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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치카 넘버 나인
이은선
문학과지성사
2014
갱도를 타고 바람이 올라왔다. 갱도 입구에 서 있던 지루박이 천천히 허리를 곧추세우며 두 손으로 허공을 짚었다. 그것은 폐광의 오래된 바람과 지루박만 아는 음악이었다. 지루박이 한 일 자로 두 발을 모으고 허리를 비틀자 윤 씨의 눈에 날이 섰다가 사라졌다. 눈 흘길 짬도 없이 손님들이 몰아닥쳤기 때문이다.
냉풍욕장 안으로 들어온 사람들이 냉기를 맞이하기 위해 두 팔을 번쩍 쳐들었다. 갱도 쪽으로 몸을 돌리니 자연스레 지루박과 마주 선 꼴이 되었다. 마치 혼신의 힘을 다해 춤을 추는 지루박에 대한 헌사같이 보이는 손들이었다. 그와 동시에 전대로 뱃살을 감춘 상인들이 일제히 일어나 손님을 부르는 소리가 욕장 입구를 뒤흔들었다. 불씨가 뜨겁게 살아 있는 화로를 하나씩 앞에 차고앉은 상인들이었다. 찬바람에 한껏 달아 있던 사람들이 그 소리에 홀려 좌판에 주저앉았다. 야바위판 앞에서도 사람들이 몰려들었지만 지루박은 춤에 몰입하느라 제 좌판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윤 씨의 좌판에서 경쟁적으로 파전을 욱여넣던 사람들이 지루박의 독무를 지그시 바라보며 도토리묵 무침도 시켜 먹었다. 윤 씨는 더욱 바빠졌고, 지루박의 스텝은 폭풍처럼 현란해졌다.
이곳에서 장사가 가장 잘 되는 곳은 흐엉의 쌀국수 좌판이었다. 매일 아침마다 술 덜 깬 인근의 공장 인부들부터 시작해 냉기에 바짝 몸이 언 손님들까지 모두 쌀국수 국물을 찾아댔던 것이다. 냉풍욕장은 드넓은 해수욕장을 끼고 있는 후미진 산 중턱에 위치한 곳이었다. 그래도 열쇠 꽂고 시동만 걸면 차가 데려다주는 곳이니 음주 운전 혹은 해장 운전이라도 해서 달려들 왔다. 젊은 여자 혼자 장사를 한다는 소문이 퍼지자 하루에 꼭 한두 명씩은 수작을 걸어왔다. 속풀이를 핑계 대고 국물에 해장술을 걸친 이들이었다. 등에 업은 애기는 몇 개월이냐, 애 아빠는 뭐 하는 사람이냐, 어디서 왔느냐, 거기는 또 어디 옆이냐, 질문의 건전한 내용과는 달리 손은 꼭 흐엉의 손등에 얹거나 등에 업힌 아기의 머리에 올라가 있었다. 흐엉은 웬만한 것은 그냥 넘기곤 했지만, 술꾼들이 제 아기에게 하는 장난은 절대로 그냥 두지 않았다. 엉겁결에 뜨거운 육수 한 국자를 뒤집어쓴 손이 곧바로 욕장의 천장 쪽으로 치켜 올라갔다. 칠 테면 쳐보라는 듯이 흐엉이 눈에 힘을 주었다. 한껏 올린 손 내릴 곳이 마땅찮은 술꾼들이었다. 엎어진 탁자 위로 갖은 욕설들이 국수 고명처럼 올라앉았다.
흐엉은 끝내 그들에게서 국수값을 받아냈다. 발라당 뒤집어진 탁자와 여기저기 널브러진 의자를 정리하는 것은 어느새 야바위 좌판으로 돌아와 이쪽을 예의주시하던 지루박의 몫이었다. 지루박은 떨어진 물건을 주워준답시고 슬쩍슬쩍 흐엉의 손을 스쳤다. 자리가 어느 정도 정리가 되자 흐엉은 탁자 아래 놓아두었던 베트남 커피 한 봉지를 컵에 따른 뒤 뜨거운 물을 부었다. 다른 때 같았으면 한 잔 청했을 다른 상인들이 상황이 상황인지라 아무 말도 못하고 흐엉이 사라진 쪽을 향해 코를 벌름댔다. 지루박은 쓰레기를 버려야 한다고 수선을 떨며 채 반도 차지 않은 쓰레기봉투를 집어 들고 그녀의 뒤를 따라 나갔다.
흐엉은 주차장 한가운데 있는 개가죽나무 밑에 앉아 있었다. 쓰레기장은 그 나무를 가로질러 가야 했다. 지루박은 룸바를 추듯이 아주 느리게 걸었다. 흐엉이 나무 그늘에서 아기에게 젖을 주고 있던 사이에도 갱도는 끊임없이 바람을 밀어 올렸다. 찬바람이 아기에게 좋을 리 없다는 것은 흐엉도 잘 알고 있었다. 감기를 달고 사는 아기를 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져 소리 없이 운 적이 많았다. 오늘은 아침부터 몰아닥치는 손님을 받다 보니 제때 젖을 짜내지 못해 등허리가 다 아팠다. 쌍둥이 중에 남은 한 녀석은 다행히 먹성이 좋고 건강한 편이었다. 흐엉은 한숨을 쉬며 젖을 빠는 아기의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다가 습관처럼 커피 잔에 손을 가져갔다. 카페인이 젖먹이에게 좋네 안 좋네 하는 소리들이 간간이 들려왔지만, 흐엉은 이 커피라도 마시지 않으면 도무지 지금의 생활을 견딜 수가 없을 것 같았다. 지루박은 쓰레기장 옆에서 정염에 휩싸인 눈으로 흐엉을 주시했다. 욕장의 문이 열리고 야바위 주인 어디 있냐는 소리가 났지만, 갱도 앞에서 춤을 출 때와 같이 그는 아무 소리도 듣지 못했다.
욕장의 상인들은 종종 바람의 눈을 만났다. 폐광 깊숙한 곳에 오래 갇혀 있던 검은 눈빛들이 바람을 타고 올라온 것이었다. 녹슨 갱도를 훑느라 허기가 졌던지 그곳에서 전을 부치고 수육을 써는 이들에게 찰싹 달라붙었다. 할 말 많아 보이는 눈들이 술잔에 담겨 애처롭게 흔들렸다. 그것이 몇몇 상인들과 윤 씨의 노구를 지탱하는 힘이 되었다. 간혹 윤씨가 담배 한 대를 피워 물 적에는 갱도 사고로 죽은 남편과 아들의 눈빛을 담아 온 바람, 남의 자식이라도 이제는 내 피붙이처럼 애처로운 눈빛이 슬슬 다가와 담뱃갑 속의 돗대에 들러붙었다. 그것이 바로 윤 씨가 줄담배를 태우는 이유였다.
윤 씨는 어느 해인가 남편이 광산 일 끝나고 도리짓고땡을 해서 딴 돈으로 사다 주었던 모직코트를 걸치고 있었다. 이곳 탄광에서 일하던 남편과 아들은 기일이 같았다. ‘같다’는 것이 이렇게 모진 뜻이었을까. 무너진 갱도에 낀 이끼도 썩어 먼지가 될 만큼의 시간이 지났다. 그 모진 힘으로라도 다시 일어나려 했지만 윤 씨의 무릎과 몸의 관절은 이미 상한 뒤였다. 유족들에는 폐광 입구의 권리금을 받지 않는다는 문서가 윤 씨 앞으로 날아온 것도 그즈음이었다. 다른 것에 비해 좌판 장사는 몸을 쓰지 않아도 되는 일이었다. 몇 번이나 고사하던 그녀도 결국 목도리로 얼굴과 머리를 가리고 눈만 내놓은 채 욕장으로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웅크리고 있던 맑은 눈빛이 녹슨 갱도를 타고 올라와 입구를 막아 놓은 쇠창살에 걸렸다. 장사를 시작한 첫날, 윤 씨는 그 쇠창살 앞에 오래 서 있었다. 어둠을 뚫고 온 바람에 제 눈을 맞추고, 그 바람을 타고 온 눈빛들에게는 촛농 같은 눈물을 꺼내주었다.
