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날에는 국가 개념이 빠르게 약화되면서 종래의 편협한 민족주의나 문화의 경계 역시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시공간 응축(time-space compression)’1) 현상은 그동안 닫혀 있던 국지적이고 지방적인 세계와 분파적 문화의 지속적인 교류를 가져왔으며, 여기에서 비롯된 문화다원주의는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차별화 장벽을 넘어 통합적 문화 질서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문학도 예외일 수 없으며, 그 어느 때보다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의 관련성이 비교문학의 관점에서 보다 치밀하게 고려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그 작은 출발점으로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1973)의 작품이 한국문학에 수용돼온 과정과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 그 문제점을 지적함으로써 외국문학 수용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2) 현재 국내에서는 가르시아 마르케스, 보르헤스, 마누엘 푸익, 바르가스 요사부터 알베르토 푸겟, 호르헤 볼피에 이르기까지 라틴아메리카문학에 대한 번역 및 소개 작업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한국문학의 지평을 확대하는 긍정적 계기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제 한국작가들이 라틴아메리카문학의 독창성과 그 영향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시 장르의 경우에는 상황이 크게 다르며, 이는 시가 출판, 독서시장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사실 라틴아메리카에서 시는 루벤 다리오 이후 문학적 모더니티의 문을 연 가장 역동적인 장르로서 문학적 혁신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편향적인 외국문학 수용 속에서 라틴아메리카 시가 거느린 풍요로움이 부당하게 잊혀져 온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선집의 형태로나마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라틴아메리카 시인들은 네루다를 포함해 세사르 바예호, 니카노르 파라, 옥타비오 파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3) 그나마 네루다는 김남주, 정현종, 이성복, 최정례, 신현림, 안도현 등 그의 시를 탐독해온 많은 시인들을 거느린 행복한 경우에 속한다.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모든 언어권을 통틀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고 했던 네루다는 ‘붐’ 작가들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훨씬 전인 1960년대 말에 김수영 시인 등에 의해 처음으로 소개된 이래 지금까지 비교적 폭넓은 독자층을 형성하며 라틴아메리카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의 한사람으로 여겨져 왔다. 그리고 2004년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전 세계적으로 그의 시 세계를 재조명하는 다채로운 행사가 개최되고 조국 칠레에서는 ‘두 개의 집’으로 분열된 국가의 통합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되는 등 그의 삶과 문학이 다시 한번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면서 네루다는 ‘모던 클래식’ 작가의 반열에 들어섰다. 그러나 정작 그의 이름이 한국의 일반 독자들에게 친숙하게 된 것은 작품 자체보다는 문학 외적 경로를 통해서였으며, 대표적인 예로 안토니오 스카르메타(Antonio Sk?rmeta)의 『불타는 인내 Ardiente paciencia』(1985)를4) 원작으로 한 마이클 레드포드(Michael Radford)의 영화 <일포스티노 Il Postino>(1994)를 들 수 있다. 이 영화는 독특한 소재와 작품성에 힘입어 시 강좌의 가장 인기 있는 참조 텍스트가 되기에 이르렀고, 황지우는 이 영화를 모티브로 「일포스티노」라는 제목의 시를 쓰기도 했다. 이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시 La poes?a」는 「이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Puedo escribir los versos m?s tristes esta noche」과 함께 제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5) 또 김용택이 엮은 『시가 내게로 왔다』(마음산책, 2001)에서 ‘섬진강 시인’은 김소월, 이용악, 김수영, 서정주, 고은에서 유하, 장석남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시사를 대표하는 시 48편과 함께 유일한 외국시로 네루다의 「시」를 포함시키고 있다. 이 책의 표제 역시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 날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라고 시작되는 「시」의 구절에서 차용한 것이다.6)
이렇게 보면 네루다는 일견 우리에게 상당히 친숙한 시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다르다. 노벨문학상과 국제스탈린평화상 동시 수상에서 드러나듯, 다양성과 상극성을 본질로 하는 네루다의 시 세계는 그동안 우리의 정치상황과 순수/참여 논쟁, 리얼리즘/모더니즘 논쟁 등 숱한 이념적 논제에 휘둘려온 우리 문학계의 현실과 맞물려 왜곡된 모습으로 받아들여졌다. 여기에 라틴아메리카문학의 주변성과 전문 연구 인력의 절대부족이라는 원천적 한계까지 보태져 지금까지 활발하고 생산적인 연구나 논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7) 더욱 심각한 것은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모두의 노래 Canto general』(1950)나 『지상의 거처 Residencia en la tierra』(1933, 1935)가 아직 완역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까지 우리말로 번역된 네루다 시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 선집의 형태로 소개되었고 시집 전체가 온전히 옮겨진 것은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 Veinte poemas de amor y una canci?n desesperada』(청하, 1992), 『그대 사랑 내 영혼 속에』(한겨레문고, 1993; 원제 Los versos del capit?n) 그리고 『100편의 사랑 소네트 Cien sonetos de amor』(문학동네, 2002)뿐이며, 예외 없이 대중성과 상업성을 고려한 사랑의 시편들이다. 『100편의 사랑 소네트』와 1994년에 소개된 네루다 자서전 『추억 Confieso que he vivido』(녹두)은 영어에서 중역되었다.
2. 1950년대의 네루다 수용: 이태준, 이기영, 한설야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최초로 네루다를 만난 한국작가는 칠레의 시인과 동갑내기 월북 작가인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2004년 6월 ‘상허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문학평론가 김재용이 발표한 「한국 전쟁기의 이태준 - 『위대한 새 중국』을 중심으로」에서 최초로 공개되었다.8) 이태준의 마지막 저서로 추정되는 『위대한 새 중국』에 따르면, 1947년 월북한 상허는 북한 문학예술총연맹 부위원장 자격으로 1951년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건국 2주년 기념 아시아문학좌담회에 참가하여 네루다를 만나게 된다. 각국 대표들의 숙소였던 북경반점(北京飯店)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아시아 작가들뿐만 아니라 네루다와 구소련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일리야 에렌부르크(훗날 네루다의 절친한 벗이자 그의 러시아어 번역자가 된다) 등도 참석했다고 한다.
네루다는 1951년 5월에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이용해 몽골을 거쳐 베이징에 도착한다. 중국에서는 1949년에 이미 네루다의 시집이 발간되었고, 네루다 전기 등 관련 기록에 따르면 1951년에는 불가리아, 헝가리, 아일랜드, 베트남, 터키, 일본, 한국에서 네루다 시집이 출판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 그 정확한 출판 정보를 확인할 길이 없다.9) 이 기록이 맞는다면, 이태준의 『위대한 새 중국』이 씌어진 시점을 전후해 네루다의 시집이 우리말로 번역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나무꾼이여 깨어나라 Que despierte el le?ador」로 파블로 피카소, 폴 로브슨(Paul Robeson)과 함께 1950년 국제스탈린평화상을 수상한 네루다는 당시에 냉전시대를 대표하는 진보적 좌파 지식인이었으며,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조망한 대서사시 『모두의 노래』로 이미 사회주의권에 널리 알려진 저명시인이었다.
네루다에게 큰 관심을 보였던 이태준은 이듬해인 1952년에 발간된 『위대한 새 중국』에서 “미국 자본가들 밑에 피땀을 착취당하고 있는 칠레 광산노동자들 속에서 시를 써왔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벌써 미국이 앞으로 파쇼의 길을 걸을 것을 예견하여 미국 청년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많은 시를 썼으며, 미제와 자기 나라 반동정권의 갖은 박해 속에서 세계평화를 위하여 싸워온 시인의 하나”라고 네루다를 소개한 뒤, “중요 시편들은 중국에서도 번역되었는데, 이 좌담회가 있은 다음 날 네루다는 중국어판 자기 시집 한권에 내 이름을 한문으로 그림 그리듯 써서 보내주었다”라고 적고 있다. 이태준이 아시아문학좌담회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여한 네루다에 크게 주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는 초기의 동양주의적 인식에서 동양/서양의 이분법을 해체하고 나아가 아시아의 특수성을 간직한 국제주의자의 입장으로 바뀌어간 그의 지적 도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이태준의 사유에서 아시아가 동양을 대신하게 되었다는 것은 세계 인식에서 결정적인 전환의 의미를 갖는다. 동양에 갇혀 있을 때는 유럽과 아시아 이외의 지역, 즉 남미나 아프리카 같은 지역은 그의 관심 밖에 있었다. 그러나 세계자본주의의 주변부의 지식인으로서 근대를 극복하려고 하는 사유과정 속에서 국제주의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동양 대신에 아시아를 상정하게 되자 구미 이외의 지역인 남미나 아프리카가 비로소 시야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10)
훗날 네루다는 비델라 대통령을 비난하는 「나는 고발한다 Yo acuso」(1948년 1월)는 제하의 상원연설로 상원의원직을 박탈당하고 체포령이 내려진 상태에서 유럽과 아시아의 사회주의권 국가들을 여행했던 이 시기의 경험을 『포도와 바람 Las uvas y el viento』(1954)에서 기록하고 있다. 이 시집은 작가의 의도가 여과 없이 노출되어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세계사의 결정적인 시기의 기록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1951-53년은 한국, 인도차이나, 중국, 인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세계의 많은 국가들에서 냉전과 반제국주의 투쟁의 결정적인 시기였다. 네루다는 인터뷰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팽창과 관련해 한국전쟁에 대해 몇 차례 관심을 표명한 바 있지만, 이 시집에는 사회주의 중국을 노래한 시만 들어있을 뿐 한국에 대한 언급은 없다.
