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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성(과학) |
그러다가 과학이 발달하고(인쇄술 및 증기기관의 발명) 사람들의 생각이 많아지면서(문예부흥) 사람의 이성이 신앙으로부터 독립하여 이성이 최고라고 생각하는 시대가 열립니다. 혹, 들어보셨나요?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 누구의 말이죠? 예! 데카르트라는 철학자가 한 말로 이 시대를 대표하는 말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이 시대에는 신앙 즉 믿음도 인간의 이성으로 판단하고, 측정하려고 했습니다.
여러분은 이 중에서 몇 번의 생각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나요?
1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교회에서 하는 말이 전부 진리이고 사실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학교나 내가 배운 다른 지식보다 목사님의 말이 더 맞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나요?
2번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과연 저것이 과학적이고 합리적인가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굳이 물어보지 않아도 여러분은 아직 2번의 생각을 가지고 있고 많은 사람들이 2번의 사고를 중요하게 여기고 있습니다. 한 때 그런 학습지 광고도 있었죠? 개그맨이 나와서 “과학적으로”하고 외치던...
우리가 친구들과 논쟁 즉, 말싸움을 할 때도 “이건 과학적으로 입증이 된거야!” 내지는 “국가에서 공인 된거야!” 이런 말에 부딪히면 더 논쟁을 이어가지 못하고 패배를 인정하게 됩니다.
그런데 문제는 2번이 사실이 아니라는 것에 있습니다. 과학은 사실인가? 진리인가? 정답은 No입니다.
과학이 무엇인가? 경험(실험)으로 확인되고, 검증된 것을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렇게 사실로 확인된 것을 ‘이론’이라고 부르는데 그럼 이론은 사실이고 진리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 이론은 변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런데 그런가요? 절대 아니죠. 이론은 계속 변하고 있습니다.
한 예로 과거 우주는 질서정연하다는 코스모스이론이 사실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혼돈 속에 있다는 카오스이론이 사실로 받아들여지고 있습니다. 또한 과거 건강한 사람의 심장은 규칙적으로 뛰는 것으로 알려졌죠? 그러나 지금에 와서는 반대로 아프고 병약한 사람의 심장이 오히려 규칙적으로 뛰고 건강할수록 불규칙하게 뛴다고 합니다. 과학 이론이 사실이고 진리라면 이렇게 변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생각해봅시다. 과학에서는 끊임없이 새로운 이론들이 생겨나는데, 그 새로운 이론을 만들기 위해서 즉, 새로운 실험을 위해서는 제일먼저 하는 일이 무엇인가 하면 ‘전제’ 즉 ‘가정’을 세우는 것입니다.
가정이 무엇인가? “이걸 이렇게 하면 저런 결과가 나오지 않을까?”하는 생각입니다.
그 말은 지금까지의 이론을 못 믿겠다, 뭔가 틀린 것이 있다는 생각을 가지고 그리고 새로운 믿음을 세우는 것이 바로 가정, 전제를 세우는 것이다. 그러므로 실제로 과학은 놀랍게도 가정 즉, 믿음위에 서있습니다.
2005년 6월 13일 레이저(laser)의 발명자이며, 노벨상 수상자인 찰스 타운스(Charles H. Townes)는 하버드 대학의 과학센터를 가득 채운 청중들 앞에서 “과학과 종교에서 논리와 신비”라는 제목으로 연설하였습니다. 그의 연설의 중요 요점은 과학과 종교는 상호 대립하는 관계가 아니라는 것인데 40분의 연설 동안에 그는 “과학과 종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비슷하며, 상당히 평행한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 그것들은 하나로 모아질 것에 틀림없다”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그 연설에서 타운스는 말했습니다 . “종교와 과학은 둘 다 커다란 증명되지 않은 신비들을 다루고 있으며, 알려지지 않은 광대한 우주의 많은 부분들을 이해하려는 데에, 많은 결점들을 가지는 어떤 이론을 적용시키려는 점에 있어서, 과학자들에게도 상당한 양의 믿음이 또한 보여지고 있다.”
