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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영준 전남도민일보 2010. 9. 9 옥한흠 목사, 기막힌 가족사진
나이를 먹으면 자녀들과 여러 손자 손녀를 안고 찍은 가족사진을 들여다보는 것도 기쁘고 즐거운 일이다. 고인되신 옥한흠 목사님은 그런 사진 한 장 남기지 못했던 것 같다. 하관예배 때 기막힌 가족사진을 찍었다. 옥 목사님이 지난 9월 2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9월 6일 오후 3시. 사랑의교회안성수양관에 조성한 묘지에서 하관예배를 드렸다. 간간이 빗방울이 내리던 남도를 출발해서 장지에 도착했다. 태풍 ‘말로’가 북상하면서 궂은 날씨를 염려했었는데 오후에는 하늘에서 밝은 빛이 내려 비추고 있었다.
내리막 도로 양쪽으로 하얀국화를 손에 든 성도들이 슬픔이 배인 목소리로 ‘하늘가는 밝은길이 내앞에 있으니…’ 찬송하고 옥한흠 목사님의 영구가 운구 되었다. ‘천국에서 만나보자 그날 아침 거기서 순례자여 예비하라 늦어지지 않도록…만나보자 만나보자 그날아침 그 문에서 만나자…’ 찬송에 이어 사랑의교회장로님들이 고인이 즐겨 불렀던 찬송 ‘주예수 보다더 귀한 것은 없네 이세상 부귀와 바꿀수 없네 영죽을 내대신 돌아가신 그놀라운 사랑 잊지못해…’를 찬양했다. 오정현 목사님의 설교, 그리고 축도로 이어졌다.
마지막으로 고인의 차남 옥승훈 씨가 나와 부친의 장례에 함께 해준 조객들과, 한국 교회 그리고 사랑의교회에 감사 인사를 드렸다. 잠시 머뭇거리던 그는 "우리 아버지는 신학공부는 많이 하셨는데 가정에 대해서는 공부를 못하셨습니다. 목사님들께 한 가지 부탁이 있습니다. 신학 책을 열권 읽으시면 가정에 대한 책도 꼭 한 권씩 읽어주십시오...." 목회자로서의 분주했던 생활, 제자훈련에 전력투구하며 한국교회를 위해 시대적인 십자가를 짊어지셨던 목사를 남편과 아버지로 두었던 사모님과 자녀들. 가정중심의 여유가 넉넉하지 못했던 아쉬움과 눈물이 배인 말로 느껴진다.
김영순 사모님이 걸어나와 나와 아들의 손을 잡았지만 한 마디 더 했다. “돌아가신 아버지 관 앞에서 사진을 찍으면 사람들이 우습게 생각 하겠지만…” 울컥하는 목매임에 말이 끊긴다. 그리고 “아버지가 시간이 없었어요. 우리는 가족사진을 찍지 못했습니다.” 어머니가 마이크에 대고 아들을 대신하여 말을 잇는다. “목사님을 매장하기 전에 아버지 관을 모시고 가족사진을 찍고 싶습니다. 양해해주십시오.” 하고는 가로누인 옥 목사님 관 앞에 영정을 세우고 김영순 사모님을 비롯한 세 아들이 나란히 서서 사진을 찍는다. 조객들은 그 모습을 지켜보며 울먹이거나 흐느끼거나 깊음 생각에 잠긴다.
사랑의교회 성도들만 아니라 앞자리에 앉은 목회자들도 많이 슬퍼하고 눈물을 닦고 있었다. 목회자인 우리 가운데도 많은 분들이 교회에 매달려 가족을 소홀히 했던 매정한 남편이고 자상하지 못한 아버지였기 때문이리라. 나도 마찬가지였다. ‘목회자의 아내, 목회자의 아들 딸’ 이기 때문에 목회자가 겪어야 하는 어려움을 가족에게도 강요하듯 마땅히 여겼던 일이 생각나는 것이다. 옥 목사님은 마지막에 ‘나는 한없이 흠이 많은 사람이요. 당신들은 가족을 잘 돌보시오.’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교회 갱신, 말하자면 목회자인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 중심으로 변화되어야 교회가 바로 서고, 교단의 정치가 변화되어야 총회에 속한 전국 교회가 바르게 나아갈 수 있다며 ‘목회자의 자기갱신’을 위해 1996년에 모임을 시작하여 교갱협(교회갱신을 위한 목회자협의회)이 출범했다. 주님의 피로써 세우신 교회의 영광을 위해 하나님의 말씀과 성령의 역사를 의지하여 자기 갱신에 힘쓰는 목회자가 되자는 마음을 함께 한 목회자들 모임이었던 것이다.
“요즘 목회자들은 물량주의에 빠져서 ‘한 사람 비전’을 잃었다. 약해 보이는 여 성도 한 명을 놓고도 하나님이 저를 붙드시면 엄청난 역사가 일어날 것이라고 믿고 기도하는 비전이 없다. 세상적인 기준으로 사람을 보는 것이다. 돈으로, 학력으로 사람을 판단한다. 이러다보니 성령의 역사는 고사하고 교회 안에 고통스러운 분란과 시기만 가득해지는 것이다.” 하셨던 그 분은 제자훈련에 미쳤다.
“옥한흠 목사님! 존경했습니다. 닮고 싶었습니다. 보고 듣고 배운 것을 기억하며 주님의 교회를 섬길 것입니다. 교갱협 일을 함께 하자며 불러주시고 뵈올 때마다 위로하며 격려해주시던 것이 제게는 큰 힘이었고 자랑이었습니다. 목사님과 가까이 할 수 있었던 만남의 날들은 참 좋고 보람스러웠습니다.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불러가셨지만 우리는 목사님을 추억하며 자랑하며 마음을 다지며 목사님이 소망하던 그런 교회를 세우며 섬길 것입니다.”
존경하는 선배 목사님을 안장하는 하관예배에 참석하여 고인을 생각하며 마음을 정리하는 시간이 내게는 진한 깨달음과 감동의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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