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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복이자 토요일이다. 눅눅한 무더위에 뒤척이다가 눈을 뜨니 채 다섯 시가 되지 않았다. 중국 대륙도 여름 더위가 만만찮다. 특히 창사, 충칭, 우한, 난징, 난창 등은 덥기로 이름난 곳들이다. 어제 밤 늦게까지 허페이(合肥)를 두고 머릿속에서 심상찮은 코로나19 상황, 지속되는 방역통제에 대한 저항 심리, 40도에 근접하는 무더위, 치솟는 유랑끼 등이 서로 밀고 당기며 씨름을 했지만 결판이 나지 않았었다.
이곳 상하이에 근무할 동안 중국 내 주현급(州县级) 700여 개에 달하는 도시들을 모두 둘러볼 수는 없을 터이지만 최소한 이 나라 22개 성의 성도만이라도 모두 둘러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더구나 허페이는 우리 공관 관할구역 중 하나요 고속철도로 2시간 반이면 닿는 지척에 있는 인구 6천100여만 명 안후이성의 성도이다.
지난 2월초 춘절 기간 중 다녀온 타이안(泰安)의 태산이 상하이 밖으로의 마지막 출행이었다. 그 후 4월과 5월 두 달간의 도시 봉쇄와 이어지는 방역 통제로 상하이 밖으로는 나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이른 아침에 눈을 뜬 참에 허페이 출행 결심을 굳히자 마음이 바빠졌다. 가장 중요한 열차표을 예매하려는데 오래도록 사용할 일이 없었던 터라 예매 어플("铁路12306") 자동 로그인이 되지않아 여러 번 시도해도 비밀번호가 맞지를 않는다. 비번을 새로 발급받으려 해도 휴대폰 창에는 에러 메시지만 계속 뜬다.
일단 전철을 타고 기차역으로 가면서 비번을 새로 발급받거나 잃어버린 기억을 찾아 예매를 시도해 보기로 했다. 작은 배낭에 여권 충전기 셔츠 반바지 등을 챙겨넣고 서둘러 집을 나섰다. 10호선 이리루 전철역에서 홍챠오 기차역으로 가는 첫차가 06:08에 출발하기 때문이다. 이른 한여름 열기가 밤새 누그러졌는지 아침 공기는 의외로 그대지 무덥지 않다. 아파트 옆 공터에서 남녀 끼리끼리 짝을 지어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 텅빈 아스팔트에서 자전거를 타거나 조깅을 하는 사람들, 웃통을 벗어던진 채 반려견을 데리고 산책을 나온 아저씨,... 동네 풍경은 평소의 주말 아침과 다름없는 모습이다.
전철 안에서 이것저것 글자와 숫자를 조합해서 비밀 번호를 넣어 보지만 예매 어플의 굳게 닫힌 문은 꿈쩍도 않는다. 홍차오 역에 도착하자마자 멀리 떨어진 창구로 달려갔지만 애초 06:53 상하이 출발-09:18 허페이 도착 표는 구할 수 없고, 그나마 제일 이른 07:55에 출발하여 09:46 허페이 남역으로 도착하는 열차표 한 장을 손에 쥐었다. 기왕에 기차역까지 나왔으니 집으로 그냥 발길을 돌리는 것이 내키지 않았기 때문이다.
건물, 공원, 기차역 등을 출입할 때 확인 절차인 창쒀마(场所吗) QR코드를 휴대폰으로 스캔하고, 실명 검표소에서 여권과 기차표를 제시하여 검표를 하고, 엑스레이 짐 검사와 신변 금속탐지기 검사 등을 거쳐 출발 홀로 들어설 수 있었다. 축구장 예닐곱 개 넓이의 대합실은 두 달간 봉쇄에서 풀려난 도시답지 않게 대륙 각지로 가는 열차를 기다리는 사람들로 인산인해다. 등 뒤편 의자를 차지하고 앉은 여학생들이 깔깔 웃음을 곁들이며 수다를 떠는 목소리가 높고 경쾌하다.
빈 의자를 찾아 자리를 잡고 앉아 휴대폰에 저장해 둔 통장과 카드 번호와 비번, 각종 인터넷 사이트 계정, 여권번호 등을 메모해 두었던 수첩 한 페이지, 그 캡쳐 본을 찾았다. 그 중 기차표 예매 어플의 아이디와 비번이 있어 차근히 입력하니 거짓말처럼 로그인이 된다. 마치 '알리바바와 40인의 도적' 이야기에서 보물을 숨겨둔 동굴 앞에서 "열려라! 들깨, 보리, 콩,.." 등을 읊어보다가 "열려라 참깨"라고 외치자 홀연히 동굴 문이 활짝 열릴 때의 희열이랄까. 한편 허탈하고 한편 돌발적으로 감행하려 나선 칠칠맞은 준비성을 자책도 해본다. 돌아오는 기차표를 미리 예매해 두니 마음이 조금 편안해진다.