결국 과학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진리이거나 변하지 않는 사실이 아니라 믿음이라는 것이며 또한 과학은 우리가 기대하는 만큼의 수준에 있지 못한 부분도 많이 있습니다.
예로, 과학기술로 인간의 머리카락을 만들지 못합니다. 왜 인간의 머리카락만 자라는지도 설명하지 못합니다. 또한 새들이 어떻게 그렇게 먼 거리를 여행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명확하게 알지 못합니다.
한 가지만 더 이야기하면 심장은 사람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움직이는 근육인데 보통 사람의 운동에너지는 탄수화물에서 온다고 합니다. 그러기에 밥을 안 먹으면 힘이 없는 것이죠. 머리카락도 손톱도 잘 자라지 않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안 먹어도 심장이 천천히 뛰지는 않습니다. 그 이유는 심장만은 그 에너지를 지방에서 가져오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기에 밥을 안 먹어서 힘이 하나도 없어도 심장은 정상적으로 뛰는 것입니다.
과학은 절대불변의 진리가 아니라 부분적인 사실 확인이며 상당한 믿음(신념)의 바탕위에 서있습니다.
오늘날의 사람들이 그러한 사실을 알기 때문에 이성과 과학에 대한 의심을 가지면서 포스트모더니즘이라는 새로운 사상도 생겨났습니다.
결론적으로, 지금 우리는 이 세상을 살아가고 있고, 지금도 우리의 심장은 뛰고 있지만 그 어느 것도 이것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하거나 소위 과학적으로 증명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그럼 무슨 말인가?
결국 세상은 믿음위에 서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매우 중요한 한 가지는 그 사람이 무엇을 믿는가?하는 것이 그 사람이 어떻게 살것인가를 결정짓는다는 것입니다.
즉, 여러분이 어떤 것을 믿고 있는가 하는 것이 여러분의 삶을 결정하는 것입니다.
나는 믿음이 없다고 말하지 마세요, 믿음이 없는 것이 아니라 없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부활을 믿습니까? 나는 부활을 믿습니다.
왜 우리에게 부활이 중요한가? 창조 이래 모든 인간의 죽음은 하나님의 저주였습니다. 하나님께서 범죄한 인간에게 묶어두신 죄의 사슬입니다. 사탄은 이 죽음을 강력한 무기로 삼았고 그 어느 누구도 죽음을 피해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그 죽음의 사슬을 끊으셨고 육체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이 다시 살아난 것을 과학적으로 증명하라고 말하지 마세요. 증명할 수도 없을뿐더러 혹, 그럴 수 있다 하더라도 무의미합니다. 그것보다 더 확실한 증명은 오늘 내가 그것을 믿는다는 것입니다.
나만 믿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 이래 지금까지 수없이 많은 사람들이 그 믿음으로 자신의 삶을 살아갔으며 지금도 이름도 다 헤아릴 수 없는 선교사들이 죽음 앞에서 그 믿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믿음을 가지지 못하는 것이 이 믿음이 과학이 아니어서가 아니라 아직 내게 그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또한 이 믿음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에베소서2:8절에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라고 말씀했습니다. 이 믿음을 선물로 받은 사람만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과 장차 나의 부활을 믿을 수 있습니다. 이 믿음이 실제입니다. 이 믿음이 내 삶을 이끌어 갑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믿고 있습니까? 예수님의 부활을 믿나요? 그렇다면 오늘 여러분은 예수님의 부활에 동참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 믿음을 갖기를 소망합니다. 바라는 사람에게 하나님은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에 대한 믿음위에 여러분의 삶을 세워 가시기를 바랍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삶에 사람들은 방향키를 찾지 못하고 나침반도 가지고 있지 않습니다.
여러분도 여러분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이미 여러분의 부모님도 여러분을 인도하는데에 어려움을 가지고 계십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온 그리고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우리를 움직여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인도를 경험하며 그 믿음으로 승리하는 우리가 되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