또 1920-30년대 한국문학사의 한 축이 됐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의 좌장이자 해방 이후 북한문학의 대표작가로 꼽히는 민촌(民村) 이기영은 『月刊中央』이 중국 옌볜에서 입수한 그의 자서전 『태양을 따라』의 원고에서 혁명시인 네루다와의 만남에 대해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언급하고 있다.11) 네루다와의 만남은 그가 ‘조쏘친선협회’ 중앙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1952년 12월 고골리 서거 100주년 기념제전 참가 차 소련을 방문했을 때 이루어졌다고 한다. 당시 이탈리아에 도피 중이던 네루다는 국제평화상 심사위원 자격으로 소련을 방문하고 있었다. 민촌은 “가을의 푸른 하늘빛이라 할가. 이른 얼음 풀린 강물빛이라 할가. 유달리 파란 눈빛이 영채롭게 비타고 콧마루가 날카로운 그는 예리하고 무자비한 시어로 미제의 심장을 찌르는 반제혁명투사이기도 하였다. 그는 이미 반제투사로 혁명시인으로 세계 진보적 작가들 속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91)라고 칠레 시인을 소개하고 있다. 민촌은 당시 네루다와 만난 자리에서, 그가 칠레 대통령과의 교분을 내세우자 자신과 김일성의 관계에 대해 자랑삼아 이야기했다고 회고했다. “파블로 선생! 세계의 이름난 작가들 모두가 자기 나라 수반들과 친교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수령과는 친교관계라기보다 아버지와 자식과의 관계를 맺고 삽니다. 내가 조국을 떠나올 때 우리 수령께서는 먼 길을 떠나는 나의 여행길을 염려하시며 나의 여비까지 손수 관심해 주시었습니다.”(92)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평양을 출발할 때 김일성이 그에게 선물했다는 회중시계를 자랑삼아 내보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에 네루다가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작가다”라고 그를 부러워하면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 뵙고 싶다”(92)라고 말했다고 적고 있다. 이 일화는 자서전의 제목이 암시하듯, 김일성 찬양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이기영, 이태준 외에 한설야도 기행문에서 네루다와의 만남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한설야 역시 경향문학을 대표하는 월북 문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당시에 전 세계적으로 저명한 공산주의 지식인이었던 네루다는 1950년대에 우리의 좌파작가들에게도 적지 않은 관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3. 1960-80년대의 네루다 수용: 김수영과 김남주
네루다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김수영이 일찍이 『創作과 批評』 10호(1968년 여름호)에 「말[馬]들」, 「다문 입으로 파리가 들어온다」, 「都市로 돌아오다」, 「야아, 얼마나 밑이 빠진 토요일이냐!」, 「遊星」, 「고양이의 꿈」 등 여섯 편의 시를 번역해 실으면서였다. 그는 번역시와 함께 당시에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칠레 시인의 간략한 전기를 소개하는 한편, 그렇게 위대한 시인이 그때까지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사르트르의 말도 전하고 있다. 당시에 김수영은 전통적인 탐미주의 시의 나르시시즘과 나태를 비판하며 젊은 작가들에게 역사와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요구하던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의 한사람이었고, 또 번역시가 실린 매체 역시 한국 최초의 계간지로 문학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며 문학장(文學場)의 개혁을 주창한 『創作과 批評』이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김수영이 『인카운터 The Encounter』 지에 실린 영역본에서 우리말로 옮긴 시편들의 면면을 보면 현실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면서도 예술의 사회적 소통 기능을 부차적인 차원으로 밀어내는 모더니즘 미학을 보여주는 것들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라는 김수영의 이른바 ‘온몸시론’의 대담한 전위주의정신, 그리고 시인의 양심과 타락한 현실의 충돌에서 오는 자의식과 비애는 나르시시즘과 열린 광장에 대한 욕망이 교호하는 네루다의 초현실주의 시와 닮은꼴이다. 물론, 김수영은 「詩作 노우트」에서 “국내의 선배시인들한테 사숙한 일도 없고 해외시인 중에서 특별히 영향을 받은 시인도 없다. 시집이고 일반서적이고 읽고 나면 반드시 잊어버리는 습관이 있어서 퍽 편리하다”12)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네루다와 김수영은 각각 스페인내전과 4?19를 전후하여 강렬한 정치의식과 예리한 비판정신을 드러냈으며, 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두 시인은 다같이 개인적 자아에서 사회적 자아로, 고독에서 인간적 연대로, 모더니즘의 실천에서 그 극복으로, 소시민적 허위의식과 자조적 미학에서 그 청산으로 나아갔던 시적 궤적(혹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직간접적인 영향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13)
네루다의 시는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활발하게 소개되었으며, 1970년대에 민족문학론을 개진했던 작가와 비평가들에 의해 서구의 창작방법을 창조적으로 수용해 자기발견에 이른 제3세계 문학(백낙청의 정의에 따르면, “제3세계의 여러 민족에게 안겨진 현단계 인류의 사명에 부응하는 문학”)의 모범적인 사례로 널리 언급되기에 이른다.14) 한편,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였던 김영무는 『月刊中央』 1971년 12월호에 김유준(金由埈)이라는 가명으로 네루다의 대표시 「마추?피추 山頂」(278-288)과 그의 시론(詩論) 「少年 時節과 詩」(275-276), 「‘非純粹詩를 위하여」(276-277)를 번역해 싣는다. 그는 네루다가 노벨상을 수상하기 전인 1970년 일찍이 『시인』(1970년 1월호)에 「오직 죽음뿐 S?lo la muerte」, 「어부 El pescador」를 비롯한 네루다 시 네 편과 「로버트 블라이(Robert Bly)의 「파블로 네루다 론 Refusing to be Theocritus」을 소개하기도 했다.15)
이 무렵에 김수영, 김영무의 번역시와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인 1971년 10월에 출간된 한얼문고의 『네루다 抒情詩集』(1971)을 통해 네루다를 알게 된 작가가 황석영이 『내가 만난 김남주』에서 ‘한반도의 체 게바라’로 불렀던’ 김남주다.16) 김남주는 「사랑과 혁명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라는 글에서 네루다와의 만남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며, 또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을 읽고」에서는 칠레 시인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17) 김남주는 여러 차례 드러내 놓고 하이네와 네루다, 브레히트, 아라공, 마야코프스키 등 외국 시인의 영향을 진하게 받았다고 밝힌 바 있으며,18) “민족해방을 가장 주요한 과제로 삼았던 남미의 문학이 그의 문학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언급했다. 무엇보다 네루다의 시가 보여주는 탁월한 역사인식에 매료되었던 김남주는 1979년 10월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되어 1988년 12월 22일 형 집행정지로 출소하기까지 “싸우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또 자신의 시 정신을 벼르기 위해 복역 중이던 감방에서 네루다의 시를 틈틈이 번역하였으며, 이러한 작업은 훗날 번역 혁명시집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1988)의 출간으로 빛을 본다.19) 이 번역시집에는 하이네, 브레히트의 시와 함께 네루다의 시 32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나의 당에게」, 「나무꾼이여, 깨어나라」 등 정치적 색채가 강한 『제3의 거처 Tercera Residencia』나 『모두의 노래』의 시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또 1995년에 출간된 그의 번역시집 『은박지에 새긴 사랑』에는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에 실렸던 32편 외에, 호치민, 푸슈킨, 오도예프스키, 르이레예프, 가르시아 로르까 등의 시와 함께 초기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에서 마지막의 ‘절망의 노래’를 뺀 ‘스무 편의 사랑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비록 열악한 작업환경과 단기간에 익힌 어설픈 스페인어 실력으로 인해 군데군데 오역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민족시인’의 언어로 승화된 네루다의 숨결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외국문학을 번역함으로써 자기 민족 문제의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고 그 내용을 형식에 결합시키면 뛰어난 민족문학이 될 수 있다”(「노동해방과 문학이라는 무기」)고 기술하고 있는 김남주에게 네루다와의 만남은 그 한 시도이자 뛰어난 성취였다. 시를 인간에 대한 믿음을 관철시키고 불의에 맞서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로(“시는 반란이다”), 그리고 시인을 사회변혁의 주체로 여겼던 네루다의 혁명정신과 투쟁적 리얼리즘은 “공포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캐내는 데 / 가장 좋은 무기”라는 인식으로 항상 “시대의 어둠을 가르는 전령”이고자 했고, 서정시를 쓰기 힘든 궁핍한 시대를 아파했던?시인이여. 입을 열어 피압박 민중의 처참한 삶을 노래하지 않고, 식민지 조국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말하는 시는 무엇이고, 문학이란 무엇인가??저항시인 김남주의 시를 관통하고 있다. 시인 스스로 “제가 시에서 제 나름의 길을 찾게 된 것은 순전히 이들 시인들의 작품을 읽고 번역한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제3세계 민중시인의 상징이던 네루다의 시는 김남주의 문학관과 옥중시 창작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그의 시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구체적인 예로, 나무를 자유와 평등, 투쟁, 민중의 상징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네루다의 「해방자들 Los libertadores」과 김남주의 「전사 2」 사이의 친연성을 들 수 있겠다.20)
해방자들
여기 그 나무가 있다. 폭풍의 나무, 민중의 나무. 나뭇잎이 수액을 타고 오르듯 영웅들은 대지로부터 솟구쳐 오르고. 바람은 무성한 나무숲에 부딪쳐 아우성친다. 빵의 씨앗이 또다시 대지에 떨어질 때까지.
여기 그 나무가 있다. 알몸뚱이 주검을. 매질 당해 상처투성이가 된 주검을 먹고 자란 나무. 창에 찔려 죽고,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도끼에 목이 잘리고, 말에 묶인 채 갈가리 찢기고, 교회의 십자가에 못 박힌, 처참한 몰골의 주검을 먹고 자란 나무. …21)
전사 2
그러나 보아다오 형제여! 피의 양분 없이 자유의 나무는 자라나지 않나니 이 나무를 보아다오 이 나무, 민족의 나무 해방의 나무 민족해방의 투쟁의 나무를 보아다오 이 나무를 키운 것은 이 나무를 이만큼이라도 키워낸 것은 그들이 흘리고 간 피이다 투쟁의 한가운데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전투적으로 죽어간 그들이 흘리고 간 피이다 자기 시대를 열정적으로 파토스로 노래하고 자기 시대와 격정적으로 싸우고 자기 시대와 더불어 사라지는데 기꺼이 동의했던 사람들이다 …22)
신경림이 『은박지에 새긴 사랑』의 「발문」에서 적절하게 지적한 대로, 일견 거칠어 보이는 김남주의 시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생경한 구호시의 차원을 뛰어넘게 하는 고도의 상징이나 알레고리 같은 시적 장치는 그가 탐독했던 네루다나 브레히트의 영향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23) 김남주 자신도 한 편지에서 네루다를 비롯한 외국 시인들의 시작품을 통해 소위 “시법을 배웠으며”, “계급적 관점에서 인간과 사물을 읽어내는” 나름의 길을 찾았음을 고백하고 있다. 한편, 소설가 황석영이 엮은 『옛 마을을 지나며』에 수록된 시편들을 보면 서정시인으로서의 김남주의 면모가 두드러지는데, 네루다 시의 행로가 유년기를 보냈던 테무코와 그곳이 상징하는 순수 자연의 세계로 돌아가는 기나긴 여정이었던 것처럼 김남주의 현실주의적 서정의 중심에도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산마루에 걸린 초승달이 입이 귀밑까지 째지도록 웃고 있는” 그의 고향 해남이 자리 잡고 있다. 순결한 자연과 대지에 대한 사랑을 역사와 인류 보편에 대한 광대한 전망으로 확대시킬 줄 알았던 네루다와 김남주는 둘 다 시와 풍토와 혁명의 동거를 실현한 탁월한 서정성의 시인들이었다. 김남주가 (그리고 정현종이) 네루다와 함께 스페인 남부의 민중적 서정을 탁월하게 형상화한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도 관심을 가지고 번역했다는 사실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24) 김남주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1970-80년대에는 시인의 존재방식에 물음을 던졌던 우리의 시대상황과 맞물려 불가피하게 네루다 시의 이데올로기적 측면과 정치사회적 관심이 부각되었고, 따라서 다양한 얼굴을 지닌 시인의 총체적 이미지가 온전히 조명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앞에서 인용한 「그들의 시를 읽고」에서 노래하고 있듯이, 김남주는 네루다의 시 전체를 관류하는 물질성과 사람냄새를 예리하게 간파하고 있다.
보라 하이네를 보라 마야꼬프스키를 보라 네루다를 보라 브레히트를 보라 아라공을 사랑마저도 그들에게는 물질적이다 전투적이다 유물론적이다 그들은 소네트에서 천사를 노래했으되 유방 없는 천사를 노래하지 않았다 그들은 연애시에서 비너스를 노래했으되 궁둥이 없는 비너스를 노래하지 않았다 그들은 노래했다 꿀맛처럼 달콤한 입술을 술맛처럼 쏘는 입맞춤의 공동묘지를 그들은 노래했다 박꽃처럼 하얀 허벅지를 그 부근에서 은밀하게 장미향을 피워내며 끊임없이 흐르는 갈증의 샘을 나는 자신한다 감히 다른 것은 자신 못해도 밤으로 낮으로 형이상학적으로 이마에 내천자를 그리며 육체의 허무를 탄식하는 도덕군자들도 그들의 시를 읽으면 느끼게 될 것이다 빳빳하게 일어서는 아랫도리의 물질로 나는 자신한다 감히 다른 것은 자신 못해도 플라토닉 러브 어쩌고저쩌고 하는 순수 여류시인들도 그 시를 읽고 감격해 마지않는 신사 숙녀 여러분들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의 시를 읽으면 자기들도 관념이 조작해놓은 위선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축축하게 젖어드는 아랫도리의 물질로 알게 될 것이다.25)
4. 1980년대 말 이후의 네루다 수용: 정현종
김남주와 다른 시각에서 네루다의 시를 받아들인 시인이 칠레 시인의 생명력 넘치는 시를 두고 ‘시의 천지창조’라고 격찬했던 정현종이다.26) 그는 자신이 영역본에서 중역한 네루다 시선집(『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옮긴이 후기에서 마치 “자신이 쓴 것처럼 으스대고 싶기도 하다”라는 말로 네루다와의 친연성을 드러낸다.27) 정현종이 네루다에게서 읽어낸 것은, 그의 시에 대해 김현이 지적했던 것처럼, “시적인 부드러움을 잃지 않고서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고통을 감싸 안는” 변증법적 상상력, 시적 자아의 무한확장을 의미하는 ‘바람의 현상학’이었으리라.28) 정현종은 추상화와 일반화를 거부하는 네루다 시의 물질세계에 대한 천착에 대해 “어김없이 노래하는 사물의 핵심에 이르며, 그리하여 모든 시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으로서의 언어-人工自然을 실현하고 있다”고29) 갈파하였는데, 훗날 인간과 물질세계의 관계로 심화되는 네루다의 이 인공자연은 정현종의 첫 시집 『事物의 꿈』이 보여주고 있는 시적 풍경에 다름 아니다. 이 풍경 속에는 “사물과 생명의 숨과 꿈이 들끓고” 있으며, 그것은 “사물들과의 우주적 교감에 대한 열망이자, 동시에 그것을 억압하는 현실에 대한 예리한 저항의 문맥”을 함유한다.30) 네루다는 앞서 언급했던 「시」의 마지막 연에서 우주와의 에로스적 합주(合奏)를 이렇게 노래한다: “그리고 나, 티끌만한 존재는, / 신비를 닮은, 신비의 / 형상을 한, / 별이 가득 뿌려진 / 거대한 허공에 취해, / 내 자신이 심연의 / 순수한 일부임을 느꼈다. / 나는 별들과 함께 떠돌았고, / 내 가슴은 바람 속에서 멋대로 날뛰었다.”31) 네루다에게서 자아를 무한히 확장시켜 우주의 모든 사물과 한 몸을 이루려는 ‘카니발적’ 욕망을 발견한 정현종은 「여름날」에서 “한가함과 한몸 / 천둥과 한몸 / 비와 한몸 / 뻐꾸기 소리와 한몸으로 / 나도 우주에 넘치이느니”32)라고 노래한다. 물론 정현종은 ‘현실을 초월한 관념론적 이상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사물에게는 고유의 꿈이 있으며, 모든 생명에게 신성한 황홀이 있다”라는 그의 아날로지적 우주관은 사물과 우주에 대한 네루다의 인식과 한줄기다.33) 그래서 그는 “네루다를 읽으면 참 신명 같은 것이 나고 환기의 기분이 든다”라고 했으리라.
