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필가 구활의 작품 <궤나 소리>을 읽었다. 좀 무식한 이야기로 처음 제목을 보고 엉뚱한 생각을 했다. ‘궤나 소리’는 ‘괜한 소리’의 오기가 아닐까? ‘괜한’의 기본형은 ‘괜하다’로 형용사다. 주로 ‘괜한’ 꼴로 쓰이며, ‘공연(空然)하다’와 같은 뜻을 가진다. 공연하다는 ‘아무 까닭이나 실속이 없다.’는 뜻이다. 평소 수필 작품에서 ‘재미’를 강조하는 작가를 생각하면서 ‘궤나’란 발음과 ‘괜한’의 발음이 비슷한 데서 일어난 이야기가 중심 소재로 나오지 않을까 하는 생각했기 때문이다.
수필을 읽어가면서 엄청난 무식을 느끼며 혼자 웃었다. 궤나가 사람의 뼈로 만든 악기란 사실을 알았다. 옛날 잉카인들이 사랑하는 이가 죽으면 그 사람의 정강이뼈로 만들어 떠난 사람이 그리울 때 분다고 했다. 작가도 그 악기를 보지도 악기 소리를 듣지도 못했단다. 그의 상상 속에만 있을 뿐이다.
처음부터 작가의 상상력이 춤을 춘다. 나도 악기가 어떻게 생겼는지 악기 소리가 어떤 것인지도 모르면서 묘하게 작품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빠져들었다. 뒷부분에서 젊은 나이에 죽은 친구 동생 이야기를 가져와 ‘궤나’란 악기가 가진 속성과 연결해 작가의 마음을 표현하고 있다. 작가가 영원히 이승에서 떠날 때 자신의 정강이뼈로 궤나란 악기를 만들어 부는 친구 하나 있으면 좋겠단다. 상상력과 체험의 조화로 독자를 사로잡는 필력이 보인다.
2. 작가의 ‘수필 쓰기에 대한 소고’
오륙 년 전쯤이다. 작가는 필자와 함께 활동하는 문학회(영남수필)의 작품토론회 때 자신의 ‘수필 쓰기에 대한 소고’를 발표한 바가 있다. 그때 필자가 듣고 메모해 둔 것이 있다. 상당히 긴 시간 발표한 내용이라 이해의 편의를 위해 개조 식으로 정리해 본다.
① 나는 수필 이론을 전혀 모른 체 수필이란 글부터 쓰기 시작했다. (이론에 따라 글을 쓴 것이 아니라 글부터 썼다.)
② 처음에는 고향, 아버지, 어머니 등에 대한 글부터 썼다.
③ 차츰 글 소재를 넓혀 문화유적 답사, 절 탐방, 여행하면서 얻은 것들, 지금은 음식에 대해 글을 쓰고 있다. (여행을 많이 했다.)
④ 글을 쓸 때는 치열하게 써야 한다. (삶도 같다는 생각이다) 치열하다는 것은 어느 정도 광기가 있어야 한다.
⑤ 산문보다 시를 많이 읽은 편이다. (글을 쓸 때 시에서 얻은 좋은 문구를 인용하면 글이 산다.)
⑥ 영화나 연극의 대사를 활용한다. (대사 속에는 정말로 좋은 말이 많다.)
⑦ 글은 모방에서 출발한다. 모방을 창작처럼 만든다. (다른 작가의 좋은 말이나 문장을 잘 활용하면 글이 한층 살아난다.) ⑧ 아름다운 상상을 많이 한다. (예쁜 거짓말을 한다.) - 찰스 램의 글에도 상상을 많이 하고 있다.
⑨ 여행을 많이 한다. 여행 중 본 산천, 하늘, 시장 풍경, 다른 사람의 삶의 모습 등에서 보고 느낀 것을 많이 활용한다.
10) 눈을 좀 더 높은 곳, 먼 곳, 낯선 곳에 둔다.
11) 그리워하는 마음을 많이 가진다. (사랑하는 마음, 연애 감정, 애완동물, 풀, 나무, 고향 등등)
12) 글쓰기에는 음악, 미술, 공연 예술 등의 공부가 필요하다. 전문가처럼 깊이 알 필요는 없지만 기초 실력은 갖추고 있어야 한다.
