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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골옹 섭생] 명절 때마다 조상님께 제사를 지내는 뜻은....
“아저씨, 참말로 조상님의 귀신이 있기나 한 것일까유? 지는 세례를 받아서 이름이 ”세레나“인데 귀신은 없는 것이므로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다고 하더라구요. 그러니 제사를 지내야 할건지 말아야 할건지 참말로 헷갈리거든유.”
하-. 세례를 받았으므로 이름도 바꾸었따? 그리고 “귀신” 은 없는 것이므로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다? 그러며는 한가지 좀 물어 볼테니 대답좀 해 보셔요. 사람에게 있어 자기 자신의 죽음이란 것이 과연 있는 것이-게-요? 없는 것이-게-요?
“사람은 누구나 다 죽는 것인데 어떻게 사람에게 죽음이 없을 수가 있겠어유? 당연히 있는 것이것제!”
하-. 그처럼 만약 사람에게 진실로 자기 자신의 죽음이 있다고 친다면, 왜 진실로 자기 자신의 죽음을 본 사람이 없는 것일까요? 그리고 왜 진실로 죽었다가 살아남으로써 죽음을 경험한 사람이 없는 것일까요? 자기의 죽음을 진실로 본 사람은 이 세상에 아무도 없고, 아무도 경험한 사람이 없다면 그것은 사람에게 있어 자기 자신의 죽음은 진실로 없는 것이지 어떻게 있다고 대답할 수가 있는 것일까요? 그러니 사람에게 자기 자신의 죽음은 없는 것이 맞지요? 그렇지요?
“에이~ 순 엉터리! 그러면 사람은 누구나 영원히 죽지 않는다는 말인가요? 말도 안되는 순 영터리!”
마잤어요 꼭 맞았어요. 사람에게 조상님의 귀신이 없으므로 제사를 지낼 필요가 없다고 말하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이 순 엉터리의 말인 것이어요. 왜냐하면 사람이 죽는 것을 우리말로 “돌아가신다” 고 말하지요? 즉 귀신이란 돌아갈귀(歸)자 귀신신(神)자 ‘귀신(歸神)’과 같은 것이므로 돌아간 사람의 ‘신발(履)’과도 같은 것이 신(神)인 것이어요. 따라서 우리가 어디를 가든 자기 자신의 신발을 벗어놓는 그 곳에 자기 자신의 ‘정·신(情·神)’, 즉 자기 자신의 뜻(情)과 신(神)이 깃들게 되어지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신(神)이 없다고 믿는 것은 ‘불신(不信)’이고, 정정하게 살아있는 사람의 신(神)은 바로 ‘정신(精神)’ 인 것이어요.
“에잉~ 엉터리! ”귀신“의 한자(漢字)는 귀신귀(鬼)자 귀신신(神)자 ”귀신(鬼神)“인걸 무슨 돌아갈귀(歸)자 ”귀신(歸神)“이라니 순 엉터리!”
맞잤어요 꼭 맞았어요. 귀신귀(鬼)자 귀신신(神)자 “귀신(鬼神)”이어요. 그러면 만약 한자(漢字)를 모르고 “귀신(鬼神)”이라는 뜻이 뭔지 를 모르는 사람이 옥편(玉篇)을 찾아서 그 뜻을 읽었다 한들 귀신귀(鬼)자 귀신신(神)자 라고 써 놓았으니 도대체 “귀신(鬼神)”의 뜻이 뭔 뜻인지 알 수가 있겠어요? 정말로 통 뭔 뜻인지 알 수가 없겠지요?
이렇듯 요즘에 우리의 한자 책(漢字冊)과 철학적 가치기준의 해석은 순 엉터리로 되어 있는 것이어요. 그렇기 때문에 요즘의 신세대 사람들은 우리의 옛 조상님들로 부터 전해져 내려오는 우리 고유의 미풍양속에 대해서조차 잘 못 이해하고 있는것 같아 무척 안타까운 점이 있는 거예요.
특히 설 명절때와 추석, 그리고 조상님의 제사날과 시제(時祭)날에는「제사(祭祀)」를 지내는 문제로 인하여 서양종교의 사상과 부딛쳐서 부모자식 간에조차 갈등을 일으키는 일이 있어 우리전통의 장점인 효(孝)사상을 해치고 있으므로 우리 전래의 미풍양속인「제사」에 관하여 스스로 바르게 이해해야 할 필요가 있는 것이어요.