사물과 교감함으로써 사물의 속살 속으로 시적 상상력의 촉수를 뻗치는 정현종 특유의 에로스적 상상력과 관련하여 우리는 시적 자아가 일상의 사물과 외부세계의 노래를 전달하는 ‘보이지 않는 사람 el hombre invisible’으로 나타나는 네루다의 『단순한 것들을 기리는 노래 Odas elementales』 시리즈와 정현종의 「여행을 기리는 노래」, 「나무껍질을 기리는 노래」, 「부엌을 기리는 노래」 등 일련의 송가 사이에서 발견되는 시상(詩想)과 시 형식의 유사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34) 네루다가 ‘오드(ode)’의 형식을 통해 엉겅퀴와 포도주, 공기, 양말, 사전처럼 친숙하고 소박한 일상의 사물들을 노래했듯이, 이들 시에서 정현종은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 너무 익숙해 있어 잊어버리기 쉬운 공간을 마치 엄숙한 성단(聖壇)의 위치로 바꾸어놓음으로써, […] 일상의 삶을 되돌아보고 삶의 사소한 부분에서 포착될 수 있는 본질적 의미를 반성하게 만든다.”35) 정현종 시의 이러한 양상은 『지상의 거처』에 실린 ‘세 편의 물질시(Tres cantos materiales)’ 이후 『단순한 것들을 기리는 노래』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네루다가 천착했던 시 세계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네루다의 「내 양말을 기리는 노래 Oda a los calcetines」의 일부와 『세상의 나무들』 맨 앞에 실려 있는 정현종의 「부엌을 기리는 노래」를 비교해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36)
부엌을 기리는 노래
여자들의 군력의 원천인 부엌이여 利他의 샘이여, 사람 살리는 자리 거기이니 밥하는 자리의 공기여 몸을 드높이는 노동 보이는 세계를 위한 聖壇이니 보이지 않는 세계의 향기인들 어찌 생선비린내를 떠나 피어나리요.37)
양말을 기리는 노래
몸부림치는 양말, 나의 발은 두 마리의 양털 생선, 황금빛 끈에 꿰인 두 마리의 기다란 감청색 상어, 두 마리의 덩치 큰 개똥지빠귀, 두 문의 대포였다. 내 두 발은 이 멋진 양말 덕에 이렇게 폼이 났다. …38)
위의 시에서 네루다는 부엌을 사람 살리는 신성한 ‘성단’이자 “보이지 않는 세계의 향기”마저 꿈꿀 수 있는 곳으로, 그리고 부엌일을 몸을 드높이는 거룩한 노동으로 승화시키는 정현종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비유를 통해 목부(牧夫)의 손으로 손수 짠 양털 양말을 일상적인 사물에서 신성한 사물의 위치로 승격시키고 있다.
5. 나가며
최근 들어 한국시인들 사이에서 라틴아메리카 시에 대한 관심의 폭이 점차 넓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한 예로 신현림을 언급할 수 있겠다. 그는 『그리운 너를 안고 달린다』(1998)에 자신이 사랑하는 시 60편을 엮어놓고 있는데 여기에는 네루다뿐만 아니라 보르헤스, 빠스, 빠라 등 여러 편의 라틴아메리카 시가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그에게선 이미 편향적인 외국문학 수용의 징후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시집 『세기말 블루스』(1996)에 실려 있는 「나의 이십대」에서 “마르케스의 밀림을 날아다니고 네루다 김수영 이성복의 지평선에서 사자노을을 보고 하염없이 울었다”고 자신의 25세를 노래하는데, “카프카의 성에서 바슐라르와 촛불을 켜고” 그가 맞은 사람은 “가장 사랑하는 시인” 네루다였다. 신현림은 “솔직한 사람 냄새와 그 어떤 뜨거움”, “펄펄 살아 뛰는 피와 생명”, 그리고 자신을 하염없이 울게 했던 아찔한 외로움과 그것을 넘어서는 희망과 비전을 네루다와 나누고 있다. 이성복도 시집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2003)에서 “달에는 물로 된 돌이 있는가? / 금으로 된 물이 있는가?”라는 네루다의 시 「遊星」의 한 구절을 인용한 뒤 “불 끄고 자리에 누우면 달은 머리맡에 있다. 깊은 밤 하늘 호수에는 물이 없고, 엎드려 자다가 고개 든 아이처럼 달의 이마엔 물결무늬 자국. 노를 저을 수 없는 달은 수심 없는 호수를 미끄러져 가고, 불러 세울 수 없는 달의 배를 탈 것도 아닌데 나는 잠들기가 무섭다…”라고 자신의 단상을 덧붙이고 있다.
네루다는 1971년 노벨상 수상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지리적으로 다른 나라들과 동떨어진 어느 한 나라의 이름 없는 변방에서 왔습니다. 그 동안 저는 시인들 가운데서 가장 소외된 시인이었으며 지역의 한계에 갇힌 저의 시 안에서는 늘 고통의 비가 내렸습니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이 최근에 주변부 문학의 한계를 넘어 세계 현대문학의 중요한 흐름으로 부각되긴 했지만, 라틴아메리카 시가 우리의 땅에서 “황혼녘에나 별이 빛나는 한밤중에 적어도 한 줄의 시의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을 만나”고 우리 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창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불타는 인내심’으로 먼 길을 가야 할 것이다.
네루다는 사랑의 시인, 자연의 시인, 형이상학적 시인, 서사적 시인, 정치적 시인, 소박한 사물들의 시인 등 실로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다양성을 본질로 하는 그의 시 세계는 그동안 이데올로기적 관점에 따라 왜곡된 방식으로 수용되어 왔다. 또 김수영, 김남주, 정현종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번역작업도 많은 경우 그의 시를 애호하는 시인들에 의해 영어에서 중역되었다. 이 시점에서 네루다 문학에 대한 보다 생산적인 논의를 이끌어내고 주체적, 창조적 수용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상의 거처』, 『모두의 노래』, 『단순한 것들을 기리는 노래』를 비롯한 그의 대표작들이 스페인어에서 완역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그래야만 해방이후 오랫동안 정치가 사회의 여러 문화적 욕구를 압도해버리는 상황에서 네루다 시의 일면만이 강조되고 번역시를 중심으로 제한된 논의만이 가능했던 한계가 극복되고 그의 방대한 시 세계를 관류하는 심오한 내적 통합성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각주
1) 미국의 지리학자 하비(David Harvey)가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 The Conditions of Postmodernity』(Oxford: Blackwell, 1989)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시간이 공간의 제약을 축소하거나, 역으로 공간이 시간의 제약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재편되는 과정을 말한다.
2) 개별 국가의 네루다 수용문제를 다룬 선행연구의 몇몇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Karsten Garscha(1987) “Las condiciones de la recepci?n de Pablo Neruda en la Rep?blica Federal de Alemania”, Neruda en/a Sassari, Actas del Simposio Intercontinental Pablo Neruda, A cura di Hern?n Loyola, Sassari: Universit? di Sassari, 1987, 237-246; Bonnie A. Beckett(1981), The Reception of Pablo Neruda's Works in the German Democratic Republic, Berne-Frankfort-Las Vegas: Peter Lang; Yolanda Julia Broyles(1981), The German Response to Latin American Literature and the Reception of Jorge Luis Borges and Pablo Neruda, Heidelberg: Carl Winter; Teresa Longo(2002), Pablo Neruda and the US Culture Industry, New York: Routledge.
3) 중남미 최고 시인의 한사람으로 칭송되는 세사르 바예호(C?sar Vallejo)가 미하일 함부르거(Michael Hamburger)의 『현대시의 변증법 The Truth of Poetry』 한국어 번역본(지식산업사, 1993)에서 ‘세자르 발레요’로 표기되고 있을 만큼 국내에서 중남미 시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다. 국내에 소개된 관련서적 중에서는, 이 책과 함께 영국의 비평가 C. M. 바우라의 『시와 정치 Poetry and Politics』(전예원, 1983)가 네루다의 시 세계를 비교적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4) 이 소설의 제목은 네루다가 노벨상 수상연설에서 인용한 랭보의 시구(“Al'aurore, armes d'une ardente patience, nous entrerons aux splendides Villes”)에서 따온 것이데, 영화 <일 포스티노>가 인기를 끌자 El cartero de Neruda(Plaza & Jan?s, 1995)로 제목을 바꾸어 출간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국내에도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우석균 역, 민음사, 2004),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권미선 역, 사람과 책, 1996)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다.
5) 제7차 교육과정 문학교과서에 수록된 스페인어권 작품은 다음과 같다(괄호 안은 출판사명): 『돈키호테』(디딤, 블랙, 천재, 한교), 『백년 동안의 고독』(한교), 「어떤 날」(교학), 「꿈을 빌려 드립니다」(민중), 「이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천재), 「시」(금성, 디딤, 중앙).
6) 김형영, 문정희 시인이 엮은 『내가 그 나이였을 때 시가 나를 찾아왔다』(여백 미디어, 2001)의 표제 역시 같은 시에서 빌려온 것이며, 천양희 시인이 엮은 세계 명시선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그림 같은 세상, 2002)의 표제도 네루다의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의 첫 번째 사랑의 시에서 차용한 것이다.
7) 그동안 국내에서는 김은중, 김종옥, 권미선, 고혜선, 남영우, 민용태, 신정환, 우석균, 추원훈 등의 스페인어권 문학 전공학자들에 의해 네루다의 시세계와 작품이 소개 및 연구되어 왔으나 세계문학사에서 네루다가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미미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이루어진 네루다 관련 번역 및 연구 목록은 참고문헌 참조)
8) 『연합뉴스』 2004년 6월 10일자 보도(「월북작가 이태준, 파블로 네루다 만났다」) 참조.
9) 칠레대학의 네루다 관련 사이트(http://www.neruda.uchile.cl)의 연보(La vida del poeta. Cronolog?a) 1951년 항목에 따르면, 이 해에 네루다의 시가 한국어로 번역되었다고 되어 있다: “Aparecen sus poes?as en Bulgaria, Tatr?n (Checoslovaquia), Hungr?a, Islandia. Nuevas traducciones al idisch, hebreo, coreano, vietnamita, japon?s, ?rabe, turco, ucranio, uzhbeco, portugu?s, eslovaco, georgiano, armenio.” 이 같은 사실은 Margarita Aguirre(1997), Genio y figura de Pablo Neruda, 27과 Adam Feinstein(2004), Pablo Neruda, 249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0) 문학과사상연구회(2004), 『이태준 문학의 재인식』, 166-168 참조.
11) 「民村 이기영의 자전적 수기 “태양을 따라”」(『月刊中央』 2000년 10월호) 91-92 참조.
12 김수영(1981), 『김수영 전집 2: 산문』, 287.
13)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백낙청이 편집, 해설한 『문학과 행동』(태극출판사, 1974)에는 미국시인 로버트 블라이의 「네루다의 시 세계」(김영무 역)가 김수영의 「시와 행동」과 나란히 실려 있다.
14) 대표적인 예로 『제3세계 문학론』(한벗, 1982)에 실린 구중서의 「제3세계와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들 수 있다.
15) Kim Young-moo(1996), “Pablo Neruda and Today's Korean Poetry”, 96 참조.
