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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0227(수) ◈ 눅 7: 18-35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7:18 요한의 제자들이 이 모든 일을 그에게 알리니
7:19 요한이 그 제자 중 둘을 불러 주께 보내어 이르되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라 하매
7:20 그들이 예수께 나아가 이르되 세례 요한이 우리를 보내어 당신께 여쭈어 보라고 하기를 오실 그이가 당신이오니이까 우리가 다른 이를 기다리오리이까 하더이다 하니
7:21 마침 그 때에 예수께서 질병과 고통과 및 악귀 들린 자를 많이 고치시며 또 많은 맹인을 보게 하신지라
7: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7:23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7:24 요한이 보낸 자가 떠난 후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요한에 대하여 말씀하시되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광야에 나갔더냐 바람에 흔들리는 갈대냐
7:25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부드러운 옷 입은 사람이냐 보라 화려한 옷을 입고 사치하게 지내는 자는 왕궁에 있느니라
7:26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
7:27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7:2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7:29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이미 요한의 세례를 받은지라 이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의롭다 하되
7:30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그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그들 자신을 위한 하나님의 뜻을 저버리니라
7:31 또 이르시되 이 세대의 사람을 무엇으로 비유할까 무엇과 같은가
7:32 비유하건대 아이들이 장터에 앉아 서로 불러 이르되 우리가 너희를 향하여 피리를 불어도 너희가 춤추지 않고 우리가 곡하여도 너희가 울지 아니하였다 함과 같도다
7:33 세례 요한이 와서 떡도 먹지 아니하며 포도주도 마시지 아니하매 너희 말이 귀신이 들렸다 하더니
7:34 인자는 와서 먹고 마시매 너희 말이 보라 먹기를 탐하고 포도주를 즐기는 사람이요 세리와 죄인의 친구로다 하니
7:35 지혜는 자기의 모든 자녀로 인하여 옳다 함을 얻느니라
◈ 주 해
* 하나님 나라에서 복된 자는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다. 주님을 위하여 미움을 받는 자는 복이 있는 자다.
제자여도 자신의 들보를 깨닫지 못하는 자는 영적 맹인이며 말씀을 듣고 행하지 아니함으로 모래 위에 집을 지은 자는 탁류가 집에 부딪히면 집이 무너져 파괴됨이 심하다.
- 하나님의 나라 복음을 가르치신 예수님은 백부장의 종을 치유하시고 나인성의 과부 아들을 살려주심으로 하나님의 나라를 친히 보여주시고 경험하게 해 주셨다.
- 백부장은 “말씀만 하사 내 하인을 낫게 하소서”라며 겸손한 믿음으로 하나님 나라를 경험했다.
- 나인성의 과부는 모든 잃어버리고 전적으로 절망하고 무능할 때 예수님이 찾아와 일방적인 은혜로 주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경험했다.
1. 오늘 본문은 예수님과 세례요한의 관계를 다루며, 세례요한이 누려야 할 하나님 나라에 대한 말씀이다.
1) 세례 요한은 “인자로 말미암아 사람들이 너희를 미워하며 멀리하고 욕하고 너희 이름을 악하다 하여 버릴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도다(6:22)”에 해당하는 복된 자이다.
2) 예수님은 이렇게 복된 자가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며, 가장 복된 자로 하늘에서 큰 상을 받는지를 세례 요한을 통해서 말씀해 주신다.
2. 요한의 제자들이 예수님의 가르침과 사역을 옥에 갇힌 요한에게 전한다(3:20).
1) 그러자 요한은 제자 두 사람을 보내어 ‘오실 그이가 당신입니까?’라고 묻는다.
2)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로 가장 먼저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소개하며, 예수님께 세례를 주며, 자신은 예수님의 신발 끈을 푸는 것도 감당하지 못하겠다(요 1:29-34)고 한 세례 요한의 질문은 뜻밖이다.
3) 요한은 회개를 촉구하며 종말론적 심판이 임박했음을 선언한 사람이었는데, 감옥에서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 복음을 전하여 종말론적 심판을 집행하는 분이신지를 질문하는 것이다.
3. 또한 이 질문에는 개인적인 이유도 있다. 요한은 그리스도를 증거하였다. 요한 자신은 쇠하고 그리스도는 흥하는 것을 기뻐하였고, 자신을 따르는 사람들이 예수님을 따르는 것을 기뻐하였다.
1) 그리고 헤롯의 부도덕을 지적하다가 감옥에 갇혀 있다.
2)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미움을 받고 멀리함을 받고, 욕을 먹고 버림받고 있는데 예수님은 세례 요한을 찾아오지도 않았고, 사람을 보내지도 않았고 요한을 구해주지도 않았다.
