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마가복음1:1
마가는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이고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선포하므로 당시의 가이사나 헤롯에 대한 정면 도전이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시므로 새로운 세계가 형성되므로 모든 관원과 권세자들의 자리가 위태해지고 특히 불법과 불의를
일삼는 기득권자들에게는 최후가 온 것입니다. 그러나 새로운 세계를 원하는 암하레아츠나 오클로스에게는
희망과 꿈이며 세 세상에 대한 기대요 부푼 꿈입니다.특히 이스라엘 민족사에 있어서 하나님의 아들의
현은 온 민족의 염원이지만 누구에게나 좋은 것은 아닙니다.예수를 하나님 아들로써 새로운 나라를 건설
다는 것은 가이사나 헤롯이 보기에는 반역의 무리가 되고 이미 처단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예수는 하나님
의 아들로서 권위와 지위를 지키시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오셔서 이루실 나라는 정의롭고 평화스
러우며 이스라엘 민족이 모든 세계를 다스린다는 것이며 모든 세계의 왕들이 무릎을 꿇게 된다는 것을 믿고
있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아들이 오심으로 높은 자는 낮아지고 갇힌 자는 자유를 주시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 그리스도가 되신다는 고백가운데는 모든 종교지도자들의 머리라는 의미가 포함되어 있습니다.
시의 대제사장, 제사장들, 바리새인들, 사두개인들,율법사 종교적 기득권자들은 예수를 받아 드릴 까닭없습니다. 그런데 마가는 예수는 그리스도라고 선포합니다.
예수는 그리스도로서 왕적인 지위와 제사장적인 지위 그리고 예언자적인 사명을 다 하신 것입니다. 젊은 예수 앞에 무릎을 꿇을 용기와 겸손함과 통찰력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은 30세쯤 에서 천국건설을 시작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이런 예수님을 종교지도자들이 좋아할리 만무합니다.
예수는 복음입니다. 당시 부자, 권세자, 학자, 종교지도자들은 비웃었을 것입니다. 가난뱅이 예수가 복음이다는 것은 그들에게는 아무런 복음이 못됩니다. 그러나 가난한자, 포로된 자,억눌리고 짓밟힘을 당하는 자에게는 역시
예수는 복음이 됩니다. 그들에게 자유와 해방을 약속하는 분이었기 때문입니다.
이들의 관점에서 볼 때 예수는 복음이 되고 마가는 이런 예수 자체를 복음으로 전파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갈 길을 미리 놓으며 앞서간 사람이 있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의 심성속에는 인간들이나 당시 사회 속의 약속이나, 정치인들의 공약이나 종교지도자들 속에서는 어떤 신선한 소리가 없어진지 오래 되었던 시대입니다.
그래서 오직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만이 희망이었고, “너희는 주의 길을 닦고 그의 길을 고르게 하여라"는 사명을 간직한 엘리야와 같은 사람만이 당시 민중들의 희망이었습니다. 당시 경건하며 하나님이 나라를
기다리는 신앙을 말하던 경건파 엣세네파의 지도자 세례자 요한은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였습니다.
세례요한은 회개를 외치면서, "세례를 받으라 그러면 죄용서 받을 것이 다"며 외쳤고, 이 소식을 듣는 많은 사람들이
온 유대와 예루살렘에서 나와서 자기 죄를 자복하고 요단강에서 그에게 세례를 받았던 것입니다.
수많은 민중이 세례요한의 외침에 순복한 이유는 무엇 때문일까? 이스라엘 민중들은 세례요한을 믿을 만한 선지자로 여겼음이 분명합니다. 수 백년 동안 이스라엘 민족에게는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었으나 세례요한이 나타나자 모두가 내심 기뻐하며 따랐던 것입니다.
그는 검소한 생활로(1:6) 묵상과 기도의 사람이었으며 자신의 사명을 깨닫고 있던 엘리야(마17)였습니다. 세례요한이 대제사장의 아들로 태어난 것은 분명한데 그가 성령의 도움으로 잉태된 것과 비상한 아이였던 것은 분명한데 그는 그 당시의 종교지도자들과 같지 않게 광야에서 검소한 삶을 살았던 실천적인 선지자였습니다. 그리고 민중으로써 삶을 살았던 민중지도자 였습니다.
그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으며 종교들이 권세와 조직으로 굳어져 사랑을 잃어버리고 민중의 아편으로 전락되고 권력과 결탁해서 민중을 억압하는 계급으로 전락해 갈 때, 세례요한은 그것을 버리고 검소와 가난과 벗을 삼고 살았던 광야의 외침이었던 것입니다.
