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박도 사람이 살고 있는 하나의 공동체 사회이기 때문에 항해 중에도 별아별 일들이 일어난다. 특히 항해 중 예기치 못한 질병에 걸리거나 사고로 부상을 당하면 괴롭기 그지없다. 가뜩이나 가정이나 가족에 대한 그리움 등으로 받는 심적 고통이 큰 데다 몸이 불편하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몸보다 마음이 더 아픈 수가 많다. 더구나 발 딛고 선 자리가 늘 흔들리는 데다 불과 며칠 사이에 온대(溫帶), 열대(熱帶), 한대(寒帶) 지방을 드나듦으로 빨리 적응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감기부터 시작하여 자칫 합병증으로 심각한 사태를 맞는 수도 있는 각종 병에 대한 위험에 노출돼 있다. 항해 중인 선박에서 인명을 위해 국제적 조약으로 급할 경우 응급 입항이나 헬리곱터로 이송하는 등 방법이 강구되어 있다. 그러나 그것은 그야말로 응급할 경우이고 대부분 선내에서 처리하거나 입항을 기다려 적의 대처를 하고 있다. 내가 겪은 몇 가지의 사례(事例)를 들어본다.
1. 강(姜) 군의 말라리아(Malaria)
세계 각 대륙의 국가마다 기후와 풍토가 다름에 따라 질병이나 전염병도 다르게 마련이다. 말라리아도 그랬다. 자료에 보면 사하라 이남 아프리카 지역, 동남아시아, 중남미지역은 열대열 말라리아의 유행지역이라고 되어 있다. 바로 이 지역을 골라 다녔으니 여간 신경 쓰이는 일이 아니었다. 해당 지역에서는 일상적인 감기 같이 풍토병 정도로 끝날 것이지만 다른 지역사람들에게는 치명적일 수가 있기에 위험한 것이다.
이 말라리아도 마찬가지로 우리나라에서는 학질(虐疾)이라고 하여 한 여름에도 죄지은 사람처럼 벌벌 떨었기 때문에 ‘도둑놈 병’이라고도 하면서 유행하기도 했다. 이것은 내 자신도 어릴 적에 걸렸었는데, 할머니와 어머니가 대추나무 잎사귀를 빻아 찬물에 풀고는 그 물에 목욕을 하게 했던 것이 기억난다.
아프리카 지역의 입항이 정해지면 선주(船主)측에서도 이의 위험성에 대비하여 미리 예방을 위해 키니네(Quinine) 성분의 주사와 복용약을 점검하고 준비하라고 지시가 오곤 했다. 예방차원에서 경구(經口)용 약을 먹은 날은 하루종일 하늘이 노랗게 보일 만큼 독한 성분이었다.
말라리아에는 두 가지 종류가 있다고 했다. 우선 균의 침입으로 당장 발열하는 스타일이 있고, 증상은 미약하지만 몸속에 잠복하여 서서히 백혈구를 말려 결국 심하면 사망까지 하게 되는 것이 있다. 실지로 아프리카 주재 우리나라 외교관 부인이 아프리카에서 잠복성 말라리아에 감염된 후 유럽에 가서 사망한 사실이 있다고 했다.
1977년 5월, 아프리카 남안(南岸), 나이제리아의 와리(Warri)항에 입항하고 나서부터의 일이다. 이 항구는 기니만으로 흘러드는, 아프리카에서 나일강, 콩고강 다음으로 길다는 나이저강을 따라 강을 타고 두서너 시간 올라야 하는 곳이다. 와리시(市)의 한 참 아래쪽 강의 넓은 곳에 항구가 자리잡고 있다.
이곳은 세계적으로 유명했던, 1967년 7월부터 3년간 계속된 비아프라 전쟁(Biafran War)의 중심지였던 곳이기도 한데 이 지역 사람들이 흑인들 가운데서도 뛰어났다는 소문도 있었다.
외항이 아니고 내륙의 강 가운데라 바람이나 파도의 걱정 없이 조용하기 그지없는 곳이기에 안심할 수 있다는 생각은 아예 버려야 했다. 보이지 않은 위험 즉 말라리아와 밤중의 특공대 도둑들이 득실거리는 곳이다. 말라리아는 모기가 전염원이다.