먼 친척이라는 윤 씨의 조카 지루박이 그녀를 찾아온 것은 갱도 입구에 앉아 바람을 맞은 지 십 년도 훌쩍 지난 다음의 일이었다. 이십 년 만에 고향에 돌아온 지루박은 가물가물 꺼져가는 기억을 헤집은 끝에 외당숙모인 윤 씨를 기억해냈다. 아들이 살아온 것처럼 윤 씨가 지루박을 반겨주었고, 곧 그녀의 좌판 옆에 새로운 좌판의 개업식이 열렸다. 지루박은 컵 세 개와 주사위 하나만을 가지고도 사람을 홀리는 야바위 상인이 되었다. 춤으로 표출하지 못하는 그의 끼가 야바위 좌판 위에서 새롭게 피어났다. 크지 않은 판돈을 가지고 재미삼아 좌판에 끼는 족족 지갑을 털리는 손님들이 늘어났다. 열 받은 사람들이 시켜 먹은 동동주 값을 계산하는 것은 윤 씨의 몫이었다.
지루박과 윤 씨는, 어쨌거나 외로운 처지끼리 서로 의지해 살아보자며 팔고 남은 동동주 찌꺼기까지 진하게 긁어 마셨다. 지루박이 냉풍욕장에 오고 나서부터 욕장 안에는 구성지고 한스럽다가 애교로 눙치고 넘어가는 성인 가요들이 흐르기 시작했다. 아무나 사랑을 하기도 하고, 네 박자에 맞춰 서울과 대전 그리고 대구와 부산까지 다녀오기도 했다. 한반도는 너무 좁아 태평양과 대서양, 인도양을 건너서라도 무조건 달려오겠다는 범지구적인 가사도 있었다. 지루박은 시시때때로 몸 안에 고이는 예술혼을 어쩌지 못하고 갱도 입구로 가서 혼자 춤을 추었다. 꼭 한번 배워보고 싶던 살사는 교본을 샅샅이 훑으며 독학을 했다. 좋은 사람이 생기면 파트너가 되어달라고 청하려는 마음에 꼭 독무로 추었다. 찬바람 솟구치는 어두컴컴한 갱도 입구에서 쇠창살들을 배경으로 신들린 사람처럼 손을 올리고 허리를 꼬아대는 지루박을 볼 때마다 윤 씨의 눈이 곱지 않게 찌그러졌다.
처음에는 정신 사납다고 타박하던 사람들도 지루박이 만면에 웃음을 머금고 다가와 손을 잡고 허리를 휘감아주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함빡 웃어 보였다. 손이라도 좀 잡아달라며 먼저 들이대는 여자도 많았다. 지루박은 재림한 예수처럼 손을 뻗어 그들의 갈급함에 응답을 해주었다. 현란한 춤과 노래에 흠뻑 젖은 일일 교인들이 몸은 지루박에게, 지갑은 통째로 야바위판에 내던졌다. 그러나 지루박은 뒤탈 없게 수위를 조절할 줄 아는 프로 중의 프로였다. 그런 그의 눈에 말 없이 제 할 일만 착실하게 하고 사는 흐엉이 들어왔던 것이다. 그가 살던 세계에서는 볼 수 없는 참하고 맑은 여자였다. 더군다나 지루박과는 특별한 인연이 있는 여인이 아니던가.
흐엉은 막 빨간 고무 다라이 안에 잠든 아기를 눕히는 중이었다. 그때 누군가 욕장의 문을 여는 기척이 났다. 상인들의 눈이 한꺼번에 그리로 쏠렸다. 그중에서도 흐엉이 가장 먼저 얼굴을 돌렸다. 알코올 중독 증세가 심각한 안경쟁이였다. 오십대 초중반쯤 되었을까. 술에 절어 있어 더 늙어 보이는 것인지도, 세파를 외면한 것 같은 눈빛이라 더 젊어 보이는 것인지 모를 애매한 사람이었다. 막 닫으려는 욕장 문 사이로 발 하나가 쑥 들어왔다. 모두의 눈에 익은 신발이었다. 이번에는 흐엉이 가장 늦게 고개를 돌렸고, 지루박은 신발을 보자마자 갱도 쪽으로 아예 몸을 틀었다. 흐엉 앞으로 성큼성큼 다가온 두용이 국수 한 그릇을 청했다. 지루박은 탁자 위로 거칠게 손을 뻗어 시디플레이어의 볼륨을 크게 높였다.
두용은 연신 국물만 들이켰다. 그러나 절반도 채 먹지 못하고 젓가락을 내려놓았다. 무슨 일인가 싶은 흐엉이 두용에게 말을 건네려 했지만 아기가 우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 두용이 사천 원을 탁자에 올려놓고 욕장을 빠져나갔다. 흐엉은 그런 두용이 걱정되었지만 우는 아기 때문에 선뜻 따라나서지 못했다. 윤 씨에게서 애 우는 소리 안 들리냐고 타박을 들은 지루박이 그제야 음악을 껐다.
두용은 멀리 가지 못했다. 밤새 고민을 하던 뒤끝이라 술 먹은 다음 날처럼 누렇게 얼굴이 떠 있었다. 굳게 다짐을 하고 왔지만 흐엉의 얼굴을 보자 다짐은 오간 데 없고 목이 메어 제대로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두용은 주차장에 세워둔 용달차 안으로 들어가 운전대에 머리를 박았다. 연신 생목이 올라왔다. 그가 목에 힘을 주자 눈물이 쑥 뿜어져 나왔다. 담배 한 대 태운답시고 욕장 밖으로 나온 지루박의 레이더망에 두용의 용달차가 포착되었다.
“왜 그래?”
두용은 차라리 귀를 닫아걸고 싶었지만, 어차피 오지랖 넓은 인간이니 한 번 더 물어올 것이라 짐작했다. 그러면 못이기는 척 모두 말해버릴 작정이었다. 하지만 지루박은 더 묻지 않았다. 두용이 그만 울음을 터뜨렸다. 지루박은 당황했다. 딱히 위로할 마음은 아니기 때문이었다. 지루박은 우는 두용을 피해 서둘러 욕장 안으로 들어가버렸다. 아기를 어르던 흐엉이 눈짓으로 물어왔으나 그는 그녀의 눈을 피했다. 용달차 안의 두용은 몸을 한껏 움츠린 채 다시 깊은 고민 속으로 빠져들어갔다.
“(꼬르륵) 지금 전파를 찾고 있는 중입니다.” 밤늦게 태운 손님이 산 중턱의 저수지까지 가자는 말에 두용은 갈까 말까 주저했다. 그러다 몇 차례의 흥정 끝에 돈을 조금 더 받기로 하고는 열심히 택시를 몰았다. 저수지 옆집에 손님을 내려준 뒤에도 휴대전화는 제대로 작동되었고, 고장 난 지 일주일도 더 지난 내비게이션은 여전히 ‘GPS를 탐색’하는 중이었다. 왔던 길로 되짚어 내려가다 그만 샛길로 들어선 두용이 한참 지나서야 혹시 잘못 온 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하던 때였다. 신기하게도 내비게이션이 작동을 하기 시작한 게 아닌가. 이번엔 잘 터지던 휴대전화가 ‘전파를 찾기 시작’했다.
두용은 내비게이션이 친절하게 알려주는 대로 길을 따라갔다. 그러다 산속 더 깊은 곳까지 들어가버리고 말았다.
“거참, 허…… 거참!”
두 눈을 슴벅이던 두용이 끝내 혀를 찼다. 이제 믿을 거라곤 오로지 두용의 동물적인 방향 감각뿐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야생 호랑이의 번뜩이는 밤눈인지, 집토끼의 졸린 밤눈인지는 도통 감을 잡을 수가 없었다. 며칠 전에 내린 눈이 아직도 녹지 않은 산골의 구불구불한 길을 굳건히 달려 내려오던 두용은 저녁 먹을 때 물에 담가놓고 온, 빨간 고무 다라이 안의 알밤 한 자루를 생각했다. 내일 아침 차례상에 올라갈 밤이었다.
