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천시, 21개 업소 지정 인증마크 부여
'통영 다찌', '마산 통술', '삼천포 실비'. 경남의 바닷가 도시를 중심으로 형성된 독특한 술상 이름이다. 특정 안주를 주문하고 술을 마시는 일반적인 술집과 달리, 술 주문에 맞춰 혹은 술상 앞에 앉은 사람 수에 맞춰 안주가 나오는 식의 술집들을 가리키는 말이기도 하다.
지난해 사천시가 '삼천포 실비'를 사천의 관광상품으로 브랜드화하면서 술 주문에 맞춰 주인장 마음대로 차려내는 경남식 술상이 주목받고 있다. 사천시는 21개 업소를 지정해'사천·삼천포 실비'라는 인증마크를 부여하고, 블로그와 안내책자를 제작해 홍보에 나섰다.
삼천포항과 용궁수산시장, 남일대해수욕장을 가까이 두고 있는 향촌동 일대가 '사천·삼천포 실비' 전문집이 밀집해 있는 곳이다. 사철 싱싱한 해산물이 끊이지 않는 주변 환경이 안주 인심이 쩨쩨하지 않은 실비집이 들어서게 된 조건일 것이다.
14년째 실비집을 운영하고 있는 박문립(61) '그대와 나' 대표의 5만원짜리 '사천·삼천포 실비' 한상을 받았다.
"식사는 하고 오셨습니꺼"
어스름이 내려앉은 초저녁 실비집 문을 열고 들어서는 손님들에게 '어서 오시라'는 인사 대신 건네는 박씨의 인사말이다. 손님의 빈속까지 생각해주는 술집 인심이 좀 낯설다싶을 정도로 인정스럽다.
손님의 빈속까지 생각해주는 인심
실비집 술상은 식사 후 2차 술자리로는 맞지 않다고들 한다. 그만큼 기본 한상의 음식이 푸짐하기로 유명하기 때문이다. 나중에야 식사 여부를 묻는 실비집 사장님의 속뜻을 알았다.
밥을 찾는 손님을 위해 따로 찰밥을 짓기도 하고, 김밥을 주문하기도 한단다. 자주 오는 단골손님을 위해서는 죽을 준비하기도 한다. '밥 인사'는 미리 준비하기 위함이었던 것이다.
곧 "동행이 몇 명이냐"를 묻고 기본 한상이 차려지기 시작했다.
안주의 가짓수는 달라질게 없어도 일행의 수에 따라 음식의 양을 조절하기 때문이다. 어디 사람 뱃속에 저게 다 들어가겠나 싶을 정도로 실비 한상 차림은 요란하다. 알배기 배추와 함께 입맛 돋우는 가
오리회초무침이 먼저 나온다.
출출한 초저녁 한잔 술을 기대하고 앉은 손님들에게 새콤한 회초무침은 에피타이저 같은 역할을 한다. 이어 문어, 소라, 가리비 등 해산물 숙회가 색색의 야채와 함께 예쁘게 장식돼 나온다. 식욕은 눈으로도 느껴지는 모양이다.
회, 해산물 등 술을 부르는 안주 푸짐
박 사장의 센스 있는 음식 코디에 상이 다 차려지기도 전에 손님들은 술잔을 부딪치고 젓가락질을 시작한다.개불, 멍게, 굴, 해삼, 전복까지 웬만한 횟집 수준의 해산물 접시가 눈을 휘둥그레 뜨게 만들고, 설마 나오겠나 싶었던 회 접시도상 가운데 떡 자리 잡는다.
볼락, 광어, 개상어회가 소복하게 담긴 회 접시를 보면서, 실비(實費)가 말 그대로 '실제로 드는 비용'을 받는다는 게 정말인지 한 번쯤 따져보고 싶은 생각이 든다.
그게 끝이 아니다. 복어찜, 메기찜, 꽃게찜, 수육 등 술을 부르는 맛깔스러운 안주들이 줄을 잇는다. 찐 새우나 달고 기전, 마른홍합무침은 명함도 못 내밀 반찬이 돼버릴 정도이다. 사천에서만 맛볼 수 있는 '알포'라는 고급쥐포도 멀찍이 밀려나 있다.
그중 주인장의 배려 때문에 눈길을 끄는 접시가 하나 있다. 보통 해물을 주메뉴로 하는 식당에서는 저민 마늘을 쓰기 마련인데, 박씨는 달큰하게 구운 마늘을 손님상에 낸다.
박씨의 손맛에 반해 10년 넘는 단골이라는 정지준(62)씨는 "서울 친구들이 우리나라 어디가도 이런 술상은 못 받는다고 부러워한다"면서 "10년 전과 비교해 상차림이 별로 달라진게 없다. 젊은 시절 삼천포항 일대 포장마차의 기억을 되살려 줘서 자주 찾는다"고 말했다.
실비 한상에 기본으로 딸려 나오는 술은 소주로는 3병, 맥주로는 6병이다. 소주냐, 맥주냐는 선택해야 한다. 추가로 술을 주문하면 그때부터 소주 1병에 1만원, 맥주 1병에 5000원의 술값이 붙는다. 물론 술과 함께 화려한 안주 파티는 계속된다.
황숙경 기자 이윤상 사진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