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평 ㅣ 이봉열
농사는 사람과 세상을 바꾼다!
『아파트 옆 작은 논』(김남중, 창비, 2012)
숲이 망가지고 있어요. 8년 전, 우리 서점 옆에 있는 봉서산은 작지만 알찬 산이었어요. 갖가지 동식물이 어우러져 살고 제법 넓은 습지도 품고 있던 산이었어요. 그 산이 형편없이 망가졌어요. 둘레둘레 아파트가 세워지고 한쪽 귀퉁이는 도로를 내느라 댕강 잘렸어요. 습지는 흔적조차 남지 않게 되었지요. 댕그라니 남아있는 산자락엔 사람들이 제 편한 데로 만들어놓은 길이 흉물스럽게 드러나 있고요. 아~ 어쩌면 좋아요? 이곳에 살던 고라니, 다람쥐는 흔적조차 발견할 수 없게 되었어요. 우리 산에서 흔히 볼 수 있던 참나무도 모습을 감춘 지 오래되었고요. 인공으로 꾸며 놓은 생태공원은 읽기조차 어려운 외래 꽃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억지스런 조형물이 햇볕에 달구어져 뜨거운 공원을 더 뜨겁게 합니다.
한새봉은 봉서산과 같은 처지이면서도 서로 다른 모습을 하고 있어요. 아파트가 들어서면서 사라질 뻔한 논을 살린 이들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들이 바로 한새봉두레 식구들입니다. 한새봉을 훌륭한 습지를 품은 아담한 숲으로 가꾼 이들이에요. 거대한 공룡처럼 밀고 들어서던 고층 아파트가 멈춘 곳은 노동식 할아버지 논 앞에서였어요. 할아버지가 쓰러지고 60년 농사를 접을 위기 상황에서 한새봉두레 식구들은 야무진 꿈을 꾸었던 거예요. ‘농약도 화학비료도 쓰지 않는 친환경 벼농사를 짓자고. 메뚜기와 우렁이와 개구리가 뛰노는 논에서 수많은 사람들이 함께 어우러져 놀이처럼 농사를 짓자고. 아이들이 논에서 놀고 일하고 벼와 함께 자라고 추수해서 그 쌀로 밥과 떡을 해 먹자고.’
도시에서 벼농사를? 가당키나 한 일이냐고요? 농사가 그렇게 만만한 일이냐고요? 말은 쉽게 할 수 있지만 몸으로 옮기기는 어려운 일이지요. 그 일을 한새봉두레 식구들은 해냅니다. 한새봉 개구리논이라는 이름을 짓고, 함께 농사지을 식구들도 모으고, 농사를 시작한다는 해오름식도 하고, 축제처럼 즐거운 벼농사가 시작되었지요.
모내기 할 논에 유기농 비료를 뿌리던 날, 분홍색 장화를 신고 온 소리와 예쁜 장화를 신고 온 아이들은 진흙바닥에 철퍼덕. 그래도 좋아요. 마냥 신이 났어요. 발가락 사이로 비집고 들어오는 간지럽고 촉촉하고 부드러운 진흙의 촉감을 그대로 느껴요. 소금쟁이, 거미와 금세 친구가 되어요. 어른과 아이들은 이렇게 개구리논과 친구가 되었어요. 찰박찰박 물 대논 논에 부드럽고 찰지게 써레질한 논바닥을 밟아 본 아이들은 그 어떤 것보다 귀한 체험을 한 것입니다.
요즘은 모내기를 돈만 주면 이앙기가 척척 해주니까 그 고됨을 잘 모르지요. 커다란 논도 이앙기가 몇 번 왔다 갔다 하면 금세 새파래져요. 이앙기와 기사, 모판 들어주는 이, 이렇게 셋만 있으면 제 아무리 큰 논도 한두 시간이면 뚝딱! 이에요. 이런 세상에 한새봉 두레 식구들은 손모를 심어요.
“줄 넘어갑니다!”
“어이!”
못줄잡이, 모 심는 사람, 모두모두 한마음이 되어야 해요. 인정사정없이 넘어가는 못줄에 아픈 허리 펼 새 없지만 아이들은 뿌듯합니다. 즈그들이 한 일이 보이거든요. 결과가 바로바로 눈앞에 보이니 얼마나 신이 나겠어요.
‘벼는 농부의 발소리를 듣고 자란다’란 말이 있어요. 모내기하고 얼마나 자주 논을 들여다봐야 하는지를 이르는 말이지요. 애써 심은 모도 잘 관리해 주지 않으면 벼 반 풀 반인 논이 되어 버리지요. ‘벼농사는 풀과의 싸움’이란 말도 있잖아요. 모내기하고 벼이삭이 패기까지 틈만 나면 김매기를 해야 해요. 쏟아지는 땡볕 아래 벼잎에 베이고 찔리며 끊어질 것 같은 허리를 부여잡고 김매기를 하노라면 제초제 생각이 간절해지겠죠. 모내기 전에 화학비료에 제초제를 섞어 부려두면 여름 내내 잡초 걱정 안 해도 된다는데. 한새봉두레 식구들은 꾸역꾸역 친환경 벼농사를 고집해요. 땅을 살리고 논에 깃들어 사는 목숨을 살리는 일을 해냅니다.