예컨대 순순한 “우리말” 을 볼라치면 죽은 사람을 칭하여 “돌아가셨다”고 말하는 것이잖아요? 그리고 돌아갈귀(歸)자와 귀신귀(鬼)자가 똑 같은 말로 발음되는 즉슨 “우리말”을 알지 못하면 한자(漢字)의 오묘한 해석은 거의 불가능 한 것이어요. 한자(漢字)의 해석은 순수한 우리말로 해석을 해야만 그 뜻을 제대로 알 수가 있는 것이지, 중국말이라든가 다른 나라의 말로 해석을 하려고 들면 한자(漢字)의 뜻을 전혀 잘 알 수가 없는 것이어요.
그러므로 “우리말” 에 따르면 “귀신”은 반드시 있는 것이지요. 다만 결혼을 해서 자기의 자식을 둔 사람이 죽었을 때에 비로서 “돌아가셨다” 고 말하는 것이므로 “귀신”은 결국 반드시 자기의 자식을 둔 다음에 죽은 사람, 즉 자기 조상(祖上)님의 신(神)만이 돌아갈귀(歸)자의 “귀신(歸神)” 이 될 수가 있는 것이다- 그러헌 말씀이에요.
“오잉? 자기의 자식을 둔 다음에 죽은 사람을 보고 ‘돌아가셨다’고 말하며 돌아갈귀(歸)자의 ‘귀신(歸神’이 될 수가 있는 거라꼬? 그럼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돌아가지도 못 하고, 귀신이 될 수가 없다는 말인감?”
마잤어요 꼭 맞았어요. 자식을 낳지 못하고 죽은 사람을 보고는 절대로 “돌아가셨다”고 말하지 않는 것이어요. 예컨대 젊어서 결혼도 하지 못하여 자식(子息) 하나도 없이 죽은 사람을 보고는 “돌아가셨다”고 말하지 않고 그냥 중간에서 허리가 끊겼다는 뜻으로써 “요절(夭折=腰折)했다” 고 말하는 것이며, 이는 곧 “하늘(天)의 뜻에 어긋나 있다” 는 의미이기에 ‘요절(夭折)’이라고 할 때의 어릴요(夭)자는 하늘천(天)자와 엇비슷하게 되어져 있는 것이어요.
따라서 예를 들면, 절에 스님처럼 결혼을 하지 아니하여 자식을 두지 못하고 죽은 사람을 보고는 그저 조용한 곳으로 들어갔다며 “입적(入寂)하셨다” 고 말하는 것이지요.
이렇듯 자기 자식을 두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결국 “돌아갈 수가” 없는 것이므로 자기 조상님의 “귀신”이 절대로 될 수가 없는 것이지요. 따라서 자식을 두고 늙어서 죽은 사람의 종교는 반드시 “귀신”이 있다며 “신(神)”을 섬기는 것이고, 자식을 두지 못하고 죽은 사람의 종교는 오직 “마귀(魔鬼)”만 있을뿐 “귀신”은 없는 것이라며 “신(神)”을 섬기지 못하게 하고 있는 것이어요. 즉 자기 자식을 두지 못하고 죽은 사람은 “마귀(魔鬼)”가 될 수 있을 뿐 절대로 돌아갈귀(歸)자 “귀신(歸神)”은 될 수가 없는 셈인 것이어요.
그러므로 자기 조상님의 신(神)에게 지내는“제사(祭祀)”의 진정한 의미는 결국 없는 “귀신”을 위하여 지내는 것이 아니라, 조상님이 있었음으로 해서 지금 자기가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에 비추어서 살아있는 “자기 자신”을 위하여 지내는 것이어요.
그렇기 때문에 실제로 “제사(祭祀)”를 통하여 만성적 고질병의 치병효과(治病效果)라든가, 가정생활에 대한 안녕질서의 사고(思考)습관, 그리고 평소 올바른 식생활 섭생(攝生)에 대한 가문적(家門的) 전통.... 등에 미치는 영향을 절대로 간과할 수가 없는 것이지요.
제사(祭祀)를 지내는 뜻
“제사(祭祀)”란, 국어사전에는「신령에게 음식을 바쳐 정성을 표하는 예절」이라고 되어 있으며, 일칭 “제례(祭禮)”라고도 불리우고 있어요. 그러나 우리의 삶에서 “제사(祭祀)”란 그렇게 좁은 의미로서의 뜻 뿐만이 아니고, 우리 선조들이 제사를 통하여 후손들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는 깊고 진실한 뜻에 삶의 지혜가 숨겨져 있는 것이어요.