그는 회개의 세례를 전파했고 죄를 자복할 때 세례를 주었으며 예수를 뒤에 오시는 분으로 증언했습니다. 세례요한은 많은 제자들을 거느린 스승이었으나(막6:29,마11:2) 그는 오직 예수만을 증언했고 세례요한은
매우 겸손한 사람이며 본인의 능력을 알고 오직 자신의 사명을 완수한 것입니다.
수많은 민중이 그를 참선지자로 여겼고 (막6:18)그는 의롭고 거룩한 사람이었으며(막6:20)민중이 그를 지켜주었습니다.(마14:5)즉 헤롯왕이 민중을 두려워 했던 것입니다.세례요한이 증언한 예수는 자신이 감당치 못할 분이며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분이라고 증언했던 것입니다.
회개의 외침은 어느시대나 자극적이고 비판적이었으며 대다수 사람들은 싫어 합니다(노아시대,소돕과 고모라 성)그러나 이 외침을 받은 도성은 긍휼과 사랑을 입었습니다(니느웨 성 회개 하라고 외치는 소리를 제일 싫어 하는 집단은 권력의 힘으로 백성을 다스리는 통치권 내의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회개할 것이 많을수록 자신의 기득권을 빼앗기기 때문입니다)
특히 불법과 불의를 자행하는 헤롯왕과 일당들, 종교의 지도자들의 가슴에는 철퇴를 내리치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백성들도 회개하겠지만 심각한 것은 회개한 민중의 태도인 것입니다. 이들은 옛날처럼 권력의 노예가 아니며 옛날처럼 적당히 억눌려 있지 않을 것입니다.
특히 현 지배체제가 다스리는 사회전체를 불안하게 하는 발언이 회개하라는 말씀입니다. 그리고 천국이 가까웠다고 한 것은 민중들을 선동하는 것이며 특히 예수님을 지칭하는 것은 위험 천만한 일입니다.
그는 예수님이 천국을 주실 분으로 말씀했고 민중들은 믿었던 것입니다.
수많은 민중들은 이제나 숨을 쉴 수 있는 세상이 오는가? 하는 기대를 갖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공식적으로 인정 받고 활동을 시작하십니다.사람들에게 나타내시고 하나님 아버지의 확증과 영광스러운 모습입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전 생애의 최초의 기적 기사입니다. 예수는 갈릴리 나사렛에서 요단강으로 가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습니다. 갈릴리라는 지역은 북방 이스라엘 왕국의 가장 북쪽에 위치해 있습니다.
B.C734년 디글랏 빌레셀에 의해 앗수르 제국에 흡수되어 6세기 동안에 차례로 바벨론 페르르시아 마케도니아, 이집트,시리아로 넘겨져 결국 페르시아 시대는 유대인보다 이방인이 많았습니다. 마카비 시대는 유대인이 더욱 적은 지역이 되었습니다.
BC 63에는 로마의 통치를 받았으며 헤롯 아그립바 1세가
갈릴리 6년 동안 통치 하였고,AD 44에 도성 제도가 바뀌었습니다. 이방인의 갈릴리 열방의 갈릴리라는 말은 혼합된 민족이 살고 있는 스불론과 납달리 지역을 의미합니다.즉 북경지역과 주변에 있는 인종적인 다양성과 혼합을 지칭하는 대명사입니다.
갈릴리 생활상을 살펴보면 평원에는 곡식과 초목이 풍부했고 가공하는
산업이나 목축업이 발달했습니다. 기름과 술, 물고기 그리고 곡식은 일반적인 수출품이었으며 중요한 수입품은 국제적인 교역로에서 나오는 통행세였습니다.
공공건물, 목욕탕과 체육관 극장, 경주장들 문화를 번영하는 건물을 세웠습니다. D1세기에는 인구가 약35만면의 인구가 되었고, 여기에는 많은 수의 노예와 십만 정도의 헬라화한 유대인이 포함되었습니다. 코이네인 헬라어를 사용하였고 이방인의 신랑이 되었던 지역입니다.
