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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남금북정맥 제 4구간
대안고개-새터고개-살티고개-국사봉-추정고개
2015.11.16
거리:14 km
시간: 5시간 20분
가을에 들고서도
내 生의 가을을 모른다.
낙엽 진 숲을 그렇게 걷고서도
세월의 無常함을 모른다.
우리는 이렇게 모르고 살다 죽는다.
안다는것은 굳이 모르는 일.
알려할수록 의심만 쌓여간다.
이 알쏭달쏭한 세상이 궁금하여
나는 오늘도 걸음을 자청한다.
대안리 풍경
10:00
사진의 기능은 단지 새롭고 신기한것을 담기 위한것만은 아니다.
길을 걸어며 담아 온 풍경 중에는
오히려 그 반대인 경우가 많다.
흔한것.
그냥 지나쳐도 그만인 풍경.
하지만 그런 풍경들을 향해 내가 먼저 말을 건낸다.
사진기를 들이대는 순간
풍경은 산꼭대기 정상석에서 한껏 멋을 부리며 서 있는 여느 사람들처럼
다 나름의 표정과 감정을 드러낸다.
아무리 바보라도 시작은 할 수 있다.
그렇게 시작한 발걸음이 나를 여기까지 데려다 놓았지만
어설프게 시작한 연애처럼
나는 내 걸음의 끝을 예측할 수 없다.
19번 국도변의 대안리 고개에서 산행을 출발한다.
위험해 보이는 경사길을 따라 산길을 10여분 오른다.
370봉에 도착하여 급 우측으로 돌아 다시 경사길을 따라 내려간다
안부에 내려섰나 싶었더니 다시 가파른 고개길이 나타났다
오르막이 땡초처럼 매섭다.
본격적으로 산행을 시작한다.
어쩐지 오늘은 시작부터 컨디션이 좋다.
물고기처럼 힘이 펄떡거린다
이 기조로 산행이 계속 이어졌으면 좋겠다
코에 닿을듯한 경사길을 오르는 일행
산이 높은 만큼 계곡은 깊은 법.
높은산 깊은 골의 좌측 마을을 峨谷理(아곡리)라 이름붙여 부른다.
임진왜란 때 적군이 쳐들어오는 줄도 모르고 연기피워 밥을 해 먹다
'아차 실수'를 했다고하여 아차실 혹은 아치실로도 불리웠다고 한다.
산너울을 타고 고개를 몇개 넘었나 싶다
금적지맥의 게으런 능선이 보이는 분기점에서
구룡산 직전인 440봉에서 금적지맥이 분지된다
금적지맥은 노성산-거망산-덕대산-금적산-국사봉으로 이어져 옥천군 청성면 합금리에서
금강과 만나 사라지는 도상거리 45.5km의 산줄기이다
분기점에서 급 우측으로 회전하여 다시 내리막길을 내려간다
갑자기 빈 개활지가 나타나고
시그널이 덕지덕지 달린 개활지 경계를 지나자
용처를 알 수 없는 개활지가 나타났다
가을빛을 시원하게 머금은 풍경이 들뜬 마음을 진정시킨다
새터재 너머로 602봉이 보이고 능선 좌측 맨 끝즈음에 525봉인다.
525은 팔봉지맥(단군지맥) 분기봉이다.
오늘 맥길의 방향은 이 곳에서 ㄷ자 형상으로 빙 돌아 좌에서 우로 진행된다.
개활지 지나 법주리의 야트막한 언덕 하나를 넘으면 쌍암재에 도착한다
설치미술 처럼 시그날이 집요하게 달린 길을 지난다
세상이 고요하다.
소리를 지배했던 한 무리의 사람들이 지나가고
길가의 잡목처럼 고요가 쌓이기 시작했다.
원경의 끄트머리에 적막이 방점으로 자리잡았다.
잠자리 날개같은 가을 햇살이 실눈을 뜨게했다
세상은 하오의 호수처럼 잔잔하고
마른 잎을 스치며 지나가는 발자국마저 조심스럽다
과제처럼 오늘 지나야할 길들이 펼쳐진다.
세상이 참 단순하게 느껴진다.