즉 우리가 조상을 위하는 마음으로 정성껏 제사(祭祀))를 지내는 것은, 내가 자손으로서 조상님의 존재를 긍정하여 예(禮)를 올리는 것 뿐만이 아니고, 결국 자기 자신의 삶을 위하여 자기 자신에게 정성을 들이는 것이며, 자기 자신의 존재적 가치에 대한 의미를 확인하고, 나아가 자기 스스로의 존재적 가치를 자기 자손에게 손수 확인시켜주면서 가계(家系)로서의 뜻을 다짐한다고 하는 엄숙한 의미를 가지고 있는 것이어요. 그러헌즉 자기가 설날 자녀들로부터 세배를 받고자 할 때에도, 제사를 통하여 자기가 먼저 조상님들에게 스스로 세배를 드린 다음에 비로서 자녀들로부터 세배를 받는 것이어요.
그러하므로 “제사(祭祀)”를 충청도 지방의 말로는 “지사를 지낸다”고 말하는데, 이는 알지(知)자 고마워할사(謝)자 지사(知謝)로써 「고마워 할 줄을 알기」위한 행사를 하는 것이다- 하고 가르쳐 주는 것이지요. 그러면 누가 누구에게 고마워 할 줄을 알아야 한다는 뜻일까요? 돌아가시고 없는 조상님의 귀신과 부모님의 귀신에게 고마워 할 줄을 알아야 한다는 뜻일까요?
아니어요. 아니어요. 귀신에게 고마워 할 줄을 알아야 한다는 그러헌 유치한 뜻이 아니어요.
우리의 충청도 지방에서는 자기가 자기를 일컬을 때에 “지”라고 하잖아요? (내가 할께요=지가 할께요) 그러므로 “지사를 지낸다”함은 곧 “내가 나에게 고마워 할 줄을 아는 행사를 하며 지낸다” 는 뜻인 것이어요. 또한 제사는 자손이 조상을 위하는 마음으로 지내는 것이지만, 사실은 자기가 자기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확립시켜 가기 위하여 지내는 것이다- 하고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에요.
왜냐하면, 우리가 자기의 친 자손을 “아들”이라고 하는데 이때에 “아들”이라 함은 나아(我)자, 여럿이라는 뜻의 들(等)자, 즉 “내가 여럿이 되었다”고 하는 뜻의 “아들(我等)”인 것이므로 자손이 조상을 위하는 마음으로 지사를 지내는 것은 곧 「내가 “나”를 위하여 “나”에게 고마워 하며, 작 자신의 존재가치를 확인하여 지내는 행사를 갖는 것」이지 결코 헛되이 없는 귀신을 위하여 지내는 것이 아닌 것이어라- 이 말씀이어요. 따라서 그 모든 종류의 지사(제례=祭禮)는 결국 자기가 자기를 위하여 지내는 것인 셈이지요.
그리하여 번창하는 집안은 직계 조상님에게 지내는 제사, 선조님들의 산소에 지내는 시제(時祭), 하느님에게 지내는 천제(天祭), 집 토지신에게 지내는 고사(告祀).... 등 여러 형태의 제사(祭祀)를 지내면서, 따지고 보면 그러한 제사들을 핑계 삼아서, 사실은 자기 자신들이 먹을 음식들을 풍요(豐饒)하게 차려내어 베풀어 주고자 하는데에 뜻이 있다고 하는 사실을 알 수 있는 것이어요.
이렇듯 우리민족 전통의 사상에서 각종 제사(祭祀)란, 오랜 옛날 살아있는 사람을 제물(祭物)로 바치는 인신공양(人身供養)의 미신적인 신(神) 숭배사상인 것이 아니라, 제사를 통하여 자기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스스로 확립하고, 자기 자신이 스스로 삶에 대한 의미와 자신감(自信感)을 확실하게 부여하는 엄숙한 행사인 것이어요. 바로 이 점이 우리 민족의 제사(祭祀)행사가, 다른 민족의 제사행사에 대한 관념의 차이인 것이어요.
그러하므로 우리민족 전통의 사상에서, 신(神)을 상징화하여 살아있는 사람의 눈으로 확인하여 볼 수가 있도록 형상화 시켜놓은 ‘도깨비(도를 깨달은 선비)’는 자기 마음가짐의 선악(善惡)에 따라서 우리네 사람들에게 선악(善惡)의 상벌을 부여하는 쪽으로 희화되어져 있지만, 다른 민족들의 사상에서는 예를들면 신(神)을 상징화하여 살아있는 사람의 눈으로 확인하여 볼 수가 있도록 형상화 시켜놓은 ‘강시(僵尸)’ 라든가 ‘흡혈귀(吸血鬼)’..... 같은 것들은 대개의 경우 무조건적으로 살아있는 모든 사람들을 무작정 괴롭히는 것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이어요.