우리 옛 선조들의 효행(孝行)을 적은 《명륜록(明倫錄)》이란 책에 이따금씩 ‘蚤蚊(조문)효도’란 말이 나온다고 했다. 조문이란 벼룩과 모기란 뜻인데 밤에 설치는 물것들을 통칭하는 말이다. 물것들은 혈기가 왕성한 사람의 피를 선호하고 또 일정량의 흡혈(吸血)만 하면 만복(滿腹)으로 달려들지 않는 속성이 있기에 여름날 밤 부모와 한 방에 더불어 잠으로써 모기 빈대 벼룩 같은 물것들을 자신의 몸으로 유인(誘引), 부모를 물지 않겠금 도모하는 효도(孝道)이라고 했단다.
그러나 효도 이전에 우리에게는 당장 시도 때도 없이 그나마 눈에 뵈기는커녕 직접 살갗이 뚫려야 알아챌 수 있는, 요즘말로 드론 같이 공격해 오는 모기를 미리 막기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뿌리는 약도, 피부에 바르는 약도 없지는 않아 일시적 사용을 가능하지만 한계가 있고 그래도 덤비는 모기는 어쩔 수 없다.
이때만 해도 나이제리아란 나라 자체가 겨우 개발에 눈을 떠 이 나라의 관문이기도 한 라고스(Lagos)항이 독일 기업들이 한창 현대식 항만건설을 있었던 시기였으니 다른 여차 변두리 항구들이야 그야말로 원시적 수준이었다. 옳은 부두시설은커녕 그냥 강뚝 반반한 곳에 콘크리트로 채우고 겨우 배를 묶을 시설만 갖추면 항구였다.
이 나라 사람들이 사족(四足)을 못 쓴다는, 노르웨이. 핀란드 등 북해에서 잡은 냉동 잡어생선을 싣고 이곳에 들런 것이다. 육상의 설비들이 저장창고시설빈약했기에 하루에 양하해야 할 물량(物量)이 정해져 있어 체류기간이 오래 걸리는 것도 여간 부담이 아니었다. 이곳에 정박 중에 몇 명이 말라리아 때문에 병원을 드나들었다.
당시 일기의 한 토막을 보자.
「손○하 일등항해사(C/O)를 보트에 싣고 강 상류쪽으로 두서너 더 시간 가야 하는 Warri시내 병원으로 향하다. 마침 Agent를 만나 쉽게 안내를 받았다. 병원치곤 어슬프고 의사도 의사 같지 않다. 책상 하나에 구석에 약상자, 그나마 상자도 아니고 선반 같은 데다 약을 담아두고 반대편 구석에 환자 뉘일 침대, 그리고 자기의 책상 위엔 청진기, 혈압계, 온도계. 손전등이 널부러져 있을 뿐이다. 진료서도 없고 그냥 아무 메모용지에다 끌적거린다. 흰 가운도 없다. 그냥 거리에 나서면 부두 노동자와 같은 차림이다. 그러나 친절 하나만은 고맙다. 환자가 바뀔 때마다. 소독하는 대야도 없다. 남녀구별도 없나보다. 아예 한영(韓英)사전을 들고 갔다. ‘설사’란 단어도, ‘구토증’이란 말도 찾아줬다. 고열이 난다는 말은 글로써 가며 했고, 자기가 변기에 앉아 변 보는 시늉을 해가며 설사하는 소리까지 내가면서 그러냐고 한다. 결국 마라리아라고 판정한다. 주사 한 대, 약 3봉지 받고 오다.
동방호에서 점심 먹고 약 두 병 얻고-. 저녁때 해거름까지 기다리기로 했으나 C/O가 조금 나아진단다. 남의 배에서 환자를 둘 수도 없어 서둘러 출발했다. 마침 awning(덮개)도 준비됐고, 구름도 끼였기에 1시경에 나섰다. 도중에 억수 같은 소나기를 40분가량 만나 완전히 물 속에 잠긴 듯 했다. 으스시하기까지 한다. 전원이 7명인데 물에 덜 젖은 사람은 환자인 C/O뿐이었다. 감기에 걸리지나 않을는지. 한 사람 병 치료하려다 여러 명 잡겠다. 염려스럽다. 다행히 차도가 있다니 다행이다.
