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아가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는 말에 있은 것은 저주의 사건인가?
창세기 9:20-29 / 20노아가 농사를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가나안의 아버지 함이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그의 두 형제에게 알리매 23셈과 야벳이 옷을 가져다가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들의 아버지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노아가 술이 깨어 그의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26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28홍수 후에 노아가 삼백오십 년을 살았고 29그의 나이가 구백오십 세가 되어 죽었더라.
하나님은 노아의 생명을 보존하시는 것을 통해 맺으신 언약을 통해 여자의 후손에 대한 약속의 계승에 있게 하신다. 그리고 홍수 이후 노아의 세 아들을 통해서 온 세상에 사람들이 퍼져나간 것과 함께 가나안 사람들의 조상이 되는 함의 아들 가나안에 대한 이야기가 기록된다. 노아가 포도주에 취하여 벌거벗은 채 잠들어 있게 되는데, 이를 세 아들이 보는 사건을 통해서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는 것을 통해 셈의 계보를 선택적으로 선용하는 일이 있게 된다(창 9:26). 그리고 셈의 셋째 아들 아르박삿을 통해 셀라 - 에벨 - 벨렉 - 르우 - 스룩 - 나홀 - 데라에 이어져, 데라가 낳은 아브라함에게까지 연결된다(창 10:21-25, 11:10-26). 이처럼 언약적 구속사를 집행해 가시는 하나님의 절대 주권적인 섭리의 역사는 태초의 인류역사 때부터 철저히 하나님의 기뻐하시는 뜻을 좇아 선택적이고 차별적으로 진행되어왔음을 확인하게 되는데, 하나님은 이것을 함의 아들 가나안을 이야기하는 것에서 알게 해 주신다. 노아가 포도주에 취하여 벌거벗은 채 자기 장막에 누워 잠들었을 때, 이 모습을 본 노아의 아들 함이 밖으로 나가 두 형제에게 아버지가 벌거벗은 채 누워 계신다고 말하였다. 이 이야기를 함으로부터 들은 셈과 야벳 두 형제는 겉옷을 어깨에 메고 뒷걸음질을 쳐 아버지 곁으로 다가가서는 아버지의 벌거벗은 모습을 보지 않으려고 얼굴을 돌린 채 아버지를 덮어드리고 나왔다. 그리고 나중에 술이 깬 노아가 자기에게 있은 일을 알게 되어 작은 아들 함이 자기에게 어떻게 하였는지를 알고는 다음과 같이 말해주었다.
“이에 이르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하고, 또 이르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하게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창 9:26-27)
혹자는 이 구절을 오해하고는 여기에 담긴 하나님의 본의적인 뜻을 왜곡하여 엉뚱한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본다. 노아가 함이 자기에게 한 일을 알고는 크게 노하여 함의 아들 가나안을 저주하여서 함의 후손이 지금의 아프리카에 사는 흑인의 조상이 되었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노아가 한 말을 잘못 알고 있는 것이다. 노아가 25절에서 저주에 있을 것을 말한 것은 함이 아닌 노아의 손자이며 함의 아들인 가나안이다. 노아는 말하기를,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의 형제를 섬기는 종이 될 것이어서 셈은 가나안을 종으로 부릴 것인데, 하나님이 야벳을 크게 일으키셔서 셈의 장막에서 살게 하시고 가나안을 종으로 삼아서 셈을 섬기게 하실 것이라는 것이었다.
노아가 가나안을 저주한 내용은 가나안이 셈의 종이 될 것이라는데 있다. 노아가 저주한다면 노아의 모습을 두 형제에게 이야기를 한 함이어야 하는데, 노아는 함을 저주한 것이 아니라, 그의 손자요 함의 아들인 가나안을 저주하는 말을 하였다. 이는 노아가 순간적으로 착각해서 함이 아닌 가나안을 저주한 것이거나 또는 함을 말하여 저주한다는 것이 그만 말이 헛 나와서 가나안을 말하여 저주한 것인가? 그렇지가 않다. 그러면 왜 이런 일이 있게 되었는지, 무엇 때문에 이런 일이 있게 된 것인지를 알아야 한다. 이것을 알 수 있게 해주고 있는 것이 하나님의 구속사이다. 노아가 가나안을 저주한 여기에는 하나님의 구속사가 노아의 아들 셈을 통하여 어떻게 진행될 것인지가 예언되어 있다. 노아의 저주는 가나안을 셈의 종이 되게 하는 것에 있지만, 이렇게 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은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자신 계획하신 뜻을 실행해 가시는 섭리에 있으신다.
노아가 가나안에게 저주하는 말을 하는 것에서 예언하신 것에 따라 하나님께서 그대로 하실 것에 의해서 셈의 주님이신 하나님은 찬양받으실 것이다. 그것은 셈은 가나안을 종으로 부릴 것이니, 하나님이 야벳을 크게 일으키셔서 셈의 장막에서 살게 하시고 가나안은 종으로 삼아서 - 이는 역사적으로는 훗날 셈의 후손이요 아브라함의 후손 이스라엘이 조상 아브라함이 하나님으로부터 약속 받은 땅 가나안에 들어가 가나안 족속을 정복하며 이스라엘 왕국을 건설하는 것에서 실현되었다 - 셈을 섬기게 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아들 셈의 장막에 또한 그의 형제인 야벳을 속하게 하실 것이며, 함의 아들인 가나안은 종으로 삼아서 셈을 섬기게 하므로 가나안과 그의 후손이 셈의 장막에 속하게 하실 것이다. 하나님은 그렇게 하시는 것을 통해서 야벳과 가나안, 그들의 모든 후손이 셈의 하나님이 함께 하심에 있게 될 것이다. 그래서 셈과 그의 후손이 그들의 하나님을 인하여 복있는 자가 될 것인데, 그 셈이 받는 복에 야벳이, 그리고 가나안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은 이러한 일이 있을 것을 노아가 가나안을 저주하는 것을 통하여 예언하게 하심으로써 노아의 손자요 함의 아들인 가나안을 노아의 아들인 야벳과 같은 선에서 다루신다. 즉, 함이 배제되고 함 대신에 그의 아들인 가나안이 자리하는 것이다. 즉, 가나안이 셈과 야벳과 함께 하는 형제의 자리에 있는 것이다. 이 일은 하나님께서 이렇게 하시는 것을 통해서 셈을 복주시는 하나님께서 그의 형제인 야벳과 그리고 가나안을 셈이 받은 복 안에 있게 하여 그들도 하나님의 복이 거하는 장막이 되게 하시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셈의 하나님은 또한 야벳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그리고 가나안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다. 하나님은 이 일을 일으키시는 것을 통해서 셈과 야벳과 가나안 모두의 하나님이 되실 것이며, 그래서 그의 후손으로 오는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하나님의 복에 있을 것이다.
노아는 자신이 가나안을 저주하는 말을 하는 것에서 이 예언을 하는 것을 통해서 하나님의 구속사가 홍수 심판 후에 하나님에 의해서 생명의 보존 언약에 있는 자신의 후손들에게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를 한 눈에 바라봄에 있는 은혜를 입고 있다.
이를 노아는 홍수가 지난 뒤에도 350년을 더 살아 그의 나이 950세에 죽을 때까지 보며 사는 기쁨에 있었다. 노아는 자신이 죽는 날까지 자신과 함께 하시며 자신과 맺은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기쁨에 있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