우리 민족의 전통에서, 윗사람에게 인사를 할 때에 허리를 깊게 굽혀서 인사를 하는 것인데, 만약 서양의 거수경례를 하듯이 그저 뻣뻣이 서서 거만하게 인사를 하는 즉슨, 자기의 시선에 대한 초점이 상대방에게로 가서 상대방에게 고마워하는 격이 되어 인사한 결과의 이익이 상대방에게로 가도록 되어 있는 것이잖아요?
그러나, 자기의 고개와 허리를 깊숙히 숙여서 상대방엑 아주 공손하게 인사를 할수록 나의 시선에 초점의 복(福)은 결국 ‘나’ 자신에게로 깊게 되돌아오도록 되어져 있는 것이어요. 즉 고개를 빳빳하게 세워서 상대방에게 인사를 하면 내가 인사를 한 결과의 내 시선 초점의 복(福)이 밖으로 새어 나가게 되지만, 고개를 조금 숙여서 인사를 하면 내가 인사한 결과에 대한 나의 시선에 초점의 복이 ‘나’의 발끝에 와 머물게 되고, 고개를 더욱 깊게 숙여서 인사를 하면 내가 인사한 결과의 시선에 초점의 복이 ‘나’의 무릎에 와 머물게 되고, 허리까지도 깊게 숙여서 인사를 하게 되면 내가 인사한 결과에 대한 나의 시선에 초점의 복(福)이 결국 ‘나’의 허리에 까지 와서 머물게 되고, 더욱 깊게 숙여서 인사를 하면 ‘나’의 가슴에 까지 와서 머물게 되도록 되어져 있는 것이지요.
이치(理致)가 이러할진대 하물며 자기의 조상님에게 지내는 “제사” 에 있어서랴 말할 나위도 없이 더욱 깊고 깊은 뜻의 이치가 담겨져 있는 것이어요. 즉 현대인들은 바쁜 생활습관 속에서 한 형제자매가 출가하여 각각 서로 떨어져서 살다보면, 한데 모여서 혈육의 정을 나누기도 어려운 입장이거니와 심지어는 부모자식 간에 조차도 자리를 함께 하기가 쉽지 않은 것이어요. 현대의 상황이 이러하므로 우리의 옛 조상님들께서는 그러한 상황이 전개될 것을 버얼써부터 훤히 다 아시고 설람, 제사의 예절을 그처럼 엄격하게 해 놓아 조상님의 제사날에는 직계(直系)의 한 자손들이 모두 함께 모여서 혈육과 집안(家內)의 의미를 되새겨 확인할 수 있게 해 놓으신 것이어요.
이러한 이치를 꿰뚫어 일찍이 도가(道家)에서는 제사를 칭하여 세 가지를 밝게하고 여섯 가지를 통하게 하는 “삼명육통의 예술(三明六通之藝)”이며, 오래오래 살아 신선(神仙)이 되는 것과도 통할 수 있는 “신통의 예절(神通之禮)” 이고, 영(靈)과 영(靈)을 통하여 묘안을 깨우칠 수 있는 도(道)로써 “영통개안의 도(靈通開眼之道)” 라며 귀히 지켜가고 있는 것이어요.
또한 제사의 이렇게 심오한 뜻을 알아차리고 있는 불가(佛家)에서도 일찌기 「제사란 미풍양속의 차원이 아니라, 인생으로서 자기가 자기의 뿌리를 찾는 몸짓이요, 나아가 몸뚱이를 가진 영혼이나 몸뚱이를 벗은 영혼이나 모두를 살찌우게 하는 거룩한 행위이고, 온 세상을 맑게 밝히는 거룩한 행사이다」라며 섬겨서 지키가도록 하고 있는 것이어요.
그러기에 제사를 지낸 음식에는 복록(福祿)이 들어 있다하여 자손들이 모두 복(福)을 나누어 먹는다는 뜻으로 ‘음복(飮福)’을 한다면서 제사를 지낸 음식은 복(福)이 식어 새어 내가기 전에 보다 많은 복을 받아먹기 위하여 한 밤중에라도 많은 사람들이 함께 모여 나누어서 ‘음복(飮福)’하여 먹고 있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제사를 지내는 데에는 이렇듯 자기가 자기의 뿌리를 스스로 확인하고, 자기가 자기의 복(福)을 스스로 찾아 먹고자 하는 데에 그 진정한 뜻이 있는 것이에요.
