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교단 결산] 기독신문 선정, 2010년 교단 주요뉴스
주요뉴스돕는 손길 따뜻했지만 안팎서 선거관련 진통
1. 총회 아이티 구호활동
긴급재난구호대책위 아이티 신속 구호
지난 1월 12일, 아이티공화국에 지진이 발생하자 총회는 발빠르게 대처했다. 총회임원은 물론 총회세계선교회 기독신문사 총회산하 기관 등의 대표자 20여명이 모여 총회긴급재난구호대책위원회(위원장:김삼봉 목사)를 조직했다. 의외로 호응이 대단했다. 총회모금 사상 최고액인 30억원이 전국 교회에서 답지했으며, 재난구호대책위원회는 이 헌금을 아이티 비전센터 건립에 전액 투자키로 결의하여 현재 활발하게 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아이티비전센터는 총면적 2000평 규모에 지상 6층 시설로서 유치원부터 대학교까지 들어서며, 교회, 병원, 게스트하우스 등도 건축하여 아이티 주민을 위한 종합센터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헌금 사용처를 두고 일부 말들이 오가고, 구호대책위원회와 구제부 사이에 간극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지금은 총회긴급재난구호대책위원회가 해체되고 아이티공화국선교후원회(총재:길자연 목사)가 사업을 이어받아 센터 건립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한편 아이티선교후원회는 아이티를 거점지역으로 삼아 중남미 선교의 교두보로 활용한다는 계획 아래 조만간 선교사를 파송할 예정이다.
2. 제주수양관 건립 차질
제주선교100주년 수양관 건립 연기
제주선교 100주년을 기념해 야심차게 추진했던 ‘제주선교100주년기념수양관’(이하 제주수양관) 건립이 무기한 연기됐다.
제주수양관 건립은 92회 총회에서 결의되어, 지난 2월 2일 제주시 조천읍 대흘리 일대에 마련된 건축부지 위에서 감사예배를 드렸다. 제주수양관은 1985년 총회회관을 건립한 이후, 총회가 두 번째로 추진하는 대형 건축 사업으로 주목을 받았다.
이상과 계획은 좋았지만, 5940㎡(1800평) 규모의 건축비 마련과 향후 운영비 조달은 사업계획 단계부터 논란이 있었다. 순수 건축비만 63억 원이 소요되고, 토목설계비와 내부 집기까지 마련하려면 75억 원 이상 필요하다는 보고도 있었다. 그러나 총회는 이 건축비를 교회 후원금과 분양권 판매로 마련하겠다는 다소 무책임한 계획을 세웠다.
결국 95회기 총회유지재단이사회는 11월 30일 제주수양관 착공을 무기한 연기했다. 총공사비 180억 원의 70%인 126억 원을 마련하고 공사를 시작하겠다는 것이다. 결국 총회는 사업계획을 허술하게 세웠다는 비판을 면할 수 없게 됐다.
3. 총회 선거제도 ‘해프닝’
임원선거제도 절충안 부결, 제비뽑기 회생
금권타락선거를 막기 위해 도입된 총회임원 제비뽑기 선거제도(이하 제비뽑기선거)가 올해 도입 10년을 맞았다. 그러나 지난 10년 동안 제비뽑기선거는 늘 ‘전격 폐지’의 위협에 시달렸다.
올해 제95회 총회에서 제비뽑기선거는 폐지됐다가 기사회생 했다. 총대들은 장시간 토론을 벌여 정치부에서 내놓은 직접선거와 제비뽑기선거의 절충안을 채택했다. 절충안은 ‘총회 임원선거(부총회장)는 현장에서 3개 지역별로 선거인단 30%를 제비뽑아 직접선거를 시행하며, 기타 임원은 3개 지역별로 안배하여 부총회장이 지명’하는 것이다.
이 절충안은 그동안 총회임원선거 문제점으로 지적됐던 금권선거, 총대들의 의사 존중, 리더십 강화, 이 세 가지를 단번에 해결하기 위한 결과물인 셈이다. 여기에 정치부는 금권선거를 한 사람을 처벌하는 규정까지 함께 상정했다.