당일치기 출행이다 보니 되도록이면 코스를 짧고 심플하게 잡아 허페이역 부근에 모여 있는 안후이성박물관 구관, 포청천 공원, 소요진 공원 등을 둘러볼 요량이다. 시 서쪽 외곽에 위치한 삼국지 유적공원은 둘러볼 시간적 여유가 없을 것이다. 도착역이 허페이역에서 도심 남쪽의 헤페이 남역으로 바뀌었고 도착 시간도 늦어졌으니 그만큼 시간을 손해를 본 셈이다.
예정 시각보다 2분여 일찍 출발한 열차가 다음 역이 난징 남역이라고 알린다. 금새 도심을 벗어난 열차 차창 밖은 잔뜩 흐린 하늘이 짙은 녹음으로 덮인 대지를 포위하듯 내려앉았다. 그 모습이 마치 저녁과 밤 사이 어둠이 몰려드는 개와 늑대의 시간처럼 느껴진다.
젊은 엄가 아이와 함께 차창 밖 호수를 보며 감탄하며 주고 받는 대화가 정겹다. 차창 밖으로 쑤저우 북동쪽에 위치한 양청후(阳澄湖) 가장자리를 지나고 있다. 고속열차는 쑤저우(苏州), 우시(无锡), 창저우(常州), 단양(丹阳), 쩐쟝(镇江) 등의 고속철도 역사를 지나쳐 50여 분만에 난징 남역에 잠시 정차했다. 과도하게 냉방을 한 객실 공기에 몸이 잔뜩 움츠러들어 한참동안 객실 밖 연결 칸 벽에 기대어 서서 스쳐지나는 바깥 풍경에 눈길을 주었다.
상하이 시정부가 지난 달 <2022년 상하이 하계 전력 피크대응 공지>를 발표하고 "가정용 전기에 대해서는 제한을 두지 않겠다."라고 천명한 것을 보면, 이곳 중국은 인민의 복지를 최우선시 하는 공산주의 국가임이 분명한 것이다. 산업용 전력을 저렴하게 공급하고 전력난이 예견되면 국민들에게 절전을 읍소하는 우리나라의 정책과는 대조적이라는 생각이 든다.
상하이를 출발한지 채 두 시간이 되지 않아 안후이성의 성도(省都)인 허페이 남역에 도착했다. 허페이남역의 도착 여행자에 대한 방역 절차는 엄격해 보인다. 상하이에서 도착한 승객들은 별도의 출구로 안내되어 코로나19 핵산검사를 마친 후 밖으로 나가도록 통제되고 있다. 택시 승강장으로 가서 안휘이성의 별칭인 '완(皖; 환)'으로 시작되는 번호판의 택시에 올랐다.
"더위가 만만찮다."는 인사를 건네고 안후이와 헤페이에 대해 묻자 기사 양반은 기다렸다는 듯이 이 지방의 지리 교통 인물 등 여러 분야에 걸친 특성에 대해 말을 쏟아 내기 시작했다. 허페이는 창장(长江)과 화이허(淮河) 사이 화동지역 내륙 깊숙히 자리잡고 있어 수운의 혜택에서 벗어나 있고, 성도를 놓고 서로 겨룬 수운과 경제의 중심지 우후(芜湖)나 뻥부(蚌埠)처럼 북경-상해 철도의 대동맥상에 있는 교통의 요지도 아니며, 심지어 타 지역과 달리 고유의 방언조차 없는 특색이 어정쩡한 도시라는 논조다.
천하제일 샘(天下第一泉) 풍경구 대명호(大明湖)의 도시 지난(濟南), 서자호반(西子湖畔)의 도시 항저우(杭州), 황학루(黃鶴樓)로 이름난 우한(武漢), 육조고도(六朝古都) 난징(南京), 중국 철도망 중심에 있는 정저우(鄭州) 등 주위를 둘러싼 다른 성(省)의 성도(省都)에 비해 면모가 쓸쓸해 보인다는 어떤 자료의 내용과도 일맥상통하는 설명이다.
