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렸을 적 부모님이 귀에 딱지가 앉도록 했던 잔소리가 있다.
"늘 말조심해라"
나는 이 말이 너무 싫었다. 내가 하고싶은 말 하고 사는게 뭐가 나쁘단 말인가.
그런데 요즘들어 이 말이 너무도 옳은 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그 이유에 대해 나름의 생각을 펼쳐본다.
https://www.youtube.com/watch?v=GD5TmEIEK38
김영하 작가가 학생들에게 '짜증'표현을 금지한 이유를 설명하는 유튜브 영상이다.
짜증이라는 감정에는 다양한 감정이 뭉뚱그려져 있기 때문에,
짜증만으로 표현되지 않는 다채로운 감정 표현이 힘들어진다고 한다.
인간의 감정은 말로 표현할 수 없기 때문에 갖은 방법을 동원하여 느낌을 타인에게 전달한다.
예시와 은유를 통하기도, 음악과 예술을 통하기도, 혹은 촉감과 미각을 통하기도 한다.
그래서 쓰는 표현과 감정 + 비언어적 표현이 풍부할수록 내 느낌을 보다 잘 전달할 수 있다.
글쓰기 입문 책으로 유명한 '유시민의 글쓰기 특강'에선 거시기 화법에 대해 조심하라고 한다.
거시기는 전라도에서 쓰는 사투리다. 표현이 짧거나 혹은 당장 쓸 단어가 기억이 안 나서
나는 모르겠고 듣는 니가 한번 알아서 잘 딱 깔끔하고 센스 있게 알아먹으라는 식의 표현이다.
책에서는 '부분'이란 표현에 대해 다루었는데, 나는 군대에서 쓰는 '짬'이라는 표현으로 설명하고자 한다.
'짬'은 상황 맥락에 따라 이해해야 하는 (특히나 선임일 경우 두 번 물어보게 하면 난리가 나므로)참으로 이기적인 표현이다.
그 용례를 나열하면... 잔반, 떠넘기다, 취소하다, 쉬는시간, 경력, 물려받다, 계급, 보급품 등... 무수히 많다.
말 그대로 쓰는 뉘앙스와 맥락에 따라 이해해서 알아먹어야 하는 표현이다. 알려주지도, 또는 잘 알고 쓰는 경우도 없어서 더욱 힘들다.
그러다보니 아무데나 가져다 잘도 써버린다. 맥락에 집중하지 못하면 자칫 쌩뚱맞게 들려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발생한다.
자기가 표현할 수 있는 무수한 가능성의 표현들이 있음에도 너무도 쉽게 '짬'으로 퉁쳐 써버리는 것이다.
듣는 이에 대한 아무런 배려 없이, 아무튼 너는 군대에 있고 잘 알아서 거시기해서 알아먹으라는 이기적인 의도가 담겨있다.
언어는 내 생각의 크기다. 입 밖으로 내어놓을 수 있는 표현이 많아질수록 사유할 수 있는 세계가 넓어진다.
그러나 범용성 좋은 거시기 화법은 내 세계를 줄이고 또한 그 말이 처음 튀어나온 맥락에 나를 가둔다.
군인이 아님에도 일상에서 '짬'을 쓰는 사람이 있다면 그 사람의 정신세계는 아직 군대에서의 맥락에 갇혀있을 가능성이 높다.
이 맥락에는 그 당시의 정서가 담겨있다. 욕설을 생각해보자. 욕할 때 정말 즐겁고 행복해서 쓰는가?
욕은 뱉는 즉시 뇌 편도체가 자극된다. 왜냐하면 욕설을 쓰는 정서가 폭력적이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처음부터 욕설을 즐거운 상황에서 받아들이지 않는다. 매우 폭력적인 상황에서 처음 욕설을 인식한다.
욕을 쓰는 상황도 마찬가지다. 폭력성을 드러내어 자신을 본래 모습보다 부풀리고 싶을 때 욕을 한다.
웃긴 상황에서 욕하며 웃는 사람을 종종 마주할 수 있는데, 그 역시 친구들 사이에서 우스워보이지 않기 위해
욕설을 섞으며 웃어야만 했던 정서가 반영된 결과다. 그 누구도 부모 앞에서는 아무리 웃겨도 욕하며 웃지 않는다.
내뱉는 표현이 폭력적일수록 생각도 폭력적으로 변한다. 내뱉는 표현이 거시기할수록 생각도 거시기하게 변한다.
뇌는 가소성이 있어서 특정 생각을 계속 강화하면 강화된 방향으로 물들어버린다.
욕을 하면 할 수록 편도체가 자극되어 결과적으로 사람이 충동적이고 감정적으로 변하게 된다.
이런 이유로 나는 말을 사려깊게 해야 한다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