16) 김남주는 대학시절의 독서체험을 얘기하면서 김수영의 시와 김수영이 번역한 네루다의 시(특히, 「야아, 얼마나 밑이 빠진 토요일이냐!」)를 달달 외울 수 있었는데, 아마도 “그들의 시의 내용과 정서, 현실에 대한 관심과 지향이 나의 그것과 일치된 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적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김수영 자신 외에 김수영과 네루다의 친연성을 처음으로 자각한 사람은 김남주일 것이다. 김남주, 「암울한 현실을 비춘 시적 충격」, 『불씨 하나가 광야를 태우리라. 金南柱 문학 에세이』, 25-26 참조. 같은 글에서 김남주는 평론가 임중빈 씨가 편역한 『네루다 抒情詩集』에 실린 네루다의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의 시편들과, 특히 “북아메리카 제국주의자들에 의해서 왜곡된 중남미의 정치현실과 그들에 의해서 짓밟힌 민중들의 참담한 삶을 고발한” 「청과조합 La United Fruit Co.」을 기억하고 있다.(36-39)
17) 김남주,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을 읽고」, 『불씨 하나가 광야를 태우리라. 金南柱 문학 에세이』, 142-161.
18) 김남주는 산문 「나는 이렇게 쓴다」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지배계급의 억압과 착취에 시달리며 비인간적인 삶을 강요당하고 있는 근로대중들의 생활과 투쟁을 그린 문학작품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읽어봤다. 이런 작품을 쓴 사람들 중에서 특히 내가 동지적인 애정을 가지고 관심을 기울였던 시인들은 하이네, 브레히트, 아라공, 마야코프스키, 네루다 등이었다. […] 무엇보다도 그들이 나에게 준 위대한 교훈은 인류에게 유익하고 감동적인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작가 자신이 진실된 삶을 살아야 하고, 자기 시대의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착취와 억압에 저항하는 불굴의 전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내가 전사라고 한 것은 꼭 무기를 들고 거리에 나서거나 산에 들어간다는 뜻만은 아니다.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의 형태에 관계없이 전사인 것이다.” 또 김남주는 「그들의 시를 읽고」에서 위에서 언급된 시인들을 관통하는 덕목을 이렇게 노래한다: “희한한 일이다 그들의 시를 읽다 보면 / 어딘가 닮은 데가 있다 많이 있다 / 나무로 말할 것 같으면 그 뿌리가 닮았다고나 할까 / 소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 맛이 닮았다고나 할까 / 빛으로 말할 것 같으면 어둠을 밀어내는 그 모양이 닮았다고나 할까 / […] 그것은 흙이 타고 밤이 타는 냄새와도 같다 / 그것은 노동의 대지가 파괴되는 천둥소리와도 같다 / 그것은 투쟁의 나무가 흘리는 피의 맛과도 같다 / 한마디로 말하자 그들의 시에는 / 인간이 있는 것이다 육체를 가진 인간이 있고 / 인간과 인간 사이를 원수지게 하기도 하고 동지이게 하기도 하는 / 물질이 있는 것이다 그 깊이와 역사가 있는 것이다 / 거기에는 꽃이 있고 이슬이 있고 바람의 숲이 있되 / 인간 없는 자연 따위는 없다 거기에는 / 인간이 있되 계급 없는 인간 일반 따위는 없다 거기에는 / 관념이 조작해낸 천상의 화해도 없다.”(김남주, 『사랑의 무기』, 174)
19) 『김남주 戀書-편지』(1999)에 따르면, 김남주는 1980년 6월 21일자 편지에서 일본어판 『네루다 시집』을 부탁하고(16), 같은 해 10월 27일자 편지 추신에서는 스페인어판 『모두의 노래』를(30), 그리고 82년 11월 9일 추신에서는 『Spanish-English 사전』을(89), 88년 4월 22일자 편지에서는 시인 이종욱을 통해 네루다의 스페인어판 『전집 Obras completas』을 부탁하고 있다(200). 그러나 자신의 스페인어 실력이 초보단계에 머무르고 있다는 시인의 진술을 받아들인다면, 일어판 『네루다 시집』(大島博光 譯, 角川書店)과 스페인어 원서, 영어 번역본을 두루 참조하여 번역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카무라 후쿠지(1999), 「5?18과 김남주」, 440-441 참조.
20) 나카무라 후쿠지는 「파도는 가고」, 「고뇌의 무덤」은 네루다의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에서, 그리고 「학살」과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는 스페인내전을 노래한 네루다의 「그 이유를 말해주지 Explico algunas cosas」와 「죽은 의용병의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노래 Canto a las madres de los milicianos muertos」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주장한다(「5?18과 김남주」, 440-441).
21) Pablo Neruda(1999), Obras completas I, 488. [Aqu? viene el ?rbol, el ?rbol/de la tormenta, el ?rbol del pueblo./De la tierra suben sus h?roes/como las hojas por la savia,/y el viento estrella los follajes/de muchedumbre rumorosa,/hasta que cae la semilla/del pan otra vez a la tierra.//Aqu? viene el ?rbol, el ?rbol/nutrido por muertos desnudos,/muertos azotados y heridos,/muertos de rostros imposibles,/empalados sobre una lanza,/desmenuzados en la hoguera,/decapitados por el hacha,/descuartizados a caballo,/crucificados en la iglesia.]
22) 김남주(1987), 『나의 칼 나의 피』, 70-71.
23) 호치민 외(1995), 『은박지에 새긴 사랑』, 8.
24) 이강의 회고에 의하면, 김남주는 대학생 시절에 그가 카투사에서 보내준 영문서적으로 스페인내란을 알게 되었으며 1970년대 말에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번역 중이던 『스페인내란』 원고를 빼앗겼다(이강, 「함성에서 남민전까지」, 『피여 꽃이여 이름이여. 김남주의 삶과 문학』, 79). 반파시즘 투쟁에 관심이 많았던 김남주에게 파시즘에 희생된 가르시아 로르까의 시 역시 주목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한편, 정현종은 가르시아 로르카 시선집 『강의 백일몽』(민음사, 1994)을 우리말로 옮겼다.
25) 김남주(1989), 『사랑의 무기』, 175-177.
26) 2004년에 정현종 시인은 네루다를 꾸준히 소개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네루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비슬라바 쉼보르스카(폴란드), 나딘 고디머(남아공), 주제 사마라구(포르투갈), 아서 밀러(미국),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페루), 카를로스 푸엔테스(멕시코), 에르네스토 사바토(아르헨티나) 등 전 세계 65개국 100명의 문인들에게 수여된 네루다 기념 메달을 받은 바 있다.
27) 정현종(2000), 「옮긴이 후기」,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156.
28) 김현(1971), 「바람의 현상학」 참조.
29) 정현종, 「人工自然으로서의 시-또 하나의 천지창조」, 앞의 책, 137-143 참조.
30) 이광호(1999), 『정현종 깊이 읽기』, 문학과지성사, xv-xvi 참조.
31) Pablo Neruda(1999), Obras completas II, 1155. [Y yo, m?nimo ser,/ebrio del gran vac?o/constelado,/a semejanza, a imagen/del misterio,/me sent? parte pura/del abismo,/ rod? con las estrellas,/mi coraz?n se desat? en el viento.]
32) 정현종(1995), 『세상의 나무들』, 12.
33) 윤재웅(1998), 『문학비평의 규범과 탈규범』, 199-207 참조.
34) 정현종은 자신이 옮긴 네루다 시선『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에 『단순한 것들을 기리는 노래』 시리즈에 속하는 일곱 편의 시(「내 양말을 기리는 노래」, 「수박을 기리는 노래」, 「소금을 기리는 노래」, 「떨어진 밤을 기리는 노래」, 「책에 부치는 노래 I」, 「探鳥를 기리는 노래」, 「폭풍우를 기리는 노래」)를 포함시키고 있는데 전체 35편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송가(ode)’ 류의 시에 대한 정현종의 선호를 확인할 수 있다.
35) 오생근(1999), 「숨결과 웃음의 시학」, 『정현종 깊이 읽기』, 289.
36) 정현종은 「시적 이미지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제목의 강연(한국문화예술진흥원 강당, 2001년 11월 2일)에서 「부엌을 기리는 노래」를 창작하게 된 동기를 얘기하는 가운데 다음과 같이 네루다의 ‘단순한 것들을 기리는 노래’ 시리즈를 언급하고 있다: “제가 번역을 했는데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백 편이 넘는 작품을 숟가락이나 자잘구레한 것들을 기리는 노래로 썼습니다. 부엌 안에 있는 것도 모든 게 다 우리가 사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의 명상의 수단으로 그걸 통해서 뭔가 생각하는 계기가 됩니다. 모든 게 시를 쓰는 사람한테는 범상하게 보이지를 않습니다. 무얼 봐도 사물의 깊이를 느끼게 됩니다. 시인뿐만 아니라 부엌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도 어떤 문학 작품을 읽음으로써 자기가 만지고 보는 물건들이 다른 깊이를 가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기 때문에 글을 직접 쓰지는 않더라도 읽는 것도 좋습니다.” http://www.kcaf.or.kr/lecture/munhak/ 2001/ junghyunjung_2.htm
37) 정현종(1995), 『세상의 나무들』, 11.
38) PabloNeruda(1999),ObrascompletasII,283.[Violentoscalcetines,/mispies fueron/dos pescados/de lana,/dos largos tiburones/de azul ultramarino/atravesados/por una trenza de oro,/dos gigantescos mirlos,/dos ca?ones:/mis pies/fueron honrados/de este modo/por/estos/celestiales/calcetines.]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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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에는 국가 개념이 빠르게 약화되면서 종래의 편협한 민족주의나 문화의 경계 역시 사라지고 있다. 이러한 ‘시공간 응축(time-space compression)’1) 현상은 그동안 닫혀 있던 국지적이고 지방적인 세계와 분파적 문화의 지속적인 교류를 가져왔으며, 여기에서 비롯된 문화다원주의는 서로 다른 문화 사이의 차별화 장벽을 넘어 통합적 문화 질서로 나아가고 있다. 이러한 세계화의 흐름 속에서 문학도 예외일 수 없으며, 그 어느 때보다 한국문학과 세계문학의 관련성이 비교문학의 관점에서 보다 치밀하게 고려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본 연구는 그 작은 출발점으로 파블로 네루다(Pablo Neruda, 1904-1973)의 작품이 한국문학에 수용돼온 과정과 양상을 구체적으로 살펴 그 문제점을 지적함으로써 외국문학 수용의 올바른 방향을 모색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2) 현재 국내에서는 가르시아 마르케스, 보르헤스, 마누엘 푸익, 바르가스 요사부터 알베르토 푸겟, 호르헤 볼피에 이르기까지 라틴아메리카문학에 대한 번역 및 소개 작업이 그 어느 때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이러한 작업은 한국문학의 지평을 확대하는 긍정적 계기로 작용하고 있으며, 이제 한국작가들이 라틴아메리카문학의 독창성과 그 영향에 대해 언급하는 것은 더 이상 낯선 일이 아니다. 그러나 시 장르의 경우에는 상황이 크게 다르며, 이는 시가 출판, 독서시장에서 외면당하고 있는 현실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사실 라틴아메리카에서 시는 루벤 다리오 이후 문학적 모더니티의 문을 연 가장 역동적인 장르로서 문학적 혁신의 중심에 있었다. 그러나 우리의 편향적인 외국문학 수용 속에서 라틴아메리카 시가 거느린 풍요로움이 부당하게 잊혀져 온 것이 현실이다. 실제로 선집의 형태로나마 우리나라에 번역 소개된 라틴아메리카 시인들은 네루다를 포함해 세사르 바예호, 니카노르 파라, 옥타비오 파스,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3) 그나마 네루다는 김남주, 정현종, 이성복, 최정례, 신현림, 안도현 등 그의 시를 탐독해온 많은 시인들을 거느린 행복한 경우에 속한다.
