말은 꼬리가 흰가?”
대답을 못하는 마부의 얼굴색을 한 번 보고 싶다.
귀뚜라미는 가을을 갉아먹을 때 먼저 소리로 알린다.
첫댓글 내 마음 안의 '드므'를 자주 들여다볼 일입니다. 성찰의 시간이었습니다.
수필문학 등단작이 '마음의 거울'이었습니다. 선생님의 글을 읽으면서 나만이 가지고 있는
거울을 꺼내들고 조심스럽게 들여다 보았습니다. 거울 속에 그려진 나의 모습은 생각했던 것보다 흉합니다. 좋은 글 고맙습니다.
회장님 좋은글 잘 읽었습니다. 그중에서 백정도 도살하는 칼을 놓으면 부쳐가된다는말은참좋은 말입니다.
머리에담고 자주꺼내 기억하겠습니다.
드므가 자신을 들여다보게하는 거울이군요.
거울 속에서 자신의 현재 모습을 보려면 지금보다 두 배로 뛰어야한다는 <레드 퀸>효과라는 말을 생각하게 합니다.
자신을 바로 보기가 어려운 세상입니다.
상대를 이기기 위해서는 자신부터 이겨야 한다는 말씀이 가슴에 와 닿지요. 자신도 컨트럴 못하면서 어찌 남을 컨드롤 하겠습니까? 멋진 자신이 아름다운 삶을 만듭니다.
자신의 마음자리를 들여다 보면 세상의 화마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데, 그게 쉽지 않습니다. 맹구의 양심 선언(?)에 찔리는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