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 진묵이 서양에 역사하자 서양의 정신세계가 개혁되다
진묵은 유학자인 친구의 시기를 받아 참혹하게 죽임을 당한 후 “네가 끝까지 그런다면 너의 자손은 대대로 호미를 면치 못하리라”하고 동양의 모든 도통신(道通神)을 거느리고 서양으로 옮겨갔다.
이러한 역사의 비밀은 상제께서 직접 인세에 강세하셔서 밝혀주신 것인데, 진묵은 1562년에 태어나 1633년에 죽었으며 그리고 이와 때를 맞추어 17C 중엽부터 서구에는 합리론, 경험론 따위의 근대철학과 18C 프랑스혁명과 미국의 독립에까지 큰 영향을 끼친 계몽사상이 등장하였다. 이로써 상제님의 말씀은 그대로 증명되었다.
서양에서 이렇듯 순식간에 우수한 철학이 쏟아져 나올 수 있었던 것은 진묵이 데리고 간 동양의 도통신(道通神)이 인간의 영(靈)을 밝게 열어주는 신명(神明)이었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다.
서양 철학의 발전
17C를 빛낸 근대철학을 확립시킨 사상가로는 영국의 프란시스 베이컨, 존 로크, 프랑스의 데카르트, 네덜란드의 스피노자, 그로티우스 등이 있다.
영국의 프란시스 베이컨은 관찰과 실험을 중요시하여 귀납법을 주장하였다. 귀납법이란 모든 지식은 감각적인 경험 내지는 이와 관련된 간접적인 자료로부터 얻어진다는 것으로써 이러한 철학적 사고는 경험주의 철학의 주류를 이루어오다가 존 로크와 흄에 이르러 완성되었다.
경험주의 철학은 데카르트, 라이프니찌, 스피노자 등이 주장한 합리주의와 함께 서양 근대철학의 2대 조류를 형성했으며, 이러한 조류는 18C의 계몽사상에 큰 영향을 끼쳤다.
경험주의 입장에서는 진리를 인식하기 위해서 직간접적인 경험 속에서 진리를 도출해내는 방법을 썼는데 반하여 합리주의는 인간의 이성은 경험에 앞서기 때문에 굳이 맹목적인 신앙이나 하나하나의 경험에 의존하지 않고 진리를 인식할 수 있다는 입장이었다.
또한 경험론의 완성자인 존 로크는 정치사상가로서도 이름을 날렸다. 그는 사회계약설을 주장한 것으로 유명한데, 인간은 자연 상태에서 자유와 재산이라는 자연권을 누렸고, 이 자유와 재산의 권리를 더욱 확고히 가지기 위하여 계약을 맺고 국가를 형성하므로 지배자가 이를 위반할 경우 교체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러한 로크의 주장은 영국의 명예혁명을 옹호하는 이론이 되었고, 민주주의 사상적 토대가 되었으며, 미국 독립에도 큰 영향을 미쳤다.
18C에는 합리주의가 지식인들 사이에 널리 보급되어 프랑스에서는 많은 사람들을 흥분시켰던 볼테르, 루소, 몽테스키외 기타 등등의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했다. 합리주의적 사고방식과 과학적 연구 태도는 상응하는 바가 많았으므로 동시대적인 발전을 가져오는 것은 자연스러운 일이었다. 이러한 발달된 서양 철학은 시민혁명의 형태로 나타났는데, 서양의 시민혁명이 최초로 이루어진 곳은 17C 중엽의 영국이다. 이 시기는 진묵이 사후(死後, 1633년 이후) 도통신을 이끌고 서양으로 간 이후의 시점과 일치한다.
영국에서 명예혁명이 일어나다
1627년 영국에서는 왕권신수설(王權神授說, 왕의 권리는 신으로부터 부여받은 것이라고 주장하는 설)을 신봉하던 영국의 국왕 찰스 1세에 대항하여 영국의회가 의회의 승인 없이는 과세할 수 없고 자의적인 인신 구속을 할 수 없다는 권리청원(權利請願)을 가결하여 왕에게 요구하였다.
이는 왕의 과세남발에 대한 반발 때문이었다. 그러자 왕은 의회를 해산하여 11년간 의회 없이 통치하였는데, 스코틀랜드 장로파의 반란이 일어나자 전비 마련을 위해서 왕은 1638년 의회를 소집했다.
이에 많은 귀족과 군대에 호위된 국왕과 부유한 상인과 런던시의 지지를 받는 의회가 맞서 몇 년간 전쟁이 일어났다.
이때 의회 측의 뛰어난 지도자인 크롬웰이 나타나서 장로파 의원을 숙청하고 찰스 1세의 목을 베었다. 그리고는 곧 자신이 호국경이 되어 청교도주의에 입각한 금욕적인 독재정치를 실시하다 1658년 사망하였다.
크롬웰이 사망하자 그동안 외국으로 도망가 있던 찰스 1세의 아들이 영국으로 돌아와서 왕위에 오르니 이가 찰스 2세이다. 찰스 2세 역시 아버지와 마찬가지로 신통치 못한 인물로서 교묘하게 의회의 요구를 피하곤 하였다.
그 뒤 찰스의 동생이 왕위에 올라 제임스 2세가 되었다. 그는 전제정치를 강화하고 가톨릭의 부활을 시도하였다. 그러자 의회 내의 지도자들은 그를 몰아내고 제임스의 딸 메리와 그의 남편 윌리엄을 공동왕으로 추대하였다. 그리고 이들은 의회가 제시한 권리장전(權利章典)을 승인하고 왕위에 올랐는데(1689년) 이 과정에서 피를 흘리지 않았고 목적을 쟁취하였기 때문에 이것을 명예혁명이라고 한다.
이날부터 오늘날까지 영국의 국왕은 어느 누구도 의회의 권위에 도전하려 하지 않았고 ‘국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 입헌정치의 초석을 마련하게 되었다.
이것은 봉건군주사회가 무너지고 민주사회가 형성되는 서곡과도 같은 것이었다. 이로부터 프랑스 시민혁명과 미국의 독립 등이 일어나고 새로운 사회개혁이 일어나게 되었으니 이것은 모두 진묵이 거느리고 간 도통신이 역사함으로써 비롯된 것이었다. 그리고 여기에 톱니바퀴처럼 맞물려 이마두가 거느리고 간 문명신이 서양에서 역사하니 각종 과학의 발전이 일어나고, 산업전반에 혁명이 일어나서 서양은 급속한 발전을 이루게 되었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