가르시아 마르케스가 “모든 언어권을 통틀어 20세기의 가장 위대한 시인”이라고 했던 네루다는 ‘붐’ 작가들이 국내에 본격적으로 알려지기 훨씬 전인 1960년대 말에 김수영 시인 등에 의해 처음으로 소개된 이래 지금까지 비교적 폭넓은 독자층을 형성하며 라틴아메리카문학을 대표하는 시인의 한사람으로 여겨져 왔다. 그리고 2004년 탄생 100주년을 맞아 전 세계적으로 그의 시 세계를 재조명하는 다채로운 행사가 개최되고 조국 칠레에서는 ‘두 개의 집’으로 분열된 국가의 통합의 상징으로 자리매김 되는 등 그의 삶과 문학이 다시 한번 집중적인 조명을 받으면서 네루다는 ‘모던 클래식’ 작가의 반열에 들어섰다. 그러나 정작 그의 이름이 한국의 일반 독자들에게 친숙하게 된 것은 작품 자체보다는 문학 외적 경로를 통해서였으며, 대표적인 예로 안토니오 스카르메타(Antonio Sk?rmeta)의 『불타는 인내 Ardiente paciencia』(1985)를4) 원작으로 한 마이클 레드포드(Michael Radford)의 영화 <일포스티노 Il Postino>(1994)를 들 수 있다. 이 영화는 독특한 소재와 작품성에 힘입어 시 강좌의 가장 인기 있는 참조 텍스트가 되기에 이르렀고, 황지우는 이 영화를 모티브로 「일포스티노」라는 제목의 시를 쓰기도 했다. 이 영화의 마지막을 장식하는 「시 La poes?a」는 「이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 Puedo escribir los versos m?s tristes esta noche」과 함께 제7차 교육과정 고등학교 문학교과서에 수록되어 있다.5) 또 김용택이 엮은 『시가 내게로 왔다』(마음산책, 2001)에서 ‘섬진강 시인’은 김소월, 이용악, 김수영, 서정주, 고은에서 유하, 장석남에 이르기까지 한국 근현대시사를 대표하는 시 48편과 함께 유일한 외국시로 네루다의 「시」를 포함시키고 있다. 이 책의 표제 역시 “그러니까 그 나이였어… 시가 / 날 찾아왔어. 몰라, 그게 어디서 왔는지, / 모르겠어, 겨울에서인지 강에서인지”라고 시작되는 「시」의 구절에서 차용한 것이다.6)
이렇게 보면 네루다는 일견 우리에게 상당히 친숙한 시인으로 보인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사정은 다르다. 노벨문학상과 국제스탈린평화상 동시 수상에서 드러나듯, 다양성과 상극성을 본질로 하는 네루다의 시 세계는 그동안 우리의 정치상황과 순수/참여 논쟁, 리얼리즘/모더니즘 논쟁 등 숱한 이념적 논제에 휘둘려온 우리 문학계의 현실과 맞물려 왜곡된 모습으로 받아들여졌다. 여기에 라틴아메리카문학의 주변성과 전문 연구 인력의 절대부족이라는 원천적 한계까지 보태져 지금까지 활발하고 생산적인 연구나 논의가 거의 이루어지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7) 더욱 심각한 것은 그의 대표작으로 평가받는 『모두의 노래 Canto general』(1950)나 『지상의 거처 Residencia en la tierra』(1933, 1935)가 아직 완역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현재까지 우리말로 번역된 네루다 시의 면면을 살펴보면, 대부분 선집의 형태로 소개되었고 시집 전체가 온전히 옮겨진 것은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 Veinte poemas de amor y una canci?n desesperada』(청하, 1992), 『그대 사랑 내 영혼 속에』(한겨레문고, 1993; 원제 Los versos del capit?n) 그리고 『100편의 사랑 소네트 Cien sonetos de amor』(문학동네, 2002)뿐이며, 예외 없이 대중성과 상업성을 고려한 사랑의 시편들이다. 『100편의 사랑 소네트』와 1994년에 소개된 네루다 자서전 『추억 Confieso que he vivido』(녹두)은 영어에서 중역되었다.
2. 1950년대의 네루다 수용: 이태준, 이기영, 한설야
지금까지 알려진 바에 따르면, 최초로 네루다를 만난 한국작가는 칠레의 시인과 동갑내기 월북 작가인 상허(尙虛) 이태준(李泰俊)이었다. 이러한 사실은 2004년 6월 ‘상허 탄생 100주년 기념 학술대회’에서 문학평론가 김재용이 발표한 「한국 전쟁기의 이태준 - 『위대한 새 중국』을 중심으로」에서 최초로 공개되었다.8) 이태준의 마지막 저서로 추정되는 『위대한 새 중국』에 따르면, 1947년 월북한 상허는 북한 문학예술총연맹 부위원장 자격으로 1951년 10월 중국 베이징에서 열린 건국 2주년 기념 아시아문학좌담회에 참가하여 네루다를 만나게 된다. 각국 대표들의 숙소였던 북경반점(北京飯店)에서 열린 좌담회에는 아시아 작가들뿐만 아니라 네루다와 구소련 작가이자 저널리스트인 일리야 에렌부르크(훗날 네루다의 절친한 벗이자 그의 러시아어 번역자가 된다) 등도 참석했다고 한다.
네루다는 1951년 5월에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이용해 몽골을 거쳐 베이징에 도착한다. 중국에서는 1949년에 이미 네루다의 시집이 발간되었고, 네루다 전기 등 관련 기록에 따르면 1951년에는 불가리아, 헝가리, 아일랜드, 베트남, 터키, 일본, 한국에서 네루다 시집이 출판되었다고 하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아직까지 그 정확한 출판 정보를 확인할 길이 없다.9) 이 기록이 맞는다면, 이태준의 『위대한 새 중국』이 씌어진 시점을 전후해 네루다의 시집이 우리말로 번역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나무꾼이여 깨어나라 Que despierte el le?ador」로 파블로 피카소, 폴 로브슨(Paul Robeson)과 함께 1950년 국제스탈린평화상을 수상한 네루다는 당시에 냉전시대를 대표하는 진보적 좌파 지식인이었으며, 마르크스주의적 관점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역사를 조망한 대서사시 『모두의 노래』로 이미 사회주의권에 널리 알려진 저명시인이었다.
네루다에게 큰 관심을 보였던 이태준은 이듬해인 1952년에 발간된 『위대한 새 중국』에서 “미국 자본가들 밑에 피땀을 착취당하고 있는 칠레 광산노동자들 속에서 시를 써왔고, 제2차 세계대전 당시에 벌써 미국이 앞으로 파쇼의 길을 걸을 것을 예견하여 미국 청년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많은 시를 썼으며, 미제와 자기 나라 반동정권의 갖은 박해 속에서 세계평화를 위하여 싸워온 시인의 하나”라고 네루다를 소개한 뒤, “중요 시편들은 중국에서도 번역되었는데, 이 좌담회가 있은 다음 날 네루다는 중국어판 자기 시집 한권에 내 이름을 한문으로 그림 그리듯 써서 보내주었다”라고 적고 있다. 이태준이 아시아문학좌담회에 옵서버 자격으로 참여한 네루다에 크게 주목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 이는 초기의 동양주의적 인식에서 동양/서양의 이분법을 해체하고 나아가 아시아의 특수성을 간직한 국제주의자의 입장으로 바뀌어간 그의 지적 도정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을 것이다. 이태준의 사유에서 아시아가 동양을 대신하게 되었다는 것은 세계 인식에서 결정적인 전환의 의미를 갖는다. 동양에 갇혀 있을 때는 유럽과 아시아 이외의 지역, 즉 남미나 아프리카 같은 지역은 그의 관심 밖에 있었다. 그러나 세계자본주의의 주변부의 지식인으로서 근대를 극복하려고 하는 사유과정 속에서 국제주의의 유토피아를 꿈꾸며 동양 대신에 아시아를 상정하게 되자 구미 이외의 지역인 남미나 아프리카가 비로소 시야에 들어오게 된 것이다.10)
훗날 네루다는 비델라 대통령을 비난하는 「나는 고발한다 Yo acuso」(1948년 1월)는 제하의 상원연설로 상원의원직을 박탈당하고 체포령이 내려진 상태에서 유럽과 아시아의 사회주의권 국가들을 여행했던 이 시기의 경험을 『포도와 바람 Las uvas y el viento』(1954)에서 기록하고 있다. 이 시집은 작가의 의도가 여과 없이 노출되어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평가가 지배적이지만 세계사의 결정적인 시기의 기록이라는 의미를 지닌다. 1951-53년은 한국, 인도차이나, 중국, 인도, 독일, 프랑스, 이탈리아 등 세계의 많은 국가들에서 냉전과 반제국주의 투쟁의 결정적인 시기였다. 네루다는 인터뷰에서 미국의 제국주의적 팽창과 관련해 한국전쟁에 대해 몇 차례 관심을 표명한 바 있지만, 이 시집에는 사회주의 중국을 노래한 시만 들어있을 뿐 한국에 대한 언급은 없다.
또 1920-30년대 한국문학사의 한 축이 됐던 조선프롤레타리아예술가동맹(KAPF)의 좌장이자 해방 이후 북한문학의 대표작가로 꼽히는 민촌(民村) 이기영은 『月刊中央』이 중국 옌볜에서 입수한 그의 자서전 『태양을 따라』의 원고에서 혁명시인 네루다와의 만남에 대해 상당한 지면을 할애해 언급하고 있다.11) 네루다와의 만남은 그가 ‘조쏘친선협회’ 중앙위원회 위원장 자격으로 1952년 12월 고골리 서거 100주년 기념제전 참가 차 소련을 방문했을 때 이루어졌다고 한다. 당시 이탈리아에 도피 중이던 네루다는 국제평화상 심사위원 자격으로 소련을 방문하고 있었다. 민촌은 “가을의 푸른 하늘빛이라 할가. 이른 얼음 풀린 강물빛이라 할가. 유달리 파란 눈빛이 영채롭게 비타고 콧마루가 날카로운 그는 예리하고 무자비한 시어로 미제의 심장을 찌르는 반제혁명투사이기도 하였다. 그는 이미 반제투사로 혁명시인으로 세계 진보적 작가들 속에 널리 알려진 사람이다”(91)라고 칠레 시인을 소개하고 있다. 민촌은 당시 네루다와 만난 자리에서, 그가 칠레 대통령과의 교분을 내세우자 자신과 김일성의 관계에 대해 자랑삼아 이야기했다고 회고했다. “파블로 선생! 세계의 이름난 작가들 모두가 자기 나라 수반들과 친교가 있습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수령과는 친교관계라기보다 아버지와 자식과의 관계를 맺고 삽니다. 내가 조국을 떠나올 때 우리 수령께서는 먼 길을 떠나는 나의 여행길을 염려하시며 나의 여비까지 손수 관심해 주시었습니다.”(92)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자신이 평양을 출발할 때 김일성이 그에게 선물했다는 회중시계를 자랑삼아 내보이기까지 했다고 한다. 이에 네루다가 “당신은 이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작가다”라고 그를 부러워하면서 “김일성 주석을 만나 뵙고 싶다”(92)라고 말했다고 적고 있다. 이 일화는 자서전의 제목이 암시하듯, 김일성 찬양의 맥락에서 이해할 수 있겠다. 이기영, 이태준 외에 한설야도 기행문에서 네루다와의 만남을 소중하게 기억하고 있는데, 한설야 역시 경향문학을 대표하는 월북 문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당시에 전 세계적으로 저명한 공산주의 지식인이었던 네루다는 1950년대에 우리의 좌파작가들에게도 적지 않은 관심의 대상이었던 것이다.
3. 1960-80년대의 네루다 수용: 김수영과 김남주
네루다가 우리나라에 본격적으로 알려진 것은 김수영이 일찍이 『創作과 批評』 10호(1968년 여름호)에 「말[馬]들」, 「다문 입으로 파리가 들어온다」, 「都市로 돌아오다」, 「야아, 얼마나 밑이 빠진 토요일이냐!」, 「遊星」, 「고양이의 꿈」 등 여섯 편의 시를 번역해 실으면서였다. 그는 번역시와 함께 당시에 한국에 거의 알려지지 않았던 칠레 시인의 간략한 전기를 소개하는 한편, 그렇게 위대한 시인이 그때까지 노벨상을 받지 못했다는 것은 이해할 수 없다는 사르트르의 말도 전하고 있다. 당시에 김수영은 전통적인 탐미주의 시의 나르시시즘과 나태를 비판하며 젊은 작가들에게 역사와 현실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요구하던 가장 영향력 있는 시인의 한사람이었고, 또 번역시가 실린 매체 역시 한국 최초의 계간지로 문학의 사회적 책무를 강조하며 문학장(文學場)의 개혁을 주창한 『創作과 批評』이었다는 사실은 주목할 만하다.
