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더십 (Leadership)의 중요성을 인지하는 과정에서 최근 유행하는 폴로우십 (Followship) 이라는 단어가 있어 잠깐 설명 드리고자 합니다. 2012년 발간된 바버라 캘러먼 하버드케네디스쿨 교수의 저서 <리더십의 종말>에 자세히 서술된 사항들인데, Leader들에게 충실한 Follower들이 이젠 견제의 대상임과 동시에 리더를 통제하는 오히려 강력한 단체로 발돋음 한 배경을 논했습니다. 이는 최근 SNS가 가장 파괴력 있는 매체로 자리매김 하여 기인된 결과로 가장 빠른 시간 내에, 최대한 많은 follower들에게, 제일 파괴력 있는 결과가 도출되기 때문입니다.
한 예로, 캘러먼 교수는 젊은이들에게 선풍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미국의 의류업체 <아베크롬비 앤드 피치> 회장인 마이크 제프리스의 막말, ”매장에서 뚱뚱한 사람들을 보고 싶지 않다. 마르고 아름다운 사람들만 보고 싶을 뿐이다”라는 발언이 동사에 얼마나 막대한 영향을 끼쳤는지도 이야기 하였습니다. 아직도 이 회사에 대한 불매운동은 계속되고 있고, 경영실적은 날로 악화되고 있습니다.
최근 한국에서도 비슷한 사례를 찾아 볼 수 있는데 영업대리점주의 자살이 발단 되었던 남양유업 사태 이후에 보여준 리더의 대응 (적극적인 사건 해결보다는 개인 주식지분을 매도한 행위), 여자법대생 피살사건 이후 ‘형집행정지 제도’를 악용하여 회사에 큰 여파가 불어 닥친 영남제분 회장의 대응방법이 바로 그런 경우입니다.
골목상권의 중심에 서 있는 중견기업, 대기업에 대한 소비자 (follower)들의 목소리가 점차 커질 수 밖에 없는 현실은 불가피한 실정입니다. 따라서 이제는 기업이 사회적 책무를 다하는 회사로 거듭나지 않으면 안 되는 상황이고, 이에 대한 책임도 아울러 follower 들이 갖고 있는 만큼, <check and balance> 기능 유지를 잘 해야 하며, 너무 편향적으로 악용되는 사례가 없어야 하는 것 역시 결국 follower의 몫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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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의 예문 (회사의 상황)들은 제가 책 내용을 정리했던2004년도 시점에 시계 바늘이 멈춰있습니다. 글을 읽다 보면 다소 시간적 gap이 있을 수 있으니 혼동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 Disney와 IBM 그리고 크라이슬러의 또 다른 교훈 >
u Disney의 시련과 극복
: 월트 디즈니는 종업원에게 기업 이념 전파와 컬트적 문화를 심어주는 데는 매우 철저하고 적극적이었으나, 후계자 양성에는 그다지 노력한 흔적이 없었다. 월트가 사망한 후 1970년대에는 가족 구성원들의 반목 속에 회사는 실패만을 거듭했다. 결국 1984년 이사회는 회사의 회생을 위해 마이클 아이스너와 프랭크 웰스라는 외부 인사를 영입했다. 이사회의 외부인사의 영입 기준은 단 한가지였다. 기업 이념의 연속성을 보존하기 위해 최선을 다 할 수 있는 사람이 바로 판단의 기준이었던 것이다. 아이스너는 영화제작 업계에서 눈부신 업적을 쌓아 왔다는 것과 디즈니의 기업 가치를 이해하고 실제로 불굴의 열정을 보인 점이 높이 평가 되었다. 그의 영입 이후, 디즈니는 애니메이션 영화들의 제 2전성기를 맞이하는 눈부신 성장의 틀을 마련한다. 하지만 최근 아이스너는 다시 화제에 오르고 있다. 지난 해의 실적 부진과 미국 최대 케이블 회사인 컴캐스트로부터 합병 제안을 거부하는가 하면, 최근 화제에 오르고 있는 마이클 무어 감독의 영화 ‘화씨 9/11’를 자회사에서 배급을 하려는 시도를 반대 한 것을 두고 아이스너는 미래를 내다보지 못하는 패배자로 다시 시험대에 올랐다. 하지만 ‘화씨 9/11’의 배급은 정치성을 배타하고 꿈과 희망을 공급하는 디즈니의 이념이 아니므로 결코 패배자가 아님을 확신 한다.