제사(祭祀)는 자기 스스로가 주인(主人)을 이루는 행사(行事)
우리의 옛 조상님들은 반드시 집 안방의 머리맡 천정에 “성주(星主)”라는 것을 종이로 접어 만들어서 달아 놓으셨어요. 그리고는 특별한 날에는 그 성주 아래에다가 밥상을 차려놓고는 치성(致誠)을 들이면서 자기의 소원을 빈 다음, 그 밥을 반드시 자기 식구들이 직접 먹었던 것이어요.
이 ‘성주’에다가 치성을 들이는 데에는 특별나게 돈을 들여서 별도로 차리는 것도 아니고, 돈을 엉뚱하게 남에게 바치는 것은 더더욱 아니었으며, 특히 남으로 하여금 “나”의 성주를 믿게 시키지도 않았으며, 또한 내가 남의 집에 가서 ‘남(他人)’의 성주에다가 정성을 들이고 소원을 비는 그런 엉뚱하고 바보같은 짓은 하지를 않았던 것이에요.
이때 ‘성주’라 함은 “나의 별(星)”이라고 하는 뜻에 별성(星)자, 또는 이룰성(成)자 임금주(主) “성주(星主=成主=城主)”인 것이므로 즉「“나”는 내 삶의 인생에 주인을 이루는 것이며, 또한 “나”는 내 삶의 성(城)에서 내가 주인을 이루는 것」이라는 뜻이어요. 이렇듯 우리 전통의 사상은 “나”에 대한 주체의식이 아주 뚜렷하였던 것이지요. 따라서 자기의 조상님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도 바로 이와 같이 자기의 “성주(星主=成主=城主)”에게 정성을 들이는 것과 같은 사상인 것이어요.
그러므로 예로부터 제사를 지낼 때에는 같은 집안(宅內)의 동성(同姓)이 아닌 남을 나의 제사에 참석시키지를 않았던 것이며, 자기의 “성주”에게 정성을 들일 때에도 똑같이 자기의 집안 식구가 아닌 남의집 식구를 결코 참석시키지 않았던 것이다- 이 말씀이어요. 그것은 왜냐하면 “나(我)”는 나의 조상을 모시고, “나”는 나의 성주를 섬길테니 너는 너의 집으로 돌아가서 네가 너의 조상을 모시고 네가 너의 성주를 섬기거라! 하는 그러한 뜻이었던 것이지요.
이렇듯 우리의 전통적 제사(祭祀) 사상은 철저하게 “나”와 “나의 조상”이 내 삶의 주인이 되는 성주(成主)사상인 것이어요. 그래서 제사를 올리는 뜻은 결국 「내가 “나” 자신의 존재적 가치를 중히 여기면서 자기 스스로에게 고마워 하는 행사를 잊지말고 잘 새기면서 살아라!」라고 가르쳐 주는 행사인 것이지요. 이는 결국 「내가 남에게 고마워 하지 말고 “나”에게 고마워 하는 것이 “나”를 가장 훌륭하게 위하는 것이다-」하고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에요.
그래서 우리 전통의 사상은 사람을 칭찬할 때에도 마음속으로 언제나 나의 조상과, 나의 부모와, 나의 형제와, 나의 며느리와, 나의 자식과, 나의 손자와 같은 식으로 「“나”의 식구」를 가장 먼저 칭찬한 다음에야 비로서, 예의(禮儀)로써 남(他人) 앞에서 남을 칭찬해 주었던 것이어요. 그러므로 우리 전통의 사상은 기도를 하는 데에도 「나는 언제나 “나”와 나의 “조상”을 훌륭하게 이룩하겠다」고 하는 스스로의 다짐으로써, 자기 스스로가 주인이 되는 “성주(成主)”의 기원(祈願)이 주(主)가 되었던 것이어요.
따라서 우리 전통의 사상에서는, 자기 자신과 가장 가까운 남편이나 아내 앞에서는 결코 타인(他人)인 남의 남자(여자)를 칭찬하거나 부러워하는 말을 결코 하지 않는 것이 부부간에 가장 기본적인 예의(禮儀)인 것이어요. 그러헌즉 자기 자신과 가장 가까운 남편이나 아내 앞에서 제 아무리 훌륭한 사람이라 하더라도 타인(他人)인 남의 남자(여자)를 칭찬하거나 부러워하는 말을 자주 하게 되면 자칫 부부간의 금슬(琴瑟)에 저절로 금이 가게 되는 것도 바로 이러헌 이치 때문인 것이어요.
