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향료무역(라틴어 Per fumum '연기를 통해서'의 뜻) 향료는 좋은 향기가 나도록 식품이나 화장품 등에 소량 첨가하는 물질(향수)을 말하는 것이나 식품에서는
맛과 향기를 내는 재료를 말하기도 한다.
옛날에는 자연의 동물과 식물에서 구하였으나 지금은 합성으로 만들며 자연의 것을 첨가하기도 하고
순 화학의 합성품도 발달하여 수많은 종류가 생산된다.
향료 중에 향수는 고체이건 액체이건 기화상태가 되어 코에 냄새를 맡도록 하는 것이다.
향수, 화장품, 비누, 세제, 피혁, 고무 등으로 광범위하다.
향수의 냄새는 전문가들에 의하여 결정되는데 19,000종류를 구별 할 수 있는 전문가들도 있다고 한다.
역사초기는 신에게 바치는 데 사용하여 성경에는 몰약(애굽은 BC2000전 파피루스에 기록됨), 유향,
사항, 육계 등이 언급되었고 향로제조법(출애굽기)이 기록되었다.
BC100년경 성서에서 시바로 등장하는 사바 왕국을 많은 몰약, 유향과 향신료 무역을 통해 부를
축적하면서 번성하였다. [
아라비아참조]
그리스에서는 BC400전에 약용과 쾌락의 목적으로 사용하고, 로마인은 원료를 그리스와 아라비아에서
가져왔다. 향수는 주로 아랍, 페르시아가 발전시키고 9-12세기에 아랍인이 증류법을 발견하였다.
최초의 화장수(항가리 물)는 로즈마리 향을 기초로 하고, 향기 나는 물은 오렌지 꽃 물로
1725년 요한 마리 파리나가 오 드 콜로뉴를 사용하였다.
19세기말에 합성 화학 품이 만들어지고 냄새를 가감하는 법이 나왔다.
자연원료 중에는 꽃은 재스민, 장미, 미모사, 제비꽃, 아주까리, 오렌지, 로즈마리이고,
잎과 줄기는 제라늄, 계수나무, 육계, 백단, 삼목, 장미, 포도이다.
뿌리줄기로는 꽃창포, 생강이고, 열매는 오렌지, 레몬 등이다.
수지형태의 침출액은 몰약, 벤조, 소합향이고, 동물은 사향노루(사향), 사향고래(용연향),
사향고양이(영묘향), 비버(해리향) 등이다.
합성향료는 탄화수소, 알콜, 에스테를, 케톤, 에테르, 아미노산화합물, 페놀 등으로 대부분 값이 싸지만
앞으로 무한한 종류와 개발이 가능하고 고가도 있다.
철과 구리는 유해하므로 조심하여야하고 유리용기가 좋다.
향료는 고대부터 주요 거래품으로 유계, 계피, 소구두, 생강, 심황은 동양에서 거래되는 물품이
BC20세기는 중동으로 수출되었다. 남아라비아는 유황과 몰약등의 교역지이었다.
이들은 원산지는 감추고 계피는 독사들이 우글대는 협곡에서 자란다는 등 호기심을 자극하는 신비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다. 향료무역은 주로 배로 이용되었는데 아랍인들이 실론(현: 스리랑카)으로 가는
직항로를 이용하고 극동에서는 중국인들이 말레이 군도를 이용하여 실론에 도달하였다.
교역은 주로 실론에서 이루어졌다.
로마의 자치지역으로 있든 알렉산드리아는 BC80년 프톨레마이오스 6세에 세계최대의 무역항으로
입항세 수입으로 막대한 이익을 얻었고, 인도의 향료와 매운 양념이 거래되는 시장이 되었다.
로마가 인도와 직접교역으로 아랍의 주도권을 약화시키기도 하였으나 계속 번창하였다.
1096년의 십자군 원정도 향료무역의 일환으로 시작되었고 이 덕분에 13세기 초반에는 베네치아가
중동의 교역을 독점함으로 번성하고 절대적 위력을 떨쳤다.
그들이 부를 축적한 것은 알렉산드리아에서 구입한 향료를 유럽상인에게 폭리를 취하였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이 향료의 원산지가 인도인 것을 알고 원산지와 교역하려고 하였으나 베네치아를 분쇄할 수
없어 다른 항로를 찾게 된 것이 지리상의 발견이다.
당시 향료의 가격을 예를 들면 다년생 덩굴식물인 후추(black pepper-Piper nigrum)는 은의 무게와
맞먹었다고 하니 얼마나 고가인가를 알 수 있다.
1492년 스페인의 지원아래 콜럼버스가 떠나고, 1497년 영국의 존 캐벗이 떠났으나 빈손으로 돌아왔다.
1501년 포르투갈이 희망 봉을 돌아 인도에서 향료를 싣고 도착하였다.
1519년 마젤란이 스페인의 후원아래 5척의 배 중에 빅토리아호만 향료를 가득 싣고 돌아왔고,
1580년 드레이크경이 마젤란해협을 돌아 보물과 향료를 싣고 플리머스항에 돌아왔다.
1598년 네덜란드는 향료를 싣고 돌아왔고, 1602년 네덜란드가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였다.
1664년 프랑스 루이 14세가 동인도회사를 설립하였다.
이로서 베네치아와 회교의 무역독점을 분쇄하고 극동간의 교역이 확대되고 새로운 시대로 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