<참고> 화씨 9/11의 구성과 내용은 개인적으론 공감하는 부분이 많이 있고, 미국의 이라크 침공에 대한 전후배경을 매우 날카로운 시선으로 바라본 다큐멘타리 영화다. 좀 더 많은 내용을 얻고자 하면 아래의 주소로 확인하여 읽어 보면 도움이 될 것이다.
http://movie.naver.com/movie/bi/mi/basic.nhn?code=38547
u IBM의 위기와 재기
: 내부에서 양성된 CEO 만을 등용했던 IBM은 1993년 처음으로 스스로를 시험대에 올리는 선택을 하게 된다. 컴퓨터 업계에 전혀 생소한 루이스 거스트너를 새로운 CEO로 영입하였다. 맥킨지에서 컬설턴트로 시작한 그의 사회생활은 아메리칸 익스프레스에서 핵심 경영진을 거쳐, RJR 나비스코의 CEO를 역임했던 인물이다. IBM 사태는 두 가지 측면에서 시사하는 바가 크다. 첫째, 톰 왓슨 2세의 후계자 계승은 무탈 없이 진행되는 듯이 보였다. 하지만 IBM에서 양성된 특별한 엘리트 집단은 스스로가 최고라는 오만한 생각이 결국 1990년 초 위기를 맞는 결정적인 계기가 되었다. 그 누구도 올바른 질문을 하고 싶어하지 않았고, 그 누구도 변화를 주장할 만큼 무도하지도 않았다. 1980년대 그들은 대형 컴퓨터 사업이라는 길로만 전진하였고, 퍼스널 컴퓨터 혁명이 한참 진행 중이었지만, 이러한 변화를 인정하지 않으며 기득권을 갖고 있는 사업에 세상이 따라와 주기만을 바랬다.
마침내 1993년에는 해체의 위기를 맞이 했고, 급기야 외부 인사를 영입하기에 이르렀다. 거스트너는 효율적인 회사 사이즈를 유지하기 위해 40만 명 정도의 직원을 4년에 걸쳐 20만 명으로 줄였으며, 주력사업을 퍼스널 컴퓨터로 급속 전환하였다. 하지만 이 역시 가격 경쟁력의 메리트를 충분히 보유하지 못해 또 한번의 어려움에 봉착하게 되지만 인터넷 매체의 등장에 따른 변화에 적극적이며, 능동적인 대처로 고객과의 관계에 만전을 기한 것이 주효하게 되었다. 현재 IBM은 소프트 웨어와 서비스 분야에서 약 60% 정도의 매출을 구성하고 있다. 이는 거스트너 회장의 이전 커리어에서 나타나듯 소비자와의 관계를 무엇보다도 중요시 했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리더의 잘못된 판단에서 얻어지는 天地차이의 결과이다. 변화에 능동적이지 못했던 IBM의 신화는 멍들었으며 수 십 만 명의 가족들이 회사를 떠나야 하는 고통을 감내를 해야만 했다.
