셰프의 손맛이 살아있는 제철 나물의 천국
경기도 광주 한정식집 야반 강민주 조리장
박태순 음식칼럼니스트
2003년부터 각종 포털과 매체에 독특한 관점의 음식 칼럼을 게재하고 있는 우리나라 음식 분야 정상급 파워블로거.
경기도 광주시 외곽의 한적한 곳에 가면 편안한 분위기의 한정식집 야반(野飯)이 있다. 외진데도 손님들로 북적이는 이유는 오너셰프 강민주(47) 조리장의 손맛이 있기 때문이다.
개량한복 모양새의 조리복과 위생모를 쓰고서 얼굴 가득 환한 미소로 손님을 맞는 그녀의 손은 꽤 거칠다. 그는 직접 양념을 만들고 나물을 무치면서도 절대 고무장갑을 끼지 않는다. 한식의 기본인 손맛을 지켜가기 위해서라 한다. 경북 안동 출생인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직업전선에 뛰어들었다. 여러 일을 하다가 2001년 경기도 이천에 작은 식당을 차렸다. 다니던 절의 스님이 그녀의 음식 솜씨를 알아보고 창업을 권유했기 때문이다. 상호는 물론이고 위치 선정과 메뉴 개발까지 다 도와준 덕에 난생처음 시작한 식당일은 순조롭게 이어졌다. 그러다 몸도 마음도 힘들어 어려운 시기였던 2008년, 앞에는 강이 뒤에는 숲이 감싸안는 현재의 자리가 마음에 들어서 식당을 옮겼다. 광고나 인터넷 홍보도 하지 않았지만 입소문을 통해 서울에서도 많은 이가 찾는다.
메뉴는 1만3000원짜리와 1만8000원짜리 한정식 두 개가 있다. 주메뉴만 다르고 그 외의 반찬과 곁들임은 동일하다. 1만3000원짜리는 고등어구이나 제육볶음을 고를 수 있고 1만8000원짜리는 오리불고기나 소불고기가 선택 가능하다. 제철 재료를 쓰기에 반찬이 수시로 바뀐다. 5월 중순의 상차림을 살펴보자. 보리빵, 잡채, 문어떡볶이, 채소샐러드의 네 가지 전채가 나오는데 이것만으로도 양이 만만찮다. 잡채는 주문받은 후 만들어 면이 탱탱하다. 그리고 주메뉴와 함께 9가지 반찬이 차려진다. 여섯 가지는 제철 나물과 절임이고 가정식 반찬이 세 가지다.
자주 오르는 나물은 가시오가피, 방풍, 곤드레, 머위, 곰피, 취나물이고 애호박무침, 더덕튀김, 멸치조림, 꽈리고추찜의 반찬이 나온다. 특히 들기름과 집간장 및 된장을 조금만 써서 무쳐내는 나물이 제일 인기가 높다. 싱싱한 제철 나물 재료를 살짝 데쳐서 급속냉동시켜 뒀다 사용하기에 부드러우면서 본래의 풍미가 진하다. 다른 반찬들에도 화학조미료와 설탕은 전혀 쓰지 않는 대신 새우, 버섯, 멸치 등의 가루와 자체적으로 만든 천연효소액으로 감칠맛과 단맛을 낸다. “몇 년 전에 폭우로 강물이 넘쳐 식당이 잠겼습니다. 그때 제일 가슴 아팠던 게 효소액 발효항아리들을 잃은 거였죠. 각기 반 년 이상은 걸려 정성으로 담근 것이라 안타까웠습니다.”
밥은 된장국과 치잣물을 넣어 지은 게 나오고 후식으로 과일이나 직접 만든 음료가 나온다. 개성이 강한 별미라거나 독특한 재료를 쓰지 않는 평범한 차림이지만 음식 각각의 솜씨와 맛이 분명하여 정성 들여 만드는 밥상을 받는 즐거움을 충분히 느낄 수 있다.
사람들은 왜 이 집을 좋아할까. “반찬 하나하나에 만족하기 때문일 거예요. 오랜 시간 저장한 음식은 효소장아찌 종류 말고는 없습니다. 반찬은 매일 아침 새로 준비하고 손님 밥상에 내놓기 직전에 바로 무칩니다. 그 신선한 맛을 손님들이 알아주시는 거죠. 아침에 무친 건 절대 저녁상에까지 쓰지 않습니다. 점심과 저녁을 철저히 분리해서 재료는 미리 준비해 놓지만, 손님 수를 확인하고 양념은 손님이 자리에 앉으시면 드시기 직전에 바로바로 무쳐서 나갑니다. 냉장고에 넣어놨다가 나가는 반찬은 하나도 없습니다.”
강민주 셰프는 ‘야반’을 시작한 이후로 아버지 어머니 생각을 더욱 많이 하게 됐다고 한다. “야반 차리고 나니 연로하신 부모님이 채소 농사를 짓기 시작하셨어요. 저에게 돈도 아끼고, 싱싱하고 좋은 채소 직접 주신다고 하세요. 연세가 80이 넘으셨고, 운전을 못하시는 아버지는 찬 겨울에 오토바이를 타고 시래기를 갖다 날라주셨고요. 그러시느라고 얼굴 다 트시고 얼고 해서 아직도 그 상처, 흉터가 남아 있어 참 죄송하답니다.
고춧가루는 어머니가 해마다 그 많은 고추를 따고 일일이 닦아서 말리시느라 손톱이 다 닳아 빠졌어요. 부엌에 어머니 사진을 걸어놓고 매일 아침 보면서 부모님께 절대 부끄러운 자식이 되지 말자 다짐하며 음식을 합니다.”
아직 개선할 부분도 있다. 공장제 가공 오리를 쓰는 게 그것이다. 그녀는 생오리고기도 선택이 가능토록 할 예정이다. 토속된장의 강한 짠맛을 줄이려고 시판된장을 소량 섞어 사용하고 있는데 그도 빼낼 방법을 찾는 중이란다. 본인의 신념과 의지가 보통이 아니니 그리 어렵지는 않을 것 같다.
야반(野飯) 경기도 광주시 초월읍 지월리 715-2 (031)763-9970 오전 11시 ~ 오후 9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