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 정치
성경 : 눅23:24-25
같은 예수님인데도 보는 사람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보일까요? 오늘 본문을 보면, 당시 종교지도자들에게 예수님은 꼭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야 될 분입니다. 그러나 주님을 따르는 자들에겐 눈물로 지켜 봐야 할 저들의 구세주 이십니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보시는 예수님은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 (요1:29). “하늘로서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마3:17). 마찬가지로 세상 사람은 우리를 비난의 대상으로 볼 수도 있지만 예수님의 피로 구속된 우리를 바라보시는 하나님은 우리를 두고 보기에도 아깝게 보십니다. 그러므로 이후로의 삶은 생각도 마음도 말도 행동도 하나님 보시기에 두고 보기에도 아까운 삶을 사시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정치라는 말의 그 단어적 의미는 국가의 주권자가 그 영토 및 국민을 통치하는 것 입니다. 본문에 빌라도와 헤롯은 정치하는 사람입니다. 역사가 되풀이 되듯 정치 또한 되풀이 됩니다. 2,000년 전 정치를 돌아보며 오늘 우리가 교훈을 얻고 현대 정치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이며, 어떤 관점으로 바라보며 참여해야 할 것인가를 깨닫는 귀한 시간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1. 정치는 옳고 그름보다, 소신보다 자기유익과 정권유지를 추구한다. “무리가 다 일어나 예수를 빌라도에게 끌고 가서 고소하여 가로되 우리가 이 사람을 보매 우리 백성을 미혹하고 가이사 에게 바치는 것을 금하며 자칭 왕 그리스도라 하 더 이다 하니” (눅23:1-2). 이것은 거짓 고소입니다. 재판하는 빌라도는 주님이 무죄하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있으니 승천하신 자 곧 하나님 아들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 찌어다 우리에게 있는 대제사장은 우리 연약함을 체휼 하지 아니하는 자가 아니요 모든 일에 우리와 한 결 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시니라” (히4:14-15). 예수님은 죄가 없으신 분이십니다. “빌라도가 대제사장들과 무리에게 이르되 내가 보니 이 사람에게 죄가 없도다하니” (눅23:4). “이르되 너희가 이 사람을 백성을 미혹하는 자라 하여 내게 끌어 왔 도다 보라 내가 너희 앞에서 사실하였으되 너희의 고소하는 일에 대하여 이 사람에게서 죄를 찾지 못하였고” (눅23:14). “빌라도는 예수를 놓고자 하여 다시 저희에게 말하되 저희는 소리 질러 가로되 저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가 세 번째 말하되 이 사람이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나는 그 죽일 죄를 찾지 못하였나니 때려서 놓으리라 한 대”(눅23:20-22). 예수님의 죄 없음을 알고 3차에 걸쳐 예수님을 놓아주고자 했습니다. 갈릴리 사람이라는 것 때문에 예수님을 헤롯에게 보내고 빌라도는 이 문제에서 빠지게 됩니다. 정치는 유익하면 끼어들고 복잡하면 빠지는 특징이 있습니다. 옳음에도 불구하고 아무 죄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결국 유죄 판결을 한 것은 정치라고 하는 것이 소신보다 옳고 그름보다 자기자리가, 정권유지가 더 중요하기 때문입니다.
2. 자기의 목적달성을 정치로 풀어간다. 사람이 하는 정치는 정의와 불의에 민감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유익과 피해에만 민감합니다. 이 정치 때문에 예수님이 죽은 것입니다.
3. 정치는 서로의 목적달성을 위해선 적도 한편이 된다. 누가복음 23장 12절 말씀에 의하면 헤록과 빌라도는 서로 적이 될 만큼 사이가 좋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을 죽이는 일에는 서로 친구가 되었습니다. “헤롯과 빌라도가 전에는 원수이었으나 당일에 서로 친구가 되니라” (눅23:12). “빌라도가 예수께 물어 가로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대답하여 가라사대 네 말이 옳도다” (눅23:3). 빌라도 에게는 예수님께서 대답하십니다. 그런데, “헤롯이 예수를 보고 심히 기뻐하니 이는 그의 소문을 들었으므로 보고자 한지 오래였고 또한 무엇이나 이적 행하심을 볼까 바랐던 연고 러 라 여러 말로 물으나 아무 말도 대답지 아니하시니” (눅23:8-9). 헤롯 에게는 아무 말도 하지 않으십니다. 그 이유는, “곧 그 때에 어떤 바리새인들이 나아와서 이르되 나가서 여기를 떠나 소 서 헤롯 이 당신을 죽이고자 하 나이다 가라사대 가서 저 여우에게 이르되 오늘과 내일 내가 귀신을 쫓아내며 병을 낫게 하다가 제 삼일에는 완전하여 지리라 하라” (눅13:31-32). 헤롯 집안은 사람 죽이는 일을 밥 먹듯 하는 집안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사람과 대화 하시다가 입을 닫아 버리신 적이 있는데, 구약에선 사울 에게 입을 닫으셨습니다. “사울이 여호와께 묻자오되 여호와께서 꿈으로도, 우림으로도, 선지자로도 그에게 대답지 아니하시므로” (삼상28:6). 여러분에겐 하나님의 음성이 항상 들려오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4. 정치는 자기가 한 일에 대해 책임을 질줄 알아야 합니다.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마27:24). 빌라도는 예수님의 죄를 찾지 못했으면 무죄를 선언해야 되는데 유죄를 선언하고 손을 씻고 자기는 죄가 없다고 하였지만,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 모든 교회가 사도신경을 할 때마다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 으 사”라는 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원래 정치는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이 초대 이스라엘 왕을 사울로 세워 하나님이 하시던 일을 사울 왕을 통해 대신 이루려고 했던 것입니다. 백성을 돌보고 잘 다스려서 평온하게 하는 참 좋은 것인데 그 정치의 정신은 없어지고 자기의 유익과 욕심만 남았습니다. 그러므로 정치는 역사성, 책임성, 도덕성을 가지고 해야 할 것입니다.
5. 정치는 모두가 참여해야 하는 것입니다. “또 그 백성과 및 그를 위하여 가슴을 치며 슬피 우는 여자의 큰 무리가 따라 오는지라” (눅23:27). 주님을 따르는 많은 사람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죄가 없다고 그들은 왜 소리치지 않았을까 우리가 보기에는 답답합니다. 하나님의 뜻이기에 의인의 침묵이 필요했던 것입니다. 과정의 승리가 결과적 패배를 줄 수 있고 과정의 패배는 결과적으로 승리를 줄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억울한 것만이 아니요. 결과적 승리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롬8:28).
<요즈음 우리 한국 정치 상황을 보면서 몇 가지 권면을 하고자 합니다.> 1. 전 기독교인이 대통령 선거에 참여해야 합니다. 2. 그래도 그 중에서 나은 사람을 찍어야 합니다. 3. 책임 질줄 아는 사람을 뽑아야 합니다. 뽑은 사람도 책임이 있기 때문입니다. 4. 경선의 패배를 인정하고 협력하여 연립내각으로 구현해 나가야 합니다. 5. 잘, 잘못에 대한 책임추궁은 객관성 있게 하고 감정이나 억울함이 있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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