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1월초 미군과 영국군은 독일군의 마지막 반격작전인 벌지전투에 입은 손실로 인해 독일 본토로 향하는 진격이 늦춰지게
됩니다. 하지만 미 8공군과 미 15공군은 이제 전투기 없는 독일 하늘을 마음껏 날아다니며 제 3제국을 폐허로 만들게 됩니다.
실제로 독일 도시중 인구 10만명이상인 도시는 전부 폭격을 당했다라고 생각하면 좋을 정도로 심각한 폭격을 당했습니다.
산업시설은 초토화되었고, 생산된 군수물자도 수송체계가 박살나서 군수보급도 망가져버렸습니다. 결국 동부전선과 서부전선
모두 무너졌고, 독일의 패망은 초읽기에 들어갑니다.
-실제로 제가 작년에 유럽 놀러갔을때 독일의 웬만한 도시마다 오래된 건축물은 전부 복원품이더군요. 그 앞에는 대개 폭격에
폐허가 되었던 옛 사진들이 전시되어 있곤 했습니다-
-폭격당한 도시를 둘러보는 히틀러-
하지만 이런 독일에서도 폭격당하지 않은 도시가 둘있었으니, 서부에는 유명한 하이델베르크가 동부에는 드레스덴이 있었습니다.
하이델베르크는 대학으로 유명한 곳이었고, 드레스덴은 별다른 군사목표가 없는 유서깊은 곳이었기 때문에 이 두곳은 폭격을
받지 않고 멀쩡했습니다. 독일의 플로렌스라 불리운 이 드레스덴은 13세기양식 건물로 유명한 곳이었고, 원래 인구 63만명의
이 도시는 계속되는 폭격과 진격해오는 소련군을 피해 평시의 2배 가까운 120만명이나 되는 시민들이 몰려있는 상황이었습니다.
-얄타에서 만난 연합국 수장들-
소련의 스탈린은 얄타회담에서 동부전선에서 진격하는 소련군을 위해서 동부에 전략폭격을 해주길 원했고, 처칠과 루즈벨트는
이러한 스탈린의 요구에 대해서 스탈린에게 무언가를 보여주겠다고 다짐하게 됩니다. 실제로 미-영연합군은 네덜란드에서
진격이 정지되어 있었으므로 소련군에게 그 성과를 보여주려면 전략폭격 밖에 없었고, 이에 따라 전략폭격의 강력함을 소련에게
어필하려고 했습니다. 이러한 명령을 받아든 미공군의 스파츠장군은 탐탁치 않아했습니다. 그는 이미 예전에 베를린을 24시간
폭격하여 전쟁을 끝내자는 선더크랩작전을 반대한적도 있었죠. 하지만 상부의 압력에 굴복한 그는 1945년 2월 3일 제 8공군
사령관이었던 둘리틀 소장에게 베를린공습을 지시한적도 있었습니다. 그때 둘리틀은 1000대가까운 B-17로 베를린을 공습했고
별다른 군사목표물없이 시내에 공습을 했다고 합니다. 이 폭격의 결과로 25000명에 가까운 베를린 시민이 사망했죠.
-베를린 공습으로 인한 희생자들-
드레스덴이 목표로 정해지고 1945년 2월 13일 밤 영국공군의 랭카스터 폭격기 254대가 고성능폭약과 소이탄을 장착하고 드레스덴
하늘에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500톤의 고성능폭탄과 375톤의 소이탄을 드레스덴 하늘에서 투하했습니다.
-블록버스터폭탄과 소이탄을 투하하는 랭카스터, 블록버스터는 말그대로 한구역을 날려버리는 고성능 폭탄이었습니다-
그리고 2월 14일 새벽에는 529대의 랭카스터가 1800톤의 폭탄을 드레스덴에 투하합니다. 2월 14일 아침이 되자 이번에는 드레스덴
의 유일한 목표물인 철도시설 공습을 위해 2100여대 가까운 P-51과 B-17이 드레스덴 하늘에 나타납니다. 하지만 이들은 연기와
궃은 날씨때문에 목표를 찾는데에 실패했고, 그냥 드레스덴 시내에 폭탄을 떨어뜨립니다.
-에이 몰라 될대로 되라-
이 3차례에 걸친 공습으로 드레스덴은 완전히 파괴되었습니다. 건조한 날씨와 소이탄 그리고 목재건물이 많았던 드레스덴의
특성 이 3가지가 겹쳐서 2월 14일에는 함부르크에서처럼 대규모 화염폭풍이 드레스덴 시내에 일어났고, 그 온도는 무려
1500도에 달했다고 합니다. 드레스덴은 별로 중요한 도시도 아니었고, 특별한 산업시설이 있었던것도 아니었기에 제일 큰
방공호의 규모는 겨우 6000여명 정도만 수용할수 있었기에 대부분의 시민들이 폭격에 고스란히 노출되었습니다.
-끔찍했던 드레스덴 폭격의 결과-
당시 생존자들의 증언에 따르면 길거리에는 화염폭풍때문에 불타는 집에 있을 수 밖에 없을정도 였으며 도망치려고 해도 화염
폭풍이 산소를 집어삼켜서 대부분의 사람들이 질식해 쓰러지고, 지하실을 통해 불길을 피하려다가 1000여명에 가까운 사람들이
좁은 곳에 뒤엉켜 죽기도 하고 하여간 엄청나게 끔찍한 폭격이었습니다. 이 폭격으로 드레스덴의 90%가 파괴되었고, 13만명의
시민들이 이 폭격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한편 이 폭격으로 미공군과 영국공군 모두 이 처참한 폭격의 결과물을 보고 경악했습
니다. 무고한 시민이 10만명단위로 죽어나갔으니 미공군과 영국공군 모두 당황했습니다. 영국의 시민들과 미국의 시민들은 이
드레스덴이 희생된 이유에 의문을 표시했습니다. 드레스덴이 중요한 군사목표도 아니었고, 중요한 산업시설이 있던것도 아닌었기
때문에 모두들 이 폭격의 목적에 대해 의심했고, 결국 이 폭격이후 미공군과 영국공군은 산업시설과 군사목표에 대한 정밀폭격을
실시하게 됩니다. 하지만 전략폭격의 위력과 끔찍함은 이 드레스덴 폭격으로 사람들에게 각인되었다고 합니다.
첫댓글 "결국 이 폭격이후 미공군과 영국공군은 산업시설과 군사목표에 대한 정밀폭격을 실시하게 됩니다."
도쿄대공습ㅋ역시 백인 외에는 인간취급 안했다능ㅋ가내수공업은 핑계라능ㅋ
전쟁 다 이겨놓고 민간인 밀집지역에 저리 폭격했으니..........
도쿄대공습과 더불어 두고두고 사람들에게 각인될 만하죠. 쩝.
쯧쯧...그냥 무자비하게 퍼부었구먼;;
이건 좀 아닌듯..그냥 민간인 학살...
끔찍합니다..
이걸 네오나치들이 "연합군은 더한 개객끼였음"할 때 써먹는 대표적인 사례라죠
히틀러도 하루만에 유태인 10만명을 못 죽였다. 이런식으로 반박한다고 하죠.
여태까지 봐왔던 독일에의 전략 폭격중에 최악이군요...
예전에 다큐멘터리 보니까 독일군 조종사(공습하는 연합국 폭격기를 요격했던..)한테 찾아가서 연합군 폭격기 승무원 사진을 보여주면서 니네들이 죽인애들이 애네들이다 하면서 독일군 조종사들의 사과 비슷한것을 받아내던게 생각나네요.(그게 의도는 아니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