두용의 택시는 급경사 길을 만났지만 개의치 않고 용감하게 시속 20킬로미터로 내려갔다. 무조건 아래로 내려가면 아는 길이 나올 것이라는 판단에서였다. 그런데 급경사가 끝나는 지점에 용달차 한 대가 발라당 뒤집어져 있는 게 아닌가. 아직 꺼지지 않은 헤드라이트가 어두운 산속을 향해 애처롭게 빛을 내뿜고 있었다. 용달차 앞에는 사람으로 보이는 형체가 꾸물대는 것이 보였다. 택시 안에서 두용이 총알처럼 튀어나왔지만 말은 그보다 좀 늦게 나왔다.
“사, 사사산…… 규? 이, 이이봐유!”
엎어져 뒹굴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여자였다. 게다가 여자는 핏덩이, 말 그대로 피와 양수를 뒤집어쓰고 아직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한 갓난아기를 안고 있었다. 두용은 다급히 점퍼를 벗었다. 아침에 지퍼를 올리다 내복이 맞물렸지만 빼기 귀찮아 그냥 올려버린 바람에 점퍼와 내복이 하루 종일 붙어 있었는데, 그가 서두른 탓에 내복이 찢어졌다. 두용은 점퍼로 둘둘 싼 핏덩이를 택시의 조수석에 올려놓았다. 신음하고 있는 산모도 질질 끌어다 차 뒷좌석에 태웠다. 숨 돌릴 틈도 없이 두용은 용달차 안을 살피러 뛰어갔다. 들어간 길도 찾지 못하고 제자리를 뱅뱅 돌 때와는 달리 민첩한 두용이었다. 그러나 그가 아무리 이곳저곳을 살펴봐도 여인과 같이 있었을 거라 짐작되는 사람이 없었다. 다급해진 두용이 차 안을 뒤져 여인의 것으로 보이는 가방을 들고 다시 택시로 왔다.
“이제 아무 걱정하지 마류. 지가 벵언까지 델다 줄뀨. 아, 아가, 쪼끔만 참아라잉!”
그때까지만 해도 두용은 알지 못했다. 신음하며 쓰러져 있던 산모가 또 하나의 생명을 세상 밖으로 내어놓으려 하고 있다는 사실을.
“아아, 워쩜 좋데유! 쫌만, 쫌만 더 차머봐유!”
산모의 비명과 핏덩이의 애처로운 들숨과 날숨이 두용을 한꺼번에 짓눌렀다. 산모를 택시에 태울 때의 비장함과는 다르게 두용은 차라리 울고 싶었다. 그래도 우선은 자신의 차에 실린 생명들을 살리고 봐야 하는 것이 아닌가. 두용은 차 안의 히터를 최대치로 높였다.
“(띠리링) 전파를 수신하였습니다.”
하느님을 만난다면 이렇게 반가울까. 두용이 한 손으로는 운전대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는 휴대전화의 폴더를 밀어 올렸다.
“있쥬, 아, 여기 있잖유! 지가 산모를 태웠는디유. 워디루 가믄 좋아유? 아니, 지금 내가 벵언 가는 걸 몰라서 묻는 거 가튜? 에, 근디…… 여가 어디냐먼, 아뉴, 잘 모르것구유…… 차가 뒤집어 졌는디, 길에서 애기를 봤슈. 지가 지나가다 실었슈. 근디 배 속에 애기가 하나 더 있구먼유. 지금 막 나올라 그류. 아뉴, 애기 하나는 조수석에 있구유, 거 말 좀 똑바로 알아드류, 쫌!”
그 순간 산모와 두용이 동시에 비명을 질렀다. 산모에게 머리채를 잡힌 채 운전을 하면서도 두용은 119 구조대와 끊임없이 전화 통화를 한 덕분에 응급실이 있는 시내 중소 병원을 찾을 수 있었다.
응급실에 도착하기 직전에 산모가 비명을 내지르며 뒤로 나가떨어졌고, 택시가 큰 S자로 휘청거렸다. 두용은 뽑힌 머리가 아파서 우는 것인지, 방금 나온 아기가 울어 자신도 울고 있는 것인지 모를 눈물을 흘렸다. 점퍼에 싸인 아기를 데려간 간호사가 보호자 대기실에 앉아 있는 두용에게 다가왔다. 다행히 모두 무사하다고 했다. 그런데 산모가 외국 여자라는 말을 전해주었다. 두용은 자신이 데려온 산모의 얼굴을 머릿속에 찬찬히 그려보며 자판기 앞으로 다가갔다.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두용은 자판기가 막 뿜어낸 뜨거운 커피를 단숨에 털어 넣었다. 제자리에서 훌쩍 뛰어오른 두용은 데인 혀끝을 윗니에 문지르며 주차장에 세워둔 자신의 택시로 걸어왔다. 택시 안에 있는 지폐와 동전을 잡히는 대로 집어 들고 다시 병원으로 들어갔다. 응급실의 간호사에게 산모가 깨어나면 전해달라는 말과 함께 돈을 건네주었다. 지폐와 동전을 한 움큼 받아든 간호사를 뒤로하고 두용이 어깨를 으쓱하며 돌아섰다. 산모가 잡아 뜯어 원형 탈모증에 걸린 사람처럼 정수리가 뻥 뚫린 두용의 머리 위로 자정을 알리는 라디오 소리가 내려앉았다.
흐엉과 두용은 새해 벽두에 그런 기막힌 인연을 쌓은 사이였다. 운전대를 부여잡고 울던 두용은 자기도 모르게 잠들었다 아무도 깨우지 않았는데 화들짝 놀라며 깨어났다. 잠시 눈 감고 고민만 한 것 같았는데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다. 게다가 꿈인 듯 바로 눈앞에 흐엉의 얼굴이 떠 있는 것이 아닌가. 흐엉은 두용이 워낙 곤하게 잠든 것처럼 보여 내심 마음을 놓고 있던 시간이었다. 두용이 흐엉의 손을 끌고 개가죽나무 밑으로 갔다. 이제는 이야기를 해야 할 때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녀의 손을 잡았다는 감격에 다시 말문이 막혔다. 답답하기로는 흐엉도 마찬가지였다. 어차피 두용이 하는 말의 절반도 이해하지 못하는 처지였다. 두 사람은 아무 말도 못 하고 손을 맞댄 채 가만히 서 있었다. 냉풍욕장 지척에 있는 해수욕장의 짠바람이 다가와 말없이 서 있는 두 사람을 끈끈하게 에워쌌다.
욕장 안에서는 윤 씨가 아기를 달래는 중이었다. 엄마가 나가 돌아오지 않으니 젖을 물릴 수도 없고, 그렇다고 막 물이 끓는 화로 옆을 떠날 수도 없었다. 찬바람 맞고 배부르게 음식을 먹은 다음에 지루박의 야바위 좌판에서 놀던 손님들이 자리를 떴다. 윤 씨의 품에서 엄마 찾아 우는 아기를 지루박이 받아 안았다. 그러다 갑자기 떠오른 다른 아기 생각에 지루박은 괜히 안아보았다는 듯한 기분에 휩싸여 아기를 윤 씨에게 돌려주었다. 대취해 졸고 있는 안경쟁이의 술잔을 정리하던 윤 씨가 변덕 부리는 지루박을 못마땅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 지루박은 좌판 정리를 하다가 느닷없이 노래를 바꿔야 한답시고 소란을 피웠다. 그러면서도 자꾸 욕장 입구 쪽을 흘깃거렸다.