13) 글 속에 아름다운 이야기를 삽입한다. 글이 맛깔스럽게 된다. 아름다운 이야기란 사람 냄새가 나도록 하는 것이다. (스토리텔링(story telling)이 필요하다.)
14) 단순하고 소박하게 쓴다.
15) 재미있게 쓴다. 재미 속에는 의미가 있어야 한다. 이때의 의미는 사람 냄새가 나게 하는 것이다.
16) 지나친 미사여구는 글을 천하게 한다.
17) 추사는 만년에 자신의 집필하는 방을 ‘수졸산방’이라 했다. * 수졸산방(守拙山房)- 보잘것없는 것을 지키는 집 - 추사가 늦게나마 자신을 한없이 낮추며 말년을 보냈다고 함.
18) 글이 순수하고 순진하며 진솔해야 한다. - 피카소는 만년에 ‘어린이 같은 그림’을 그렸다.
수필 <궤나 소리>를 읽으면서 그때 들은 ‘수필 쓰기에 대한 소고’가 생각났고 작가는 아직 그때부터, 아니 그 전부터 가진 수필 쓰기에 대한 철학을 견지하고 있음을 느낀다.
3. 작품에서 풍기는 예술적인 품격
필자는 작가가 영문학을 전공했고, 신문사에서 오랜 기자 생활을 했음을 알고 있다. 작가의 학력이나 경력으로 볼 때 보통 사람이라면 알고 있거나 알아야 할 지식과 견문보다 더 많이 가지고 있음도 안다. <궤나 소리>는 짧은 수필이지만, 이 한편의 작품으로도 예술 전 분야에 대한 높은 상식이 있음을 엿볼 수 있다.
궤나로 연주되는 소리를 한 번쯤 들어보고 싶다. 그리움이 끝없이 이어지면 비탄의 심연 속으로 빠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가슴 속에서 터져 나오는 눈물 조각들이 한숨에 섞여 흐르는 듯한 에드워드 엘가의 첼로 협주곡 E 단조와 같은 슬픔으로 끓인 범벅 같은 것일까. 미켈란젤로가 조각한 피에타(Pieta)에서 성모 마리아가 숨이 끊어진 예수 그리스도를 안고 흘리는 보이지 않는 눈물의 줄기 같은 것일까. 아니면 영화 ‘미션’에서 오보에를 연주하는 가브리엘의 ‘넬라 판타지아’(엔이오 모레꼬네의 곡)처럼 맑고 날카로운 음색이 가슴을 후벼 파는 그런 음악일까. (<궤나 소리> 중에서)
인용문만 보아도 음악, 조각, 영화 등 예술 작품을 대하는 작가의 관점이나 높은 감상 능력을 알 수 있다. 이와 같은 소재에서 독자는 지식도 얻을 수 있지만, 재미도 느끼게 된다. 수준 높은 작품에서 풍기는 품격이란 생각이다.
4. 천의무봉(天衣無縫)의 구성
수필은 의도적 구성을 갖추되, 자연스러워야 한다. 지나치게 작위적이면 자연스럽지 못하다. 삶을 이야기하면서 의도적으로 꾸미는 일에 지나치게 빠져 버리면, 심미적 감동은 줄 수 있을지 모르나 삶의 진실성은 훼손될 수 있다. 구성 전략은 머리에서 나오고, 진실성은 가슴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머리만 보여주고 가슴은 보여주지 않는다면 진정성이 없어 보인다. 그러므로 ‘의도하지 않은 듯한 의도’를 실현해야 한다. 수필 창작의 어려움이 이런 점에 있다. 구성의 수위 조절이 수필 창작 과정에서 가장 커다란 고민거리가 아닐 수 없다.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수필을 창작하는 게 쉽지는 않을 것이다. (여세주, 〈새롭게 쓴 수필 창작론〉, 58쪽)
대부분의 수필 구성은 단일 구성을 취한다. 하나의 경험을 하나의 맥락 속에 펼쳐 놓은 수필이다. 대상의 특징을 집약시켜 강력한 인상을 주고 주제의 선명성을 높일 수 있으나 단조로움을 피할 수 없다. 복합 구성은 여러 경험을 하나의 구심점에 놓은 수필이다. 작품 속의 여러 상황을 장면적이고 공간적으로 배열한다. 둘 이상의 소재를 하나로 엮어내는 과정에서 사유의 깊이와 통찰력을 드러낼 수 있으나 자칫하면 통일성을 상실하여 산만해지기 쉽다.
