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녀들 선행학습은 시대착오" 서울대 교수가 권한 공부법
선행학습은 시대착오적입니다. 4차산업 혁명 시대 인재로 키우고 싶다면 심화학습 하게 하십시오.
지난 7일 만난 서울대 재료공학부 황농문 교수는 “새로운 시대에 맞는 학습법이 무엇이냐”는 질문에 이렇게 답했다. 지식을 넣는 게 아니라 내 생각을 끄집어내는 게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필요한 능력인데, 어려운 문제를 풀어야 생각하는 힘이 길러진다는 것이다. 그가 심화학습을 강조한 건 그래서다.
황농문 교수는 몰입 전문가로 유명하다. 그가 연구 과정에서 습득하고 활용한 몰입법을 담은 책 『몰입』은 100쇄를 찍을 정도로 인기다. 그는 “몰입은 생각하는 힘”이라며 “몰입이야말로 가장 높은 수준의 학습자를 길러내는 학습법”이라고 강조했다.
황농문 서울대학교 재료공학부 교수는 "생각을 하는 힘이 중요한 시대"라면서 "선행학습이 아니라 심화학습을 해야 생각하는 힘이 길러진다"고 말했다. 우상조 기자
◇ ‘work hard’에서 ‘think hard’로, 패러다임이 바뀌었다
왜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심화학습을 해야 하나요?
답이 없는 문제를 풀어야 하니까요. 지금까지 우리는 답이 있는 문제를 풀었습니다. 이미 어떤 문제를 풀어서 시장을 지배하고 이끄는 기업이나 국가가 있었고, 우리는 그들을 빠르게 따라가면 됐어요. 소위 패스트팔로잉(fast-following) 전략이 먹혔죠. 이때 필요한 건 주어진 일을 열심히 하는 겁니다. 노동자들은 ‘워크 하드(work hard)’ 전략을 썼어요. 하지만 이제 더는 그렇지 않습니다.
’퍼스트 무버(first mover)’가 되어야 한다고 하죠. 더는 따라갈 기업도, 국가도 없으니까요.
그럴 때 노동자들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워크 하드 전략이 여전히 유효할까요?
여전히 열심히 해야 할 것 같긴 한데, 뭘 열심히 해야 하죠?
생각이요. ‘싱크 하드(think hard)’ 전략이 필요해요. 뭘 해야 하는지 누구도 알려주지 못하니까요. 왜냐면 그 누구도 모르니까요. ‘주어지는 일’이란 없습니다. 그러니 생각해야죠. 퍼스트 무버가 되려면 뭘 해야 할지부터요.
4차 산업혁명 시대엔 생각을 해야 한다는 말인데, 심화학습을 하면 생각하는 힘이 길러지나요?
수학 문제를 받았어요. 보는 순간 풀 수 있으면 바로 풀겠죠. 생각하지 않고요. 그런데 어려운 문제를 받았어요. 아무리 봐도 모르겠어요. 그럼 어떻게 하죠? 생각하겠죠. ‘이걸 어떻게 풀지?’ 이러면서요. 제가 심화학습을 강조하는 건 그래서예요.
양육자로서 심화학습보다 선행학습에 대한 부담을 더 크게 느끼거든요. ‘선행을 세 번은 돌려야 한다’는 식의 선행 괴담도 많고요.
선행학습은 주어진 학습 진도를 먼저 하는 거잖아요. 전형적인 워크 하드 전략입니다. 이렇게 해서는 절대 생각하는 힘을 기를 수 없어요. 주어진 학습량을 집어넣고 습득할 뿐이지 아이 스스로 생각하고 자기 생각을 끄집어내는 학습이 아니니까요. 선행학습이 아니라 심화학습의 시대입니다.