반대로 퍼스널 컴퓨터와 연계된 네트워크가 세상을 지배하리라 명확히 예측한 빌 게이츠는 이와는 정반대의 현실을 향유하고 있다. 결국, 경영은 CEO/Leader들의 판단력과 결단력에 의해 좌지우지 됨을 알 수 있다. 전쟁에서 가장 값진 승리는 희생을 최소화하고 거두는 것이기 때문이다.
u 리 아이아코카의 환희와 오욕
: 포드사에서 잘 나가던 사장이 1978년에 해임되었다. 1960-70년대 미국에서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였던 포드 ‘머스탱’ 모델의 제작, 판매에 참여하여 성공적인 커리어를 구가하여 승승장구하던 리 아이아코카가 바로 그다. 이듬해 그는 대형차와 트럭을 주로 제작하고 있었던 3대 자동차 메이커인 크라이슬러의 CEO로 영입되었다. 2차 오일 쇼크에 의한 차량판매가 급감하여 파산직전에 몰린 회사의 운명을 떠안게 된 것이다. 미 의회는 15억달러에 이르는 자금을 정부가 지급보증해주는 조건으로 크라이슬러를 지원하였으며, 아이아코카는 폭군으로 일컬어질 만큼 종업원들을 거세게 몰아 붙였다. 뼈를 깎는 듯한 구조조정, 새로운 모델 개발과 원가 절감, 직접 광고 출연 등으로 암울했던 위기를 타계하였다.
1981년, 불과 2-3년 만에 크라이슬러는 24억불 이상의 이익을 창출해 냈다. 그는 국제적인 스타로 부각되면서 토크쇼, 자서전 발간을 통해 자신을 상품화하고 영웅화 하는데 애썼으며, 대통령출마를 염두에 둔 발언을 많이 하였다. 국민적 영웅으로서 또 하나의 활동을 하다 보니 회사는 또 한 번의 위기를 맞게 된다. 항공 산업에 매력을 느껴 개인용 제트 여객기 제조 회사인 ‘걸프스트림’을 통째로 인수하기로 마음 먹었으며, 이태리 스포츠카 제조사인 ‘마세라티’와 결국에는 실패한 합작 투자를 하였다. 이태리계 혈통인 그는 이태리에 너무 푹 빠져있어 토스카니 지역에의 대규모 부동산 투자는 물론 와인 양조장을 소유하였다. 재임기간 전반기에 아이아코카는 눈부신 성과를 내며, 파산 직전 상태의 회사를 전체 시장의 평균3배에 가까운 실적을 올리는 기업으로 도약 시켰으나, 재임기간 후반기에는 시장 평균 30여% 뒤떨어진 상태로 미끄러졌다. 방위산업, 전자 우주시스템 사업분야에의 무차별적인 참여에 기인한 결과였다. 회사의 경영을 책임 지고 물러 날 때는 전용 제트기와 스톡옵션을 제공해 달라고 요구했으며, 훗날 유명한 M&A 전문가인 커크 커코리언과 힘을 모아 크라이슬러에 대한 적대적 인수 입찰에 손을 대지만 실패한다. 실로 불명예스러운 퇴장이었다.
1992년 아이아코카와 정반대적인 성격을 지닌 GM 출신인 로버트 이튼 사장이 그의 뒤를 이어 제 2의 전성기를 구가하게 되며, 98년 벤츠 제조사인 다임러사와 합병을 하게 된다. 책에서 저자는 이렇게 규정하고 있다. “폭군 같은 규율 강제자의 지휘하에 눈부시게 성장했다가는, 그 규율 강제자가 오래 지속되는 규율의 문화를 남겨 놓지 못한 채 물러나 버리거나, 규율 강제자 스스로가 규율을 잃고 틀 밖으로 나돌게 되면 똑같이 눈부시게 몰락하고 만다.”는 교훈을 리 아이아코카는 우리에게 일깨워 준다.
첫댓글 폴오우쉽에 대해 잘 배웠습니다. 덕분에 경영학에 문외한인 제가 시야가 넓어지고 있습니다.
누구나 리더와 팔로워의 위치를 동시에 가질 가능성이 큰 만큼 두가지 입장의 균형을 잘 판단하고 행동해야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