지루박이 도와 시의 경계를 자유롭게 넘나들며 사모님, 이 양 김 양들과 지르지르 턴턴, 자자 차차차 하던 때였다. 지루박은 세상에서 부러울 게 없는 사람이었다. 앉은자리에서 손만 올리면 온몸으로 돌진해 오던 여자들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지루박이 필요한 걸 말하기도 전에 이미 그에게 여러 가지 것들을 가져다주었다. 지루박이 손을 한 번 잡아 끌어주면 여자들은 입고 있던 속옷을 벗어주거나, 당장에 집문서라도 넘겨줄 것처럼 황홀해했다. 그러나 지루박에게는 누구에게도 말 못할 고통스러운 고민이 하나 있었다. 어느 순간부터 발기가 되지 않았던 것이다. 곁에 있는 여자들의 어깨와 허리를 부둥켜안고 춤을 추다 보면 원치 않는 순간에도 존재 증명을 하고 있던 그것이 그만 ‘임뽀우텐츠’가 된 것이 아닌가. 그는 아무도 모르게 오래 앓았다. 온갖 좋다는 약재나 시술들을 다 동원해보았지만 소용이 없었다. 날이 갈수록 고민은 깊어졌으나, 그에 반비례하듯이 여자를 이끄는 손과 다리의 우연성은 날로 신묘해갔다. 지루박이 한번 떴다 하면 전국에서 모여든 수많은 여자들이 줄을 섰다. 그러나 춤이 끝난 다음의 환상적인 밤을 고대하던 그녀들은 금방 지루박의 상태를 알아차렸다. 그가 채워주지 못한 여자들의 결핍은 곧 은밀한 소문으로 표출되었다. 지루박은 환장할 것 같은 마음으로 그 자리에서 오 개월을 더 버텼다.
그를 향해 모여 있던 사람들이 흩어지는 데 그다지 많은 시간이 걸리지 않았다. 가장 큰 물주였던 사모님들을 필두로 그의 곁에 모여 있던 여인들이 민들레 홀씨보다 빠르게 날아갔다. 지루박은 그만 물러서야 할 때임을 직감했다. 밤의 제왕, 밀고 당기기의 황제에서 이름 없는 촌부가 되기로 했던 것이다. 평생의 숙원이었던 살사 댄서의 꿈은 마음속 깊은 곳에 묻어두었다. 겉으로야 최고의 자리에 있을 때 사교계를 은퇴한다는 명분이었지만 알 만한 사람들은 이미 알고 있는 지루박의 급소였다. 떠들기 좋아하는 것들이야 자기들 뒤가 구리거나 말거나 잘됐다 싶은 마음에 이미 커다란 확성기를 구입해 말들을 쏘아대는 와중이었다. 그는 미련 없이 댄스화를 벗었다.
지루박이 어릴 적에 살던 곳은 이미 다른 이의 집이 된 지 오래였다. 혼자된 외국인 여자가 아기를 키우며 산다고 했다. 외당숙모의 집에서 며칠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밥만 축내던 그가 처음으로 마을 산책을 나선 날이었다. 걷다 보니 어느새 그가 살던 옛집 앞이었다. 많이 변한 집의 외양을 보고 울적해진 마음으로 돌아서는 지루박의 귀에 아기 울음소리가 들려왔다. 지루박은 잠시 멈춰 서서 제가 살던 방에서 새어 나오는 소리에 몸을 기울였다. 그도 아버지가 되고 싶던 적이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그럴 수가 없게 된 몸이었다. 착잡한 표정으로 뒤돌아서는 지루박의 귀에 아기 우는 소리가 줄기차게 달라붙었다. 단순히 칭얼대는 소리가 아니었다. 불길한 예감이 든 지루박이 어렵사리 대문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고, 다시 두어 번쯤 망설인 끝에 방문의 손잡이를 잡아당겼다.
열린 문틈으로 고약한 냄새가 튀어나왔다. 그는 숨을 참고 방으로 들어갔다. 지루박은 방 안의 상황을 단박에 꿰뚫었다. 울고 있는 아기를 들어 마당에 내놓고 재빨리 방으로 뛰어갔다. 어미로 보이는 여자도 밖으로 끌어냈다. 부엌 쪽에 얼굴을 돌리고 늘어져 있던 아기는 이미 숨이 끊어진 뒤였다.
지루박은 경찰서에 불려가 세 시간 동안 조사를 받고 나왔다. 외당숙모의 말에 의하면 아기와 엄마는 쉽게 퇴원을 할 수가 없는 상황이었다. 죽은 아기는 곧바로 화장을 해서 바다에 뿌려주었단다. 동네 이장이 오래간만에 이장다운 일을 했다며 윤 씨가 이죽거렸다. 지루박을 향해서는 등짝을 힘껏 두들기며 장한 일을 했다고 치켜세웠다. 지루박은 병원에 한번 가봐야 하는 것은 아닌가 싶었다. 그런데 아기들 엄마의 얼굴을 보고 딱히 할 말이 생각나지 않았다. 더군다나 말도 제대로 통하지 않을 게 아닌가. 지루박은 마을 사람들과 함께 병문안 가는 윤 씨 편에 오렌지 주스 한 박스를 사 보내는 것으로 인사를 대신했다.
병원에서 돌아온 흐엉은 아들이 누워 있던 자리에 널브러진 채 사 년 전, 처음 이 방에 들어오던 때를 생각했다. 오십도 훌쩍 넘은 남자에게 시집을 온 스물한 살의 처녀였다. 밤이면 밤마다 어린 흐엉을 이리저리 앉혔다 눕혔다 하며 몸을 탐하기에만 바쁘던 남편이었다. 그런 그가 흐엉의 등 뒤에서 심장마비를 일으킨 것은 그녀의 잘못이 아니었다. 그러나 어린 아들의 죽음 앞에서 그녀는 이미 죄인이었다. 낯설고 먼 길을 혼자 가야 하는 어린 아들 생각에 가슴이 타들어갔다. 죽은 남편을 꿈에서라도 만나게 된다면 뺨이라도 한 대 후려치고 싶은 심정이었다.
남편을 만난 것도 아닌데, 가만히 누워 있던 흐엉이 갑자기 부엌으로 달려가서 가스 배관을 잡아 뜯었다. 터진 고무 배관 곳곳에 쥐 이빨 자국이 선연했다. 맨손으로 잡아 뜯은 고무관을 마당 한가운데로 내던졌다. 부엌 옆에 묶여 있던 가스통도 마당 쪽으로 굴려버렸다. 때마침 집으로 찾아왔던 윤 씨와 지루박이 고무 배관에 성냥불을 긋고 있는 그녀를 진정시켰다. 흐엉은 윤 씨의 품에 안겨 오래 울었다. 머쓱하게 서 있던 지루박은 가만히 잘 놀고 있는 아기를 안아 올렸다. 그래도 병문안은 한번 가야 하는 게 아니냐는 윤 씨의 말에 마지못해 나선 길이었다.
흐엉에게 그냥 베트남으로 돌아가라고 생각 없이 말을 하는 사람도 있었다. 혼자된 젊은 여자가 어쩌고 지내는지 괜히 궁금해 하는 치들도 많았다. 그래도 생면부지인 마을 여자들이 밥을 챙겨다 주었고, 누군가는 병구완을 해주러 오기도 했다. 고향 음식이 그리울 거라며 시장에서 베트남산 건어물들을 사다 주는 손도 있었다. 기운을 차린 흐엉은 맨 먼저 생명의 은인인 지루박을 찾아가 허리를 깊게 숙이며 고맙다는 마음을 전했다. 방에서 열심히 살사를 연습하던 지루박은 귀신처럼 머리를 풀어 헤치고 찾아온 외국 여자가 정말 귀신인가 싶어 허공에 손을 올린 채 얼어붙었다.
늙은 남편의 소유였던 용달차는 아이들을 낳던 날 밤에 인연이 닿았던 택시 기사가 맡아 주었다. 스페어 택시 기사, 두용은 열과 성을 다해 찌그러진 용달차를 고쳐왔다. 간혹 집 울타리 안의 이곳저곳을 손봐주러 오기도 했다. 흐엉은 그냥 고향으로 돌아가버릴까 여러 번 생각해보았지만 당장은 비행기표 살 돈도 없었다. 게다가 이 상태로 돌아가는 일은 죽기보다도 싫었다. 어떻게 떠나온 고향인가 싶었고 또 그곳에 가더라도 별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닌 까닭이었다.