작품 <궤나 소리>는 앞부분에 궤나란 악기에 대한 작가의 상상력과 언제, 어디에 있었던 악기인가. 어떤 경우에 왜 연주하는가. 김왕노의 시 ‘궤나’ 소개까지가 나온다. 이어 시인인 친구 동생의 죽음과 시신을 화장하면서 재로 변하지 않고 남아 있는 뼈에 대한 이야기가 뒷부분이다. 마지막으로 궤나가 가진 속성을 생각하며 작가 자신도 죽은 후 자기 정강이뼈로 궤나를 만들어 부는 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다. 자기 뼈로 만든 궤나에서 나는 소리를 상상하며 행여 자신이 자기 뼈로 만든 궤나를 부는 일은 없어야겠다는 바람으로 독자의 예측이나 상상을 뛰어넘어 마무리하고 있다.
작품 <궤나 소리>에는 소재로 나오는 화소가 많다. 그러나 그 화소들이 적재적소에서 독자를 긴장시키고 있다. 글 전체의 짜임에도 공간 이동이 많고, 이야기의 구성이 복합적이다. 구성으로 봤을 때 단일 구성이기보다 복합 구성에 가깝다. 복합 구성에서 나타나기 쉬운 사유의 깊이와 통찰력의 산만함도 찾을 수 없다. 각 문단 자체의 구성이나, 문단과 문단 사이의 연결이 탄탄해 천의무봉(天衣無縫)의 수필 작품이라 하겠다.
5. 이야기 성(性)을 제대로 갖춘 수필
필자는 서두에서 작품 〈궤나 소리〉에서 제목만 보고 ‘궤나 소리’를 ‘괜한 소리’로 잘못 표기한 것이 아닌가 생각하며 읽었다고 했다.
수필을 이루는 여러 요소 중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이야기’다. 문장·인물·시점·장소 등은 결국 ‘좋은 이야기’를 위해 사용된다. 좋은 이야기는 듣는 이가(혹은 읽는 이가) 관심을 두고 끝까지 듣게 되는(혹은 읽게 되는) 이야기다. 아무리 좋은 주제를 담고 있다 하더라도 청자나 독자가 관심을 기울여주지 않는다면 그 이야기는 ‘이야기 성(性)’을 제대로 갖춘 것이라고 볼 수 없다. 이야기가 관심을 받기 위해서는 청자나 독자의 호기심을 유발하고 긴장감을 지속시킬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 서사에도 기술(技術)이 필요한 이유다.
서사의 기술에는 일상적인 이야기를 일상적이지 않게 ‘재배열’하는 것이다. 재배열은 이야기 속의 사건과 시간의 순서를 바꾸어 청자와 독자의 이해를 지연시키고 방해하는 방법이다. 이해를 지연시키고 방해하는 이유는 일상적인 것에 호기심과 긴장감을 유발할 수 있겠다.
서사적 글에서는 같은 이야기지만 배열만 다르게 해도 받아들이는 독자의 처지가 달라진다. 글은 형식이 내용을 수준 높게 할 수도 있다. 이야기 속 사건을 시간 순서대로만 쓸 것이 아니라 사건 내용을 어떻게 말하고 쓸 것인가를 생각하면서 구성한다면 독자에게 한층 더 글 읽을 맛을 느끼게 할 수 있다.
수필 〈궤나 소리〉를 읽으면 작가가 옆에서 조곤조곤 이야기하는 듯하다. 재미도 있을 뿐 아니라 이해도 잘 된다. 악기 궤나에 대한 이야기로 독자를 잡아 놓고 문청인 친구 동생의 죽음과 화장터에서 유골 처리 과정에서 특이한 경험을 바탕으로 한 사건 전개가 너무 자연스럽다. 수필 속에서 이야기하기 기법은 현재 많이 알려진 수필 창작 기법의 하나다. 〈궤나 소리〉는 평면적인 단일 구성이 아니라 복합 구성으로 수준 높은 ‘이야기하기’ 식의 창작 기법을 활용한 수필이다.