그러나 이 절충안은 어이없게 정치부 안은 통과됐으나 규칙부 안이 부결됐다. 규칙부가 선거법을 수정하면서 이 처벌 규정을 넣지 않은 것이다. 결국, 제비뽑기선거는 다시 살아났다.
4. WCC 대책위 활동 활발
WCC 대책위원회 폭넓은 반대운동
2013년 WCC총회 부산 개최를 앞두고 이번 회기에 WCC대책위원회(위원장:서기행 목사)는 분주하게 움직였다.
총회에서 예산이 배정되지도 않았는데 예장합동과 정서가 비슷한 보수교단을 초청하여 WCC 반대운동을 펼치고 총신대를 비롯하여 칼빈대 광신대 대신대 등에서도 교수들이 WCC는 종교혼합주의라는 내용의 성명서를 잇따라 발표하여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특히 제95회 총회를 앞두고 교단 주요인사를 초청, WCC의 실상을 알리는 대회를 개최하여 긍정적인 결과를 얻기도 했다,
총회 WCC대책위원회는 이번 회기에 서울서북 20명, 호남중부 영남 각 15명의 조직을 확대하여 폭넓게 대책을 마련하겠다는 계획을 세워놓고 있다. 거기다가 WCC대책위원회 사무실을 서울 성도교회(장정일 목사)에 개소하여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하겠다는 방침이다.
한편 WCC대책위원회는 2013년까지 존속된다.
5. 전국장로회 선거 논란
전국장로회 수석부회장 선출 ‘파행’
전국장로회연합회(회장:라도재 장로)가 수석부회장 선출과 관련하여 분열될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전국장로회는 제40회기 수석부회장을 선출하는 과정에서 선거관리위원회가 남승찬 장로를 단독후보자로 확정하자 신신우 장로가 이의를 제기하며 문제가 불거졌다. 회원들은 직선제를 표방하는 장로회가 ‘고의’로 신 후보를 탈락시켜 불법을 자행하고 있다고 비난하고, 구태의연한 방식으로 장로회를 이끌고 있는 증경회장과 임원들에게 불만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하여 장로회는 증경회장단 모임, 호남중부 전형위원 연석회의 등을 잇따라 소집했지만 합의점을 찾지 못하고 오히려 파행으로 치닫고 있다.
일부 회원들은 두 후보자 문제로 장로회가 이분될 가능성도 있다며 으름장을 놓고 있고, 증경회장들도 사실상 손을 쓸 수 없어 수수방관할 수 밖에 없는 입장이다. 아무튼 장로회 수석부회장 건은 전국장로회의 현 실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사건이며, 직선제를 주장하는 장로회가 아직도 전형위원에서 후보를 선출하는 밀실정치를 하고 있다는 비난이 쇄도하고 있다.
6. 광주중앙교회 사태
광주중앙교회 사태 불씨 남기고 마무리
오랜 역사를 가지고, 교단과 지역교계의 중추역할을 감동해 온 한 지역교회에서 벌어진 작은 갈등이 엄청난 분규로 확대되는 데는 채 1년의 시간도 걸리지 않았다. 그만큼 분규 당사자들이 대화와 설득을 통한 화해 노력을 기울이기 보다는, 끊임없이 극한 대결로 치달았기 때문이다. 따라서 광주중앙교회 사태는 한국교회의 자정능력과 문제해결 능력의 현주소를 보여준 씁쓸한 예라 할 수 있다.
더욱이 광주중앙교회 사태에 대한 확실한 정리가 이루어질 것이라 기대됐던 지난 95회 총회는, 석연치 않은 회의진행으로 한 때 양자가 서로의 승리를 주장하는 웃지 못할 해프닝이 벌어지는 등 결과적으로 교단에 대한 불신만 증폭시킨 채 마무리됐다. 이는 광주중앙교회내 갈등의 두 주체인 중사모와 비대위의 갈수록 격화되는 충돌양상, 지역교회들의 위상과 전도역량 저하, 광신대 설교차 방문했던 총회장의 봉변 등이라는 적잖은 후유증을 낳고 있다.
중재위원회의 합리적인 리더십 발휘, 여기에 분쟁 당사자들의 교단의 권위에 대한 존중, 상대방을 향한 관용의 자세가 절실하다.