그리하여 평소의 생활에서도 뭔가 일 이 잘 안 풀릴때에는 자기 집 안에서 스스로 “성주풀이” 의 제사(祭祀)를 올리는 것인데 “성주(成主)”라는 것을 잘 “풀이(不二)” 해 놓고 보니 바로 둘이 아니고(不二) 하나인 “나(我)” 이더라- 하는 그러헌 뜻이잖아요? 그러면 제사를 지낼때에 모시는 지방(紙榜)에 여자는 반드시 친정의 성(姓)과 본관(本貫)을 쓰는 것인데 그 뜻이 뭐-게-요?
요곤 숙제! ( )
사실 말이지만 이 지구상에서, 여자가 결혼을 한 후에도 자기 자신의 원래 성(姓)과 이름(名)을 죽을 때까지 평생동안 가지고 있을 수 있는 민족을 오직 우리민족 뿐이라고 해요. 중동.... 같은 지역에서는 심지어 여자는 하늘을 보면 안 되는 것이라- 며 차별을 해서, 여자가 집 밖에 나갈 때에는 반드시 얼굴과 심지어는 눈 까지도 다 가리도록 하고 있으며, 서양에서도 음(陰)인 여자는 양(陽)인 하늘을 보면 안 되는 것이라 해서, 교회에서 조차도 여자는 반드시 얼굴에 면사포(面紗布)를 쓴 다음에야 비로서 교회에 들어갈 수가 있도록 되어져 있는 것이잖아요?
그리하여 서양에서는 여자가 결혼을 하여 시집을 가게 되면 남편의 성(姓)에 따라 여자의 성(姓)이 바뀌게 되고, 그 여자가 이혼을 한 다음 재혼을 하면 또 재혼을 한 남편의 성(姓)에 따라 여자의 성이 바뀌게 되고.... 마치 사람이 아닌 짐승처럼, 주인이 바뀔 때마다 주인의 성(姓)에 따라 여자의 이름(姓名)이 사뭇 바뀌어 지게 되는 것이어요. 이러한 현상은 우리나라와 같은 동양권인 이웃나라 일본에서도 마찬가지 인 것이어요.
그러나 우리민족은 여자가 결혼을 하여 시집을 가서도, 원래에 자기 자신의 성(姓)과 이름(名)을 그대로 다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죽어서 까지도 지방(紙榜)에 원래의 성(姓)을 가지게 되는 것이며, 절이든 교회든 그 어떤 종교적 행사에서도 여성으로서의 차별을 받지 않도록 되어져 있는 것이어요. 이것은 참으로 대단한 사상인 것이잖아요?
그러나 서구(西歐) 종교의 사상은, 나는 항상 노예(奴隸)의 신분으로서 언제나 자기 조상을 맘대로 섬기지도 못하고, 항상 노예의 주인인 “남”을 섬기도록 되어 있는 것이어요. 즉 노예(奴隸)사상에서는 “나”는 언제나 하잘것없는 하나의 “죄인(罪人)”일 뿐인 것이며, 나의 주인은 언제나 “나(我)” 자신이 아닌 “남”이 나의 주인인 것이므로 나의 인생은 항상 “남”의 것으로 되어져 있는 그런 사상인 것이어요.
따라서 서구 종교의 사상은 나의 신(神)과 상대방의 신이 다를 때에 나의 신을 위한다는 명목으로 상대방에게 나의 신을 믿도록 강요하는 종교전쟁조차도 불사하는 것이라구요. 참 교활한 사상이지요? 그러나 우리 전통의 성주(星主=成主=城主)사상은 상대방의 신(神)이 나의 신(神)과 다르다고 해서 전쟁을 하기는 커녕 하등 신경조차 쓰지 않는 것이거든요.
그래서 노예사상에서는 자기가 자기의 조상을 맘대로 섬길 수가 없는 것이어요. 왜냐하면 주인인 “남”의 입장에서 볼 때에, 노예가 만약 자기의 뿌리를 찾아서 성주(星主=成主=城主)가 된다면 큰 일 나는 일이 되는 것이기 때문이지요. 따라서 노예가 자기 조상의 뿌리를 찾아내지 못하도록 하기 위하여 자기 조상의 제사를 지내지 못 하도록 봉쇄하고 있는 것 이것이 서구의 노예사상인 것이라고 해요.