3) 요한은 예수님에게서조차 방치된 것 같고, 버림받은 것 같았을 것이다.
- 내가 증거한 그리스도, 나의 그리스도께서 나를 외면하는 것 같을 때, 누구나 시험이 든다.
4) 우리가 그리스도를 믿을 때, 객관적으로 그분이 그리스도여야 하며, 또한 주관적으로 나의 그리스도여야 한다. 요한은 예수님이 객관적인 그리스도이신지를 물으면서, 또한 주관적인 나의 그리스도인지를 묻는다.
4. 예수님은 요한의 제자들에게 그들이 보고 들은 것을 가서 요한에게 전하라고 말씀하신다.
눅 7:22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가 가서 보고 들은 것을 요한에게 알리되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귀먹은 사람이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1) 예수님은 이사야의 메시야 예언(사35:5,6; 61:1)을 요한에게 다시 생각나게 하면서 예수께서 행하신 기적들은 이사야가 예언한 메시아 시대의 도래라고 말씀해 주신다.
“그 때에 맹인의 눈이 밝을 것이며 못 듣는 사람의 귀가 열릴 것이며 그 때에 저는 자는 사슴 같이 뛸 것이며 말 못하는 자의 혀는 노래하리니 이는 광야에서 물이 솟겠고 사막에서 시내가 흐를 것임이라”(사 35:5-6).
2) 예수님은 자신이 구약성경이 증거한 그리스도임을 요한에게 확증해 주신다.
5. 그리고 세례 요한 개인에게는 23절의 말씀으로 믿음을 지키라고 말씀하신다.
눅 7:23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
1) 실족하는 것은 믿지 않는 것이다. 즉 ‘나에 대한 믿음을 지키고 포기하기 않는 사람은 복되다’라는 뜻이다.
2) 이 말씀은 참 독특하다. 왜냐하면 많은 사람들은 예수님 때문에 믿는 자가 되었다.
- 예수님이 복음을 가르치고, 치유하시고, 축사하시며, 맹인의 눈을 뜨게 하고, 걷게 하고 듣게 하며 죽은 자가 살아나게 함으로써 예수님은 사람들을 믿도록 해 주셨다.
6. 그런데 아주 가끔, 예수님 때문에 실족할 위기에 처하는 사람들이 있다.
1) 주님께 충성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친밀한 사랑이 부어지는데, 충성한 나는 하나님이 버린 것 같을 때, 실족하는 마음이 생긴다.
2) 예수님이 자신에게 헌신하지 않은 무리들에게 은총을 베풀었고, 심지어 악한 자에게도 인자를 베푸신다. 그런데 자신의 전 존재를 드려 예수님을 증거하며 미움을 받았던 세례 요한에게 베푼 것은 아무것도 없어 보인다. 우리가 보기에도 없다.
3) 세례 요한은 누구나 인정하는 “선지자”였다. 그러나 헤롯이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비웃어도 할 말이 없는 처지에 있다.
시 42:3 사람들이 종일 내게 하는 말이 네 하나님이 어디 있느뇨 하오니 내 눈물이 주야로 내 음식이 되었도다
7. 그래서 예수님은 세례 요한에게 말씀하신다.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1) 이것이 세례 요한이 예수님께 들은 마지막 말이고, 세례 요한은 이 말을 마음에 두고 사형당했을 것이다. 세례 요한은 예수님 때문에 실족하지 않고 억울한 죽음을 받아들였다.
2) 세례요한은 의를 행한 이유로 억울하게 죽는 죽음을 받아들이므로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큰 상을 받는 자가 되었다”(눅6:23).
8. 세례 요한의 제자들이 떠난 후에 예수님은 무리들에게 세례 요한을 엄청 높여 주는 말씀을 해 주신다.
1) “요한이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라는 예수님의 말을 감옥에 있는 요한이 들었다면 얼마나 기뻐하며 소망이 되었을까? 그러나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세례 요한에게 이 말을 해 주지 않았다.
2) 요한의 제자들이 떠난 후에 요한을 가장 높여 주셨다.
9. 예수님은 세례 요한이 선지자이며 또한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라고 하신다.
눅 7:26 그러면 너희가 무엇을 보려고 나갔더냐 선지자냐 옳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선지자보다도 훌륭한 자니라
눅 7:27 기록된 바 보라 내가 내 사자를 네 앞에 보내노니 그가 네 앞에서 네 길을 준비하리라 한 것이 이 사람에 대한 말씀이라
눅 7:28 내가 너희에게 말하노니 여자가 낳은 자 중에 요한보다 큰 자가 없도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니라 하시니
1) 예수님의 칭찬은 어마어마하다. 세례요한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다.