흐엉은 다시 ‘이장다운 일’을 하러 찾아온 마을 이장과 윤 씨의 주선으로 냉풍욕장 맨 끝에 자리를 잡았다. 흐엉은 다행히 손맛이 좋았다. 때마침 이 작은 바닷가 마을에까지 베트남 쌀국수 열풍이 불었다. 고향에서 먹던 맛보다는 조금 싱겁게 간을 하고, 술 먹은 다음 날 속 풀기 좋게 돼지 잡뼈와 닭발로 국물을 내었다. 아기를 그대로 집에 둘 수 없어 고민하던 차에 두용이 아기 목욕이나 시키라고 선물해준 빨간 다라이가 생각났다. 산후 조리 기간에 쓰던 두꺼운 이불도 준비했다. 그래도 피할 수 없는 찬바람은 이 어미가 온몸으로라도 막아주리라는 다짐도 빠뜨리지 않았다.
냉풍욕장에 아기가 나타나자 그곳의 상인들은 욕장 안에서 담배를 피우는 이들을 바깥으로 내쫓아주었다. 지루박의 좌판도 자리를 잡아가고 있던 시기였다. 지루박은 자신과 특별한 인연이 있는 아기의 정서를 위해 간혹 클래식 음악을 틀어주었다. 그러나 클래식을 듣다가 몇 번이나 조는 바람에 윤 씨에게 이제 여기서 잠까지 처자느냐는 통박을 먹었다. 그래도 지루박은 흐엉 모녀를 위해 성의껏 배려했다. 아기가 잘 때는 음악 소리를 조그맣게 줄이기, 흐엉이 자신을 바라봐준다고 느낄 때마다 함박웃음을 지어주기, 흐엉이 없을 때 우는 아기를 들어다 윤 씨에게 맡기기, 언젠가는 흐엉과 살사를 추는 날이 올 테니 그때를 위해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기!
지루박은 나름대로 무척 바빴다.
장사를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흐엉은 이 동네 사람들이 밥보다 더 즐겨먹는 것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밥을 먹자마자 타 먹는 봉지 커피 한 잔은 마치 경건한 식후 의식을 치르는 것처럼 느껴졌다. 한참을 궁리하던 끝에 흐엉은 얼마간의 돈을 친정에 부친 다음 베트남 커피를 공수해 왔다. 처음에는 그 맛이 느끼할 정도로 진하다던 사람들이 쌀국수 먹은 다음엔 베트남 커피가 제격이라며 한 잔에 천 원이나 하는 커피를 사 먹고 갔다. 쌀국수보다 커피가 더 많이 팔리는 날도 생겼다. 찬바람 찾아 욕장에 들어 왔던 이들이 순식간에 냉동된 몸을 녹이려고 뜨거운 커피를 찾아댔던 것이다.
두용도 매일 점심을 먹으러 욕장으로 왔다. 처음에는 한 그릇이라도 더 팔아주려는 심산이었지만 이제는 습관이 된 일이었다. 자주 들르다 보니 지루박이 흐엉에게 야한 농담을 하는 장면도 목격됐다. 흐엉이 잘 알아듣지 못하자 지루박은 직접 시범을 보여주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다 두용의 매서운 눈빛을 받았다. 그날부터 두용은 몹시 불안해졌다. 점심 먹고 돌아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는데 새참을 먹겠다는 핑계로 시도 때도 없이 욕장에 들렀다. 그러나 두용에 대한 지루박의 경계 또한 만만치 않았다. 둘은 서로의 구역을 침범하지 않으면서도 여차하면 붙을 기세로 상대방을 곁눈질했다.
하필 이렇게 중요한 시기에 두용이 몰고 다니던 용달차가 경매에 넘어가게 생긴 것이다. 흐엉의 죽은 남편의 명의로 된 차였다. 알아본 바에 의하면 흐엉의 남편은 죽기 전에 이미 파산하여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이었다. 글자를 읽기는 해도 제대로 이해할 수 없었던 흐엉이 마침 점심을 먹으러 온 두용에게 이것 좀 봐달라며 봉투를 내밀었던 것이다. 압류 문서를 가지고 돌아갔던 두용은 흐엉에게 그 사실을 전하지 못하고 혼자 속만 끓였다. 당장 넘어가게 생긴 용달차는 물론이고 그녀의 앞으로도 천삼백만 원이 넘는 큰돈이 채무로 남아 있다는 말을 대체 어떻게 꺼낸단 말인가.
두용은 우선 혼자서 해결해보기로 작정했다. 그렇게 해서라도 저 신산한 삶을 사는 여자의 짐을 덜어주고 싶었던 것이다. 그런데 신산하기로는 두용도 만만치 않았다. 둘이 힘을 합한다면…… 옷깃만 스쳐도 인연이라지 않았나? 생각만 했을 따름인데 마치 복잡한 일들이 모두 해결된 것만 같았다. 지루박의 눈빛이 좀 걸리긴 했지만 두용은 자신의 패기 또한 그에 뒤지지 않는다고 굳게 믿었다.
잔뜩 술에 취한 안경쟁이가 좌판에 앉은 채 잠들어 있었다. 코밑까지 흘러내려온 안경을 추켜올려주던 윤 씨가 그만 멈칫했다. 가만히 안경쟁이의 얼굴을 들여다보던 윤 씨의 코끝이 빨갛게 물들었다. 살아 있었더라면 자신의 아들도 요런 얼굴에다가 이렇게 주름을 만들었을까 생각하니 갑자기 술 생각이 간절했다. 아침에 일 시작하기 전에 한 병 따서 홀짝홀짝 마시던 동동주 병이 홀랑 비어 있었다. 열심히 춤을 추던 지루박이 갈증 난다고 병째 마셔버린 까닭이었다. 새로 한 병 딸까 했지만 오늘은 그럴 수가 없었다. 미처 해두지 못한 일들 투성이였다. 윤 씨는 눈을 돌려 지루박을 찾았다. 얼근하게 취한 지루박은 손님 셋을 모아두고 야바위판에서 신나게 컵을 돌리느라 바빴다. 발은 이미 음악 소리에 맞춰 리듬을 타는 중이었다. 그러면서도 눈은 흐엉을 바라보았다. 윤 씨는 문득 혀를 차는 시간도, 한숨을 쉬는 것도 아깝게 느껴졌다.
윤 씨는 전을 부치고 정성스럽게 과일을 깎았다. 어제 밤새 밥솥에 넣고 삭힌 식혜를 거르고, 오징어와 명태포를 잘랐다. 손님 받는 간간이 나물도 무쳤다. 상이 다 차려지면 갈아입으려고 검은 정장 바지까지 챙겨두었다.
시끌벅적하게 손님을 상대하던 지루박이 여자 하나를 홀려 같이 춤을 추기 시작했다. 그 소란에 잠깐 깨서 멍하니 주변을 둘러보던 안경쟁이가 다시 술을 청했다. 윤 씨는 안경쟁이가 몇 번이나 술 달라고 주정하는 것을 못 들은 척했다. 오늘은 그의 주정을 받아줄 여력이 없는 탓이었다. 그녀는 지금 올 때가 되었는데 오지 않는 사람들을 기다리는 중이었다. 상이야 어떻게든 차려질 테니 시간만 가면 되는 것이고, 와야 할 이들이 오지 않으니 더 목이 탔다. 사고가 난 뒤로 한 해도 거르지 않고 찾아오던 아들의 친구들이었다. 어버이날이 되면 으레 걸어오던 전화도, 제사는 몇 시에 지내실 예정이냐며 넌지시 물어오던 안부 전화도 올해는 없었다. 깊은 데서부터 녹슨 갱도를 훑고 온 바람이 오로지 윤 씨 쪽으로만 몰려오는 것 같았다. 안 그래도 굽은 허리가 더욱 오그라들게 차고 습한 바람이었다.