김수영이 『인카운터 The Encounter』 지에 실린 영역본에서 우리말로 옮긴 시편들의 면면을 보면 현실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면서도 예술의 사회적 소통 기능을 부차적인 차원으로 밀어내는 모더니즘 미학을 보여주는 것들이 대다수였다. 그러나 시작(詩作)은 ‘머리’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시는 온몸으로, 바로 온몸을 밀고 나가는 것”이라는 김수영의 이른바 ‘온몸시론’의 대담한 전위주의정신, 그리고 시인의 양심과 타락한 현실의 충돌에서 오는 자의식과 비애는 나르시시즘과 열린 광장에 대한 욕망이 교호하는 네루다의 초현실주의 시와 닮은꼴이다. 물론, 김수영은 「詩作 노우트」에서 “국내의 선배시인들한테 사숙한 일도 없고 해외시인 중에서 특별히 영향을 받은 시인도 없다. 시집이고 일반서적이고 읽고 나면 반드시 잊어버리는 습관이 있어서 퍽 편리하다”12)라고 밝히고 있다. 그러나 네루다와 김수영은 각각 스페인내전과 4?19를 전후하여 강렬한 정치의식과 예리한 비판정신을 드러냈으며, 또 정도의 차이는 있지만 두 시인은 다같이 개인적 자아에서 사회적 자아로, 고독에서 인간적 연대로, 모더니즘의 실천에서 그 극복으로, 소시민적 허위의식과 자조적 미학에서 그 청산으로 나아갔던 시적 궤적(혹은 그 가능성)을 보여주었다는 점에서 직간접적인 영향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다.13)
네루다의 시는 1971년 노벨문학상 수상을 계기로 활발하게 소개되었으며, 1970년대에 민족문학론을 개진했던 작가와 비평가들에 의해 서구의 창작방법을 창조적으로 수용해 자기발견에 이른 제3세계 문학(백낙청의 정의에 따르면, “제3세계의 여러 민족에게 안겨진 현단계 인류의 사명에 부응하는 문학”)의 모범적인 사례로 널리 언급되기에 이른다.14) 한편, 시인이자 문학평론가였던 김영무는 『月刊中央』 1971년 12월호에 김유준(金由埈)이라는 가명으로 네루다의 대표시 「마추?피추 山頂」(278-288)과 그의 시론(詩論) 「少年 時節과 詩」(275-276), 「‘非純粹詩를 위하여」(276-277)를 번역해 싣는다. 그는 네루다가 노벨상을 수상하기 전인 1970년 일찍이 『시인』(1970년 1월호)에 「오직 죽음뿐 S?lo la muerte」, 「어부 El pescador」를 비롯한 네루다 시 네 편과 「로버트 블라이(Robert Bly)의 「파블로 네루다 론 Refusing to be Theocritus」을 소개하기도 했다.15)
이 무렵에 김수영, 김영무의 번역시와 노벨문학상 수상 직후인 1971년 10월에 출간된 한얼문고의 『네루다 抒情詩集』(1971)을 통해 네루다를 알게 된 작가가 황석영이 『내가 만난 김남주』에서 ‘한반도의 체 게바라’로 불렀던’ 김남주다.16) 김남주는 「사랑과 혁명의 시인 파블로 네루다」라는 글에서 네루다와의 만남에 대해 얘기하고 있으며, 또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을 읽고」에서는 칠레 시인의 생애와 작품세계를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다.17) 김남주는 여러 차례 드러내 놓고 하이네와 네루다, 브레히트, 아라공, 마야코프스키 등 외국 시인의 영향을 진하게 받았다고 밝힌 바 있으며,18) “민족해방을 가장 주요한 과제로 삼았던 남미의 문학이 그의 문학관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쳤다”고 언급했다. 무엇보다 네루다의 시가 보여주는 탁월한 역사인식에 매료되었던 김남주는 1979년 10월 ‘남민전’ 사건으로 투옥되어 1988년 12월 22일 형 집행정지로 출소하기까지 “싸우는 사람들이 일상적으로 보아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또 자신의 시 정신을 벼르기 위해 복역 중이던 감방에서 네루다의 시를 틈틈이 번역하였으며, 이러한 작업은 훗날 번역 혁명시집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1988)의 출간으로 빛을 본다.19) 이 번역시집에는 하이네, 브레히트의 시와 함께 네루다의 시 32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나의 당에게」, 「나무꾼이여, 깨어나라」 등 정치적 색채가 강한 『제3의 거처 Tercera Residencia』나 『모두의 노래』의 시들이 다수를 이루고 있다. 또 1995년에 출간된 그의 번역시집 『은박지에 새긴 사랑』에는 『아침저녁으로 읽기 위하여』에 실렸던 32편 외에, 호치민, 푸슈킨, 오도예프스키, 르이레예프, 가르시아 로르까 등의 시와 함께 초기 시집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에서 마지막의 ‘절망의 노래’를 뺀 ‘스무 편의 사랑의 시’가 수록되어 있다. 비록 열악한 작업환경과 단기간에 익힌 어설픈 스페인어 실력으로 인해 군데군데 오역이 눈에 띄기는 하지만 ‘민족시인’의 언어로 승화된 네루다의 숨결을 오롯이 느낄 수 있다.
“외국문학을 번역함으로써 자기 민족 문제의 내용을 보다 구체적으로 알고 그 내용을 형식에 결합시키면 뛰어난 민족문학이 될 수 있다”(「노동해방과 문학이라는 무기」)고 기술하고 있는 김남주에게 네루다와의 만남은 그 한 시도이자 뛰어난 성취였다. 시를 인간에 대한 믿음을 관철시키고 불의에 맞서기 위한 가장 강력한 무기로(“시는 반란이다”), 그리고 시인을 사회변혁의 주체로 여겼던 네루다의 혁명정신과 투쟁적 리얼리즘은 “공포야말로 인간의 본성을 캐내는 데 / 가장 좋은 무기”라는 인식으로 항상 “시대의 어둠을 가르는 전령”이고자 했고, 서정시를 쓰기 힘든 궁핍한 시대를 아파했던?시인이여. 입을 열어 피압박 민중의 처참한 삶을 노래하지 않고, 식민지 조국의 고통을 함께 아파하지 않는다면 당신이 말하는 시는 무엇이고, 문학이란 무엇인가??저항시인 김남주의 시를 관통하고 있다. 시인 스스로 “제가 시에서 제 나름의 길을 찾게 된 것은 순전히 이들 시인들의 작품을 읽고 번역한 덕분이 아닌가 싶습니다”라고 밝히고 있듯이, 제3세계 민중시인의 상징이던 네루다의 시는 김남주의 문학관과 옥중시 창작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그의 시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었음이 분명하다. 구체적인 예로, 나무를 자유와 평등, 투쟁, 민중의 상징으로 형상화하고 있는 네루다의 「해방자들 Los libertadores」과 김남주의 「전사 2」 사이의 친연성을 들 수 있겠다.20)
해방자들
여기 그 나무가 있다. 폭풍의 나무, 민중의 나무. 나뭇잎이 수액을 타고 오르듯 영웅들은 대지로부터 솟구쳐 오르고. 바람은 무성한 나무숲에 부딪쳐 아우성친다. 빵의 씨앗이 또다시 대지에 떨어질 때까지.
여기 그 나무가 있다. 알몸뚱이 주검을. 매질 당해 상처투성이가 된 주검을 먹고 자란 나무. 창에 찔려 죽고,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산산이 부서지고, 도끼에 목이 잘리고, 말에 묶인 채 갈가리 찢기고, 교회의 십자가에 못 박힌, 처참한 몰골의 주검을 먹고 자란 나무. …21)
전사 2
그러나 보아다오 형제여! 피의 양분 없이 자유의 나무는 자라나지 않나니 이 나무를 보아다오 이 나무, 민족의 나무 해방의 나무 민족해방의 투쟁의 나무를 보아다오 이 나무를 키운 것은 이 나무를 이만큼이라도 키워낸 것은 그들이 흘리고 간 피이다 투쟁의 한가운데서 가장 결정적인 순간에 가장 전투적으로 죽어간 그들이 흘리고 간 피이다 자기 시대를 열정적으로 파토스로 노래하고 자기 시대와 격정적으로 싸우고 자기 시대와 더불어 사라지는데 기꺼이 동의했던 사람들이다 …22)
신경림이 『은박지에 새긴 사랑』의 「발문」에서 적절하게 지적한 대로, 일견 거칠어 보이는 김남주의 시에 생명력을 불어넣고 생경한 구호시의 차원을 뛰어넘게 하는 고도의 상징이나 알레고리 같은 시적 장치는 그가 탐독했던 네루다나 브레히트의 영향으로 해석할 여지가 충분하다.23) 김남주 자신도 한 편지에서 네루다를 비롯한 외국 시인들의 시작품을 통해 소위 “시법을 배웠으며”, “계급적 관점에서 인간과 사물을 읽어내는” 나름의 길을 찾았음을 고백하고 있다. 한편, 소설가 황석영이 엮은 『옛 마을을 지나며』에 수록된 시편들을 보면 서정시인으로서의 김남주의 면모가 두드러지는데, 네루다 시의 행로가 유년기를 보냈던 테무코와 그곳이 상징하는 순수 자연의 세계로 돌아가는 기나긴 여정이었던 것처럼 김남주의 현실주의적 서정의 중심에도 정치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산마루에 걸린 초승달이 입이 귀밑까지 째지도록 웃고 있는” 그의 고향 해남이 자리 잡고 있다. 순결한 자연과 대지에 대한 사랑을 역사와 인류 보편에 대한 광대한 전망으로 확대시킬 줄 알았던 네루다와 김남주는 둘 다 시와 풍토와 혁명의 동거를 실현한 탁월한 서정성의 시인들이었다. 김남주가 (그리고 정현종이) 네루다와 함께 스페인 남부의 민중적 서정을 탁월하게 형상화한 가르시아 로르카의 시도 관심을 가지고 번역했다는 사실은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24) 김남주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1970-80년대에는 시인의 존재방식에 물음을 던졌던 우리의 시대상황과 맞물려 불가피하게 네루다 시의 이데올로기적 측면과 정치사회적 관심이 부각되었고, 따라서 다양한 얼굴을 지닌 시인의 총체적 이미지가 온전히 조명되지 못하는 결과를 낳았다. 물론 앞에서 인용한 「그들의 시를 읽고」에서 노래하고 있듯이, 김남주는 네루다의 시 전체를 관류하는 물질성과 사람냄새를 예리하게 간파하고 있다.