- 그리고 세례요한은 구약의 사람들과 구약의 선지자들 중에서 가장 큰 자라고 말씀해 주신다.
2) “하나님의 나라에서는 극히 작은 자라도 그보다 크다”는 것은 세례 요한을 작게 말하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 나라를 여신 예수님이 크고, 예수님이 열어놓은 신약의 하나님 나라가 그만큼 크다는 것이다.
3) 구약과 신약의 복의 차이를 말하는 것이지, 거듭난 자가 세례요한 보다 더 훌륭하다는 것이 아니다. 신약의 새 언약 백성인 우리가 받은 복은 구약의 아브라함이나 모세, 다윗보다 크다. 그렇다고 우리가 아브라함이나 모세, 다윗보다 훌륭하고 크다고 여긴다면 엄청난 착각이다.
10.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길을 온전히 충성함으로 준비한 큰 종, 가장 큰 자이다.
1)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의 대부분도 세례 요한을 선지자로 여기며 그에게 나아갔던 자들이다. 초기 예수님을 따르는 제자들은 대부분 세례 요한을 따르던 이들이었다.
2) 모든 백성과 세리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았으므로 예수님이 세례 요한을 칭찬하자 “하나님을 의롭다”고 하였다. 요한이 주님의 길을 예비한 사역은 참으로 온전하였다.
3) 반면 바리새인과 율법교사들은 요한의 세례를 받지 아니함으로 세례 요한과 예수님을 배척하였다.
4) 세례 요한과 예수님이 가는 길은 이렇게 같았다.
- 하나님이 예비하신 길을 걸었고,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비난을 받았다.
11. 도리어 하나님이 가장 신뢰하는 자, 하나님 나라에서 가장 큰 자, 하나님의 나라의 복음을 가장 온전히 선포하는 자에게 세례 요한처럼 시험이 찾아오기도 한다.
1) 다른 이들은 예수님 때문에 기뻐하고 감격하는데, 나만 예수님 때문에 실족할 것 같다.
2) 예수님이 나만 외면하는 것 같고, 나에게 무관심한 것 같고, 나의 고통과 아픔을 몰라 주시는 것 같다.
3) 영혼의 어두운 밤이 되면 누구라고 이런 시험에 든다.
4) 그런데 그 때, 예수님 때문에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다. 즉 영혼의 어두운 밤, 영적인 시험과 마음의 고난과 육체의 한계 속에서도 말씀이 증거하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는 복이 있으며, 그는 하나님 나라에서 큰 자다.
5) 다른 모든 것은 의문이 가는 상황에서도 말씀과 그 말씀이 증거하는 그리스도를 믿는 자의 본이 세례 요한이다. 그는 모든 시험당하는 자의 믿음의 본으로써 마지막까지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자로 순교한다.
◈ 나의 묵상
광야에서 외치는 자의 소리 세례 요한, 광야에서 설교를 하는데 전국에서 설교를 들으러 왔다. 기적이며 엄청난 부흥의 역사다. 사람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회개하고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설교하는데 광야에서 사람들은 그 설교를 들었다. 이렇게 탁월한 사역을 했던 세례 요한, 거기다가 예수님께 세례를 준 요한, 그 엄청난 부흥의 현장, 하나님이 역사하시는 현장이 끝났다. 그리고 헤롯의 부도덕을 지적하다가 감옥에 갇혔다. 가족도 없다. 자신의 모든 것을 헌신하여 증거한 예수님은 한 번도 그를 찾아오지 않고 사람을 보내지도 않았다. 개인적으로도 사촌이 고난을 받고 있는데 말이다. 예수님에 대한 소식은 감옥에서 겨우 제자들이 들려주는 것을 통해서 알 뿐이다. 그리고 헤롯이라는 아주 악한 왕의 감옥에서 험악한 세월을 보내고 있다. 광야에서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사명을 감당한 세례 요한에게 감옥이라는 환경은 큰 어려움이 아닐 듯하다.
요한이 힘들어 했던 것은 해결되지 않은 질문이었을 것이다.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사명에 충성했는데 왜 하나님은 침묵하시는가? 왜 말씀해 주시지 않는가? 그분이 정말 그리스도인가? 그렇다면 왜 나를 이렇게 외면하시는가?....하는 질문이 끊이지 않았고, 그 질문에 대한 답이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요한의 질문을 통해서 예수님만 요한을 찾아오지 않은 것이 아니라, 늘 말씀하셨던 하늘 아버지도 이 기간에 세례 요한에게 말씀하시지 않으신 것 같다. 세례 요한에게도 “메마름”이라는 “영혼의 어두운 밤”이 찾아온 것일까?