7. 교단 찬송가판권 논란
찬송가 출판권 확보 새인물로 교체
찬송가공회 문제가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 것으로 보인다.
재단법인 한국찬송가공회가 예장출판사와 찬송가 출판권 계약 연장을 불가한다는 입장을 통보한 가운데, 총회임원회는 총회실행위원회 결의에 따라 찬송가 출판권 계약 연장을 이행치 못한 찬송가공회 파송 이사 4명을 모두 교체하기로 결의하고 새 파송이사를 선임했다.
이에 총회실행위원회는 찬송가공회 교단 파송이사에게 11월 25일까지 찬송가출판권 계약 연장을 이행하라고 지시했으나 이를 이행치 못하고 4명의 이사 중 3명이 사임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를 토대로 총회임원회는 12월 16일 회의에서 이사를 전격 교체키로 했다.
그러나, 찬송가공회가 출판권 회수통보를 해 온 가운데 법정 소송이 진행되고 있어 출판권 회복 역시 법에 의존하지 않고는 어려운 실정이다. 예장출판사가 12월 22일에 1심 판결이 예정된 출판금지가처분 취소청구 소송에서 승소하지 않는 한, 찬송가 출판권 확보는 당분간 요원할 것으로 전망된다.
8. 이단사이비 대책활동
이단 새전략 대책 전국순회 세미나
신무기 무력도발. 이단은 올해 새로운 전략을 가지고 교회를 공격했다. 과거 대도시가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수도권 신도시와 지방도시가 주요 공략 대상이 됐다. 과거에는 산옮기기나 추수꾼을 이용해 교회에 은밀히 침투했지만, 이제는 위장교회라는 과감한 카드를 꺼내 들었다. 대상자도 장년에서 학원가로 옮겨졌다. 접근 방법도 인터넷, 문화단체, 언론 등 다양해 진 것이 특징이다.
이에 총회이단(사이비)피해대책조사연구위원회(위원장:박호근 목사)는 2월과 9월 이단경계주일을 선포해 경각심을 높였다. 또 전국을 순회하며 새전략 대책 세미나를 열고 주위를 환기 시켰다. 한편 이단의 폭력으로 교회의 피해도 컸다. 가장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5월 2일 방화범에 의해 예배당이 전소된 새학장교회(황의종 목사). 이 교회는 이대위 소속 부산지역 이단상담소장으로 활동하고 있는 황의종 목사가 시무하는 교회다. 이어 지난 7월 31일에는 한국기독교이단상담소(소장:진용식 목사) 산하 구리상담소장을 맡고 있는 신현욱 전도사(총신신대원 2년)가 이단 신자 10여명에게 집단 폭행을 당했다.
9. 총신 송전탑 이설 촉구
총신 송전탑 문제 미완의 과제로 남아
2008년 2월 시작된 송전탑 사태는 올해에도 해결점을 찾지 못한 채 미완의 과제로 남아 아쉬움을 남겼다. 더욱이 4월 15일부터 전류가 흐르기 시작했지만 정작 학교 내부에서는 책임론 공방전이 펼쳐지는 등 미성숙한 모습을 보였다. 송전탑 해결 9인위원회 구성, 재단이사회 관련부지 매입 재확인, 300만 서명운동 돌입, 릴레이 기도회 전개 등 송전탑 이설을 위한 노력이 물거품으로 돌아가는 일이 없길 바랄 뿐이다.
총회장 김삼봉 목사와 총신 재단이사장 김영우 목사는 올해 울다가 웃었다. 7월 6일 이사회의록 위조 건으로 법으로부터 실형을 선고 받았다. 이 판결로 김삼봉 목사의 총회장 후보 자격이 도마에 오르기도 했다. 학부교수협의회는 김 이사장의 퇴진을 요구하는 등 학교에서도 진통이 컸다. 그러나 12월 9일 고등법원은 “문서를 위조했다는 주장에 신빙성이 없다”며 ‘원심 파기, 무죄’를 선고했다.
신대원 교수들은 평강제일교회와의 싸움에서 값진 승리를 이끌어낸 한해였다. 교수 19명은 평강제일교회 박윤식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까지 가는 재판 끝에 승소했다.
