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준점 지수
심리 현상에는 실험으로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많지만, 실제로 측정 가능한 것은 거의 없다.
그런데 기준점 효과만큼은 예외다. 기준점 효과는 측정이 가능하며, 그 결과는 놀랍다.
샌프란시스코에 있는 과학관을 찾은 사람들에게 아래 두 가지 질문을 던졌다.
가장 큰 미국삼나무는 높이가 1,200피트보다 클까 작을까?
가장 큰 미국삼나무의 높이를 최대한 정확히 추측하면 몇이겠는가?
이 실험에서 '높은 기준점'은 1,200피트(약 366미터)다
일부 다른 참가자들에게는 첫 번째 질문을 180피트(약 55미터)의 '낮은 기준점'으로 바꿔 물었다.
두 기준점의 차이는 1,020(약 311미터)다.
예상대로 두 그룹이 내놓은 평균 추정치는 크게 달랐다.
844피트(257미터)와 282피트(86미터)로, 무려 562피트(171미터)가 차이 났다.
기준점 지수는 제시한 기준점의 차이와 그에 다른 추정치 차이의 비율로 표현하는데,
여기서는 55퍼센트(562/1,020)다.
기준점을 맹목적으로 받아들여 그 값을 그대로 추정치로 내놓는 사람들은 기준점 지수가 100퍼센트이고,
기준점을 아예 무시할 수 있는 사람들은 기준점 지수가 0퍼센트다.
이 사례에서 나온 55퍼센트는 전형적인 값에 속한다.
다른 수많은 문제에서도 비슷한 수치가 나왔다.
기준점 효과는실험실에서나 나타나는 진기한 현상이 아니다.
현실에서도 이 효과의 위력은 막강하다.
여러 해 전에 실시한 실험에서, 부동산 중개인에게 실제로 매물로 나온 집의 가치를 평가하게 했다.
이들은 그 집에 직접 가서, 집주인이 요구하는 호가를 비롯해 여러 정보가 담긴 팸플릿을 꼼꼼히 살폈다.
이때 중개인 절반이 본 호가는 그 집의 애초 표시 가격보다 훨씬 높았고,
다른 절반이 본 호가는 그보다 훨씨 낮았다.
각 중개인은 그 집의 적정 구매가를 얼마라고 생각하는지,
그리고 자신이 집주인이라면 최소한 얼마를 받아야 그 집을 팔지 의견을 제시했다.
그런 다음 이들에게 판단에 영향을 미친 요소를 물었다.
놀랍게도 이들은 자신이 호가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생각했고,
호가를 무시할 수 있는 능력을 자랑스러워했다.
하지만 천만의 말씀이다. 기준점 효과는 41퍼센터였다.
이 전문가들도 부동산 매매 경험이 없는 경영대학원생들만큼이나 기준점 효과에 취약했다.
경영대학원생들의 기준점 지수는 48퍼센트였다.
두 집단의 유일한 차이는 대학원생들은 그 기준점에 영향을 받았다고 시인한 반면,
중개인들은 시인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막강한 기준점 효과는 돈과 관련한 결정을 내릴 때도 나타나는데,
특정 명분에 얼마를 기부할 지 결정할 때도 그런 경우다.
우리는 이 효과를 증명하기 위해 앞서 과학관 연구에 참여했던 사람들에게
태평양에서 기름 유출 사고가 발생해 환경이 파괴되었다는 이야기를 해준 다음,
"기름 유출을 방지하는 방법이나 유조선 소유주에게 관련 비용을 지불하게 하는 방법을 찾을 때까지
기름이 유출된 태평양 연안에서 바닷새 5만 마리를 살리기 위해"
매면 얼마을 기꺼이 기부할 생각이 있느냐고 물었다.
이 질문에 대답하려면, 세기 짝짓기가 필요하다.
그러니까 응답자는 곤경에 처한 바닷새를 보며 느끼는 감정의 세기에 맞는 기부금을 찾아야 한다.
