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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르투갈 포르투에서 오전 9시 45분 버스를 타고 스페인 살라망카에 오후 2시 경에 도착했다. 살라망카(Salamanca)는 스페인의 토르메스 강, 북쪽 기슭의 해발 778m 지대에 자리 잡고 있다.
스페인에서 가장 유서 깊고 예술적이고 학문적인 도시이다. 8~11세기에 그리스도교도들과 무어인들 사이의 전쟁터가 되었으며, 1087~1102년 그리스도교도들이 다시 이주해왔다.
1178년 레온의 페르난도 2세가 이곳에서 의회를 소집했으며, 왕국에서 2번째로 이곳에 푸에로를 칙허했다. 푸에로(fuero)는 중세 스페인에서 왕이나 귀족 또는 주교가 공동체에 부여한 자치권을 말한다.
'장터'라는 뜻의 라틴어 'forum'에서 유래했다. 로마네스크 양식의 구대성당과 신대성당을 비롯해 유서 깊고 훌륭한 유적들이 많이 있다.
회랑이 있는 아름다운 마요르 광장은 지금도 이 도시의 중심지이다. 농업 중심지이며 공장이 몇 개 있으나, 관광업이 경제에서 가장 큰 몫을 차지한다.
우리는 버스터미널에서 내려 숙소(호텔 콘달,Hotel Condal)를 찾아간다. 버스 터미널은 살라망카 다운 타운의 북서쪽 외곽에 있다. 현대식 건물로 깨끗하고 아름답다.
유리, 석재, 콘크리트, 현대적인 마감재로 만들어진 새롭고 현대적인 건물이다. 디자이너들이 내부와 외부에 잘 꾸며 놓았다. 배낭을 메고 숙소 방향으로 위치를 잡고 걸어간다.
Av. de Filiberto Villalobos,거리를 걷는다. 한참 걷다보니 사거리 건너편에 살라망카 대학 건물(General Foundation of the University of Salamanca)이 나온다.
건너편에는 공원(Campo de San Francisco)이 있다. 공원으로 건너갔다. 고목나무와 어울리는 잘 정리된 공원 안에는 돌로 만들어진 십자가 기둥도 보이고 분수대도 있다.
아시스의 성 프란체스코 동상(Monumento a San Francisco de Asís)이 하늘을 바라보고 있다. 살라망카 시의회가 Venancio Blanco에게 의뢰한 동상으로 1976년 10월 4일에 세웠다고 한다.
나중에 1982년 10월 4일에 살라망카 시의회에서 기증한 묘비가 추가되었다. "아시시의 성 , 나의 주님을 찬양해, 모든 생물을 위하여"라는 글이 묘비에 있단다.
아내가 갑자기 배탈이 났는지 화장실이 급하단다. 서둘러 화장실을 찾아간다. 성당(Iglesia de la Purísima)을 지나간다. 몬테레이 궁전(Monterrey's palace) 앞 인포메이션ⓘ을 들어갔다.
몬테레이 궁전은 내부보다 외부가 더 인상적인 건물이다. 3층에는 역사, 그림, 장식품, 앤티크 가구가 전시되어 있다. 가장 아름다운 것은 욕실과 주방이란다.
ⓘ에서 화장실의 위치를 알려주는데 대성당 아래에 있단다. 서둘러 걸어간다. 가는 길에 몬터레이 광장에 만들어진 동상(Estatua del Príncipe Don Juan Señor de Salamanca)을 만났다.
다리를 쭉 뻗고 앉아있는 동상이다. 살라망카 가톨릭 군주의 유일한 남자 아들인 후안 왕자의 동상이다. 그는 살라망카 시에서 몇 년 동안 통치했으며 자녀가 없어서 그의 여동생 후아나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그는 몬테레이 광장(Plaza de Monterey)에 안장되어 있다. 19세의 나이에 돈 후안과 그의 아내 마르게리타는 살라망카의 영주권을 물려받았다.
1497년에 그는 아마도 결핵으로 사망했다고 한다. 대성당까지 서둘러 걸어가서 화장실을 찾았다. 유료 화장실(0.5유로 800원)이다.
동전을 바꿔서 겨우 화장실을 해결했다. 덕분에 대성당을 구경하게 되었다. 살라망카 대성당(Catedral de Salamanca)의 웅장한 아름다움이 놀랍다.
살라망카에는 두 개의 대성당이 존재한다. 바로 구대성당(Catedral Vieja)과 신대성당(Catedral Nueva)이다. 구대성당(Catedral Vieja, 12세기) 로마네스크 양식으로 지어진 이 성당은 살라망카에서 가장 오래된 종교 건축물 중 하나다.
살라망카 옛 주교좌 대성당이라고 불린다. 내부에는 정교한 프레스코화와 황금빛 제단이 남아 있어, 중세 유럽의 분위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다.
신대성당(Catedral Nueva, 16~18세기)은 고딕, 르네상스, 바로크 양식이 혼합된 독특한 건축물이다. 살라망카 대성당(Salamanca Cathedral)이라고 불린다.
