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5월 9일
발칸 9개국 여행 15일차
다음날은 터널로 갔습니다.
매년 오면서도
우울하고 즐겁지 않을 것 같은 생각에
그들의 아픈 역사는 외면하고 있었는데,
이번에는 다 같이 택시를 대절해서
터널로 가 봤습니다.
택시에서 내리니 박물관처럼 보이지는 않는
벽에 총탄자국 가득한 건물이 서 있습니다.
저 건물이 우리가 들어가 볼 전시장입니다.
건물 옆으로 들어가면 허름한 매표소가 있고
입장료는 10마르카. 유로는 받지 않습니다.
안으로 들어가니 박물관 소속 영어가이드가
지도 앞에서 설명을 해줍니다.
보스니아가 분리독립을 원해서 시작된 내전에서
세르비아가 사라예보를
저 붉은 선만큼 포위했고
유엔의 중재로 공항주변 일부만 남겨놓았는데,
그 구간이 사라예보 사람들이
식량을 조달하고 밖으로 도망칠 수 있는
유일한 통로였으며,
세르비야군에 잡히거나 죽지 않고
외부와 소통하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
이 터널인 것입니다.
설명을 들은 후에는 영상물을 감상했습니다.
터널이 만들어지고 사용될 당시
촬영한 것입니다.
한국어는 커녕 영어설명도 없는 화면이었지만,
모두가 진지하게 앉아
15분 가량의 영상을 보았습니다.
이제 저 건물 안으로 들어가 볼 차례입니다.
건물 옆에는 포탄이 천장에 매달려 있고
바닥에 박혀있는 것도 있었습니다.
건물 내부는 전시장으로 되어 있었습니다.
그 당시 사용했던 물건들, 옷들.
그 당시라고 하지만 불과 25년 전의 일입니다.
나도 이미 성인이 되었을 때인데
생각해보면 우리는
그때 일을 뉴스로도 접한 기억이 없습니다.
대량학살이 이루어진 어마어마한 일인데
우리는 왜 남의 나라 전쟁 이야기를
기억에서 지워버린 걸까요.
그리고 터널 중에서 25미터 구간만 걸어보았습니다.
우리에겐 체험이지만
그 컴컴한 터널을 걸어야만 했던
그때 그 사람들의 참담한 기분을
조금이나마 느껴보았습니다.
밖으로 나오니 사람들의 얼굴 사진이 잔뜩 붙은
벽면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전쟁으로 죽은 사람인가 했는데
그게 아니라,
이 터널을 역사적으로 보존하는데
힘 쓴 사람들인 것 같습니다.
어리석은 전쟁의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기를 바라며.
터널까지 보고 나와서
키 큰 가이드와 기념사진을 찍었습니다.
우리가 받은 감동을 오래 기억하고 싶었습니다.
대기하고 있던 택시를 타고
다시 사라예보 시내로 나왔습니다.
오후 시간은 각자 자유롭게 보내기로 했고
나는 투어버스 회사를 찾아갔습니다.
조곤조곤 따져 물으니,
자신들도 충분히 이해한다며
1인당 8유로 중 5유로를 돌려주겠다 합니다.
의외로 쉽게 해결이 되어
기분 좋게 오후를 보내고,
영원의 불꽃까지 보고 숙소로 돌아왔습니다.
사라예보에서의 기억이
나쁘게 남지 않아 다행입니다.
내일은 사라예보를 떠나
가해자였던 세르비아로 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