과학관을 찾은 사람 일부에게는 얼마를 기부하겠느냐고 무작정 묻기 전에
기준점 효과를 기대하며 이렇게 물었다.
" .....에 5달러를 기꺼이 지불하겠는가?"
과학관을 찾은 사람 중에(이들은 기본적으로 환경에 관심 있는 사람들이다.)
기준점이 들어가지 않은 질문을 받은 사람들은 평균 64달러를 내갰다고 대답햇다.
그런데 5달러라는 기준점이 들어가면 기부금을 평균 20달러에 머물렀다.,
기준점이 높아져 400달러가 되면 기꺼이 내겠다는 기부금 평균은 143달러로 뛰었다.
높은 기준점과 낮은 기준점 그룹의 차이는 123달러였다.
기준점 효과는 30퍼센트가 넘었는데, 그 말은 100달러 높게 제시하면 평균 30달러를 기꺼이 더 낸다는 뜻이다.
수많은 추정치나 지불 의향 연구에서 이와 비슷한 또는 더 큰 기준점 효과가 나타났다.
이를테면 오염이 심각한 프랑스 마르세유에 사는 사람들에게
오염이 적은 지역에 살 수 있다면 생계비 인상을 어느 정도까지 감수하겠느냐고 물었다.
이 연구에서는 기준점 효과가 50퍼센트 이상으로 나타났다.
똑 같은 물건이 서로 다른 '지금 구매' 가격으로 올라오는 인터넷 거래에서도 기준점 효과를 쉽게 볼 수 있다.
미술픔 경매에서 '주정가'도 첫 입찰 에 영향을 미치는 기준점이다.
기준점이 타당해 보이는 상황도 있다.
어려운 질문을 받은 사람이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은 어쩌면 당연하다.
이 상황에서 기준점은 그럴듯한 지푸라기다.
캘리포니아의 나무에 대해 아는 게 거의 없는데 미국삼나무가 1,200피트보다 더 클 수 있는지 질문을 받으면,
이 숫자가 터무니없이 큰 수가 아닐 거라고 추측하기 쉽다.
진짜 높이를 아는 사람이 이 문제를 만들었을테고, 그러니 그 기준점은 믿을 만한 힌트가 아니겠는가.
하지만 기준점 연구에서 발견한 중요한 사실은
무작위가 분명한 기준점도 유익한 기준점 만큼이나 효과가 있을 때가 있다는 것이다.
숫자 돌림판을 기준점으로 사용해 유엔의 아프리카 회원국 비율을 추정할 때 기준점 지수가 44퍼센트였다.
기준점을 힌트로 삼았다고 볼 수 있는 범위 안에 들어가고도 남는 수치다.
응답자의 사회보장 번호 뒷자리 옃 개를 기준점으로 사용한
몇 가지 실험 (예:당신이 사는 ㄷ시에의사가 몇 명인가?)에서도 비슷한 수치의 기준점 효과가 나타났다.
결론은 분명하다. 사람들이 해당 기준점이 정보가 될 만하다고 생각해서 기준점 효가가 나타나는게 아니다.
무작위 기준점의 위력은 다소 당혹스러운 방식으로 입증되었다.
경력이 평균 15년 이상인 독일 판사들에게
가게에서 물건을 훔치다 붙잡힌 한 여성에 관한 글을 읽게 한 뒤에
3 아니면 9가 나오도록 만들어진 주사위 한 쌍을 굴리게 했다.
주사위가 멈추자마자 판사들에게,
그 여성에게 주사위에 나온 숫자보다 더 높은 개월 수의 징역형을 선고할지,
더 낮은 개월 수의 징역형을 선고할 지 물었다.
마지막으로 다시 판사들에게, 그 여성에게 정확히 몇 개월의 징역형을 선고할지 명시해달라고 했다.
그러자 주사위에서 9가 나온 판사들은 평균 8개원을, 3이 나온 판사들은 5개월을 선고했다.
50퍼센트의 기준점 효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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