나중에 위챗으로 중국 친구에게 기사의 말이 사실인지 묻자, 안후이 사람들이 그의 말을 들었더라면 당장에 택시기사를 깨물어 주었을 것이라는 대답이다. 전임 후진타오 주석과 현직 리커창 총리가 이곳 출신이요, 개혁개방이 시작된 곳이요, 황메이(黄梅剧)의 고장이요, 천하제일 기산(奇山) 황산과 불교 4대 명산 중 하나인 구화산(九华山) 등 자랑거리가 수두룩하다는 메시지도 함께 날려왔다.
사실 허페이는 2000여 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고장으로 춘추시대부터 그 이름이 등장하고, 삼국시대에는 조위(曹魏)와 동오(东吴)가 서로 쟁탈하던 곳으로 동 페이허와 남 페이허의 발원지라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1952년 안후이성 인민정부가 허페이에 정식으로 설립되었고, 지금은 환강(皖江) 도시벨트 산업시범구의 핵심도시이자 국가과학기술혁신 시범도시로서 중국 내 4대 과학교육 기지 중 하나가 되어 절치부심 도약을 꿈꾸고 있기도 하다.
한편, 안후이는 옛부터 걸출한 인물들을 많이 배출한 지역이다. 춘추전국시대 이래 장자, 관중, 범증, 장량, 조조(曹操, 155-220), 주유(周瑜, 175-210), 화타(145-208), 송대 포증(包拯, 999-1062), 명 태조 주원장(朱元璋, 1328-1398), 근세 리홍장(李鸿章, 1823-1901), 리커창(李克强, 1955-), 후진타오(胡锦涛,1942-) 등이 안후이 출신이며, 그 중 포증과 리홍장은 이곳 허페이 사람이다. 그래서 "중국사에 걸출한 인물들을 배출한 고장이지만 정작 자신은 발전이 더딘 낙후된 지역"이라는 평가에는 안후이 사람들의 아쉬움이 배여있다.
기차역에서 택시로 이십여 분만에 첫 행선지인 안후이성박물관에 도착했다. 입구에서 '안캉마(安康码)' 제시를 요구하는 안내원에게 외국인이라 휴대폰에 표출이 되지 않는다는 설명과 함께 48시간 내에 핵산검사 결과 음성임을 확인하는 녹색 '수이선마(隨申码)'와 여권을 제시하고 인적사항을 기재하고서야 박물관으로 입장 할 수 있었다. 박물관 규모는 예상했던 것보다 훨씬 작고 아담했다. 더군다나 공산당 혁명, 항일전, 국공내전, 공산당 정권 수립 후 역대 지도자들의 박물관 방문 사진 등으로 채워진 내부의 모습은 실소를 터트리게 하기에 충분하다.
박물관은 중앙 3층 건물을 중심으로 좌우로 50여 미터씩 2층 전시실이 연결된 구조다. 1층 서편 '초심영강회(初心映江淮)' 주제 전시실은 중국공산당 100주년을 경축하는 역사 사진들로 채워있고, 동편 '봉화강회(烽火江淮)' 주제의 전시실은 안후이 지역 혁명역사 관련 사진 자료들로 꾸며져 있다. 강회(江淮)는 화이허(淮河) 이남과 장강(长江) 이북 일대 등을 지칭하니 허페이 등 안후이에서의 초기 공산당 활동을 조명하고 있는 전시실인 셈이다.
"강을 건너 진공한 때로부터 지금까지의 발자취"라는 의미로 보이는 '이금매보총두월(而今迈步从头越)' 주제의 3층 전시실은 마오쩌뚱의 안후이성 박물관 시찰을 기념하여 그를 비롯한 류샤오치, 주더, 등샤오핑, 주은래, 동필무, 친의, 이선념, 팽더후이 등이 박물관을 방문했을 때 찍은 대형 기념 사진들이 벽을 가득 채우고 있다.
2층의 동편 전시실은 잠겨 있고, 서편은 젊고 아름다운 여인을 의미하는 '녹빈주안(绿鬃朱颜)'이라는 주제의 전시실로 당시 여성들의 모습을 부채와 족자에 그린 명청(明清) 시기의 그림 100여 점이 전시되어 있다.
'안후이호인관(安徽好人馆)'이라는 이름이 붙은 전시실은 이 지역 효자 효녀 효부 의인 등 도덕적으로 모범이 될만한 사람들의 사진과 사연을 빼곡히 전시하고 있다. 명칭이 박물관이지 공산당 혁명과 충효 교육의 장이라고 불러야 적당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도 일개 성을 대표하는 박물관이 이정도밖에 되지 않을 줄이야 생각지도 못했다. 아마도 거의 모든 유물들은 신관으로 이전해 갔을지도 모를 일이다. 명색이 박물관인데 뭔가 많이 부족하고 빠진듯 하여 마음 속에 괴인 아쉬움을 떨치며 안후이성박물관 구관을 뒤로했다.
