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속의 한인(韓人)
미 풀러 졸업식 관계로 처음으로
미국에 가 한인들의
다양한 삶을 간접 경험(經驗)하며
인생의 의미를 되짚어보는 기회를 가졌다.
태평양 바다를 건너간
한인들의 운명이
픽업하러 온 사람의 직업에 따라
결정된다는 말이 있을 정도로,
한 치 앞을 내다볼 수 없는
200만 한인들은 지금 이 순간에도
곳곳에서 한국을 빛내며
꿋꿋하게 살아가고 있었다.
어차피 인생은 광야(廣野)의 삶이지만,
남의 나라 땅에서 산다는 것이
얼마나 힘들겠는가.
아무리 노력해도
소수 민족의 서러움과 백인들의
멸시는 어찌할 수 없는 현실(現實)의 벽이다.
교민 1세들은 영어문화권에 익숙지
못해서 힘들었고,
2세들은 왠 만큼 똑똑하지 않으면
백인 사회에 동화된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웠던가.
교포 3세들은
이젠 정체감 혼란이라는
새로운 적(適) 앞에 또 다른 고민을 하고 있다.
나는 이번에
지인들과 동문들을 만나며
미국에 살면서 풀어야 할 3가지
숙제가 인생살이에서도
그대로 적용(適用)되고 있음을 알았다.
첫째는 시민권(市民權)이다.
부부가 잠을 잘 때
20대는 서로 껴안고 자고,
30대는 마주 보고,
40대는 나란히 누워 자지만,
50대는 등을 돌리고 잔다.
60대가 되면 각기 다른 방에 가서 자고,
70대는 자기 짝이 어디에서
자는지 관심도 없다.
그러다가 80대가 되면
이승과 저승에 갈려 따로 잔다고 한다.
미국에서
시민권을 취득한 자와
그냥 살아가는 사람의 삶은
80대 이승과 저승만큼
크나큰 차이(差異)가 있다고 것이다.
한국에 있을 땐
당연히 한국인이요 거주지 시민이 되지만,
미국에선 영주권이나
시민권(市民權)이라는 말은 상당히
중요한 의미가 있다.
영주권은 미국에서
살 수 있는 단순한 권한임에도
복잡한 서류와 자격(資格) 심사를 하지만,
시민권은 미국 시민이 되는 길이기에
훨씬 더 까다롭다.
먼저 미국에서
5년 이상 거주한 사람으로
지문채취를 하고 시험(試驗)에 통과되면
선서를 하므로 미국 시민이 된다.
절차상으론 별거 아닌 것 같지만
시민권은
신분을 확정해 주는
중요한 제도이기에 그 의미란
우리네 인생에서도 그대로 재연(再演)되고 있다.
미국에 살고 있는
한인(韓人)들의 고달픈 삶은
비행기에서 내릴 때부터 시작되지만,
최소 영주권을 취득할 때까지
계속된다.
그 과정에서 굴욕적인 삶은
예사이며 때론
인생의 목적이 ‘미국에서 사는 것’인가라고
할 정도로 심각한 첫 번째
문턱이 시민권이다.
이 땅에서는 분명
미국(美國)이라는 나라는 살만한 곳이다.
하지만 그 곳이 아무리 좋아도
우린 나그네다.
‘즐거운 곳에서 날 오라 해도
내 쉴 곳은 작은 집 내 집 뿐이라...’는
‘Home Sweet Home’가사 대로
미국시민권을 얻어도
여전히 우리는 나그네이기에
참된 쉼은커녕
외로움만 더해 간다.
타향살이로 살아가는
나그네는 외롭다.
사랑하는 이와 헤어지는 이는 더욱 외롭다.
사람들은 그 외로움을 이기지 못해
무언가에 중독되어 있다.
그 외로움은
미국 시민권을 갖고도 위로가 되지 못한다.
오로지 또 다른 세계의 시민권을
얻기 전(前)까지 계속
될 것이다.
비록 육신은 미국에 있지만
영혼은 하늘을 종착지로 삼고
그 나라의 시민권을 소유(所有)해야만
고달픈 미국의 삶 속에서도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둘째는 정체성(正體性)이다.
시각 장애인으로
미 이민(移民) 100년 역사상
최고위 공직에 오른 강영우 박사,
아시아계 최초 미 워싱턴주 상원의원인 신호범 씨,
최고의 경제 잡지 포춘지가 선정한
기업 중 하나인
네오포인트사를 설립한 손우영 씨,
영어 한마디 못했던 그 녀가
오바마 취임 기념 콘서트 때 대통령 두 딸이
입었던 옷을 만든 이지연 씨,
이들은 노력도 했고
운(運)도 따라주었지만
무엇보다도 스스로 한국인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한 사람들이었다.
대체로 교포1세대들이
성공하는 과정(過程)을 살펴보면,
맨손으로 이민 와 언어장벽에도 불구하고
하루 2,3개의 Job을 가지며
최소 생활비를 제외하곤
전부 저축 하여 사업 자금을 모아
적기에 투자하여
성공한 사람들이었다.
물론 그들 역시도
자아에 대한
정체(正體)성이 분명한 사람들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었다.
하지만 세월이 흘러
3세대를 맞으면서 생각지 않았던
문제가 봉착(逢着)되었다.