사람의 명예와 인정 받음을 요구하는 시대에 예수는 하늘의 확증으로 사셨습니다.예수님의 하나님의 아들이심의 확증은 인간 뿐 아니라 하늘의 확증에서 시작됩니다.하늘이 준 사명, 하늘이 준 은혜였습니다.역시 예수를 믿는 것은 하늘의 확증과 사랑이 없이는 불가능합니다. 즉 인간들이 인정하는 학위 ,권위가 아니며 인간이 만든 철학, 종교가 아니라 하늘의 소명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권위는 하늘이기 때문에 당시 집권자들과 른 것입니다. 이러한 예수는 곧 광야로 몰아냄을 다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세상에서의 유혹과의 대결에서 승리하게 됩니다.하늘의 확증과 신비의 체험(마17장)은 광야, 세상,산 아래에서의 삶과 직결합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사단의 세력을 무찌르셔야 하고 그 유혹을 예수께서는 40일 동안 사단에게 시험을 받으며 들짐승과 함께 계시고 단련을 받으신 것입니다. 그는 이기셔야 하며 첫 아담이 실패한 것을 회복시켜야
합니다. 마4:1-112에는 그 유혹을 3가지 소개합니다. 세상의 형편을 겪고 느껴야 합니다. 그리고 모든 세상적인 유혹에서 해방되고 극복할 때만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찾을 수 있는 사람이 됩니다.
아니 이 모든 세상적인 것을 바꾸어야 됩니다.광야,세상,정욕의 모든 유혹을 이겨야 하고 극복해야 합니다 .권력, 명예부귀, 권력적인 우월감 정욕 등입니다.매씨야로서 당시의 모든 지도자들은 예수의 이런 생활이 못마땅했음이 분명합니다.
예수는 사회대학을 마스터 하신 것입니다. 즉 삶의 대학 인간대학을 마스터하시고자 광야에서 시험을 이기신 것입니다.오늘날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무수한 사람들은 광야의 시험에서 져서 흐느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무리는 광야의 시험을 이겨야 합니다. 광야는 사랑이 없는 현실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에수상과 예수에 대한 증언은 당시의 사회에서 각종 기득권자들에게는 우스운 이야기 였지만 중들은 이것을 기뻐했습니다.
왜냐면 썩어빠진 헤롯의 권력아래서 선한 것이 솟을 수 없음을 알고
있었고 하나님의 아들은 하늘의 소리에 달려 있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예수를 천사들이 수종든 것입니다. 세상의 관원들, 지도자라 칭하는 사람들을 볼 때 얼마나 웃기고 가소로운 일인가? 이것은 또한 예수께서 사회의
죄악과의 타협을 거부하고 빛을 나타내시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를 가리켜서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제일 큰자이며 엘리야라고 증언하시던 당시 민중의 햇불같은 세례요한이 드디어 잡혔습니다. 헤롯이 행한 일과 악한 일들을 책망(눅3:19-20)하다가 옥에 갇힌 것입니다.
그들은 칼과 병기로 무장한 힘있는 사람들입니다. 권력과 군사로 무장한 헤롯의 힘입니다.그것은 로마의 힘을 갖고 같은 민족을 억누르는 무서운 힘을 갖는 민족을 등척먹는 외세의자들입니다.
민중들의 지도자요 하나님의 선지자요 엘리야의 심정으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코저 노력하는 세례요한을 옥에 집어넣어 버린 것입니다.그러나 민중이 두려워서(14:5) 세례요한을죽일 수가 없었습니다.요한이 옥에 갇혀 심한 박해와 고문과 고통을 받게 되었고,이제는 민중은 지도자가 없어서 목자없는 양처럼,방황하고 흩어질 수 밖에 없었습니다.
민중의 소리없는 한의 함성이 들려옵니다. 민중은 서서히 죽임을 당하고 민중은 세례요한과 더불어 옥에 갇힌 것입니다.독사의 자식들, 바리새인,
사두개인,헤롯, 율법사, 부자들, 병사들, 세리들이 얼마나 쾌자를 속으로 불렀을까? 그것은 당연한 일이요 세례요한은 죽어 마땅할 놈이라고 거들었을 것입니다. 군인들은 세례요한의 손을 비틀고 데리고 갔을 것입니다.
쾌재를 부르는 무리와 흐느껴우는 무리들이 나뉘고 궁중에서 헤로디아의 딸은 세례요한을 죽일 기회만 호시탐탐 노리고 옥에 갇힌 세례요한 민중, 제자들과 분리된 세례요한은 힘이 없어 결국은 목베임을 당하게 되었습다.
이때부터 예수께서 천국의 소식을 전하기 시작하셨는데 ‘이때부터’가 매우 중요합니다.예수님은 갈릴리에 가셨습니다. 이곳은 민중이 가득하고 차별받은 지역이며 열심당원들이 많은 가장 재야세력이 센곳입니다.즉 반
정부인자들의 소굴이며 오클로스 민중의 대명사인 지역이 바로 갈릴리 였습니다.