정오로 치닿는 도심의 빌딩숲과 아스팔트 거리는 열기로 후끈 달아올라 온 몸은 땀이 흥건하고 숨은 턱턱 막힐 지경이다. 바이두 지도 어플로 택시를 불러(打车) 포공원(包公园)으로 향했다. 우리에게 포청천으로 잘 알려진 포효숙공(包孝肅公)의 묘원과 포공원은 동서로 마주보며 길쭉한 연못을 끼고 자리한다. 입장권을 25위안에 구입하여 묘원으로 들어서면 신도비, 신문(神门), 석각군, 위패를 모신 형당(亨堂), 그 뒤에 난간석으로 둘러싸인 정사각 주묘(主墓)가 일직선상에 차례로 자리한다. 찾아오는 사람들이 거의 없는 뜨거운 여름의 한낮, 신위를 모신 형당 안에는 관리인이 더위에 지쳤는지 선풍기를 켠채 움크린 몸을 의자에 누이고 꿈나라 여행을 하고 있다.
포공묘 뒤편에 있는 비석과 목조각 회랑(碑画廊)과 좌측 부묘실에 모여 있는 포공의 부인, 아들, 며느리, 손자 등의 묘소와 빠오공의 지하묘실 등을 둘러보았다. 묘원을 뒤로하고 호수 안에 자리한 작은 섬으로 물 위에 떠 있는 버들잎을 닮았다는 공원처럼 조성된 푸좡(浮庄)을 둘러보고 더위에 쫓기듯 포공원 쪽으로 되돌아왔다. 쑤저우, 양저위, 휘저우 지방 전통을 융합한 건축물들을 볼 수 있다는 안내문은 머리에 들어오지 않고, 입구 안내소 여직원이 한국인임을 알아채고 자기 남편(老公)도 한국인이라고 반색하는 얼굴에 나도 덩달아 미소를 한 번 지어 보였다.
이번주 중국 기상관측소 중 71곳 기온이 역대 최고치를 갈아치웠는데, 섭씨 44도를 넘은 곳도 있다고 한다. 상하이는 13일 40.9도로 1873년 기상 관측이 시작된 후 149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는 보도도 있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는 말도 있지만, 아무리 좋은 경치도 몸이 불편하면 눈에 들어오지 않기 마련일 것이다.
뜨겁고 무거운 구름으로 가득찬 하늘은 으르렁대며 금방이라도 소나기를 쏟아 부을 태세다. 포공묘원을 마주보며 포공원 한켠에 우뚝 솓아 있는 청풍각(青风阁)으로 들어서니 냉방 시설을 갖춘 내부의 시원한 공기가 땀과 눅눅한 습기에 젖은 몸을 비집고 들어온다.
포공의 대형 목각 부조가 맞이하는 1층에서 엘리베이트를 타고 5층으로 올라 누각 둘레의 난간으로 나갔다. 사방으로 툭 트인 전망은 허페이 시내를 동서남북으로 멀리까지 펼쳤고, 호쾌한 바람이 거침없이 누각 난간으로 몰아치며 온몸을 때린다. 멀리 시내의 빌딩군이 비구름에 휩싸였고 누각 난간 모퉁이를 돌아설 때마다 바람은 방향을 바꾸며 바지통을 부여잡고 흔들며 머리칼에 스며든 습기와 땀을 씻어간다. 그 바람에 몸을 짓누르던 더위와 짜증은 물론이요 오늘 하루 새벽, 아침, 그리고 점심 시간이 훌쩍 지난 지금까지 가슴 조이던 걱정들이 일거에 흩어져 버릴 것만 같다.
5층 누각 안은 충효를 실천하고 백성을 위한 공명정대하게 행정을 집행한 포공의 언행, 행실, 가풍 등을 소개하는 자료들로 꾸며져 있다. 계단을 따라 4층 집무실, 3층 청심관(请心馆), 2층 정직청(正直厅)을 거쳐 1층으로 내려왔다. 청심관 벽면의 "청렴한 자는 백성의 표상이요, 탐욕스러운 자는 백성의 적이다(廉者民之表也 貪者民之敵)"라는 글귀에 다산이 지은 <목민심서> '청심(请心)'편의 "청렴은 목민관의 기본 임무다(廉者牧之本務)"라는 첫구절이 떠오른다.