겨우 귀선하자마자 2기원(機員)이 아침부터 발열이 시작되고 있단다. 왜 이럴까? 무조건 주사부터 놓아라고 지시했다. 결과는 일단 두고보자. C/O의 가뜩이나 마른 사람이 더욱 초라해 보여 안스럽다. 결국 놀고 버는 돈이 아니라고 농담을 했지만 전원 중 누가 갑자기 저리되지 않을 거라고 장담할 수 있을까? 그나마 불편한 언어소통에 미덥지 못한 병원시설들인데 -.」
이런 상황을 겪은 지 4개월이 지난 7월 14일, 대서양에 떠 있는 군도(群島) 스페인령(領) 라스팔마스항에 입항 중 갑판원 강○군이 세인터 카타리나(St. Catalina) 병원에 입원을 했다. 평소 몸도 다부지고 야문 사람인데 감기처럼 시름시름 앓기는 했지만 특별한 증세는 없었는데 도저히 견딜 수 없다고 했다.
의사가 진단하더니 즉시 입원하고 수혈(輸血)부터 해야 한다고 했다. 청천벼락이었다. 원인은 잠복성 말라리아로 백혈구 수치가 지나치게 낮아 위험하다고 했다. 최소한 1,200cc가 필요하댔다. 이곳은 섬이기 때문에 외지인은 돈으로는 안 되며 어떤 형(型)이든 사람의 혈액을 가져와야 환자가 필요로 하는 혈액을 수혈해 주도록 되어 있단다.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부득이 전 선원들을 모으고 사정을 얘기했다. 우선 “사람은 살려놓고 봐야잖으냐, 나부터 헌혈할 터이니…” 하고 십시일반(十匙一飯) 협조를 구했다. 다행히 젊은 선원들 3명이 자진하겠다고 했다. 일인당 400cc씩 채혈키로 하고 데리고 병원엘 갔다. 마침 그 병원에는 현지에 살고 있는 자국(自國) 국민들을 위해 일본 정부가 지원하여 특별히 菊子(기꾸꼬)란 일본인 간호사 한 명을 채용하고 있었기에 언어소통에는 문제가 없었다.
“한 사람당 최소한 800cc를 채혈해야 한다”고 작으마한 키에 눈망울이 톡 불거진 아가씨가 대들 듯 하는데는 미칠 지경인데, 선원들도 800cc라는 말에 떱떠름한 표정들이다. 하기야 이국만리에서 누가 자기 생명의 위험을 무릅쓰려 하겠는가. 모두 고갤 내리깔고 있는데 그 아가씨 안타까웠던지 끼어들었다. “한 사람이 800cc 해도 아무 문제없어요” 했다. 결국 두 사람이 헌혈하고 영양보충 주사 한 대씩 맞고는 잘 끝냈다.
이튿날 병원에서 제공한 혈액을 투여받은 강 군은 백혈구 수치가 하룻밤 사이에 배나 올라 더 이상의 다른 치료가 없어도 되겠다고 했다. 강(姜) 군도 진심으로 고마워했고 기회가 있으면 기꺼이 자신도 헌혈하겠다고 했다. 사실 800cc가 든 혈액 주머니는 보았지만 그것이 얼마나 되는 양인지는 가늠하지 못했는데, 한참 뒤 남아프리카에서 작업 중 부상당한 부두 노동자가 흘린 핏자국을 보니 800cc는 그리 많은 양이 아니라는 것을 느꼈다.
그 후 한 사람이 과연 얼마만큼 한 번에 채혈할 수 있는지 알아보지도 못했고 지금도 모른다. 다만 헌혈하면 헌혈증서가 발행되고 필요할 때 그만큼의 혜택도 주어진다고 하며, 헌혈은 자주 할수록 새로운 피의 생산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좋은 것이라도 한다. 그때의 고마움과 감동을 잊지 않으려면 그 후에 헌혈로 보답을 해야 하고 800cc가 얼마나 되는지 가늠해 두어야 했을 것을 지금 끝 까맣게 잊고 살아왔다. 배은망덕이 아닌가 싶다.(계속)
첫댓글 선상에서의 병 치례는 가장 힘겨운 싸움일 것 같네요. 뛰어 봤자 사방이 바다인 것을. 당혹스럽지요.ㅠㅠ
무엇보다 언어 소통 문제와 전문의도 없던 시절에.
상상하기 어려운 선상 고충을 읽으며 도깨비 같은 친구였구나 놀랍습니다.
지금까지 살아 있어 줘서 고맙습니다요.ㅎ
아니면 선상에서의 삶을 직접 들을 수 없었을 테니까요.ㅋㅋ(미안)
우리 어린 날에도 여름이면 마라리아 주의보로 모기 불을 피웠던 기억이 납니다.
요즘이야 공해 때문인지 보이지 않는 것 같은데.....
역경 야그에 [재미있게 읽었습니다]할 수도 없네요.^^
편안한 밤 되십시요.
좋은 글 감동적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