그들이 어릴 때 까지는
자신도 아메리칸 인줄 착각하면서 살아오다,
어느 시점부터 한국인도 아니고
미국인도 아니라는
정체성에 대한 혼란이 오면서
방황하기 시작한다.
어느 교포 3세가
학교를 졸업하고 회사에서
면접을 보는데,
한국인인줄 알고 일부터
한국 역사(歷史)에 관한 문제를 내었다.
하지만 그 학생은
역사는커녕 한국말도 제대로 못하자,
면접관은 단호하게 말했다.
‘아니 한국인이면서
모국어도 모르고 자신의 역사도 모른다고?
영혼 없는 당신의 지식은
우리 회사에
아무 도움도 되지 않습니다!’
부모는 밤잠 자지 않고
성공(成功)의 반열에 섰음에도,
어이없게도 자녀들은
한국인이라는 정체성 결여로 인해
혼란과 함께
철저한 불이익을 당하기 시작한다.
어릴 땐 몰랐는데,
커가면서 백인 친구들도 자꾸 멀어 지고
갈수록 주류사회에서 소외되고
이방인 취급을 받게 된다.
정상에 가까울수록
칼끝을 걸어가는 것과 같다는 말을
나이가 들수록
더욱 실감(實感)하게 된다.
높이 올라갈수록
초심과 함께
자신이 어떤 사람인가
바른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고는
모래위에 세운 집처럼
인생은 한 순간에 무너질 수밖에 없기에
한인뿐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적용되는 문제다.
로마는 하루아침에 세워지지 않았듯이
망(亡)하는 일도
하룻밤에 된 일이 아니다.
주변에 여러 사람이
한 순간에 무너지는 것을 보며
생각해 보았다.
물론 분명한
외적인 조건들이 있었지만,
더 정직하게 말한다면
그 모든 일들은 정체성 결여에서
비롯된 일이었다.
정체성이란
그 사람의 영혼(靈魂)이요,
생의 사명이기 때문이다.
셋째는 인생의
목적(目的)에 관한 고민이다.
세계경기가 아무리 어려워도
미국(美國)은 여전히
천국과 지옥이 공존하는 나라다.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은
여전하지만,
그래도 성실하게 일하는
사람에겐 그 곳은
옛날이나 지금이나 기회(機會)의 땅이다.
하지만
시민권을 통해
최소한 삶의 터전을 마련하고,
정체성을 가지므로 삶의
방향성을 제시받아 정상의 자리에
올라앉았다 해도,
생의 목적(目的)을 바로 알지 못한다면
이 모든 것이 또 다시
물거품이 될 수밖에 없다.
보통사람들이 부러워하는 미국에
산다 해도
불확실한 부(富)와
허무한 쾌락(快樂) 그리고
사라져 가는
우정(友情)이 한인들의 존재목적이
될 수는 없다.
김동인 씨 ‘무지개’처럼
소년이 무지개를 종일 쫓아가다가
저녁이 되어서야 그것이
헛된 것임을 알고
무지개 쫓기를 단념(斷念)했지만 순간
폭삭 늙어 버렸다.
안타깝게도 그 소년처럼
미국 내 한인 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나이와 상관없이 진정한 생의 목적을
알지 못한 채,
무지개를 쫓아 헤매며 피곤한 삶을
살아가고 있다.
처음 자리를 잡기까지는
다른 것은 생각할 겨룰도 없이
생존을 위해서 일을 하다가,
형편이 나아지면
정상(頂上)을 향해 매진하는데,
어느 순간부터
외로움을 이기고자
분초를 다투며 살아가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다.
이제 어느 정도
목표를 성취했건만 이상하게도
유리벽 같은 그 곳엔
자기만족은 물론이요 아니
생의 기쁨이나 의미도 사라진지
오래되었다.
안타깝게도 자신도 모르게
넘지 말아야 할 선(腺)을
넘었던 것이다.
미국에서 가장 맛있는 햄버거는
‘IN-N-OUT’체인점이다.
나는 처음에
한국의 Take Out 개념처럼
안에서 먹기도 하고,
밖에서도 먹을 수 있다는 의미로
사용되는 줄 알았는데,
알고 보니 그 단어는 종교적인 중요한
의미(意味)를 갖고 있었다.
내 스스로 그 말을 재해석해보았다.
인생의 in이란
목적을 위한 삶이요,
out는 그 목적을 벗어난 삶이다.
곧 세상과 자신의 욕심에 빠져
생의 기쁨을
상실한 삶은 본래 의미를
떠나서 이미 이 땅에서 out된 인생이다.
그러므로
삶이 아무리 곤고해도
목적(目的)을 벗어나서는 안 된다.
신이 나를 존재케 하는
본래목적 안에
있어야만 참된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
주님,
미국은 어찌 보면
천국 같지만
그 곳이 하늘나라는 될 수 없습니다.
오로지
그 나라의 시민권을 갖고
당신 안에서
자신의 사명을 감당할 때
그 곳은 당신의 나라가 될 것입니다.
저는 또 한 번 깨달았습니다.
당신이 없다면
감수성이 예민한 저는
아마 외로워서
오래 전에 죽었을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당신 안에서 영원토록
거(居)하게 하소서.
2009년 6월 28일 강릉에서 피러한이 보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