어려운 문제는 말 그대로 풀기가 쉽지 않은데요.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계속 생각하라고 하세요. ‘이걸 어떻게 풀 수 있을까’ 하고요. 결국은 풀어냅니다. 이렇게도 생각해보고 저렇게도 생각해보고 하면서요. 양육자가 해야 할 일이 있어요. 아이가 모르는 문제가 양육자 눈엔 쉬워 보일 거예요. 절대 재촉해선 안 됩니다. ‘이것도 못하냐’고 면박 주어서도 안 되고요. 알려주는 것도 물론 안 됩니다. 시간은 얼마가 걸려도 상관없으니 생각해보라고 하십시오. 결국은 풀어냅니다.
그저 생각하기만 하는 거로 충분하다고요? 믿기지 않네요.
2007년에 한 방송에서 중학교 학생 10명을 강당에 데려다 놓고 2박 3일 동안 단 하나의 문제를 풀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미분 문제였는데, 뉴턴이 최초로 해결한 문제였죠. 학생들은 아직 미분을 배우지 않았고요. 제가 아이들에게 당부한 건 딱 하나였습니다. 이 문제는 굉장히 어려운 문제니까, 평소 수학 문제 풀 듯 급하게 풀어선 안 된다고요. 느긋하게 마음의 산책을 하듯 천천히 생각하라고요.
그 문제를 아이들이 풀어냈나요?
놀랍게도 시작한 지 2시간 30분 만에 한 학생이 풀어냈습니다. 다음날 또 다른 한 학생이 문제를 해결했고요. 그 뒤로 마지막 날 오전까지 문제를 푼 학생이 나오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마지막 날 점심 식사 후에 방향을 좀 틀어줬어요. 정확한 답을 구하려 하지 말고 비슷한 답을 구한 뒤 정확한 값에 가까워지는 식으로 생각해보라고요. 이 힌트를 듣고 한 명이 또 문제를 풀었습니다. 그리고 자세한 설명을 덧붙여가며 힌트를 두 번 더 주자 마침내 모든 학생이 문제를 풀었어요. 생각은 힘이 셉니다.
황농문 교수는 "워크 하드가 아니라 싱크 하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가 주장하는 몰입이 바로 집중해서 생각하는 싱크 하드다. 우상조 기자
◇몰입하고 싶다면, 천천히 생각하라
황 교수가 소개한 미분 문제 실험은 그의 책 『몰입』에도 자세히 언급되어 있다. 그는 책에서 “이 실험은 타고난 고도의 집중을 통한 몰입적 사고가 문제 해결에 더 큰 작용을 한다는 걸 증명한다”고 말했다. 그러니까 그가 말하는 ‘몰입’이라는 것은 결국 생각인 셈이다. 그런데 생각은 누구나 하는 게 아닌가? 생각과 몰입은 같은 것이라면, 왜 모든 사람이 뉴턴이나 아인슈타인이 되지 못하는 걸까?
몰입이 결국 생각하는 건가요?
집중해서 생각하는 거죠. 여기에 중요한 개념이 하나 더 해집니다. 바로 시간이죠. 몰입은 장시간 집중해서 생각하는 겁니다. 신경 정신과적으로 설명하자면 다량의 시냅스가 오랜 시간 활성화된 상태죠. 어떤 문제에 집중해서 장시간 생각하면 아주 많은 양의 시냅스가 활성화됩니다. 우리 뇌의 기량이 커지는 거죠. 그래서 몰입하면 어려운 문제를 풀 수 있게 되는 겁니다.
몰입이 생각하는 것이라면, 자료를 읽고 강의를 듣는 건 몰입이 아닌가요?
지식을 습득하는 행위는 우리 뇌에 뭔가를 입력하는 겁니다. 기억을 저장하는 것이죠. 주로 이런 건 단기 기억에 해당합니다. 이렇게 습득된 것 중 일부가 장기 기억으로 옮겨가고요. 생각을 한다는 건 장기 기억으로 옮겨진 걸 끄집어낸다는 겁니다. 입력이 아니라 인출인 거죠. 입력, 그러니까 기억을 저장하는 건 각성 상태에서 활성화됩니다. 그런데 인출, 기억을 꺼내는 건 이완 상태에서 더 잘 돼요. 그래서 생각할 때는 너무 긴장해선 안 됩니다. 제가 중학생 10명을 모아놓고 미분 문제를 풀라고 할 때 한 말을 기억해보세요.