이러한 사상의 차이는 예컨대 일본은 지금 平成 00 년 이라고 하는 자기만의 년호(年號)를 사용하여 “자기”를 지켜가고 있고, 서구는 “西紀 00년”이라고 하는 자기의 년호(年號)를 남에게 사용하도록 강요하여 남을 노예화 시키고 있고, 우리는 지금 우리의 년호(年號)인 단기(檀紀)조차도 잃어버린채로 서기(西紀)의 사용을 강요당하고 있는지도 모르는채 그냥 사용하고 있는 것이잖아요.
이렇듯 그 민족의 전통과 사상은 그 민족이 고래(古來)로 부터 살아온 삶에 모습과 깊은 관계가 있는 것이어요. 그러므로 우리의 전통은 고래로 부터 유구한 세월에 걸쳐 전해져 내려온 훌륭한 배달민족의 자손에 전통인 것이어요. 즉 일천(日淺)한 서구의 노예(奴隸)사상과는 사뭇 다른 “성주(成主)” 사상이 우리생활의 전통예절에 근간(根幹)을 이루고 있는 것이며, “제사(祭祀)”는 바로 그 근간(根幹)의 기본인 것이지요. 그러므로 실로 이 훌륭한 우리 전통의 성주(成主)사상을 우리 스스로가 잘 지켜서, 자기 조상의 뿌리를 찾아서 “나” 스스로가 나의 삶에 주인을 이룩하는 “성주(成主)”의 사상을 잘 지켜 이어가도록 해야 할 것이어요.
그리하여 자기 집안의 뼈대를 지켜나가게 하고, 자기 집안의 젊은 신세대 후손들에게도 이를 잘 설명해 주어서 자기 집안의 전통적 미풍양속인 “제사 지내기”를 대대손손이 계승해 나가도록 계몽해 가야 할 일인 것이어요. 이러한 자연의 이치는 한 치의 오차도 없는 것이므로 현실의 사회에서도 보편적으로 자기 조상님의 제사를 잘 모시고 있는 가문(家門)의 사람일수록 생명력의 활동이 왕성해 지고, 삶의 지혜가 풍부해 지며, 구성원 각 개인이 각각 자기 가정(家庭)을 충실하게 잘 지켜나가게 하는 안녕(安寧)질서를 확립하게 됨으로써, 가문(家門)이 저절로 융성하게 되어지는 것이어요.
사실 말이지만, 지금까지의 시대가, 이러한 우리 민족전통의 제사사상(祭祀思想)에 기초하여, 한 명(一人)의 조상님에 대하여 천(1,000)명의 자손들이 다 함께 모여서 제사(祭祀)를 지내는 소위 “일조천손의 시대(一祖千孫 時代)” 였다고 친다면, 앞으로의 시대는 사람마다 결혼을 잘 하지 아니하게 되고 출산(出産)을 잘 하지 아니하게 되며, 특히 현대 과학과 의학으로도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각종 역병(疫病)들이 주기적으로 엄습해 오게 됨으로써, 인구가 사그리 줄어들게 되어서 소위 천(1,000)명의 조상이 한 명(一人)의 자손을 가지게 되는 소위 “천조일손의 시대(千祖一孫 時代)” 가 서서히 다가오게 되어지는 것이어요.
따라서 “일조천손의 시대(一祖千孫 時代)” 에서는 1,000명의 자손들이 함께 모여서 한 사람(一人) 조상님의 제사를 지낼 때에, 서열의 순서대로 자기의 자리에 서야 하는 ‘서립(序立)’의 절차상 친척마다 촌수(寸數)마다 각각의 호칭이 따로따로 명백하게 정해져 있는 것이지만, “천조일손의 시대(千祖一孫 時代)”에서는 1,000명의 조상님들이 한 사람(一人)의 자손만을 가지고 있게 되는 것이기 때문에 그야말로 손(孫)이 귀하여 친척여부조차 따질 수가 없게 되고, 촌수(寸數)를 도저히 따질 수조차 없게 됨으로써, 사람들은 서로가 아무렇지도 않게 서로가 “어머니, 어머니” “아버지, 아버지” “형제님, 형제님” “자매님, 자매님....” 하고 부르게 되는데, 이러한 현상은 지금 우리사회의 도처에서 바야흐로 일어나고 있는 현상인 것이잖아요.?