보라 하이네를 보라 마야꼬프스키를 보라 네루다를 보라 브레히트를 보라 아라공을 사랑마저도 그들에게는 물질적이다 전투적이다 유물론적이다 그들은 소네트에서 천사를 노래했으되 유방 없는 천사를 노래하지 않았다 그들은 연애시에서 비너스를 노래했으되 궁둥이 없는 비너스를 노래하지 않았다 그들은 노래했다 꿀맛처럼 달콤한 입술을 술맛처럼 쏘는 입맞춤의 공동묘지를 그들은 노래했다 박꽃처럼 하얀 허벅지를 그 부근에서 은밀하게 장미향을 피워내며 끊임없이 흐르는 갈증의 샘을 나는 자신한다 감히 다른 것은 자신 못해도 밤으로 낮으로 형이상학적으로 이마에 내천자를 그리며 육체의 허무를 탄식하는 도덕군자들도 그들의 시를 읽으면 느끼게 될 것이다 빳빳하게 일어서는 아랫도리의 물질로 나는 자신한다 감히 다른 것은 자신 못해도 플라토닉 러브 어쩌고저쩌고 하는 순수 여류시인들도 그 시를 읽고 감격해 마지않는 신사 숙녀 여러분들도 알게 될 것이다 그들의 시를 읽으면 자기들도 관념이 조작해놓은 위선의 인간이 아니라는 것을 축축하게 젖어드는 아랫도리의 물질로 알게 될 것이다.25)
4. 1980년대 말 이후의 네루다 수용: 정현종
김남주와 다른 시각에서 네루다의 시를 받아들인 시인이 칠레 시인의 생명력 넘치는 시를 두고 ‘시의 천지창조’라고 격찬했던 정현종이다.26) 그는 자신이 영역본에서 중역한 네루다 시선집(『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옮긴이 후기에서 마치 “자신이 쓴 것처럼 으스대고 싶기도 하다”라는 말로 네루다와의 친연성을 드러낸다.27) 정현종이 네루다에게서 읽어낸 것은, 그의 시에 대해 김현이 지적했던 것처럼, “시적인 부드러움을 잃지 않고서 그를 둘러싼 사람들의 고통을 감싸 안는” 변증법적 상상력, 시적 자아의 무한확장을 의미하는 ‘바람의 현상학’이었으리라.28) 정현종은 추상화와 일반화를 거부하는 네루다 시의 물질세계에 대한 천착에 대해 “어김없이 노래하는 사물의 핵심에 이르며, 그리하여 모든 시의 꿈이라고 할 수 있는 자연으로서의 언어-人工自然을 실현하고 있다”고29) 갈파하였는데, 훗날 인간과 물질세계의 관계로 심화되는 네루다의 이 인공자연은 정현종의 첫 시집 『事物의 꿈』이 보여주고 있는 시적 풍경에 다름 아니다. 이 풍경 속에는 “사물과 생명의 숨과 꿈이 들끓고” 있으며, 그것은 “사물들과의 우주적 교감에 대한 열망이자, 동시에 그것을 억압하는 현실에 대한 예리한 저항의 문맥”을 함유한다.30) 네루다는 앞서 언급했던 「시」의 마지막 연에서 우주와의 에로스적 합주(合奏)를 이렇게 노래한다: “그리고 나, 티끌만한 존재는, / 신비를 닮은, 신비의 / 형상을 한, / 별이 가득 뿌려진 / 거대한 허공에 취해, / 내 자신이 심연의 / 순수한 일부임을 느꼈다. / 나는 별들과 함께 떠돌았고, / 내 가슴은 바람 속에서 멋대로 날뛰었다.”31) 네루다에게서 자아를 무한히 확장시켜 우주의 모든 사물과 한 몸을 이루려는 ‘카니발적’ 욕망을 발견한 정현종은 「여름날」에서 “한가함과 한몸 / 천둥과 한몸 / 비와 한몸 / 뻐꾸기 소리와 한몸으로 / 나도 우주에 넘치이느니”32)라고 노래한다. 물론 정현종은 ‘현실을 초월한 관념론적 이상주의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지만, “사물에게는 고유의 꿈이 있으며, 모든 생명에게 신성한 황홀이 있다”라는 그의 아날로지적 우주관은 사물과 우주에 대한 네루다의 인식과 한줄기다.33) 그래서 그는 “네루다를 읽으면 참 신명 같은 것이 나고 환기의 기분이 든다”라고 했으리라.
사물과 교감함으로써 사물의 속살 속으로 시적 상상력의 촉수를 뻗치는 정현종 특유의 에로스적 상상력과 관련하여 우리는 시적 자아가 일상의 사물과 외부세계의 노래를 전달하는 ‘보이지 않는 사람 el hombre invisible’으로 나타나는 네루다의 『단순한 것들을 기리는 노래 Odas elementales』 시리즈와 정현종의 「여행을 기리는 노래」, 「나무껍질을 기리는 노래」, 「부엌을 기리는 노래」 등 일련의 송가 사이에서 발견되는 시상(詩想)과 시 형식의 유사성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34) 네루다가 ‘오드(ode)’의 형식을 통해 엉겅퀴와 포도주, 공기, 양말, 사전처럼 친숙하고 소박한 일상의 사물들을 노래했듯이, 이들 시에서 정현종은 “우리가 일상생활 속에 너무 익숙해 있어 잊어버리기 쉬운 공간을 마치 엄숙한 성단(聖壇)의 위치로 바꾸어놓음으로써, […] 일상의 삶을 되돌아보고 삶의 사소한 부분에서 포착될 수 있는 본질적 의미를 반성하게 만든다.”35) 정현종 시의 이러한 양상은 『지상의 거처』에 실린 ‘세 편의 물질시(Tres cantos materiales)’ 이후 『단순한 것들을 기리는 노래』 시리즈에 이르기까지 네루다가 천착했던 시 세계의 본질과 맞닿아 있다. 이를 확인하기 위해서는 네루다의 「내 양말을 기리는 노래 Oda a los calcetines」의 일부와 『세상의 나무들』 맨 앞에 실려 있는 정현종의 「부엌을 기리는 노래」를 비교해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36)
부엌을 기리는 노래
여자들의 군력의 원천인 부엌이여 利他의 샘이여, 사람 살리는 자리 거기이니 밥하는 자리의 공기여 몸을 드높이는 노동 보이는 세계를 위한 聖壇이니 보이지 않는 세계의 향기인들 어찌 생선비린내를 떠나 피어나리요.37)
양말을 기리는 노래
몸부림치는 양말, 나의 발은 두 마리의 양털 생선, 황금빛 끈에 꿰인 두 마리의 기다란 감청색 상어, 두 마리의 덩치 큰 개똥지빠귀, 두 문의 대포였다. 내 두 발은 이 멋진 양말 덕에 이렇게 폼이 났다. …38)
위의 시에서 네루다는 부엌을 사람 살리는 신성한 ‘성단’이자 “보이지 않는 세계의 향기”마저 꿈꿀 수 있는 곳으로, 그리고 부엌일을 몸을 드높이는 거룩한 노동으로 승화시키는 정현종과 마찬가지로 아름다운 비유를 통해 목부(牧夫)의 손으로 손수 짠 양털 양말을 일상적인 사물에서 신성한 사물의 위치로 승격시키고 있다.
5. 나가며
최근 들어 한국시인들 사이에서 라틴아메리카 시에 대한 관심의 폭이 점차 넓어지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는데, 한 예로 신현림을 언급할 수 있겠다. 그는 『그리운 너를 안고 달린다』(1998)에 자신이 사랑하는 시 60편을 엮어놓고 있는데 여기에는 네루다뿐만 아니라 보르헤스, 빠스, 빠라 등 여러 편의 라틴아메리카 시가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그에게선 이미 편향적인 외국문학 수용의 징후를 찾아보기 어렵다. 그는 시집 『세기말 블루스』(1996)에 실려 있는 「나의 이십대」에서 “마르케스의 밀림을 날아다니고 네루다 김수영 이성복의 지평선에서 사자노을을 보고 하염없이 울었다”고 자신의 25세를 노래하는데, “카프카의 성에서 바슐라르와 촛불을 켜고” 그가 맞은 사람은 “가장 사랑하는 시인” 네루다였다. 신현림은 “솔직한 사람 냄새와 그 어떤 뜨거움”, “펄펄 살아 뛰는 피와 생명”, 그리고 자신을 하염없이 울게 했던 아찔한 외로움과 그것을 넘어서는 희망과 비전을 네루다와 나누고 있다. 이성복도 시집 『달의 이마에는 물결무늬 자국』(2003)에서 “달에는 물로 된 돌이 있는가? / 금으로 된 물이 있는가?”라는 네루다의 시 「遊星」의 한 구절을 인용한 뒤 “불 끄고 자리에 누우면 달은 머리맡에 있다. 깊은 밤 하늘 호수에는 물이 없고, 엎드려 자다가 고개 든 아이처럼 달의 이마엔 물결무늬 자국. 노를 저을 수 없는 달은 수심 없는 호수를 미끄러져 가고, 불러 세울 수 없는 달의 배를 탈 것도 아닌데 나는 잠들기가 무섭다…”라고 자신의 단상을 덧붙이고 있다.
네루다는 1971년 노벨상 수상연설에서 이렇게 말했다: “저는 지리적으로 다른 나라들과 동떨어진 어느 한 나라의 이름 없는 변방에서 왔습니다. 그 동안 저는 시인들 가운데서 가장 소외된 시인이었으며 지역의 한계에 갇힌 저의 시 안에서는 늘 고통의 비가 내렸습니다.” 라틴아메리카 문학이 최근에 주변부 문학의 한계를 넘어 세계 현대문학의 중요한 흐름으로 부각되긴 했지만, 라틴아메리카 시가 우리의 땅에서 “황혼녘에나 별이 빛나는 한밤중에 적어도 한 줄의 시의 필요를 느끼는 사람들을 만나”고 우리 시의 새로운 가능성을 여는 창이 되기 위해서는 아직도 ‘불타는 인내심’으로 먼 길을 가야 할 것이다.
네루다는 사랑의 시인, 자연의 시인, 형이상학적 시인, 서사적 시인, 정치적 시인, 소박한 사물들의 시인 등 실로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그러나 지금까지 살펴본 것처럼, 다양성을 본질로 하는 그의 시 세계는 그동안 이데올로기적 관점에 따라 왜곡된 방식으로 수용되어 왔다. 또 김수영, 김남주, 정현종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번역작업도 많은 경우 그의 시를 애호하는 시인들에 의해 영어에서 중역되었다. 이 시점에서 네루다 문학에 대한 보다 생산적인 논의를 이끌어내고 주체적, 창조적 수용을 이루기 위해서는 『지상의 거처』, 『모두의 노래』, 『단순한 것들을 기리는 노래』를 비롯한 그의 대표작들이 스페인어에서 완역되는 것이 무엇보다 시급하다. 그래야만 해방이후 오랫동안 정치가 사회의 여러 문화적 욕구를 압도해버리는 상황에서 네루다 시의 일면만이 강조되고 번역시를 중심으로 제한된 논의만이 가능했던 한계가 극복되고 그의 방대한 시 세계를 관류하는 심오한 내적 통합성에 다다를 수 있을 것이다.●
각주
1) 미국의 지리학자 하비(David Harvey)가 『포스트모더니티의 조건 The Conditions of Postmodernity』(Oxford: Blackwell, 1989)에서 처음 사용한 용어로, 시간이 공간의 제약을 축소하거나, 역으로 공간이 시간의 제약을 축소하는 방식으로 재편되는 과정을 말한다.
2) 개별 국가의 네루다 수용문제를 다룬 선행연구의 몇몇 예를 들면 다음과 같다. Karsten Garscha(1987) “Las condiciones de la recepci?n de Pablo Neruda en la Rep?blica Federal de Alemania”, Neruda en/a Sassari, Actas del Simposio Intercontinental Pablo Neruda, A cura di Hern?n Loyola, Sassari: Universit? di Sassari, 1987, 237-246; Bonnie A. Beckett(1981), The Reception of Pablo Neruda's Works in the German Democratic Republic, Berne-Frankfort-Las Vegas: Peter Lang; Yolanda Julia Broyles(1981), The German Response to Latin American Literature and the Reception of Jorge Luis Borges and Pablo Neruda, Heidelberg: Carl Winter; Teresa Longo(2002), Pablo Neruda and the US Culture Industry, New York: Routledge.
3) 중남미 최고 시인의 한사람으로 칭송되는 세사르 바예호(C?sar Vallejo)가 미하일 함부르거(Michael Hamburger)의 『현대시의 변증법 The Truth of Poetry』 한국어 번역본(지식산업사, 1993)에서 ‘세자르 발레요’로 표기되고 있을 만큼 국내에서 중남미 시에 대한 인식은 매우 낮다. 국내에 소개된 관련서적 중에서는, 이 책과 함께 영국의 비평가 C. M. 바우라의 『시와 정치 Poetry and Politics』(전예원, 1983)가 네루다의 시 세계를 비교적 비중 있게 다루고 있다.
4) 이 소설의 제목은 네루다가 노벨상 수상연설에서 인용한 랭보의 시구(“Al'aurore, armes d'une ardente patience, nous entrerons aux splendides Villes”)에서 따온 것이데, 영화 <일 포스티노>가 인기를 끌자 El cartero de Neruda(Plaza & Jan?s, 1995)로 제목을 바꾸어 출간되어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 국내에도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우석균 역, 민음사, 2004), 『파블로 네루다와 우편배달부』(권미선 역, 사람과 책, 1996)라는 제목으로 소개되어 있다.
5) 제7차 교육과정 문학교과서에 수록된 스페인어권 작품은 다음과 같다(괄호 안은 출판사명): 『돈키호테』(디딤, 블랙, 천재, 한교), 『백년 동안의 고독』(한교), 「어떤 날」(교학), 「꿈을 빌려 드립니다」(민중), 「이 밤 나는 가장 슬픈 시를」(천재), 「시」(금성, 디딤, 중앙).
6) 김형영, 문정희 시인이 엮은 『내가 그 나이였을 때 시가 나를 찾아왔다』(여백 미디어, 2001)의 표제 역시 같은 시에서 빌려온 것이며, 천양희 시인이 엮은 세계 명시선 『나는 터널처럼 외로웠다』(그림 같은 세상, 2002)의 표제도 네루다의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의 첫 번째 사랑의 시에서 차용한 것이다.