마음의 산책을 하듯 천천히 생각하라고 하셨죠?
이완 상태에서 몰입할 수 있으니까 그렇게 말한 겁니다. 몰입에 들어가는 방법으로 ‘슬로싱킹(slow thinking)’을 쓰라고 조언하곤 하는데요, 같은 맥락입니다. 실제로 저는 어떤 문제에 몰입할 때 ‘몰입의자’를 써요. 편안한 상태에서 생각하는 거죠. 그러다 선잠을 자기도 하고요. 잠은 궁극의 이완 상태에요. 그래서 저는 집중해서 생각하다가 졸음이 오면 그 자세 그대로 잡니다. 보통 20분이면 깨어나죠. 그리고 나면 문제가 더 잘 풀립니다.
아이에게 충분히 시간을 주고, 급하게 문제를 풀려고 하지 말고 천천히 하라고 말해야 하는 거군요.
비단 공부할 때만 그렇게 하는 게 아니에요. 더 어린아이들도 집중하는 순간이 있어요. 모래 놀이에 빠져서 불러도 모르는 순간, 고개를 박고 그림을 그리거나 색칠하는 순간 같은 게 바로 그런 순간이에요. 집중해서 퍼즐을 맞추거나 그림책을 보기도 하겠죠. 그런 순간을 잘 포착하세요. 아이가 언제 몰입하는지요. 그런 환경을 조성해주고, 아이가 몰입해 있을 때 그걸 깨지 마세요. ‘밥 먹어’ 하고 부르기 전에 5분만 시간을 더 줘보십시오.
황농문 교수가 자신의 연구실에 있는 '몰입의자'에 앉았다. 그는 연구를 할 때 이 의자에 앉아 노트북을 무릎 위에 두고 생각을 이어간다. 그러다 아이디어가 떠오르면 노트북에 메모한다. 우상조 기자
◇몰입도 가르칠 수 있다? 세 가지를 기억하라
꼭 풀어야 할 절실한 문제를 가지고 있거나 삶을 바꾸겠다는 강한 의지가 있는 성인이라면 몰입을 통해 큰 성취를 이룰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절실한 문제나 강한 의지를 갖기 어려운 아이들은 어떻게 몰입을 경험할 수 있을까? 양육자 입장에서는 이런 의문이 드는 게 당연하다.
황 교수는 대학에서 학생들을 가르치는 경험뿐 아니라 자신이 운영하는 온라인 클럽을 통해 성인뿐 아니라 초등학생에게도 몰입을 가르쳐본 경험이 있다. 서울대 산학협력 프로젝트로 초등학교 고학년 학생과 중학생을 대상으로 몰입 캠프를 연 적도 있다. 그에게 몰입을 가르치는 노하우를 물은 이유다.
아이에게 몰입을 가르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몰입이라는 개념을 창시한 헝가리 심리학자 미하이 칙센트미하이는 ^명확한 목표 ^실력에 맞는 과제 난이도 ^빠른 피드백을 몰입의 3요소로 꼽았습니다. 이 세 가지 요소를 활용하면 몰입을 경험하게 할 수 있어요.
어떻게 해야 하죠?
명확한 목표를 제시하세요. 저는 첫째 아이가 고등학교 3학년이 됐을 때 전국 수석을 해보자고 목표를 제시했어요. 그 얘기만 했을 뿐 그 어떤 것도 하지 않았어요. 공부하라고 채근하거나 공부를 했는지 확인하거나 하지 않고 그저 매일 아침 차로 학교에 데려다주면서 목표를 환기하기만 했어요. ‘전국 수석 하면 기자들이랑 인터뷰해야 할 텐데, 준비는 하고 있니?’ 이런 식으로요.