지루박은 흐엉의 탁자를 둘러싸고 있는 사람들 때문에 그쪽으로 쉽게 다가설 수가 없었다. 흐엉은 고향 가까이에서 왔다는 사람들을 만나 이야기를 나누는 중이었다. 처음 만났지만 생김새가 같고, 똑같은 말을 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피붙이를 만난 것처럼 반가웠다. 신이 난 흐엉은 푸짐하게 말아놓은 쌀국수에 고기 고명을 듬뿍 얹었다. 맥주잔에 베트남 커피를 두 봉지나 넣어 한가득 타 주기도 했다. 욕장에 놀려온 옆 동네 공장의 노동자들이었다. 친정집과 가까운 곳에 살았다는 사람에게서 혹시 제 동생을 아느냐, 같은학교 나오지 않았느냐며 재차 물어보았다. 물론 욕장 상인들은 흐엉의 말을 알아들을 수 없었다. 금쪽같이 아끼는 커피를 돈도 안 받고 타 주는 것을 보며 지레짐작해볼 따름이었다.
지루박은 내내 좌불안석이었다. 갱도 입구까지 갔다가, 아기에게 사탕을 준답시고 흐엉의 좌판 쪽으로 가서는 말도 못 붙여보고 돌아오기도 했다. 춤이라도 출까 했지만 마음에 드는 음악이 없어 썩 내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시디플레이어만 노려볼 뿐이었다. 새참 먹으로 왔던 두용도 다른 사람 보듯이 그녀를 쳐다봤다. 그러다 그들의 틈에 끼어 국수 한 그릇을 그냥 마시다시피 했다. 두용은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으로 주차장까지 걸어왔다. 먼저 개가죽나무 밑으로 와 있던 지루박에게서 흐엉이 오후 내내 저러고 있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그려, 외론 겨. 암만! ……외로웠을 겨.”
두 사람이 하나의 주제를 가지고 그렇게 심각한 표정으로 대화를 나누는 것도 처음 있는 일이었다. 내친김에 담뱃불도 서로 주고받았다. 그러다 보니 옆에 서 있는 인간이 내 편인지 연적인지 구분이 되질 않았다. 그러나 한자리에서 담배 빼물고 있는 처지가 같으니 ‘우선은 내 편’이 아닌가 하는 결론을 내렸다. 그렇다손 치더라도 서로 마주 보고 담배 연기를 내뿜을 수는 없었다. 둘은 함께 몸을 돌려 해수욕장 쪽을 바라보았다.
나란히 서 있는 처지지만 둘은 각기 다른 생각으로 속이 복잡했다. 흐엉에게 용달차가 넘어가게 생겼다는 말을 드디어 해보기로 결심했던 두용은 예상치 못한 상황에 다시 할 말을 잃었다. 지루박도 답답하기는 마찬가지였다. 나름 열심히 추파를 던졌으나 저 여자가 자신의 마음을 알아주는 거 같지 않아 심란하던 차였다. 지금까지 알게 모르게 욕장 안에서 그녀에게 들인 공이 얼마던가. 저 여자라면 자신의 약점을 보완해줄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아기 하나가 딸려 있으나 살림을 차리더라도 훨씬 수월하게 가족의 모양새를 만들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계산도 끝냈다. 이제 안정적인 삶을 살고 싶은 마음에서였다. 댄스 교습소라도 차리면 밥벌이 정도는 거뜬하게 해결할 수 있다는 데까지 생각이 미쳤다. 욕장을 빠져나온 바람이 흐엉의 목소리를 나무 그늘로 옮겨다 주었다. 오늘 그녀는 유쾌하고 명랑한 이십대의 아가씨로 돌아간 듯했다. 서둘러 담뱃불을 끈 지루박이 욕장 안으로 들어갔고, 두용은 어디선가 걸려온 전화를 받고는 급히 차에 올라타 시동을 걸었다.
외국말 하던 인간들이 자리를 막 뜨고 있었다. 그 와중에도 지루박은 재빠르게 누가 흐엉에게 눈을 주고 있는가를 파악했다. 지금 흐엉에게 꽂히고 있는, 은밀하게 다가와 산 채로 먹이를 포박하는 거미줄 같은 끈끈한 눈빛은 지루박이 그간 그녀에게 꾸준히 보내던 것이었다. 지루박은 저치들이 다음에 다시 오면 어떻게든 시비를 걸어 내쫓겠다는 다짐을 했다. 오늘따라 찾아오는 손님도 별로 없었다. 지루박은 그래도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다. 그의 생각으로는 ‘그 인간들 간 지 얼마 되지도 않았고, 밥 처먹고 간 지 몇 시간도 안 지난’ 오후 네 시, 또 두용이 왔다. 안 그래도 심기 불편한데 볼썽사나운 인간까지 자꾸 들어오자 지루박은 아예 이 냉풍욕장의 출입구를 봉쇄해버리고 싶었다.
갱도가 잠깐 숨을 멈추었다. 일순간 욕장 안의 모든 소리들이 잠잠해졌다. 윤 씨가 바쁘게 움직이며 상을 차리는 소리만이 그 정적을 밀어내었다.
시비의 발단은 두용이 가져온 바나나였다. 두용은 백화수복 4홉들이 한 병과 바나나를 가져와 술은 윤 씨에게, 바나나는 흐엉에게 건네주었다. 흐엉을 향해 드디어 오래 고민하던 말을 꺼내려던 찰라, 지루박에게 기습을 당했다. 지루박이 몰던 음식물 쓰레기를 가득 실은 리어카 바퀴가 두용의 바나나를 짓뭉갰던 것이다. 두 사나이는 드디어 싸워야할 이유를 발견한 사람들처럼 곧바로 엉겨 붙었다. 처음부터 마음에 안 들었다느니, 뭔가 흑심을 품고 다가온 거 다 안다느니, 흑심을 품다니 내가 무슨 연필이냐, 탄광이냐고 맞받아쳤다. 중간에 낀 흐엉이 말려보려고 했지만 역부족이었다. 흐엉은 저도 모르게 베트남 말을 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상인들이 나섰다. 한동안 여러 사람이 엉켰다 풀어지고 또 붙었다 저절로 흩어졌다.
욕장 이쪽과 저쪽에 같은 극의 자석들처럼 떨어진 두용과 지루박이 쓰레빠도 짝이 있고 양재기도 손잡이가 있다느니, 네 짝을 왜 여기서 찾느냐며 쉬지 않고 되받아 치는 사이에도 찬바람이 올라와 사람들의 뼛속 깊은 곳까지 스며들었다. 흐엉은 얼른 아기와 함께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었다. 그녀의 입장에서는 아기와 자신의 목숨을 구해주고, 여기까지 올 수 있도록 도와주었던 고마운 사람들이었다. 겉으로 내색을 하지는 않았지만 외롭고 힘들 때마다 그들에게서 위로를 받으며 힘을 낸 적도 많았다. 게다가 오늘은 말 잘 통하는 고향 사람들을 만난 까닭에 모처럼 마음이 풀린 날이었다.
“젓가락도 짝이 있고, 개구리도 짝이 있어 알을 낳는 겨. 저 여잔 내 거야!”
결국 지루박의 입에서 이 말이 튀어나왔다.
“니는 젓가락이 아니라 구멍 난 수저여, 부러진 국자여, 무정란이여, 이 고자 새끼야!”
두용의 말에 지루박은 순식간에 모든 것을 들켜버린 듯한 심정으로 제자리에 우뚝 멈춰 섰다. 그도 잠시, 둘은 또다시 찰싹 붙었다. 온갖 욕설은 물론이거니와 이성을 잃은 지루박에게서 ‘저 애기는 내꺼다!’까지 나왔을 때에서야 비로소 흐엉이 비명에 가까운 소리로 울부짖었다.
“크만!”
뒤집어진 리어카와 곤죽이 된 바나나, 두 사내가 실컷 깔아뭉갠 도토리묵 한 판이 욕장 입구에 널렸다. 잠시 미뤘던 바람이 다시 솔솔 올라와 싸움꾼들의 뜨거운 이마를 식혀주었다. 당사자들이야 창피하다 못해 죽처럼 변해버린 도토리묵 속에서라도 파고들어가고픈 심정이었다. 제가 깔아뭉갠 바나나와 도토리묵을 떼어내며 두용이 윤 씨에게 동동주 한 사발을 청했다. 지루박은 고자라는 소리를 듣고 나서 아직 마음을 진정시키지 못하고 앉았다 일어섰다, 두용을 째려봤다 갱도를 노려보았다를 반복했다. 별스럽지 않게 던진 나무젓가락에 아물어가던 상처를 깊숙이 찔린 수컷이었다. 그러나 지루박은 이렇게 계속 화를 내다 간 그 소리가 다른 사람들에게 ‘진짜 그런 것’처럼 느껴지는 계기를 제공하게 될까 봐 간신히 정신을 차렸다. 억지춘향 격으로 자리에 앉으면서도 둘은 여차하면 다시 들러붙을 기세로 서로를 노려보았다.