풍경이 파노라마처럼 시원하다
자는 잠에 갔다는 한 선답자의 부고처럼
낮은 구릉의 산에는 해석할 수 없는 슬픔이 서려있었다
눈덮힌 겨울 그는 이 길을 지나갔다.
그가 쉬 넘었다는 이 길을 나도 쉬 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잘것 없는 동질성이 추념을 북돋운다.
산자와 죽은자의 골 만큼 풍경 또한 느슨해
마치 저녁을 향해 저물어가는 산이나 강처럼
내 마음을 속절없이 가라앉혀도 좋을것만 같았다.
늦가을 햇살이 익혀 줄 과일 나무 하나 보이지 않는데
미련으로 남은 나목이 가을의 정취를 일깨운다.
세상은 겉돌아 멀어진 친구의 소식처럼 마음은 헛헛하다.
단색의 그림처럼 고독한 관악의 소나타가 그립다.
값비싼 커피를 마시며 내가 지불한것은 커피값이 아니라
커피의 온기임을 깨닫는다.
세상은 고요하고 억새는 슬픔을 극복한 여인처럼 말이 없다.
긴 길을 걸어왔지만 어쩐지 혼자란 기분이 들었다.
햇살은 햇살로 다감했고
부피로 쌓인 낙엽은 걸음을 편하게했다.
정적의 방점에 다다르기 위해 나 조차 정적이 되어가는 기분이었다.
쌍암재 290m
- 펌 -
청원군 법주리와 보은군 회인면 쌍암리 경계로 571번 지방도이다.
쌍암마을 뒤 횡계봉 아래에는 계수나무가 있고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넓게 둘러친 아래에 영험있는 산신제단이 있다 하여
축원하는 사람이 끊이지 않는다 한다
법주리는 원래 회인현 동면 지역으로 버드나무가 많아 버드리라고도 부르고
구룡산 밑의 골짜기가 되므로 법줄 혹은 法主라고도 불렀다
쌍암재를 동저울고개 혹은 법주리고개라고도 부른다.
오늘이 그렇다는것은 아니지만
떨어지는 낙엽조차 성가신 날이 있다.
생각이 생각을 괴롭혀 걸음이 성가시고
때로는 생각에 너무 몰입한 나머지 내가 어디를 걸어왔는지 조차 잊어버릴 때도 있다.
하지만 오르막에 이르게 되면 왠만한 걱정들은 다 사라진다.
심지어는 내가 뭘 생각했는지 조차 잊어버릴 때도 있다.
그렇다고 생각을 다시 좇을 필요는 없다.
사유는 사유로서 즐거움이다
아무려면 어떤가.세상의 근심들은 대개 결론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
근심은 다만 근심인 채 허망한것이다.
나는 나를 내버려둔다
그런 까닭에 나는 생각을 번뇌라 여기지 않는다.
번뇌와 열반은 빗장을 사이에 둔 두 세계다.
노랗게 물든 낙엽송.
희미한 광촉의 추억.
반 지하의 방과 같은 내 마음에 바야흐로 불을 지펴야 할 가을이지만
이제 더 이상 당신으로 인해 데워질 세상이 없다는게 서글프다.
당신이 보여 준 세상은 고독이었을까?
아니면 고립이었을까?
이제 죽어 의문이된 당신과
추억을 과장해야할 내가 남았다.
누구도 죽음을 대신하지 못하는것처럼
.
나는 나
너는 너
세상은 왜 이리 극명한가.
우리는 각자 절멸의 길을 가기로 예정되었나 보다.
새터고개
화북면 쌍암리 지바우로 가는 고개
거울은 단지 제 모습을 비추어 줄 수 있을 따름이지만
타인을 거울로 삼으면 삶의 덕과 실이 보인다고 한다.
길을 거울로 삼아 걸어가고 있는 나는 길 속에서 무엇을 찾았을까?
산행의 유일한 의미는 스스로를 길에 비추어
그 비유를 통해 삶을 통찰하는것이 아닐까.
602봉이 다가오고
하늘에 점들이 떠있다.
붉고 열정적인 점들이다.
그 점들 아래 구기자가 익어가고 오가피가 영글어갔다.
세상에 가장 대비되는 색으로 자신을 드러내는 생물,
그에 비해 늘 무채인 나는 초라하다.