세례 요한의 질문에 주목하는 것은 “수년간 내 안에도 수많은 질문”이 끊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20-30십대에 하나님을 알아가고 헌신하며 하나님을 전한 현장이 있었다. 그러나 예상했던 모든 것들이 40대에 들어서 부서졌다. 탁류에 부딪혀 그 무너짐이 심하였다. 메마름과 비참함이 찾아왔을 때...수없이 질문했다. 우울과 불안증이 찾아왔을 때도 수없이 질문했다. 내가 알지 못하는 공허한 마음, 완악한 마음, 식어버린 열정 때문에 질문하였다. 그리고 이런 나에게 인자하심을 베푸시는 주님을 이해할 수 없어서 질문하였다. 많은 질문에 하나님은 대답해 주셨지만 또한 가장 듣고 싶은 질문에 대답이 없는 것도 많았다.
세례 요한은 한 가지만 질문 했지만 그에게도 얼마나 많은 질문이 있었을까? 그리고 뜻밖의 대답을 들었다.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질문자에게, 실족할 뻔하는 자에게, 이 대답은 만족스런 대답이 아니다. 만족스러운 대답은 “나는 그리스도이고 너는 가장 훌륭한 선지자다. 그러니 선배 선지자처럼 고난받는 것을 받아들임으로 하늘의 상을 받으라”고 하는 말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의도적으로 세례 요한이 힘을 얻고 위로를 얻는 대답 대신에 “알 듯 말 듯한 대답”을 해 주셨다. 그것은 세례 요한이 건너야 할 마지막 믿음의 다리였다. 메마름에도 여전히 주님을 신뢰하는 것, 겨울나무가 되어서도 여전히 주님을 신뢰하는 것, 대답이 없어도 여전히 주님을 소망하는 것이다. 그리고 세례 요한은 예수님의 뜻대로 끝까지 주님을 바라보았다. 그리로 헤롯의 생일날 한 소녀의 소원이라는 구실로 사형당하는 어처구니 없는 죽음을 기꺼이 받아들인다. 사형당하는 날에도 요한은 주님으로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였다.
예수님 때문에 웃고 즐거운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수님 때문에 울고, 실족하는 마음이 드는 사람, 실족할 뻔하는 환경에 처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그때, 끝까지 실족하지 않고 주님을 믿는 자는 참으로 복이 있다. 그 길을 걸어가는 이들을 보면 가장 존경스럽다. 온갖 고통에서 벗어나서 감사하는 사람, 충만한 은혜가 부어져서 믿는 사람보다, 만인이 봐도 원망해야 마땅한데 감사하며 십자가를 지는 분들이 있다. 십자가의 길, 순교자의 길을 걷는 그들이 참으로 존귀하고 크다.
나 또한 예수님으로 인하여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가 되길 원한다. 그분이 나를 선대하시며 충만하게 하실 때도 주님을 믿지만, 그분이 나를 버리고, 외면하여서 “사람들이 종일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하여도 대답할 수 없어도 여전히 주님을 신뢰하는 자 되길 원한다. 사람들이 모함하고, 나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그 때에도 만물 위 영원하신 하나님의 사랑, 아버지 품 안에서 안식하기를 원한다. 세례 요한을 보이지 않는 손길로 도우신 성령님이 내 영혼을 끝까지 붙들어 주시길 간구한다. 푸른 초장이든,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는 예수님은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며, 나의 영원한 목자이시다. “내 영혼아 어찌하여 낙심하느냐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그의 도우심을 바라며 그를 찬양하라.”
◈ 묵상 기도
주님, 온갖 질병이 낫고, 표적이 일어나며, 하나님의 부흥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주님께로 몰려와서 삶이 변화되는 현장에 있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 하나님의 외면, 버림받은 것 같은 메마름과 비참함, 세례 요한처럼 질문이 가득할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의 인자하심과 신실하심을 선명하게 보게 하여 주십시오. 예수님으로 인하여 실족하지 않도록 성령님 저를 붙들어 주십시오. 사단이 정죄하고 사람들이 너의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할 때에도 여전히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하나님을 찬양함으로 실족하지 않게 하옵소서. 내 영혼은 심히 연약하오나 주님의 부르심은 강합니다. 하나님의 시간에서는 이미 의롭게 되었고, 영화롭게 되었습니다. 저의 시간이 하나님의 시간과 연결되게 하시며, 하나님의 시간 속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보게 하여 주십시오. 그리하여 끝까지 주님을 신뢰하며 하나님의 나라에 거하며, 하나님의 나라의 길을 준비하는 사명을 감당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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