소외되고 가난한 사람들이 많은 곳, 예루살렘에서 쫓겨난 사람들이 가득한곳입니다.예수님은 이런 곳을 선택하여 복음을 전파하기 시작하셨습니다.예수님의 처녀발언은 민중들과 숱한 세례요한의 제자들에게 관심의 초점이었습니다.그는 세례요한 선생을 뒤이어 나타난 민중의 구원자이기 때문입니다."때가 찼다"는 첫마디는 이스라엘과 헤롯과 기득권자들의 간담을 서늘하게 하는 발언이 됩니다. 헤롯의 때가 다 되었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인류의 역사속에 하나님의 통치가 직접적으로 이루어지는 때거 찼다는 의미이기도 하면서 헤롯의 권력도 다 되었다는 의미이기도 합니다.모든 인류의 죄악이 가득하여 심판의 때가 되었다고 하는 의미도 있습니다.로마의 식민
지의 때,한 많은 사람들의 한이 풀리는 때, 억압과 굴종과 억눌림에서 해방을 얻을 때,하나님의 때가 되었다는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유대인들이 들을 때는 로마시대가 끝나고 해방의 때가 온다는 기쁜 소식이며 이방인들이 들을 때는 구원의 문이 열리고 죄악의 때가 끝났다는 말이며 헤롯과 부자 ,종교지도자들이 들었을 때는 재수없는 소리였을 것입니다.로마가 들었을 때는 어떤 새로운 나라가 일어나는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할 것입니다.민중들은 기쁘고 즐겁고 변화의 때가 온다는 의미이자 불안과 초조, 기대와 희망이 있을 것입니다.
이러한 가능성이 열린 때가 찼다는 말씀에 이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통치의 시대가 열렸으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사는 사람이 되라는 것입니다. 로마의 법도 이스라엘의
전통에 일그러진 율법도 아니라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아가는 하늘나라 백성의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즉 새나라가 왔습니다.
이 나라는 영적이고 정신적이면서 온 삶에 영향을 미치는 왕의 나라입니다.
이 하나님의 다스림이 확립되면 유대인 민족의 정기가 살아나고 하나님의 공의의 심판이 있고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되는 세상이 될 것입니다.모든 크고 작은 나라들이 모두 하나님의 법과 말씀에 순종함으로 모든 세상은 정복당하고 하나님과 그 아들들 아래 무릎을 꿇게 됩니다.세상의 모든 크고 작은 나라를 굴복 시키고 이스라엘이 영광을 받습니다.
로마도 모든 적들도 무릎을 끓는 새나라, 하나님의 나라가 온 것입니다.
로마나 헤롯이 볼때 하나님의 나라가 왔다함은 혁명가가 이스라엘에서 나타나서 새나라를 세웠다는 소식인 것입니다.이것은 로마 권력과 세계의 로마평화에 도전이며 결국 로마의 창칼앞에 여지 없이 당해야 합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민중들의 기쁨은 그 안에 있습니다. 세상 모든 민중과 이스라엘의 민중들에게는 공의롭고 정의로운 하나님의 통치가 속히 이루어 져야 합니다.
그런데 바로 이런 의미를 함축한 선언을 예수님이 하신 것입니다. 즉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는 말입니다. 이제 굴복된 사람들, 포로된 사람들, 억눌린 사람들에게 자유가 와야 합니다.권세있어서 사람을 못살게 군
사람들은 무릎을 꿇어야 할 때가 왔다는 것입니다.
소경이 보고 앉은 뱅이가 걸어야 합니다. 자유와평화와 정의가 솟아나냐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나라 백성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이스라엘 민중들은 눈에 눈물을 씻을 날이 왔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세례요한을 잃고 슬픔과 좌절과 비통에 처한 한많은 사람들에게 민중예수의 첫번째 선포는 성공적이었고 관심과 환호를 올리고 이제 무엇인가 새로운 나라가
도래할 것이라는 기대를 갖었습니다.
즉 하나님의 사건들이 일어나리라는 기대를 갖게 된 것입니다.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것입니다.하나님의 합당한 사람은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 왔으니 가이사나 헤롯이나 종교적인 지도자나 세리나 부자나 민중이 모두 회개해야 합니다. 즉 모든 것을 “주님의 말씀대로 돌이켜 행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재물,권세 핍박,억압,착취에서 원상복귀시키라는 말입니다. 희년을 선포해야 합니다.그 이유는 하나님의 나라가 다가왔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법도가 행해지기 때문입니다.하나님의 통치가 시작되었으니 하나님의 백성이라면 그 법에 따라 순종하여 그 통치를 받아 드리는 사람입니다.