10. 노회분립·합병 잇따라
아름다운 노회 분립·합병 잇따라
올해 아름다운 노회 분립과 합병이 잇따랐다. 1월 19일 안산동산교회에서 서수원노회와 경기서노회가 분립했다. 이들은 1월 17~18일 수원영광교회에서 ‘노회분립기념 연합성회’를 여는 등 화합과 협력을 다짐하며 은혜롭게 분립했다. 1991년 수원노회에서 60여 교회로 분립한 서수원노회는 20년 만에 164개 교회로 성장해 다시 경기서노회와 분립한 것이다.
7월 15일에는 강원노회와 북강원노회가 합병하고 하나로 거듭났다. 1954년 경기노회에서 분립한 강원노회는 1989년 제74회 총회에서 강원노회와 북강원(구 양인)노회로 분립을 허락받았다. 그러나 분립 후 21년 만에 조건 없이 다시 하나가 됐다는 점에서 긍정적 평가를 받았다. 합병한 노회는 조직 교회 49개처, 미조직 41곳 등 90개로 늘었다. 노회 명칭은 강원노회로 정했다.
전주노회 분립을 위한 조직도 구성됐다. 전주노회분립위(위원장:허활민 목사)는 11월 29일 현장을 방문하고 실사한 내용을 바탕으로 추후 심의를 거친 후, 노회 분립 일정을 진행할 예정이다.
11. 총신 학적취득 난항
총신 학적취득문제 진퇴양난 후유증
2005년 교단합동의 후유증인 총신 학적취득은 올해에도 해결하지 못했다. 학적취득위원회 6월 공고를 내고 “단기 특별교육과정을 실시한다”고 밝혔지만 수업이 시작하기도 전에 학교와 위원회간 불협화음으로 난항을 겪었다. 7월초부터 수업이 시작됐지만, 교육생 85명이 수업료 등에 문제를 제기하며 금식기도회를 갖는 등 집단적으로 반발해 엄청난 진퇴양난을 겪었다.
총신 학적 특별교육의 한 주축인 구 개혁측도 반발하고 나섰다. 구 개혁측 인사들은 8월 10일 개혁연대협의회를 결성하고 “이미 교단 합동 당시 정회원으로 인정된 구 개혁측 목사들을 편목들과 동일하게 교육하는 것은 부당하다”면서 특별교육을 거부했다.
칼빈대 대신대 광신대 등 3개 지방신학교 신학대학원 졸업자를 대상으로 2개월 특별교육을 실시하고 있지만 학생들은 “300만원이 넘는 교육비는 부당하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한편 제95회 총회에서 연장한 학적취득위원회는 내년 1~2월을 목표로 또다시 특별교육을 추진했지만 11월 총신 신대원 교수들이 거부하고 나서 난항에 빠졌다.
12. 옥한흠 목사 소천
옥한흠 목사 소천 … ‘교회 회복’ 화두 남기다
2010년 대한민국은 전직 대통령을 비롯해 수많은 인물을 떠나보냈다. 그리고 한국 교회도 원로들이 하나님께 가는 것을 보았다. 그 중에서 은보 옥한흠 목사의 소천은 많은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고 옥한흠 목사는 한국 교회의 갱신과 일치와 연합을 외치고, 제자훈련으로 한 사람의 진실한 그리스도인 양성에 매진하고, 자신보다 교회를 생각해 조기은퇴를 하면서 존경받던 목사였다. 한국 교회는 9월 2일 오전 8시 43분, 옥한흠 목사(72세)를 하나님께 보내야 했다.
고 옥한흠 목사는 기독교인은 물론 일반인들도 존경하던 진정한 목회자였다. 돈과 권력 등 세속의 권위에 휩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진정으로 한국 교회가 교회다움을 회복하기 위해 애썼기 때문이다.
9월 6일 고 옥한흠 목사의 천국환송예배는 그를 다시 떠올리며, 그의 뒤를 따르겠다고 다짐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다. 고 옥한흠 목사는 소천하면서까지 많은 사람들에게 진정한 목회자와 교회가 무엇인지 생각하도록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