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화. 악령의 존재
- 신성한 매실
그런데도 수애는 이 장면이 보이지 않는 것 같았다.
수애는 여자가 술에 취해 넘어진 줄 알고 그녀를 도와주고 있었다.
최림이 초로의 남자를 불렀다.
“아저씨!”
그런데 초로의 남자는 최림을 무시하고 여자에게 다가갔다.
그러더니 수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넌 참, 착한 아이구나. 그래, 어려운 사람을 도우면 나중에 복받을 거야.”
수애는 초로의 남자에게 가볍게 인사하고 뒤로 빠졌다.
“미선아, 괜찮아? 오랜만에 고향에 와서 이게 다 뭐냐. 앳된 처자가 대낮부터 술을 마시다니.”
“아저씨?”
“그래, 나야. 아빠 친구. 자, 아저씨랑 너희 집에 가자. 네 아버지가 그때부터 널 기다리고 있어.”
초로의 남자는 여자를 부축해서 떡볶이집을 나섰다.
걸어가는 것으로 보아 여자의 집은 이 근처인 것 같았다.
최림은 그를 따라가야겠다고 생각했다.
“수애야 미안해. 떡볶이는 다음에 먹자.”
“응? 왜 그래?”
수애는 갑작스러운 최림의 행동에 어쩔 줄 몰라했다.
최림은 서둘러 그 남자를 쫓기 시작했다.
하지만 초로의 남자는 마지막 골목길이 끝나는 지점에서 홀연히 사라지고 말았다. 최림은 그 자리에 서서 주먹을 꼭 쥐었다.
그 모습을 초로의 남자가 멀리서 지켜보고 있었다.
경수가 급사하고 한 달이 지났다.
여전히 수애는 친구들에게 미움을 받고 있었다.
최림 또한 이상한 놈으로 낙인찍혔다.
그럴수록 최림은 수애 외엔 아무에게도 말을 건네지 않았다.
그래도 선생님들은 수애를 아꼈다.
그녀의 아버지가 이 시골 마을에서 어떤 존재인지 잘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최림은 그럴 형편이 되지 않았다.
부모님이 돌아가신 가난한 고아였다.
게다가 귀신을 본다는 흉흉한 소문이 돌았기에 선생님들도 그를 싫어했다.
그사이 최림은 방과 후에 떡볶이집 근처를 매일 돌아다녔다.
그 초로의 남자를 만나기 위해서였다.
그런 그를 외할머니와 외삼촌은 몹시 걱정했다.
한때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손주였다.
하지만 매일 저녁 늦게까지 돌아다니는 최림 때문에 걱정이 되었다.
외삼촌은 읍내 농협에 다녔다.
그래서 최림에게 적극적으로 보살필 수가 없었다.
그러던 한날이었다.
그날도 최림은 초로의 남자가 사라진 골목에 홀로 서 있었다.
해가 뉘엿뉘엿 질 때까지 남의 집 대문 앞에 앉아 있던 최림은 깜빡 잠이 들었다.
컴컴할 무렵에 어디선가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렸다.
「내일 작업할 게 그 학교 여선생 말하는 거야?」
「그래, 무당 딸.」
「그렇다 하더라도 그 여선생이 우리에게 직접적인 피해 준 건 없잖아. 그런 사람을 왜 죽이라는 거지?」
「야! 그럼, 그때 경수라는 아이도 마찬가지잖아. 실질적으로 우리에게 피해를 준 건 그 아버지지. 그자가 술에 취해서 우리 아지트에 불을 질렀잖아.」
최림은 경수 이름이 나오자 눈이 번뜩 뜨였다.
어디서 나는 소리인가 싶어 두리번거렸다.
골목 안쪽 어두컴컴한 곳이었다.
「그렇구나. 무당 딸을 죽임으로 하여 그 무당을 벌하는 것. 맞지?」
「맞아. 그 무당이 그동안 우리를 얼마나 괴롭혔냐. 내일 되면 꼴 좋겠다. 그래 내일은 어떤 방법을 쓰지?」
「교통사고.」
‘까르르.’
「그 좋은 방법이네.」
골목 안에는 시커먼 물체 여럿이 모여있었다.
그때 지나가는 사람들도 제법 있었지만, 아무도 그들은 본 사람은 없었다.
오직 최림의 눈에만 보였다.
최림은 내심 무서웠지만, 그들과 가까운 담벼락에 붙었다.
「몇 학년 몇 반 선생이랬지?」
「1학년 진달래반.」
진달래반이라면 최림의 반이었다.
놈들이 이번엔 자신의 담임 선생님을 죽이려 하는 모양이었다.
‘어쩌지?’
최림은 그냥 돌아갈까, 하다가 하늘나라에 올라간 아빠의 말을 되뇌었다.
‘물러서지 마라.’
마침내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최림이 담벼락에서 나올 때였다.
누군가 최림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욱!
그리곤 얼른 입을 막아 놈들이 보이지 않는 곳까지 끌고 갔다.
한참을 갔을까.
마침내 그 누군가는 최림을 놓아주었다.
최림은 화가 치밀어 그 누군가의 발목을 힘껏 찼다.
퍽!
아이쿠!
“이것 봐라. 어린놈이 제법이네.”
“엇! 아저씨?”
놀랍게도 그는 최림이 찾고 있던 초로의 남자였다.
그는 발목이 심히 아픈 듯 쩔뚝거렸다.