가장 아름다운 순간 떨어져버리는 낙엽처럼
나도 떨어져야할 시간들을 예견할 수는 없을까?
노랗게 물든 낙엽송을 바라보며 걷는 동안
떠날 때를 맞추어 익어가는 나무들에게서 존재의 숭고함마저 느껴진다.
인생의 종착역으로 향하는 플랫폼처럼
잘 정돈된 가을이다.
잔잔한 미소
평안한 안식
생의 마지막을 기다리는 갈잎의 모습들이 사뭇 경건하다.
저 길을 지나게되면 또 새로운 생애가 나를 기다리고 있을까?
모든 죄업이 무효화되어
깨끗이 세탁된 이력을 들고 세상에 다시 나오는 그런 길이.
하지만 새로운 생애를 받았다한들
나는 또 어쩔것인가?
이렇게 오늘처럼 산을 넘고 길을 걸을 수 밖에...
500봉을 지나 단군지맥이 분기하는 525봉을 오른다
잘 비질된 거리를 걷는것처럼
황갈색 모노톤인 길을 걸으며 삶의 시작과 같은 신선함을 느낀다.
가을 숲이 그렇다
투명한 매질을 헤쳐나가는듯한 느낌.
고요가 너무 진하여 걸음에 부하가 걸릴듯한 그런 청명함을 경험한다.
단군지맥이라 씌여진 비석이 왠지 생뚱맞아 보인다
그 옆에 쓰여있는 백두대간이란 글자 때문이리라
하지만 비석 뒷면에 세겨진 천부경은 그렇게 생뚱맞게 취급되어져서는
안 될 내용이었다
- 펌 -
천부경(天符經)
우리 천손 천민의 배달겨레는 개천 이래로 위대하고 거룩한 3대 경전으로
.一始無始一(일시무시일)
525봉 팔봉지맥 분기점
- 펌-
팔봉(단군)지맥: 팔봉지맥 또는 단군지맥이라 하는데 한남금북 보은 회인면 쌍암리 새터재-528m 분기하여
피반령-봉화산-작두산-국사봉-용덕산-팔봉산-은적산-망덕산-노적산-을 거쳐 미호천(금강지류)으로 스며든다.
단군지맥이라 함은 은적산 정상에 단군성전, 천부경을 모시고 있기 때문이다.
오늘의 최고봉인 602.3봉을 오르기 전 전위봉인 593봉을 오른다
군사용 벙커가 보인다.
북과 남
어느쪽을 막는 벙커일까?
602.1봉이 보인다
602.1봉 삼각점
식사를 마치자 구룡산에 다녀 온 일행들을 만났다
그들과 함께 길을 떠나며
뒤따라 올 일행들과 인사를 나눈다
산길은 고요했다
이따금 나뭇가지 사이로 쇠약한 가을빛이 빗금을 그리며 날아들었다.
포레의 파반느를 떠 올릴 때 마다 발아래에서는
깊이를 알 수 없는 파열음이 묻어났다
소개가 끝난 전장의 마을처럼 적막은 암울했고
함초롬히 빛을 머금은 잎새는 생의 마지막 호흡을 했다.
산행이 좋은것은
길을 걷는것에는 승리도 패배도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로지 성취만이 존재할 따름이다.
돌이켜보면 패배라 생각했던 내 곤궁한 기억들도
세상이 아닌 결국 나 자신에대한 패배였다.
하지만 산길을 걷다 곰곰히 생각해보니 그 패배라는것들도
다만 스스로 패배라 규정한 패배였지
패배라고 할것도 없는 일종의 자기 학대에 불과했다.
가파른 산길을 오를 때의 거친 호흡처럼
패배란 단지 고통에 지나지 않았다.
길은 위로의 방법을 아는것일까
좁은 길을 혼자 걸을 수 밖에 없다는것은
길이 주는 또 하나의 교훈이다.
세상은 혼자 걷는 길만큼 단순하다.
어제로 인해 오늘이 있다는 인과의 관념들도 다분히 망상이다.
오늘은 다만 오늘을 위해 존재할 뿐이다.
믿기 힘들 만큼 단순하고 순수한 삶의 진미를 알아차리지 못할 때
인간은 행복의 자격에서 멀어진다
적막하고 고독한 늦가을의 길을 걸었다
홀로 늙어간 처녀의 임종을 바라보는듯 했다.