'궁행청(窮行厅)'이란 이름이 붙은 1층과 2층 사이에 숨어 있는 쟈층(夹层) 입구의 '입족평범 추구숭고(立足平凡 追求崇高)' 글귀도 젊었던 시절 많이도 되뇌이던 "발은 땅에 뜻은 높게"라는 경구를 떠올리게 한다.
1층 포공의 목각 부조를 마주하고 섰다. 긴 수염에 당당한 표정에 중국 역사상 가장 강직한 관료로 평가받고 있는 포공(包公)의 위엄이 서려있다. 검은 얼굴, 흰 눈썹, 하얀 초승달 모양의 흉터, 날카롭고 빛나는 눈빛 등의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지만, 실제의 얼굴은 검지 않고 초승달 모양의 자국도 없었다고 한다. 드라마에 나오는 공손책, 왕조, 마한, 장용, 조호 등 인물들은 물론이고 용적두, 범작두, 개작두도 허구라고 한다. 백성들을 위하는 청렴 강직한 관료을 원하는 후세 사람들의 바램이 사실에 첨삭을 가하여 드라마의 각본을 쓴 것이라고나 할까. 청풍각 밖으로 나서니 어느새 소나기가 한바탕 쏟아졌는지 땅바닦에 물기가 촉촉하다. 따처(打车)하여 다음 행선지인 소요진 공원으로 향했다.
공원 입구에서 택시를 내리니 공기는 여전히 사우나탕에 들어온듯 뜨겁다. 소요진 공원 남문 맞은편 수춘로(壽春路) 건너 상가 거리의 충칭면관에서 충칭소면과 닭꼬치 두어 개로 허기를 채웠다. 작은 식당을 운영하는 부부는 내가 한국 사람임을 어떻게 알아차렸는지 상하이에서는 좀처럼 느낄 수 없는 친근함을 드러내며 반색한다.
소요진 공원 정문으로 들어서니 오른손으로 말 고삐를 쥐고 오른손에 창을 거꾸로 세워 꼬나잡은 장료(张辽,169~222)의 기마상이 맞이한다. 215년 손권의 10만 대군이 허페이로 쳐들어오자 조조 휘하 대장 장료와 이전의 7,000명 병사는 선제공격으로 손권의 대군을 격파했고, 군사를 먼저 물리고 이곳 소요진에 다다른 손권을 공격하여 도망치게 했다고 전해진다. 삼국지 속 영웅들의 발자취는 온데간데 없고, 호수와 수목이 잘 어우러진 쾌적한 공원은 평소 주민들의 산책 코스로 안성마춤이지 싶다.
공원 내 삼국지 역사관은 문이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다. 포공의 묘처럼 장료 장군의 묘도 비슷한 규모의 사각형으로 조성되어 있다. 묘원으로 들어가는 양쪽에 양, 호랑이, 사자 석상이 <단가행(短歌行)>, <관창해(观沧海)> 등 조조의 시비(诗碑)와 그의 아들 비(丕), 식(植)의 시비가 각각 한 쌍이 되어 도열하고 있는 점이 특이했다. 조조와 그의 두 아들은 꼿꼿한 심정으로 공훈을 쌓고 싶은 야망을 노래한 건안문학을 대표하고, 장료는 조씨 왕조인 위나라의 장수였으니 그럴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요진 공원을 나서서 열차 시간을 최대한 당겨서 상하이로 돌아갈 요량으로 사우나 한증막에서 도망치듯 차를 불러 허페이역으로 행했다. 출발 시각을 두 시간여 당겨 17:12 출발 20:14 상하이 홍챠오역 도착 열차에 올랐다. 빈좌석이 거의 없이 승객을 가득채운 열차 안은 체온과 희석된 냉기가 적당해서 금새 몸이 편안해졌다. 고속 열차는 난징 남역 외에 쩐장(镇江), 단양(丹阳), 창저우(常州), 우시(无锡), 쑤저우(苏州), 쿤샨(昆山)에서 각각 정차를 했고, 그 때문에 세 시간만에 상하이에 도착했다.
금년 상하이 봉쇄 기간 중에 지난 해 중국 각지를 돌아본 기록들을 모아서 "땀과 감흥에 젖은 중국 기행"이라는 책을 펴냈었다. 오늘 하루 번갯불에 콩 볶듯 감행한 허페이 출행은 그다지 "감흥"은 크지 않았지만 여실히 "땀"에는 흠뻑 젖은 여정이었다. Laoja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