“지는 맨몸밖엔 없지만서두 열심히 살 자신은 있는 사람이어유. 그동안 여 와서 고생허신 거 지가 살면서 다 보상할규. 애기헌티두 좋은 아빠가 될 수 있구먼유. 암 생각허지 마시구, 걍 저한티루 오셔유.”
마지막 말을 하는 두용의 얼굴에서 지금까지 들러붙어 있던 도토리묵 한 조각이 떨어져 내렸다. 멀리서 보니 마치 청혼하는 남자의 굳은 결심을 담은 눈물로 보였다. 그러나 쉽게 물러설 지루박이 아니었다.
“이봐, 나도 당신보다 못할 게 뭐가 있나? 내가 춤만 다시 시작해봐. 흐엉 씨 친정 사람들도 다 먹여 살릴 수 있어요. 나도 좀 봐줘요! 여기를 좀 보란 말예욧!”
“즈 인간 말뽄새 좀 붜? 춤이 워쩌고 워쪄?”
두용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지루박이 먼저 두용의 멱살을 잡으려고 돌진했다. 잽싸게 피한 두용이 흐엉의 손목을 낚아챘다. 두용은 흐엉을 데리고 지체 없이 냉풍욕장을 빠져나갔다. 고무 다라이 안의 이불 속에서 혼자 놀고 있던 아기가 엄마가 사라진 쪽을 향해 손을 뻗고 울어댔다. 졸지에 싸움 상대가 없어지자 지루박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선 채로 비틀거렸다.
그 와중에도 상차림을 마친 윤 씨가 욕장의 입구로 갔다.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갱도의 바람이 곧장 밖으로 빠져나갔다. 화로의 불땀이 일제히 솟아올라 문 쪽으로 날아갔다. 윤 씨는 주차장까지 걸어갔다 돌아왔다. 그들은 끝내 오지 않으려는 모양이었다. 체념한 눈으로 돌아온 윤 씨는 상인들의 도움을 받아 교자상을 갱도의 입구까지 옮겨놓았다. 지루박이 목 놓아 울다가 옷 갈아입으러 화장실에 갔다는 소리도 누군가의 친절한 입을 통해 윤 씨의 귀에 들어왔다. 술에 취한 안경쟁이는 옆으로 고꾸라지기 일보 직전이었다.
“……자남? 쯧. 그렇게 술만 처먹다간 몸 베리기 십상이유. 대체 뭔 놈의 웬수를 졌간디 술만 그렇게 퍼먹는 거여.”
몸이 거의 사선으로 기울어진 안경쟁이에게 반말과 존대를 섞어 말하던 윤 씨는 동동주 주전자를 기울여 물컵으로 쓰던 플라스틱 잔에 가득 따라 마셨다.
“아덜만은 차라리 저 넓디넓은 바다에라도 나가 지 맘껏 돌아댕기다 죽었음 내 원이 없겄소. 아들은 아직 시신도 못 봤슈. 거기도 보아 허니 우리 아덜 또래 같은디, 여서 맨날 이러지 말구 세상으로 나서유. 술이야 언제든지 내가 내줄 텡께 돈 벌어 애먼 년 구녕에다 쑤셔 박지 말고 살다 지치먼 열루와유. 그짝먼큼 나도 마시지는 모더지만 나넌 술 빚고 전 지지는 건 잘해유. 그러니 인자 지발 여기 와서 매일 술타령 허지 마유. 어차피 한 번 사는 거 아니겄슈.”
“음…… 마.”
입만 달싹이던 안경쟁이가 실눈을 뜨고 앞에 앉은 윤 씨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윤 씨가 다시 술잔을 집어 들었다. 오늘은 아무래도 맨 정신으로 버티기 어려운 날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아들과 남편의 제상 앞이 아닌가.
덜렁대던 갱도 입구의 쇠창살 하나가 유난히 몸 떠는 소리를 냈다. 안경쟁이가 바람이 오는 곳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윤 씨가 애써 모르는 척하고 일어섰다. 두 눈이 퉁퉁 부어 얼굴까지 달라 보이는 지루박이 말끔한 정장 차림으로 제상 앞에 섰다.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영락없이 애석한 마음으로 기일을 기리는 핏줄의 행색이었다. 애도로 이렇게 진솔한 애도가 있을까 싶을 정도로 눈두덩이 숙연하게 부어올랐다. 윤 씨는 제상 앞에서까지 혀를 찼다. 지루박이 사진들을 싸고 있던 흰 보자기를 벗겨 상에 올려놓았다. 일반적인 술잔 대신 커다란 스댕 사발 두 개가 상에 놓였다. 술 좋아했던 남편과 아들 생각에 윤 씨는 두 손으로 눈자위를 꾹꾹 눌렀다. 지루박이 절을 마치자 윤 씨가 갱도 쪽에 대고 말했다.
“잡슈. 후년에 또 차릴랑가는 모르겄네유. 술잔도 큰 거 준비했구먼유. 그거 자시고 인쟈 꿈에는 오들 마유. 영환아잉, 너두 인저는 엄마헌티 오지 말고 멀리 가야지. 좋은 디루. 엄마 인저는 니 제상 못 봐줄랑가 벼. ……다덜 안 오네. 어째 연락들도 읎구먼. 그려, 잊으야지. 허긴, 인저는 잊어뿌러야지.”
작정한 듯 말을 하다 넋두리로 끝을 맺은 윤 씨가 모질게 발길을 돌려 좌판으로 돌아갔다. 갱도 입구에 놓인 제상에서 욕장 입구까지는 백 미터도 안 되는 거리였으나, 윤 씨는 모래사장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것만 같았다. 잠시 잠잠하던 바람이 매섭게 치고 올라왔다. 제상 위의 촛불이 훅 꺼지고 향이 빠르게 타들어갔다. 지루박은 빈 촛대처럼 제상 옆에 쓸쓸하게 서 있었다.
바람을 따라 올라온 것들이 서로 주거니 받거니 술잔을 받아드느라 바쁜 시간이었다. 맑은 눈빛 하나가 올해도 제 엄마 솜씨가 변함없다는 것을 확인하고 있던 참이라 바람이 상 위에 머무는 시간이 길었다. 지루박과 윤 씨가 음복으로 주고받은 술이 열 잔을 훌쩍 넘어섰다. 갱도 입구에서 쇠창살 떨리는 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 맑은 눈 하나가 냉풍에 풍화된 엄마의 얼굴 주름 사이사이를 짚었다. 그때까지도 윤 씨의 탁자에 앉아 있던 안경쟁이가 그 눈빛을 주시했다.
그때 두용과 흐엉이 돌아왔다. 주뼛거리는 흐엉과 달리 두용은 조금 당당하게 걸어왔다. 다라이 안에서 잘 자고 있던 아기를 굳이 안아 올린 두용이 사람들을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있잖유, 저기…… 즈이가 인저 살림을 합허기로 했슈. 지가 애기 아빠가 되기로 했단 말이유. 추, 축복 해줘유. 함 잘 살아볼 티유.”
