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편 바이킹의 도시 베르겐 -2018년 8월8일-
크루즈선 Vikng Sea호에서 편안한 잠을 자고 나서 한가로이 선상에서
아침 부페를 먹었다 오늘은 크루즈에서 제공하는 베르겐 관광 투어가 있으나
우리는 베르겐을 좀 더 알뜰히 보기 위하여 크루즈선에 합류하지 않고 우리만의
시간을 가졌다
8시에 크루즈선에서 출발하여 걸아서 15분을 올라가니 플뢰멘산 등산
케이불카 매표소에 도착하여 우린 이곳에서 8시반경 케이블 카를 타고
베르겐 시내가 모두 내려다 보이는 플뢰멘 산으로 올라갔다
전망대에는 한 무리의 한국 관광객이 먼저 와서 환상적인 순간을 담아 가려고
분주한 모습이었다
소란스러운 시간이 지나고 한국 관광객이 전부 빠지고 나니 조용하여 망중한을
즐기다가 하산하였는데
핸드폰을 산 정상 벤치에다 두고 하산하여 다시 매표소로 찾아가 핸드폰 분실을
신고하니 정상의 사무실에서 주어서 사무실에 보관하고 있다고 하며 다음 하산
케이블카에 실어 보낸다 하여 우린 10여분을 아래 사무실에서 기다렸다
공중장소의 벤치에 놓고 내려 왔기 때문에 잃어버린 핸드폰이라고 단념하고
신고를 했는데 마침 찾아서 손에 쥐니 뛸 듯이 기뻣다
핸드폰을 찾아 유명한 어시장으로 내려와 시장을 구경하면서 오늘 11시에
예약한 노르웨이 음악의 아버지 에드바르드 그리그(Edvard Grieg) 생가를
방문하고 연주 공연을 보는 티켓임으로 이 날을 손꼽아 기다려 왔으며
시간 늦지 않게 약속 장소에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는데 11시 5분전에도 버스가
나타나지 않고 11시가 넘었는 데도 버스가 오지 않아 티켓에 있는 전화번호에
전화를 하여 11시가 넘었는데도 버스가 오지 안는다고 항의를 하였드니
조금만 기다리면 안내원이 나타날 것이라고 기다리라고하여 기다렸으나
30분이 지나도 버스도 안내원도 나타나지 않아 몹시 흥분된 목소리로 정확한
영어는 아니지만 항의를 하면서 시간을 보니 10시 50분 이었다
나는 핸드폰 분실의 여파로 1시간을 잘 못 보고 10시를 11시 인 것으로
착각하여 이런 헤프닝을 만들었든 것 같았다
한국에서부터 그리그의 음악 연주를 듣기위한 기대심리와 핸드폰 분실의
불안심리가 에스카레이트 되어 이런 헤프닝을 가지게 된 것은
잊혀지지 않는 추억으로 남게 될 것이다
11시 정각에 안내원과 버스가 도착하고 우린 이 버스를 타고 20여분을 달려
베르겐 외각의 그리그 생가에 도착하였다
40여분을 생가와 박물관 명상하며 작곡했든 작곡실 부부묘등을 보고
13시부터 ‘그리그’ 음악의 연주 공연이 펼쳐짐으로 우린 생가 박물관을 천천히
둘러보면서 시간을 기다렸다
1843년 Bergen의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그리그는 피아니스트인
어머니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인정을 받고 노르웨이의 자연과
전통을 바탕으로 음악을 작곡하였으며 그가 작곡한 Musical <Song of
Norway>에는 젊은 시절 유명 성악가 아내 니나와 그리고 노르닥 세사람의
이야기를 서사시처럼 표현 하고 있으며 노르웨이의 아름다운 풍경을 담고 있다
특히 노르웨이의 민속 신화에 근거를 두고 만든 헨리케 입센의 희곡 작품에
그리그가 곡을 만들어 제작한 뮤지칼 <Peer Gent>는 노르웨이인이
가장 사랑하는 대표작이며 우리에게 익숙한 ‘솔베이지 송’이 대표곡이다
1885년 지어진 이 집은 트롤 하우겐이라고 하며 완숙기의 시기에 이곳에서
작곡 활동을 하였을 뿐 아니라 이곳을 사랑한 나머지 1907년 시신도 부인과
함께 이곳에 안장되어 있었다
13시 정각에 그리그의 피아노 연주가 시작되었다
우린 솔배이지 송이 흘러나올 줄 알았으나 연주하는 동안 우리에게 널리
알려진 음악은 연주 되지 않았고 심오한 그리그의 음악만 연주 되었다
우린 Bergen으로 돌아와 6시 승전 전 까지 마지막 Bergen 관광을 시작하였다
베르겐에서 큰 광장인 토르갈메닝겐 (Torgallmenningen)광장엔 ‘바이킹
후예들의 기념비’ 형식으로 바이킹 시절부터 현대에 이르기까지 노르웨이
사람들과 바다의 역사에 대해 조각해 놓은 작품은 1950년에 4면의 12개의
조각상과 4개의 부도가 조각되어 있었다
베르겐은 12세기부터 700여 년간 바다의 강자로 군림했든 역사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그들의 조상들을 이렇게 조각해 놓은 것이며
1베르겐은 예술의 도시로 노르웨이 풍경화의 아버지로 불리는 요한 트리스티안
달(Johan Christian Dahl(1788~1857)도 베르겐 출신이며 낭만주의 화가로
뭉크가 탄생하지 않았을 때는 노르웨이의 최고의 화가 였다고 한다
Grieg의 후원자였든 음악가 올레 볼 (Ole Bull)도 베르겐 출신으로 노르웨이
예술의 황금기를 열어준 예술가들이 교제했든 곳이 베르겐이다
덴마크에서 더 잘 알려진 극작가이자 철학자 루드비히 홀베르(Ludvig Holberg)
도 베르겐 출신으로 <이타카의 율리시즈>가 대표작 이라고 한다
중세풍의 아름다운 도시는 옛날의 영화를 찾아 활동적인 모습이 많이 보이고
곳곳에 그들의 역사와 선구자들의 청동상을 조각하여 새로운 시대를 조명하는
길잡이로 사용 되고 있는 것 같았다
12-3세기에 지어진 베르겐 후스 요새와 로센 크란츠 탑과 마리아 교회등을
보지 못하고 우린 크루즈선 출항에 맞추어 6시 이전에 귀선하여
8시부터 오늘의 VIP 식당에서 그릴 음식으로 오붓하게 만찬을 즐기고
크루즈생활을 시작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