그러니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법과 뜻을 순종해야 합니다.
드디어 예수께서 하나님의 통치를 형성하고 하나님의 다스림와 권위를 받든 아들로서 명령하시는 하나님의 어의를 받들 준비를 시작했습니다. 말씀하신 하나님, 하나님의 통치와 뜻을 세상에서 펼쳐 나감으로서 하나님의 나라가 도래한 사실을 알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 나라의 왕으로서 사람들과 이 세상에 누룩처럼 번져갈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는 첫 모닥불을 피우고 만왕의 왕이신 하나님의 철저한 충신들을 모으는 것입니다.즉 예수께서 네 명의 충성스러운 신하될 사람을 부르셨습니다. 혹은 12명을 가까이 하십니다. 이들은 다가온 하나님의 통치와 작전을 수행할 천국의 충신들입니다.
이들은 예수의 진두지휘를 받으며 다가올 하나님의 통치와 작전을 위해 살아 움직여, 죄악에 물든 사람들 사이에서 보여줄 그릇들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면 “사람 낚는 어부가 됩니다”하나님의 나라가 다가 왔으나 그 나라를 사모하고 바라보는 사람들에게 기쁨이요 즐거움입니다.
예수는 4제자를 따라오라 하시고 사람 낚는 어부가 되게 해 주리라고
함으로 하나님의 통치의 즐거움을 보여주려고 했습니다. 하나님나라 시민은 예수없이는 불가능합니다.결국 이 땅에서 하나님의 날을 받아 드리는 사람은 눈에 보이도록 사람 낚는 어부로서 삶을 살게 됩니다.즉 예수
를 따르고 믿고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되므로 사람 낚는 어부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부터 예수의 행위, 말씀, 선포,인격은 모두가 하나님 나라가 무엇인가, 이 땅에 온 하나님의 나라가 어떻게 형성되어가고 이루어지며 행해지는가? 를 보여줄 것이 분명합니다. 또한 그의 제자들을 통해서 이루어질 것입니다.고향 땅에 돌아오셔서 보니 시몬과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이 고기를 잡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과 안면이 있었습니다.
이 네 제자는 모든 천국일에 작전 참모가 될 그릇들입니다. 이들도 메씨야를 기다리던 참 이스라엘 사람이었고 예수의 부르심에 그들 인생을 모두 맡겨 버리고 아비와 배를 버려두고 쫓았던 것입니다.
먼저 주님은 제자들과 같이 회당에 들어가 가르치기 시작했는데 사람들이 그 권세에 놀랐습니다. 먼저 악령이 예수를 알아보고 무서워 했습니다.예수께서 악령을 내어 쫓으시고 온 갈릴리 지방에 다니기 시작했습니다.이 사건이 처음 권세와 능력을 나타내시어 하나님 나라가 왔음을 나타내셨습니다.
수 많은 병든 자들이 몰려와서 고침 받기를 원했을때, 예수님은 기쁜 마음으로 허락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의지할 곳없는 수많은 민중들이 예수님을 찾아와서 줄을 서고 만지려고 난리 였습니다. 마가는 예수께서 성명서를 발표하고 제자들을 선택하셔서 용기있고 결단력있는 네 제자를 데리고 가버나움 회당에 들어가셔서 뭇 사람에게 전파하였다고 했습니다.
악령을 명하시고 제자들의 집으로 들어 가셔서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고생하는 것을 고쳐주셨고 많은 사람들을 고쳐 주시면서 그분의 능력을 나타내셨던 것입니다. 이것은 이스라엘의 모습이기도합니다.
뿐만아니라 예수님은 문둥이도 고쳐 주셨습니다. 예수는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 전통, 문화, 정치, 경제, 문회의 삶 전체를 부정하지 않으셨으나 썩고 부도덕하고 부패한 부분들을 도려 내시기 위해서 가르치시고, 악령을 쫓아내시고 귀신을 제어 하시고 문둥병을 고쳐주시면서 문화 변혁을 요구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의 예배와 교육을 위해서 만들어 논 회당을 이용하셨으며 당시의 제사장 제도와 모세의 명한 예물을 드릴 것을 가르치셨는데 이것은 오직 제사장과 그 곳에 모인 무리에게 증거하기 위함이라고 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