들어올 때만 해도 조금 혼란스러운 눈빛이던 흐엉은 옆에서 힘주어 말을 하고 있던 두용의 손을 꼭 잡았다. 천장에 매달아놓은 전구의 빛을 받은 흐엉의 손에서 자그마한 것이 반짝 빛났다. 급히 반지를 사러 가던 차 안에서 흐엉에게 지금 타고 있는 용달차 이야기도, 그녀 앞으로 남은 빚에 관한 말들도 모두 다 속 시원하게 말했다. 들어야 할 것들 모두 가감 없이 들은 흐엉이 그제야 두용의 손을 맞잡았고, 용달차 콘솔박스 안에 꽁꽁 숨겨두었던 비상금으로 흐엉에게 반지를 사서 끼워주고 돌아온 길이었다. 연달아 충격을 받은 지루박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럴 줄 알았지만, 그게 꼭 오늘이어야 했냐는 원망과 그럼 그렇지 하는 체념이 섞인 두 볼 위로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제상 옆에 서 있는 동안 어느 정도 마음의 정리를 했다고 여기던 지루박이었다. 그는 습관처럼 손을 뻗어 야바위 좌판 위에 매달린 시디플레이어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한번 들으면 아무나 사랑을 할 것 같은 애절한 노래가 흘러나왔다. 오늘 처음 만난 당신이지만, 아니 이미 여러 번 만났지만 당신은 내 사랑이니 모든 것을 다 주겠다는 태도로 두용이 흐엉을 덮쳤다. 흐엉이 놀라서 뒤로 물러서려다 두용을 바투 안은 꼴이었다. 여느 때와는 달리 적극적으로 다가드는 두용의 모습에 드디어 흐엉도 굳게 쳐놓았던 마지막 마음의 빗장을 풀었다. 상처 난 곳에 자꾸만 칼질을 해대는 두 사람의 모습에 지루박은 삼연속 다운 당한 권투선수처럼 넋이 나갔다. 괜히 자기 아랫도리만 원망스럽다는 듯이 내려다보았다. 그러다 역시 마음을 달래는 길은 춤밖에 없어 지금껏 몸에 익힌 모든 춤들을 추기 시작했다. 재즈와 룸바, 차차차는 물론이고 혼자 익힌 살사까지 한때 밤 황제의 몸에서 두서없이 뿜어져 나왔다. 여인에게 품었던 연정을 거두어들이니 예전의 그 신묘했던 손짓과 발짓이 되살아나는 느낌이었다. 몸짓만 되살아나지 말고 ‘그것’도 좀 정상으로 돌아왔으면 하는 바람으로 지루박은 춤사위를 이어갔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하나, 여기 계속 있어야 하나. 지루박의 마음속은 혼란 그 자체였다. 그 옆에서 두용이 무어라 이름을 붙일 수 없는 춤을 추며 깝죽대다가 포효와 같은 괴성을 내질렀다.
흐엉을 안고 몸을 뒤흔들며 “이것이 지루 저 인간이 그렇게 자랑하던 살수여, 살수” 하다가 “얼쑤, 조오타!”고 연이어 소리쳤다. 그 와중에도 흐엉의 손에 끼워준 반지를 한번 쳐다보는 일은 잊지 않았다. 그녀는 새 반지가 부끄러워 연신 등 뒤로 손을 감추었다. 그러다 두용과 눈을 마주쳤다. 이제는 누군가의 진솔한 사랑을 받는 여자로 살아도 되지 않을까. 쓸모없이 망가져버렸다고 여기던 내 삶에도 이런 날이 오는구나 싶어 흐엉은 마음껏 울고 싶어졌다. 고향에 있는 사람들의 얼굴과 늙다리 남편, 먼저 간 아기가 바람을 타고 머릿속에 다녀갔다. 제아무리 두 아이의 엄마였다고 해봤자 이제 겨우 스물여섯 살이었다. 거기까지 생각이 미치자 자신을 안고 춤을 추는 두용이 다시 보였다. 두용이 흐엉을 부둥켜안고 덩실덩실 춤을 추었다. 지루박은 윤 씨 곁으로 살사 스텝을 밟으며 다가섰다.
함께 장단을 맞춰주면서 입으로는 웃고 눈으로는 울고 있던 윤 씨가 취기를 이기지 못해 주저앉으려는 찰나, 지루박이 윤 씨의 두 손을 잡아 일으켰다. 다른 때 같았으면 손사래를 쳤을 텐데 이번만은 거부하지 않았다. 관절염 걸린 양쪽 무릎이 삐걱거려 몇 번이나 넘어지려 할 때마다 지루박이 잡아주었다. 역시 왕년에 여럿 잡아 이끌던 손이라 들어서 그런지 두용처럼 우악스럽지도, 흐엉처럼 서툴지도 않게 끌려가도록 하는 느낌이 있었다. 함께 구경하며 즐거워하던 사람들도 코가 빨개지도록 먹고 마시고 춤을 추었다. 애절하고 신나는 노래들은 끊임없이 반복되었고, 어느새 당신의 꽃이 되겠다는 노래를 흐엉의 목소리로 들은 두용이 때 아닌 만세를 불렀다. 막 욕장 안으로 들어서서 두 팔을 올려 바람을 맞던 손님 하나가 두용을 보며 같이 만세 삼창을 하려다가 윤 씨가 모두 조용하라고 술병을 높이 든 것을 발견한 다른 상인들에게 제지당했다. 윤 씨가 두용과 흐엉을 불러 세웠다. 음복하던 잔을 어느새 깨끗하게 씻어 들고 있는 주례였다.
“잘들 살으야는 겨.”
두용이 새신랑이 되어 잔을 받았고, 흐엉이 뒤이어 술을 받았다. 결혼식 피로연 음식은 낮에 윤 씨가 마련해둔 교자상 위의 것들로 대신했다. 지켜보던 사람들이 모두 몰려와 그들을 에워쌌다. 아예 정신줄을 놓고 싶은 심정인 지루박은 실연의 아픔을 살사를 추며 잊어보려는 듯이 욕장 한가운데로 홀로 나가 스텝을 밟았다. 춤판의 한가운데서 두용이 가장 신나게 몸을 흔들었다. 난생처음 무대에 올라온 팔순의 촌로처럼 몸과 다리, 두 팔이 제각각 따로 놀았지만 요란한 추임새만큼은 단연 으뜸이었다. 흐엉은 막 잠에서 깬 아기에게 아버지가 누구인지 손가락으로 가르쳐주었다. 그러나 아기는 엄마 손가락에 매달려 있는 반짝이는 것에 더 관심을 두었다.
욕장 안의 바람 소리와 술 취한 사람들의 웃는 소리, 그리고 기쁜 마음도, 상한 영혼도 모두 다 어루만지는 성인 가요의 노랫말이 욕장 가득 울려 퍼지는 사이에 안경쟁이가 사라졌다. 윤 씨만 그 사실을 알고 있었다. 바람이 올 때마다 덜컹거리며 상인들의 귀를 거슬리게 하던 쇠창살 소리가 사라진 것도, 그 틈이 사람 하나 들어갈 정도로 벌어졌으리란 것도 모두 직접 눈으로 보고 있는 것처럼 생생하게 윤 씨의 눈앞에 그려졌다. 그러자 온몸에 힘이 쭉 빠졌다. 주저앉으려는 윤 씨에게 두용이 다가갔다. 하지만 이번에는 지루박이 한발 빨랐다. 드디어 제대로 된 살사 파트너를 만났다는 듯이, 파트너쯤이야 이제 아무래도 상관없다는 듯이 지루박이 윤 씨의 허리를 꼭 감쌌다. 수십 년을 꼬부라져 있던 윤 씨의 허리가 곧게 펴진 채 앞으로 쏠리며 두 손으로 지루박의 어깨를 짚었다. 남우세스러워할 틈도 없이 살산지 살풀이인지 하는 춤을 추자는 지루박의 설레발에 넘어갔다. 윤 씨는 두 눈에서 흘러내리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하면서도 입은 히죽 웃었다. 제대로 웃지도, 목 놓아 울지도 못하는 윤 씨를 서로 먼저 안겠다며 한동안 지루박과 두용이 또 실랑이를 벌였다. 그러나 이제 두용은 임자가 생긴 몸이었다. 두용은 욕장 한쪽으로 비켜 서 있는 흐엉을 잡아끌어 살사를 추자며 까불었다. 이국의 살사가 두용과 흐엉을 만나 순수 토종의 살풀이 혹은 두용표 창작 춤인 살수가 되는 순간이었다. 그들의 춤과 노래는 한동안 계속 되었다.
갱도가 어김없이 바람을 끌어올려 욕장 안을 시원하게 감싸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