6. 쓰고 싶고 읽고 싶은 수필
구활의 수필 〈궤나 소리〉에 대한 자세히 읽기를 해 봤다. 작가는 이미 유명한 수필가로 전국적으로 명성이 높다. 작가의 수필을 여러 편 읽어 봤지만 한편 한편마다 새로운 발상과 구성 기법 등으로 독자를 배려한 글을 쓰고 있다는 생각이다. 특이한 경험을 바탕으로 독자의 평범한 생각을 앞 질려가는 상상력이 더욱 재미를 느끼게 한다. 거기에 예술 각 분야를 소재로 한 수필에서 보여주는 전문가의 경지는 작가의 박학다식한 지식과 상식에 경이감마저 들었다.
작품 〈궤나 소리〉에서 ‘궤나’란 악기에 대한 소개가 독자의 호기심을 자극하며 맛깔나게 표현하고 있음은 수필 작법 이론을 앞서가고 있다는 생각이다. 〈궤나 소리〉 결미 부분에 나오는 ‘내가 떠날 땐 무리한 산행으로 자주 관절통에 시달리던 내 정강이뼈로 궤나를 만들어 부는 친구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에서 ≪열자(列子)≫의 <탕문편(湯問篇)>에 나오는 ‘지음지교(知音之交)’를 생각하게 한다. 거문고의 명인 백아가 자기의 소리를 잘 이해해 준 벗 종자기가 죽자 자신의 거문고 소리를 아는 자가 없다고 하여 거문고 줄을 끊었다는 데서 유래한 말이다. 죽을 때 마음이 서로 통하는 친한 벗 한 사람이라도 두고 싶은 마음을 비유적으로 표현하고 있다.
작품 〈궤나 소리〉야말로 윤오영의 〈쓰고 싶고 읽고 싶은 글〉에서 말하고 있는 그런 글이 아닌가 생각한다. 그 글을 인용하며 구활의 수필 〈궤나 소리〉 자세히 읽기를 마무리한다. 행여 작가의 심기를 불편하게 했다면 필자의 부족한 역량 때문이니 양해를 바란다. 문인들이 흔히 대단할 것도 없는 신변잡사를 즐겨 쓰는 이유는 무엇인가. 인생의 편모(片貌)와 생활의 정회를 새삼 느꼈기 때문이다.
속악한 시정잡사도 때로는 꺼리지 않고 쓰려는 것은 무슨 까닭인가. 인생의 모순과 사회의 부조리를 여기서 뼈아프게 느꼈기 때문이다.
자연은 자연 그대로의 자연이 아니요, 내 프리즘을 통하여 재생된 자연인 까닭에 새롭고, 자신은 주관적인 자신이 아니요, 응시해서 얻은 객관적인 자신일 때 하나의 인간상으로 떠오르는 것이다.
감정은 여과된 감정이라야 아름답고, 사색은 발효된 사색이라야 정이 서리나니, 여기서 비로소 사소하고 잡다한 모든 것이 다 글이 되는 것이다.
의지가 강렬한 남아는 과묵한 속에 정열이 넘치고, 사랑이 깊은 여인은 밤새도록 하소연하던 사연도 만나서는 말이 적으니, 진실하고 깊이 있는 문장이 장황하고 산만할 수가 없다. 사진의부진(辭盡意不盡)의 여운이 여기 있는 것이다.
깊은 못 위에 연꽃과 같이 뚜렷하게 나타나면서도, 바닥에 찬 물과 같은 그림자가 어른거리고, 물 밑의 흙과 같이 그림자 밑에 더 넓은 바닥이 있어 글의 배경을 이룸으로써 비로소 음미에 음미를 거듭할 맛이 나는 것이다. 그리고는 멀수록 맑은 향기가 은은히 퍼지며, 한 송이 뚜렷한 연꽃이 다시 우아하게 떠오르는 것이다.
나는 이런 글이 쓰고 싶고, 이런 글이 읽고 싶다. (윤오영의 수필, 〈쓰고 싶고 읽고 싶은 글〉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