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개 - 초고 이전의 습작 노트

[서태수]

 공개 - 초고 이전의 습작 노트

제목 : 직진하는 물살이 곡선의 길을 만든다

제1연 초장 : 물은 흐르면서 직진의 꿈을 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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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과 첫 행을 읽으면 독자는 혼란을 일으킬 수 있다.

내용이 일반 상식에 정면 도전하고 있기 때문.

- 물의 직진으로 굴곡이 생긴다???

우리는 물은 부드럽게 굽이지며 흐른다는 기존 관념을 지니고 있다.

그래서

시의 주제를 제목, 첫 행, 끝 행에 반복해서 담았다.

독자의 의구심은 작품 수용에 거부감을 가질 수 있다.

따라서 급히 직설적으로 독자를 납득시켜야 한다.

그리고 전개 과정에서는

왜 이런 견해가 가능한지를 구체적으로 반복 진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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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진하는 물살이 곡선의 길을 만든다 –낙동강․576>

물은 흐르면서 직진의 꿈을 꾼다

정正과 직直 한데 묶은 미완의 수평 바라기

살여울 쇠촉이 되어 맨몸으로 부딪는다

타협을 거부하는 직진의 푸른 뼈대

휘어진 세상 향해 나노nan로 저민 충돌

산화한 물의 시체들

소용도는 물거품

디지털 휘몰이의 유연한 아날로그

물이 죽어야 강이 맑아지는데

세상은 곡선만 보고 물 흐르듯 하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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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습작 메모 ===

아래 사진은 이 작품의 습작 서정 묶음 자료 사진이다.

습작 서정 기록은 90년 중엽부터 노트에서 컴퓨터로 옮겼다.

어지러운 화면 투성이라 시가 완성된 경우는 항상 삭제했는데

우짠 일로 아직 이 작품은 초기 자료가 컴퓨터에 담겨 있어서 공개한다.

생생한 자료를 위해 사진을 찍었다.

컴퓨터 스크린 샷 방법을 몰라 방금 독학으로 공부했다.

후배 시조시인을 위하여

- 나이가 드니 이런 용기가 생긴다. 잘하는 짓인지 모르겠다.

원래 제목은 <물의 정신>이었다.

그러나 독자 유혹 강화를 위해 직설적 제목으로 바꾸었다.

시정이 산만하지만 제법 정리가 된 것이다.

총17행 중에서 9행을 골라 3연시조를 만들었다.

아래에 내용을 몽땅 옮겨 적었다.

<금강에서>, <동심원 세상>은 다른 서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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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강에서

안녕하신가그대

낙동강도 여전하다만

계백은 잘있던가 ㅇㅇ도안녕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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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의 정신

직진하는 물살이 곡선의 길을 만든다

물의 정신은 꿈은 수평을 향한 직진이다

물은 흐르면서 직진의 꿈을 꾼다

정과 직 한데 묶어 온몸 내달으면

의지는 살여울 되어 화살촉을 품는다

물길은 화살촉 품은 살여울로 달린다.

살대를 품고

타협을 거부하는 직진의 푸른 뼈대

부딪히는 장애물에게는 수직으로 부딪힌다.

휘어진 세상을 향해 나노(nano)로 저민 층돌

산화한 물의 시체들 소용도는 물거품

물이 죽어야 강이 맑아진다

물은 죽으면서 산소를 공급

충돌은 디지털이되 아날로그 회전

이 직선이 유연한 아날로그

매끄러운 몸짓 속에 유연한 타협으로

맑아진 물이 있어 하늘을 비춘다

세상은 곡선만 보고 물 흐르듯 하란다

동심원 세상

강에 비내리면 수면엔 꽃이핀다

무수히피어나는동심원꽃잎사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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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산만한 서정들을 대충 다음 순서로 정리하는 것이 내 방법이다.

1. 구성법 기획(단수, 2, 3, 4단 중 3-4단 선택)과 적합한 내용 추출

2. 각 연의 초중종장 배치

3. 형상화가 가능한 곳에 고명 장착

4. 독자 이해와 유혹을 위한 구성과 장치 – 주로 첫 행에서 밀양아리랑 효과 모색

5. 시행 배열의 효율성 검증

6. 제목, 서정, 표현, 시행 등 총괄 검증

7. 최소 일주일 이상 잊은 후 - 객관적 시선으로 재검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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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철학적 사유思惟의 서정을 포착한 시 한 편은 기본적으로 수필 한 편의 내용을 담는다.

아래 작품은 위 시에 담긴 사념을 수필로 확장한 글이다.

시와 달리 당연히 직설적, 구체적으로 그려낼 수 있다.

<물이 죽어야 강이 맑아진다>

세상의 수평水平을 지향하는 물길은 직선으로 흐른다. 휘어진 길목이든 굴곡진 역사든 물길은 한결같이 직진한다. 그의 행로는 정직하여 언제나 예측 가능한 외길이다. 형체가 있으면서도 정형이 없는 물은, 직진하면서 부딪치는 몸짓이 너무나도 유연하기 때문에 우리는 그가 굽이진다고 여긴다.