세상은 단순하다.
지나칠정도로 단순하다.
어쩌면 이런 단순함이야말로
인간에게는 더 행복해질 수 있는 기회가 아닐지 모르겠다
살티재(475m)
보은군 내북면 화전리에서 청원군 가덕면 금거리를 잇는 고개이다
옛날 노인 한분이 삼일동안 올라 이 곳에서 죽었다하여
3일재라고 불렸다는데 노인이 왜 이곳에 그토록 오르려했는지는 알 수 없다.
전국의 많은 살티재라는 지명은 주로 화살과 관계된 지명인 경우가 많다.
대안리의 말구리 고개에서 살티- 미티를 지나 청주로 이어지는 길목이다
오래된듯한 돌탑 하나가 보인다
몇개의 봉을 지루하게 넘어 국사봉을 향해 나아간다
청원군 낭성면과 보은군 내북면의 경계가되는 산이다
국사당이 있는 산이라는데 이 지방 사람의 신앙의 중심이 된 산이었나보다
국사봉 동쪽에는 예로부터 무릉도원이라 불리었던 이상향이 있고
남쪽으로는 花田고을이라는 아름다운 꽃동네가 있다.
그만큼 사람 살기 좋은 동네라는거다
국사봉 삼각점
521 봉을 오르며
토요일 늦게까지 마신 술이 원인이 되어 동료의 걸음이
오늘따라 유난히 난조를 보인다.
다행히 크게 문제가 될 정도는 아니었지만
이번 산행에 유난히 컨디션이 좋았던 나는 아픈 사람을 잘 배려하지 못한것 같아
마음 한켠이 무거웠다.
형제처럼 의지하며 걸어 온 두 분의 동료애가 오늘따라 더 따사롭다
저녁빛을 머금은 낙엽송은 금빛처럼 화려하다.
하지만 눈에서 느끼는 아름다움을 내 똑딱이는 재현할 수 없다.
고민없이 퍼다주는 풍경을 두고 사진이라 할 수 없지만
풍경을 과장한 후보정도 나는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사진은 모름지기 담담하여야한다.
사진은 서로 다른 세상의 사람들을 연결해 주는 다리이다.
다리가 잘린 답답한 내 사진을 복원하기 위해
나는 또 무거운 카메라를 들어야할까?
긴 산길이 힘에 부치다보니
어디에 사진을 내보이고 싶은 마음도 옅어지고
잘 찍고 싶은 욕망 또한 무뎌진지 오래다.
내 사진은 내 기억의 소박한 책갈피.
시간의 일기일 따름이다
자작나무 숲도 덤으로 나타나고...
1대간 9정맥을 완주하고서도
형님은 말씀이 없으시다.
길이란 그런것.
길은 깊을수록 소리를 낮춘다
길 위의 삶이나 길 밖의 삶이 다름이 없을진데
형님이 보여 주는 不二의 여정은 언제나 담백하다.
추정고개
노나무 혹은 개오동나무를 뜻하는 楸는
이곳이 예로부터 노나무가 많아 추동이라 불린데서 유래되었다
열매가 노끈처럼 늘어 진 노나무는 노끈나무라고도 불린다.
楸洞과 松停 두 곳이 합쳐져 추정리가 되었다.
- 후기 -
처녀의 임종같이 고요한 가을길을 걸었다.
엷은 적막의 실루엣을 걷어내자
한 인간의 지난했던 생애가 도사리고 있었다.
때로는 삶에 지쳐 피폐하고
때로는 그 피폐를 딛고 일어선 용기가 돋보였다.
그런데 그 櫛風(즐풍)을 견디며 바래 온 삶의 빛들이 하도 고와
그의 길을 따라 걷다보면
언젠가는 나도 황금빛 가을길을 닮을것 같았다.
4악장 Allegretto poco moss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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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오의 호수처럼 잔잔한 세상.. 그곳의 고요함이 사진마다에 묻어있는듯 합니다.
한동안 운동을 쉬었던 몸은 늘 산속에선 정직한 반응을 보여서 조금만 길이 가팔라져도 숨이 가빠오지만
가쁘게 몰아쉬는 숨조차 내 있는 그대로의 모습이어서 편안한 곳..