7) 그동안 국내에서는 김은중, 김종옥, 권미선, 고혜선, 남영우, 민용태, 신정환, 우석균, 추원훈 등의 스페인어권 문학 전공학자들에 의해 네루다의 시세계와 작품이 소개 및 연구되어 왔으나 세계문학사에서 네루다가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미미한 수준이라 할 수 있다. (지금까지 국내에서 이루어진 네루다 관련 번역 및 연구 목록은 참고문헌 참조)
8) 『연합뉴스』 2004년 6월 10일자 보도(「월북작가 이태준, 파블로 네루다 만났다」) 참조.
9) 칠레대학의 네루다 관련 사이트(http://www.neruda.uchile.cl)의 연보(La vida del poeta. Cronolog?a) 1951년 항목에 따르면, 이 해에 네루다의 시가 한국어로 번역되었다고 되어 있다: “Aparecen sus poes?as en Bulgaria, Tatr?n (Checoslovaquia), Hungr?a, Islandia. Nuevas traducciones al idisch, hebreo, coreano, vietnamita, japon?s, ?rabe, turco, ucranio, uzhbeco, portugu?s, eslovaco, georgiano, armenio.” 이 같은 사실은 Margarita Aguirre(1997), Genio y figura de Pablo Neruda, 27과 Adam Feinstein(2004), Pablo Neruda, 249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10) 문학과사상연구회(2004), 『이태준 문학의 재인식』, 166-168 참조.
11) 「民村 이기영의 자전적 수기 “태양을 따라”」(『月刊中央』 2000년 10월호) 91-92 참조.
12 김수영(1981), 『김수영 전집 2: 산문』, 287.
13) 우연의 일치이겠지만, 백낙청이 편집, 해설한 『문학과 행동』(태극출판사, 1974)에는 미국시인 로버트 블라이의 「네루다의 시 세계」(김영무 역)가 김수영의 「시와 행동」과 나란히 실려 있다.
14) 대표적인 예로 『제3세계 문학론』(한벗, 1982)에 실린 구중서의 「제3세계와 라틴아메리카 문학」을 들 수 있다.
15) Kim Young-moo(1996), “Pablo Neruda and Today's Korean Poetry”, 96 참조.
16) 김남주는 대학시절의 독서체험을 얘기하면서 김수영의 시와 김수영이 번역한 네루다의 시(특히, 「야아, 얼마나 밑이 빠진 토요일이냐!」)를 달달 외울 수 있었는데, 아마도 “그들의 시의 내용과 정서, 현실에 대한 관심과 지향이 나의 그것과 일치된 데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라고 적고 있다. 이렇게 본다면 김수영 자신 외에 김수영과 네루다의 친연성을 처음으로 자각한 사람은 김남주일 것이다. 김남주, 「암울한 현실을 비춘 시적 충격」, 『불씨 하나가 광야를 태우리라. 金南柱 문학 에세이』, 25-26 참조. 같은 글에서 김남주는 평론가 임중빈 씨가 편역한 『네루다 抒情詩集』에 실린 네루다의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편의 절망의 노래』의 시편들과, 특히 “북아메리카 제국주의자들에 의해서 왜곡된 중남미의 정치현실과 그들에 의해서 짓밟힌 민중들의 참담한 삶을 고발한” 「청과조합 La United Fruit Co.」을 기억하고 있다.(36-39)
17) 김남주, 「파블로 네루다의 시집을 읽고」, 『불씨 하나가 광야를 태우리라. 金南柱 문학 에세이』, 142-161.
18) 김남주는 산문 「나는 이렇게 쓴다」에서 이렇게 적고 있다: “나는 지배계급의 억압과 착취에 시달리며 비인간적인 삶을 강요당하고 있는 근로대중들의 생활과 투쟁을 그린 문학작품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읽어봤다. 이런 작품을 쓴 사람들 중에서 특히 내가 동지적인 애정을 가지고 관심을 기울였던 시인들은 하이네, 브레히트, 아라공, 마야코프스키, 네루다 등이었다. […] 무엇보다도 그들이 나에게 준 위대한 교훈은 인류에게 유익하고 감동적인 작품을 쓰기 위해서는 작가 자신이 진실된 삶을 살아야 하고, 자기 시대의 중대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있어서 착취와 억압에 저항하는 불굴의 전사가 되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여기서 내가 전사라고 한 것은 꼭 무기를 들고 거리에 나서거나 산에 들어간다는 뜻만은 아니다. 싸우는 사람은 그 싸움의 형태에 관계없이 전사인 것이다.” 또 김남주는 「그들의 시를 읽고」에서 위에서 언급된 시인들을 관통하는 덕목을 이렇게 노래한다: “희한한 일이다 그들의 시를 읽다 보면 / 어딘가 닮은 데가 있다 많이 있다 / 나무로 말할 것 같으면 그 뿌리가 닮았다고나 할까 / 소금으로 말할 것 같으면 그 맛이 닮았다고나 할까 / 빛으로 말할 것 같으면 어둠을 밀어내는 그 모양이 닮았다고나 할까 / […] 그것은 흙이 타고 밤이 타는 냄새와도 같다 / 그것은 노동의 대지가 파괴되는 천둥소리와도 같다 / 그것은 투쟁의 나무가 흘리는 피의 맛과도 같다 / 한마디로 말하자 그들의 시에는 / 인간이 있는 것이다 육체를 가진 인간이 있고 / 인간과 인간 사이를 원수지게 하기도 하고 동지이게 하기도 하는 / 물질이 있는 것이다 그 깊이와 역사가 있는 것이다 / 거기에는 꽃이 있고 이슬이 있고 바람의 숲이 있되 / 인간 없는 자연 따위는 없다 거기에는 / 인간이 있되 계급 없는 인간 일반 따위는 없다 거기에는 / 관념이 조작해낸 천상의 화해도 없다.”(김남주, 『사랑의 무기』, 174)
19) 『김남주 戀書-편지』(1999)에 따르면, 김남주는 1980년 6월 21일자 편지에서 일본어판 『네루다 시집』을 부탁하고(16), 같은 해 10월 27일자 편지 추신에서는 스페인어판 『모두의 노래』를(30), 그리고 82년 11월 9일 추신에서는 『Spanish-English 사전』을(89), 88년 4월 22일자 편지에서는 시인 이종욱을 통해 네루다의 스페인어판 『전집 Obras completas』을 부탁하고 있다(200). 그러나 자신의 스페인어 실력이 초보단계에 머무르고 있다는 시인의 진술을 받아들인다면, 일어판 『네루다 시집』(大島博光 譯, 角川書店)과 스페인어 원서, 영어 번역본을 두루 참조하여 번역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나카무라 후쿠지(1999), 「5?18과 김남주」, 440-441 참조.
20) 나카무라 후쿠지는 「파도는 가고」, 「고뇌의 무덤」은 네루다의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에서, 그리고 「학살」과 「바람에 지는 풀잎으로 오월을 노래하지 말아라」는 스페인내전을 노래한 네루다의 「그 이유를 말해주지 Explico algunas cosas」와 「죽은 의용병의 어머니들에게 바치는 노래 Canto a las madres de los milicianos muertos」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주장한다(「5?18과 김남주」, 440-441).
21) Pablo Neruda(1999), Obras completas I, 488. [Aqu? viene el ?rbol, el ?rbol/de la tormenta, el ?rbol del pueblo./De la tierra suben sus h?roes/como las hojas por la savia,/y el viento estrella los follajes/de muchedumbre rumorosa,/hasta que cae la semilla/del pan otra vez a la tierra.//Aqu? viene el ?rbol, el ?rbol/nutrido por muertos desnudos,/muertos azotados y heridos,/muertos de rostros imposibles,/empalados sobre una lanza,/desmenuzados en la hoguera,/decapitados por el hacha,/descuartizados a caballo,/crucificados en la iglesia.]
22) 김남주(1987), 『나의 칼 나의 피』, 70-71.
23) 호치민 외(1995), 『은박지에 새긴 사랑』, 8.
24) 이강의 회고에 의하면, 김남주는 대학생 시절에 그가 카투사에서 보내준 영문서적으로 스페인내란을 알게 되었으며 1970년대 말에 중앙정보부 요원들에게 번역 중이던 『스페인내란』 원고를 빼앗겼다(이강, 「함성에서 남민전까지」, 『피여 꽃이여 이름이여. 김남주의 삶과 문학』, 79). 반파시즘 투쟁에 관심이 많았던 김남주에게 파시즘에 희생된 가르시아 로르까의 시 역시 주목의 대상이었을 것이다. 한편, 정현종은 가르시아 로르카 시선집 『강의 백일몽』(민음사, 1994)을 우리말로 옮겼다.
25) 김남주(1989), 『사랑의 무기』, 175-177.
26) 2004년에 정현종 시인은 네루다를 꾸준히 소개해온 공로를 인정받아 네루다 탄생 100주년을 기념해 비슬라바 쉼보르스카(폴란드), 나딘 고디머(남아공), 주제 사마라구(포르투갈), 아서 밀러(미국), 마리오 바르가스 요사(페루), 카를로스 푸엔테스(멕시코), 에르네스토 사바토(아르헨티나) 등 전 세계 65개국 100명의 문인들에게 수여된 네루다 기념 메달을 받은 바 있다.
27) 정현종(2000), 「옮긴이 후기」, 『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 156.
28) 김현(1971), 「바람의 현상학」 참조.
29) 정현종, 「人工自然으로서의 시-또 하나의 천지창조」, 앞의 책, 137-143 참조.
30) 이광호(1999), 『정현종 깊이 읽기』, 문학과지성사, xv-xvi 참조.
31) Pablo Neruda(1999), Obras completas II, 1155. [Y yo, m?nimo ser,/ebrio del gran vac?o/constelado,/a semejanza, a imagen/del misterio,/me sent? parte pura/del abismo,/ rod? con las estrellas,/mi coraz?n se desat? en el viento.]
32) 정현종(1995), 『세상의 나무들』, 12.
33) 윤재웅(1998), 『문학비평의 규범과 탈규범』, 199-207 참조.
34) 정현종은 자신이 옮긴 네루다 시선『스무 편의 사랑의 시와 한 편의 절망의 노래』에 『단순한 것들을 기리는 노래』 시리즈에 속하는 일곱 편의 시(「내 양말을 기리는 노래」, 「수박을 기리는 노래」, 「소금을 기리는 노래」, 「떨어진 밤을 기리는 노래」, 「책에 부치는 노래 I」, 「探鳥를 기리는 노래」, 「폭풍우를 기리는 노래」)를 포함시키고 있는데 전체 35편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고려할 때 ‘송가(ode)’ 류의 시에 대한 정현종의 선호를 확인할 수 있다.
35) 오생근(1999), 「숨결과 웃음의 시학」, 『정현종 깊이 읽기』, 289.
36) 정현종은 「시적 이미지는 어디에 있는가」라는 제목의 강연(한국문화예술진흥원 강당, 2001년 11월 2일)에서 「부엌을 기리는 노래」를 창작하게 된 동기를 얘기하는 가운데 다음과 같이 네루다의 ‘단순한 것들을 기리는 노래’ 시리즈를 언급하고 있다: “제가 번역을 했는데 시인 파블로 네루다는 백 편이 넘는 작품을 숟가락이나 자잘구레한 것들을 기리는 노래로 썼습니다. 부엌 안에 있는 것도 모든 게 다 우리가 사용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또한 우리의 명상의 수단으로 그걸 통해서 뭔가 생각하는 계기가 됩니다. 모든 게 시를 쓰는 사람한테는 범상하게 보이지를 않습니다. 무얼 봐도 사물의 깊이를 느끼게 됩니다. 시인뿐만 아니라 부엌에서 일을 하는 사람들도 어떤 문학 작품을 읽음으로써 자기가 만지고 보는 물건들이 다른 깊이를 가지고 있는 것을 느낄 수가 있기 때문에 글을 직접 쓰지는 않더라도 읽는 것도 좋습니다.” http://www.kcaf.or.kr/lecture/munhak/ 2001/ junghyunjung_2.htm
37) 정현종(1995), 『세상의 나무들』, 11.
38) PabloNeruda(1999),ObrascompletasII,283.[Violentoscalcetines,/mispies fueron/dos pescados/de lana,/dos largos tiburones/de azul ultramarino/atravesados/por una trenza de oro,/dos gigantescos mirlos,/dos ca?ones:/mis pies/fueron honrados/de este modo/por/estos/celestiales/calcetin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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