물길이 굽이져 흐르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직진하는 물의 정신이 유연하게 저항하기 때문이다. 멀리서 바라보면 물굽이는 유선형으로 이어지는 아날로그 몸짓이지만, 가까이서 살펴보면 나노nano로 저미고 저민 디지털 충돌이다. 너무나도 미세한 연쇄충돌이라 흐르는 물길 뼈대의 마디마디가 유연한 곡선으로 보일 뿐이다.

직선은 정의롭다. 물길이 직선인 것은 굴곡진 현실과 타협하지 않음이다. 실체가 부드럽다고 허약한 것은 아니다. 공기가 뜻을 세우면 바람살로 나아가듯, 물이 뜻을 세우면 물살로 직진한다. 물길은 부드럽지만 우유부단을 거부하며, 연약하지만 꺾이지 않으며, 휘어지지만 굴신屈身하지 않는다.

세상에 물길만큼 완고한 비타협의 저항이 또 있을까. 비타협은 충돌이고 충돌은 파열이다. 굴곡진 현실에 대한 저항에는 파열의 희생이 따르기 마련이다.

물의 부드러운 순교는 상대에게 상처를 주지 않으면서도 상대를 굴복시킨다. 물의 저항에 맞서는 장애물은 당장에는 이기는 듯 허세를 부리지만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서서히 무너진다. 역사상 물에 맞선 자는 많았지만 물길을 이긴 이는 없다. 굴곡진 계곡에 거대한 바윗덩이의 아랫도리가 물길의 힘에 닳고 닳아 둥글게 패여 있음을 보라. 너무나 연약하고 유연하여 정형적 실체를 포기한 물. 직진의 행보 앞에 장애물을 만나면 온몸으로 부딪쳐 스스로 부서지는 희생양이 된다. 정의와 불의가 맞부딪는 물길의 불협화음에는 거품의 소용돌이가 허옇게 명멸한다.

거품은 물의 시체다. 장애물과 맞부딪쳐 소용돌이를 일으키는 허연 거품은 장렬하게 산화한 물의 정신이다. 정의로운 이 시체들은 남은 물줄기에 생명의 산소를 제공한다. 일신의 희생을 두려워하지 않는 물의 정신은 안정을 거부한다. 안정이란 서서히 부패해 가는 물의 안락사安樂死이다. 세상의 웅덩이에 고인 물이 모르는 사이에 썩어가는 것은 물의 시체가 없기 때문이다.

물의 속도는 굴곡에 비례하고, 물의 희생은 속도에 비례하고, 물의 맑음은 희생에 비례한다. 세상의 길목이 어지러울수록 물의 희생은 잦아진다. 태평성대에는 은빛 금빛 반짝이며 굽이굽이 유유자적 물방울을 굴리지만, 난세를 만나 사태가 급박해지면 물의 속도는 빨라진다. 소용돌이치며 소쿠라지던 물길이 때로는 천길 벼랑에 수직으로 낙하한다. 온몸 산산이 부서진 물보라는 세상을 향한 아우성이다. 그러나 물의 정신이 맞닥뜨리는 폭포는 절망이 아니다. 폭포 앞에서 어느 시인은 이렇게 읊었다.

“한 번도 떨어지지 않고 어찌 강이 되겠는가.”

강은 물의 정신이 궁극적으로 지향하는 세상이다. 평행하는 두 개의 둑과 그 사이로 흐르는 물길로 형성되는 강. 강에는 굵고 가는 물줄기가 어깨를 겯고, 굵고 가는 물줄기에는 또 크고 작은 물방들이 서로 엮이어 뒹군다. 강이 맑은 것은 물이 맑기 때문이며, 물이 맑은 것은 세상의 휘어진 강둑과 굴곡진 바닥에 온몸을 던져 저항하는 물방울이 있기 때문이다.

물이 죽어야 강이 맑아지고 강이 맑아져야 세상이 도도해진다. 물살로 꼿꼿이 부딪치는 부드러운 저 순리. 부드러워서 더 단단해진 강의 정의로운 길목에는 언제나 물의 정신이 스며 있다.

직진의 물길이 만든 곡선으로 유유히 굽이지는 묵언黙言의 강은, 존재의 유구한 행적을 상징으로 담아 흐르는 역사이면서 거울이다. 청사靑史에 길이 흘러가는 수많은 물방울들은 세상이 그 이름을 알든 모르든 오늘도 푸른 강물 위에 윤슬로 반짝이고 있다. 이순신, 유관순, 안중근, 그리고 이름을 잊은 수많은 선구자들... 굽이굽이 파란만장한 인류 역사가 이만큼이라도 맑게 흘러온 것은, 오롯이 고비마다 온몸 던져 부서진 숱한 물방울들의 아름다운 희생 덕택이다.

<[한국수필] 23년 3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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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태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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