생각은 생각대로 곁에서 함께 걷고,
오르막 오르는 어느 순간엔 이런저런 생각들조차 나뭇가지에 걸려 벗겨진줄도 모르고 걷다보면
그 하루.. 그냥 걷고있음이 평온 그자체가 되는듯합니다.
끝난줄 알았던 가을이 아직도 포근히 기다려주어서 고마웠던 11월의 산행이었네요..
만나고오신 길의 풍경과 글들.. 행간마다 스민 조용한 생각들을 따라 또 한번 깊은 가을을 걷습니다.
대간길을 걷거나 맥길을 걷는다고 하여 더 수준 높은 산행을 하는것은 아니겠지만 좌우지간 저는 맥길이 참 마음에 듭니다.
클라이막스를 찾아가기 보다는 뭔가를 채워가는 느낌이 들거던요.
오르막도, 내리막도, 길도, 숲도 다 하나를 위한 부분,그런 부분들이 유기적으로 작동하여 길이라는 이미지를 만들어 내는것 같아요.
느리지도 빠르지도 않는 내면의 템포에 맞추어 길을 걷다보면 언젠가는 내 삶의 속도도 그 걸음에 길들여질 날이 오겠죠.
능선님의 좋은 글과 사진을 함깨 할 수 있어 더 즐겁습니다^^*
땅만 쳐다보며 걷느라 하늘이 간간이 푸르름을 보였음도 몰랐습니다.
이것 저것 살피며 또 이러저러한 산길 이야기를 섞어 풀어내는 산행기
늘 즐감합니다.
다음에 또 건강한 모습으로 뵙기를....
사실 쓸 글도 없습니다
저는 루비콘님처럼 씩씩하게 걸어보는게 소원입니다
늘 즐겁고 활기찬 모습 보기 좋습니다.저에게도 에너지를 좀 나누어 주시고요^^*
이제는 산을 타는것보다도 산의 일부가 된다는
느낌으로 비가오나 바람이 불어도 묵묵히 걸어면서
내 아픔도 고통도 모두가 산길에 동화 되어 걸어보면 어떻까하고
생각해봅니다.
앞으로도 컨디션이 좋아 힘차게 함 걸어보입시더.형님!!!
아우님이야 말로 나의 제일 든든한 동반자죠.
나한님,상철씨,나그네님 저에게는 천군 만마입니다.
정말 행복해요^^*
처녀의 임종이란 글귀가 무척 쓸쓸하게 느껴지네요.
총각의 임종은 뭐 그렇고 그런데..
깊어가는 가을은 남자들의 마음을 쓸쓸하게 하죠.
여러 이유가 있겠지만 생물학적으로 추운 겨울을 준비해야 한다는 수컷들의 걱정이
오랜시간 DNA에 새겨졌기 때문이랍니다..
전공이 공돌이라서 생각의 한계ㅎ
다음 산행길에서 뵙겠습니다.
'처녀의 임종'에 생각을 집중해 걷다보니 정말 가을 숲이 오랜 세월 처녀로 살다간 여인의 고요한 죽음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행초입 경사도는 저에게는 맵기로 소문난 멕시코 고추만큼 매섭더군요^^ ㅎㅎㅎ
저 개인적인 경우에는 몸이 고달프니 마음이 편해지더군요 그래서 등산을 좋아합니다
명품후기 잘 보고 갑니다~~~
한남금북 4구간 수고 많으셨습니다~~~
엄살은 ㅋㅋ
저도 그래요. 오르막을 만나면 오로지 오르는데만 집중하게되니.
오르막 길에서는 저는 수를 세요
절에서 하는 백팔배와 같은 느낌이랄까요^^*
역쉬 명품 산행기 이네요
멋진 사진과 자세한 해설까지 지나 온 정맥길 복습하고 갑니다..
수고 많으셨읍니다
명품은 무슨 명품입니까
워낙 세세한 부분까지 잘 정리 하시는 분들이 많으니
저는 그냥 글쓰듯 산을 걷고 싶을 뿐입니다
사니조아님의 후기야말로 진정한 명품입니다^^*
수고하였습니다
좋은 글 사진 잘 보고 갑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