‘농사는 날씨가 반은 한다’란 말도 있어요. 날씨가 도와줘야 풍년도 드는 거라네요. 태풍이 개구리논만 피해 가지는 않아요. 태풍에 무너지고 쓸려버린 논을 손보고 쓰러진 벼를 세우는 한새봉두레 식구들. 힘들어도 다 된 농사 망칠 수는 없어요. 사람이 모자라도 포기할 수 없어요. 적으면 적은대로 힘을 모아 어른들은 삽질을, 아이들은 작은 통에 흙을 퍼 날라요. 농약 한 번 치지 않은 논의 결과라는데. 영광의 상처이지요. 아파트 창문까지 날려버린 태풍에 끄떡없는 벼라면 이 또한 얼마나 우스꽝스런 일이에요.
‘말도 살찐다’는 가을 날, 개구리논에서 벼 베기가 있어요. 벼를 한 움큼씩 거머쥐고 낫으로 지그시 당겨 베면 쓰윽 잘려 나가는 벼. 홀태와 원형 탈곡기에 벼를 털어내는 손길이 바쁘고 즐겁습니다. 네 마지기도 안 되는 개구리논에 70명이 넘는 사람들이 다닥다닥 모여 벼를 베지만 이날만큼은 모내기하고 여름 내내 코빼기도 보이지 않던 사람들까지 모두 용서되는 날이에요. 수확의 기쁨이 모든 걸 용서하게 만드는 것이지요. 한새봉두레 식구들은 벼농사를 지으면서 돈보다 더 귀한 사람을 배운 것입니다. 함께 사는 세상을 배운 것이지요.
다람쥐숲속교실 아이들과 한 달에 한차례씩 산을 찾아요. 아랫반 꼬맹이들과는 봉서산을, 윗반 아이들과는 태학산을 갑니다. 갈 때마다 아쉬움이 참 많아요. 봉서산은 산에 비해 사람이 너무 많아서 풀이, 나무가, 곤충이, 동물이 깃들어 살 곳이 없고, 태학산은 인공미가 철철 넘친다는 거예요. 습지 동식물을 보려 해도 두 산 다 볼 수 없어요. 그럴 때마다 아쉬움을 태학산의 자그마한 논에서 달래요. 땡볕 아래 쫄쫄 떨어지는 물방울을 빨아 먹듯 감질나요. 습지에 대한 공부를 하기 위해 꼬맹이들 데리고 봉서산을 벗어나 종합운동장에 있는 인공 습지를 찾을 거예요. 윗반 아이들과는 천안을 벗어나 오산에 있는 물향기수목원을 찾을 거고요. 한새봉 개구리논이 마냥 부러워요. 가까운 곳에 습지 동식물을 볼 수 있는 곳이 있잖아요.
한새봉숲사랑이 엄마들이 자랑스러워요. 벼농사를 지으면서 틈틈이 개구리교실 아이들과 한새봉에 깃들어 사는 동식물을 조사하고 기록하는 모습이 든든합니다. 소리의 논 식물 관찰일기, 지승이의 논 동물 관찰일기는 습지생물도감 같아요. 도롱뇽 알에서 어른 도롱뇽까지 그림과 설명, 거기에 날짜까지. 진짜로 겪은 일이구나 공감할 수 있어 더 믿음이 생기네요. 일기 쓰듯 꼼꼼히 써 내려간 한새봉두레 이야기에서 그래요. 날짜를 밝혀주니 ‘아~ 손모내기는 기계 모내기보다 한 달 가량 늦게 하는구나.’ ‘김매기는 이때쯤 하는 구나’ 경험이 없는 사람도 각각의 시기를 알 수 있어요. 그림이 참 좋아요. 아이들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글과 그림이 이 책의 또 다른 매력이에요. 자칫 딱딱하고 지루할 것 같은 이야기를 그림이 시원하게 길을 만들어줘요. 산비탈에 굽이굽이 굽은 논두렁이 정겹고, 모내기하는 펼친그림이 요목조목 볼거리가 많아요. 어디나 늘 그렇듯이, 열심히 모를 심는 아이들 틈에 땡땡이치는 아이들도 있어요.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신발도 귀여워요. 그림만으로도 한새봉두레 식구들의 한해살이를 알기에 충분해요. 쓱쓱~ 그림이 쉬워서 글도 쉽다는 생각이 들어요. 어렵게 읽히지 않아서 좋아요. 1년을 이렇게 살면 얼마나 뿌듯할까 따라해 보고 싶다는 생각이 마구마구 들어요. 한새봉두레 식구들이 겪은 1년 동안의 벼농사 이야기. 그 속에 깃들어 사는 동식물 이야기. 사람이 발견한 자연을 진솔하게 풀어냈어요. 사라질 위기에 놓인 논 습지를 살린 한새봉두레 식구들, 참 용감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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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봉열 : 어린이의 꿈을 가꾸는 ‘문화공간 천안곰곰이’에서 아이들과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올봄에 이사한 집 옆에 30평 남짓한 텃밭을 만들어, 폭염 속에서도 꿋꿋한 생명들과 만나는 재미에 쏙 빠져 있고 올 김장은 직접 키운 배추로 담겠다는 야무진 꿈도 갖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