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순 3 주일
오늘의 화답송에서 시편 저자는 하느님의 자비와 자애를 노래합니다. “주님은 자비롭고 너그러우시며, 분노에는 더디시나 자애는 넘치시네. … 하늘이 땅 위에 드높은 것처럼, 당신을 경외하는 이에게 자애가 넘치시네.”(화답송: 시편 103,8.11) 이러한 의미에서 오늘 본기도를 통해 교회는 하느님께 “하느님, 온갖 은총과 자비를 베푸시어 저희가 단식과 기도와 자선으로 죄를 씻게 하셨으니 진심으로 뉘우치는 저희를 굽어보시고 죄에 짓눌려 있는 저희를 언제나 자비로이 일으켜 주소서.”라고 기도합니다.
1독서에서 하느님께서는 당신의 산 호렙 산, 곧 시나이 산에서 떨기나무 가운데서 불꽃 속에서 당신 종 모세를 부르십니다. 여기서 떨기나무로 번역된 히브리어는 ‘서네’입니다. 이 ‘서네’는 광야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식물로 작은 잎이 무성하며, 가지가 매우 얇아 불꽃이 닿기만 해도 금방 타 버릴 것 같은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이는 430년 동안 이집트 종살이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의 현실을 반영합니다. 서네, 곧 덤불 속에 사시는 주님께서는 바로 이러한 이스라엘과 함께하시는 분, 광야에 사시면서 불모지에서 약한 존재들 사이에 머무시는 분이십니다. “땅과 그 안에 가득 찬 것에서 나는 값진 선물과 덤불에 사시는 분의 은총으로 복을 받아라. 이 모든 복이 요셉의 머리 위에, 형제들 가운데에서 뽑힌 그의 정수리 위에 내리리라.”(신명 33,16)
오늘 복음은 ‘열매 맺지 못하는 무화과나무’의 비유입니다.
‘무화과나무’의 비유에서 무화과나무는 하느님의 선택된 백성[선민(選民)전통]으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상징합니다. 이스라엘에서 많은 열매를 맺는 무화과나무는 평화와 안정, 번영의 표징으로 여겨졌습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에덴 동산과 출애굽, 40년 동안의 이스라엘의 광야 여정과 약속의 땅 가나안의 정복 시기, 솔로몬 통치 시기, 시몬 마카베오의 성전 재탈환시기, 다가올 메시아 시대 등 이스라엘의 영광이 빛나던 시대는 모두 무화과나무가 번성했거나 번성할 것으로 묘사되었습니다(1열왕 5,5; 미카 4,4; 즈카 3,10). 무화과나무가 꽃을 피우고 수많은 열매를 맺는다는 것은 주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이스라엘을 찾아오셔서 축복해주는 모습으로(요엘 2,22; 하까 2,19), 반면에 메마르고 열매를 맺지 못하는 것은 하느님의 심판으로 여겨졌습니다(예레 5,7; 8,13; 호세 2,14; 아모 4,9; 요엘 1,7.12).
‘삼 년’이라는 숫자는 하느님께서 그들의 회개를 위해 주셨던 시기를 뜻합니다. 그리고 ‘올해’는 예수님을 통해 그들에게 주어지는 마지막 회개의 시기를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무화과나무의 비유’는 예수님을 통해 선포되는 마지막 회개의 기회를 놓치지 말고, 회개하라는 것입니다. 회개의 기회는 한번 더 주어질 수 있지만, 영원히 계속되는 것은 아니기에, ‘지금 바로 이 곳에서’(hic et nunc) 회개의 삶을 시작하라는 하느님의 초대입니다.
회개(悔改)는 완전히 방향을 바꾸는 것을 말합니다(그리스어, 메타노이아: 생각을 바꾸는 것, 히브리어, 나함: 가던 길을 멈추어 서는 것, 숩: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가는 것). “저는 이것이 잘못했다고 생각합니다.”라는 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다시는 ~하지 말아야지.” 이것 역시 회개가 아닙니다. 그것은 반성이고 후회일뿐, 진정한 회개가 아닙니다. 회개는 자신이 살아가는 삶의 방향에서 완전히 그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보겠습니다. 내가 익산에서 서울을 가려고 서울행 기차를 탔습니다. 그런데 한참을 가다보니 내가 탄 기차가 서울행이 아니고 목포행인 겁니다. “아이고, 이거 잘못 탔구나. 어찌하면 좋은가?” 기차 안에서 발을 구르며 안달한다고 내가 서울로 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다음 역에서 내려 서울로 가는 기차로 갈아타야 서울로 갈 수 있습니다. 교회가 말하는 회개는 이런 것입니다. 우리가 살아온 삶에서 완전히 되돌아서 방향을 바꾸어 하느님이 인도하신 길로 되돌아가는 것입니다.
후회(後悔)와 회개(悔改)의 차이
바오로 사도는 “하느님의 뜻에 맞는 슬픔은 회개를 자아내어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일이 없습니다. 그러나 현세적 슬픔은 죽음을 가져올 뿐입니다..”(2코린 7,10)라고 말씀하십니다.
| 후회(後悔) | 회개(悔改) |
시간적으로 | 이전의 잘못을 깨치고 뉘우침 (과거 지향적) |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바로잡음, 곧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그 잘못된 길에서 벗어나 완전히 돌이키는 것 (미래 지향적) |
주어 | 내가 한 것에 대한 후회 (자기 중심적인 사고) | 타인, 하느님 중심적인 사고 |
인간의 마음 | 자신이 대상이어서 더 큰 무력감과 깊은 상처, 그리고 좌절에 빠지게 됨 | 타인이 대상이어서 자신이 저지른 행동을 뉘우치고 용서받음으로써 자유롭게 됨 |
베드로 사도의 말씀으로 오늘의 강론을 마무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 한 가지를 간과해서는 안 됩니다. 주님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습니다. 어떤 이들은 미루신다고 생각하지만 주님께서는 약속을 미루지 않으십니다. 오히려 여러분을 위하여 참고 기다리시는 것입니다.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모두 회개하기를 바라시기 때문입니다.”(2베드 3,8-9)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