“죄송해요. 아저씨인 줄 모르곤.”
“됐다. 이놈아. 그런데 넌 그놈들이 무섭지도 않냐? 쪼그만 놈이 나서긴 왜 나서냐?”
그의 말에 최림은 무릎을 꿇었다.
“전 하나도 무섭지 않아요. 왜냐하면, 전 자랑스러운 아버지의 아들이거든요. 우리 아버진 맨손으로 멧돼지도 잡은 용사였습니다.”
“그래서?”
“절 제자로 받아주세요. 제가 봐도 아저씬 우리 아버지보다 훨씬 용감한 분이에요. 그러니 제발 저에게 무공을 가르쳐주시어 부모님의 원수를 갚게 해주세요.”
초로의 남자는 웃었다.
“네가 무협 만화를 많이 읽었나 보다. 떽! 어린놈이 공부나 할 것이지. 뭐 어째? 제자로 받아달라고?”
“아저씨가 그때 떡볶이집에서 장력을 쓰는 걸 봤어요.”
“시끄러워!”
“아저씨 ….”
“악령들이 장력 따위에 굴복할 것 같아? 어림도 없는 소리야. 그나마 놈들이 날 알기 때문에 그 정도에서 피해 준 거야.”
“피해 주었다고요?”
“그럼, 너 같은 놈은 일격에 죽어. 그러니까 그딴 소리는 집어치워.”
그래도 최림은 물러서지 않았다.
“아저씨는 제 생명의 은인이에요. 그리고 그놈들은 제 부모님을 죽인 원수고요. 아저씨도 자식이 있을 거잖아요. 그러니 제 심정을 헤아려주세요.”
“이런 당돌한 놈! 한 마디로 안 지네. 알았어. 일단 생각해 볼 테니 오늘은 그만 돌아가.”
초로의 남자는 애원하는 최림이 안쓰러워 일단 그렇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이 은혜는 잊지 않을 겁니다. 그럼 언제 뵐까요?”
“야! 이놈아. 내가 생각해본다고 했지. 언제 널 제자로 받아준다고 했냐? 기다려 봐. 내가 내일 서울에 다녀와서 연락하마.”
초로의 남자의 말에 최림은 벌떡 일어나 공손하게 절했다.
“그리고 너!”
“네.”
최림은 그에게서 무슨 말이 나올까 움찔했다.
그런데 그의 입에서 나온 말은 충격이었다.
“난 아직 결혼 안 했거든! 총각이란 말이야.”
“그럼 제가 뭐라고 부를까요? 총각? 아니, 총각님?”
“떽! 이런 버릇 없는 놈. 스승님이라고 불러야지.”
초로의 남자에게 핀잔을 들은 최림은 문득 아까 놈들이 한 이야기를 떠올렸다.
“참! 내일 놈들이 우리 선생님을 해치려 해요. 제가 어떡해야 하죠?”
그러자 초로의 남자가 눈을 감았다.
그리곤 천천히 또박또박 말했다.
“무슨 일이 있더라도 차를 두고 가라 그래. 놈들은 그 선생님의 까만 승용차를 노릴 거야.”
“선생님이 제 말을 안 들으면요?”
“그땐 내 이름을 세 번 불러! 무림 거사님, 하고 말이야.”
그제야 최림의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다.
아침까지만 해도 멀쩡했던 날씨는 마지막 수업 때 비가 내렸다.
처음엔 지나가는 비로 여겼지만, 아니었다.
폭우였다.
수업이 끝날 무렵 선생님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창밖으로 비가 세차게 내리고 있었다.
“버스 타고 가려 했는데 안 되겠어. 차를 가져가야겠네.”
이 소리를 최림이 듣고 손을 번쩍 들었다.
“선생님!”
친구들의 눈이 최림에게 집중되었다.
평소 수업 시간에 질문 한번 제대로 하지 않던 최림이었다.
선생님도 의아한 듯 최림을 쳐다보았다.
“왜? 질문 있어?”
“그냥 버스 타고 가세요. 아님, 교무실에 남아 있던지요.”
최림의 뜬금없는 말에 선생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게 무슨 말이냐?”
“승용차로 가시면 교통사고가 날 거예요. 선생님이 죽을 거란 말입니다.”
그러자 뒤쪽에 있던 아이들의 웃음이 터져 나왔다.
‘헐!’
“새끼! 또 시작이네.”
“미친 것 아냐? 선생님에게.”
최림의 말에 선생님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옆에 있던 수애도 최림의 이런 행동에 속이 상했다.
한동안 말을 잇지 못하던 선생님은 넌지시 최림을 타일렀다.
“최림아. 어른에게 그런 말 하면 못써. 너나 교실에 남아 있다 가든지 해라. 밖에 비가 많이 내려.”
“선생님! 그냥 한 말이 아니에요. 정말 위험하단 말입니다.”
하지만 이미 선생님의 표정은 냉랭했다.
“반장!”
반장이 웃음을 참으며 벌떡 일어섰다.
“모두 차렷! 경례.”
“선생님! 감사합니다.”
선생님은 뒤로 돌아보지 않고 교실을 나가버렸다.
최림은 안 되겠다 싶어 선생님을 따라나서려고 자리를 박찼다.
그런데 그런 최림을 누군가 뒤에서 낚아챘다.
휘리릭~!
그는 학급에서 가장 힘이 센 아이, 종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