그저 목표를 제시하는 것만으로 몰입하던가요?
처음엔 크게 달라지지 않았어요. 게임을 하고 TV 보고 그랬죠. 그런데 한 달쯤 지나니까 게임을 하거나 TV를 보면 짜증을 내더라고요. 그 행위가 부정적인 감정을 불러일으키기 시작한 거죠. 그러고 나서 다시 한 달 뒤부터는 게임을 하고 TV 보는 걸 안 하고 공부를 하더군요.
목표에 대한 부담 때문에 오히려 긴장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그래서 수능 시험 전날 아이에게 말했습니다. 너는 충분히 최선을 다했고, 그걸로 칭찬받아 마땅하다고요. 결과는 내 통제력 밖의 일이라고요. 그러니 그저 하던 대로만 하면 된다고 말해주었습니다. 목표를 제시하되 목표를 달성하라고 압력을 줘선 안 됩니다. 그저 그 목표를 내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는 거로 충분해요. 목표를 통해 몰입을 이루어냈다면 그걸로 충분합니다.
실력에 맞는, 적절한 난이도의 과제를 주는 것도 필요하다고요?
너무 쉬운 문제를 주면 생각할 필요가 없잖아요. 그런 문제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너무 어려운 문제도 곤란해요. 아이가 처음부터 강도 높은 몰입을 할 수는 없으니까요. 처음엔 5분 생각하면 풀 수 있는 문제를 주는 겁니다. 그리고 점점 난이도를 높여서 30분, 1시간을 생각해야 풀 수 있는 문제를 줘야 해요. 제가 2년째 몰입법으로 지도하고 있는 중학생이 있어요. 당진에 사는 친구인데, 그 친구는 2년간 훈련한 덕에 10시간 넘게 생각해서 풀 수 있는 어려운 수준의 문제를 풀어냅니다. 그 친구도 처음엔 5분, 10분 몰입하는 걸로 시작했습니다.
피드백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문제를 풀었냐고 묻지 마세요. 생각하고 있다면, 더 생각하라고 하시면 됩니다. 그리고 답을 찾아내면 칭찬해주시고요. 뭔가를 질문하면, 함께 생각도 해주시고요. 여기서 중요한 건 아이가 답을 풀어내도록 힌트를 주는 게 아닙니다. 생각을 멈추지 않도록 격려하는 거죠.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푸는 경험이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몰입을 통해 뇌의 기량이 올라가는 게 핵심입니다. 어떤 문제를 풀어내거나 개념을 아는 게 중요한 게 아니라요. 그리고 이렇게 어려운 문제를 풀어내는 경험을 반복하다 보면 아무리 어려운 문제를 만나도 도전할 수 있습니다. 결국 풀어낸다는 걸 경험으로 아니까요. 문제 앞에서 주눅 들지 않죠.
황농문 교수는 대학생이나 성인 뿐 아니라 초등학생이나 중학생도 지도하고 있다. 그는 인터뷰 중 자신이 2년 간 몰입법으로 지도해온 중학교 1학년 학생의 영상을 보여주었다. 놀랍게도 영상 속에서 학생은 스스로 피타고라스의 정리를 증명한 과정을 설명하고 있었다. 우상조 기자
황농문 교수는 “심층적 학습자를 길러내는 시대를 초월한 학습법이 몰입”이라면서도 “그 어떤 시대보다 지금 필요한 학습법”이라고 말했다.
“아이들은 우리보다 더 답이 없는 시대를 살아가야 하잖아요. 몰입하는 법을 깨우치게 도와주세요. 그게 선행학습을 다섯 여섯번 돌리는 것보다 훨씬 효과적입니다.”
자료 출처 : 중앙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