성당 정면에는 우주비행사 아이스크림 먹는 사자 조각이 숨겨져 있어, 이를 찾는 것이 관광객들에게 인기 있는 재미 요소 중 하나다.
우리도 우주 비행사, 아이스크림 사자를 찾고 좋아했다. 보물찾기 하는 기분이다. 높은 종탑에서는 살라망카 시내를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을 제공한다.
광장을 사이에 두고 건너편에 아나야 궁전(Anaya Palace)의 기둥들이 눈에 들어온다. 1401년 디에고 데 아나야 말도나도(Diego de Anaya Maldonado) 대주교는 학생들을 위한 학교를 설립했다.
그러나 1755년 리스본 지진으로 건물이 파손되어 1760년 20년에 걸쳐 재건축되었다. 신고전주의 양식의 궁전에는 현재 살라망카 대학의 언어학부 본부가 자리 잡고 있다.
내부에는 아래층에 16개의 도리아식 기둥이 있고 위층에 16개의 이오니아식 복합 기둥이 있는 이중 갤러리가 있는 웅장한 파티오가 있다.
건물의 두 층은 D. Miguel de Unamuno의 흉상이 앉아 있는 웅장한 황실 계단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한다. 학생들이 많다. 살라망카는 도시 전체가 대학 이다.
아나야 광장(Plaza de Anaya)에는 수직을 뻗은 나무와 초록 수목으로 잘 가꾸어 놓았다. 다시 숙소를 목적지로 삼고 보행자 도로를 걸어간다.
조개가 잔뜩 붙어있는 조개의 집이 흥미로웠다. 카사 데 라스 콘차스(Casa de las Conchas, 조개의 집)라는 글이 보인다. 300개 이상의 조개 장식이 벽을 장식하고 있는 독특한 건축물이다.
상징적인 조개껍질 무늬로 덮인 16세기 고딕 양식의 궁전으로 현재는 전시 공간과 도서관으로 이용되고 있단다. "가리비 집"으로도 알려진 쉘 하우스는 외부가 조개 모양의 볼록한 돌 조각으로 촘촘하게 덮여 있어 눈길을 끈다.
이 건물은 당시 가톨릭 왕의 처가이자 아르고 기사단의 일원이었던 돈 로드리오 아리아스 말도나도(Don Rodrio Arias Maldonado)에 의해 지어졌다다.
외벽 조개 산티아고 콤포스텔라에 묻혀있는 야고보의 상징이다. 안으로 들어가니 사각현의 주랑이 2층으로 이루어져 있고 중앙에는 우물 유적이 있다.
실제 가리비로 만들어진 조형물도 걸려있다. 2층으로 올라가는 게단에는 개 형상이 조각되어있다. 2층에 올라가 홀을 내려다보니 젊은이들이 설명을 듣고 있다.
그 앞 길에는 마에스트로 살리나스 의 동상(Monumento al Maestro Salinas)이 있다. 조개의 집 근처에는 당시 매우 유명했던 음악가인 마에스트로 살리나스(Maestro Salinas)에게 헌정된 청동 기념물이다.
10살 때부터 시력을 잃은 그는 1575년부터 1590년 사망할 때까지 대학에서 음악 교수로 20년 이상 이 대학의 음악 학과장으로 재직했다.
그곳에서 그는 프레이 루이스 드 레온(Fray Luis de Leon)을 만났고 바야돌리드의 종교 재판에 의해 투옥되었을 때 그를 많이 도왔다고 한다.
그는 유명한 "살리나스에게 바치는 송가"를 그에게 헌정한 프레이 루이스 드 레온(Fray Luis de Leon)의 동시대 친구였다. 조개의 집 건너편의 웅장한 성당 건물도 대학교 성당(Capilla Universidad de Salamanca (USAL))이다.
골목길을 걷다보니 주민으로 보이는 시인, 레미지오 곤잘레스 마르틴의 동상( Monumento a Remigio González)을 만났다. 동상은 마치 다음 위대한 구절을 찾는 것처럼 고민하는 모습을 보여준다.
살라망카 조각가 Agustín Casillas의 작품인 2m 높이의 청동 조각품으로 Adares로 알려진 시인 Remigio의 기념비다. 늙어서 미안하다. 너희들은 절대로 늙지마라, 나도 내가 이렇게 늙을 줄은 몰랐다 라고 제목을 달아 놓았다.
그가 좋아했던 코리요 광장에 세워졌다. 높이 2미터, 폭 1미터에 달하는 이 청동 작품은 살라망카 출신의 시인을 나타낸다.
그가 오랫동안 머물렀던 칼레 산 후스토(Calle San Justo)를 따라 코리요 광장(Plaza Corillo)으로 향하는 그의 평소 경로에 세워졌다.
카시야스는 독특한 수염, 뾰족한 모자, 스카프, 시가 담긴 가방으로 아다레스를 묘사했다. 시인 아다레스(Adares)가 살라망카의 코리요 광장(Plaza Corillo)에서 자신의 작은 시집을 팔았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