그러므로 앞으로의 “천조일손의 시대(千祖一孫 時代)”에서는 결국 살아남은 자손들의 의식속에서 점진적으로 자기의 “조상(祖上)님” 이라고 개념이라든가 “제사(祭祀)” 라고 하는 개념, 특히 결혼이나 출산, 가정(家庭), 가문(家門).... 같은 개념이 점차 사라져 없어지게 되고, 이를 부축이는 종교가 번창하게 됨으로써 점차 결혼을 기피하고 출산을 기피하는 개인주의가 팽배해 지면서 ‘가정(家庭)’ ‘가문(家門)’ 또는 ‘민족(民族)’이라고 하는 단위가 점점 퇴색화(退色化) 되어짐으로써 “제사(祭祀)”라고 하는 행사가 저절로 없어지게 되는 현상을 도저히 어찌 할 수가 없게 되는 것이므로 이러한 때 일수록 자기 스스로가 자기 자신의 조상님에 대한 “제사사상(祭祀思想)”을 더욱더 소중히 여기면서 잘 지켜 보존해 나간다고 하는 것은, 자기 스스로가 대대손손(代代孫孫)이 자기의 가정(家庭)과 가문(家門)을 잘 지켜 보존해 나가도록 해 주게 되는 것이므로, 단순한 “제사(祭祀)” 이상으로써, 참으로 큰 의미를 갖게 되어지는 것이어요.
제사상 차림의 법칙에는 삶의 지혜가 담겨져 있어
그러면 우리의 조상님들께서는 제사(祭祀)를 통하여 과연 무엇을 우리네 후손들에게 가르쳐 주고자 하셨던 것일까요? 거기에는 아주 큰 뜻이 담겨져 있어요. 예컨대 제사상(祭祀床)을 차리는 데에는 그 법칙이 아주 까다롭고 엄격하잖아요? 집안마다 지방마다 제사상 차림의 법칙이 각각 다르고 엄격한데, 이는 예절의 법칙이 엉망이라서 제 각각인 것이 아니라, 자연에 있어 삶의 원칙이 이렇듯 다양한 것이므로 꼭 지켜나가야 한다는 뜻을 엄하게 가르쳐 주기 위하여 제사상 차림의 법칙이 그처럼 엄격한 것이며, 이를 일컬어 가가례(家家禮)라 하여 소위 “남의 집에 가서 감(柿)놔라, 배(梨)놔라 하지 않는 게 옳은 예의(禮儀)이다” 라는 것이에요.
이것은 왜 그런고 허니, 예컨대 홍씨(洪氏)라 함은 홍(洪)가 집안의 “종자(種子=씨)”란 뜻이고, 최씨(崔氏)라 함은 최(崔)가 집안의 종자란 뜻이잖아요? 이는 곧 무우씨 배추씨 하는 “씨”는 종자를 뜻하는 것으로써 서로가 각각 다른 체질의 종자임을 뜻하듯이, 사람도 집안마다 각각 “씨”의 체질이 다른 종자라는 뜻이어요. 즉 산 높은 곳에서 태어난 최(崔)씨의 체질과, 물 깊은 곳에서 태어난 심(沈)씨의 체질이 다르듯이 물과 같은 늪에서 태어난 홍(洪)씨의 체질 또한 타성(他姓)과는 다른 것이며, 바닷가에서 살고 있는 사람과 산간 벽절에서 살고 있는 사람의 체질 또한 다른 것이므로 먹어야 하는 음식과 섭생(攝生)의 방법이 각각 엄격하게 달라져야 하는 것이지요.
예를들면 닭(鷄) 종자가 모이를 먹을 때에는 단단한 팥알 조차도 씹지 않고 단번에 꿀꺽 삼키면서 모래알 조차도 잘 꿀꺽꿀꺽 삼켜서 먹는 체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지만, 고양이(猫) 종자는 부드러운 생선조차도 깨작깨작 잘 씹어서 삼키면서 물에 말은 음식은 잘 안 먹는 체질을 가지고 있는 것이잖아요? 이렇듯 우리네 사람도 각각 ‘성씨(姓氏)’ 라고 하는 종자에 따라서 타고난 체질이 각각 다르다는 거예요.
바로 이러한 점을 우리네 자손들에게 엄격하게 가르쳐 주기 위하여 제사상 차림의 법칙(진설법)이 그처럼 집안마다 지역마다 가가례(家家禮)로써 엄격하게 다르다는 것이에요. 즉 우리 조상님들께서는 「제사상차림 법칙(진설법)」을 통하여 우리네 자손들이 건강하게 오래도록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섭생(攝生)의 식생활법칙과 삶의지혜를 길이길이 우리네 자손들에게 친히 가르쳐 알려 주고자 하는 깊은 뜻이 담겨져 있는 것, 이것이 바로 제사(祭祀)의 뜻이라는 거래요.
제사상 차림의 방법(진설법)
그러면 제사상 차림의 법칙(진설법)은 어떻한 원칙인 것일까요?
“주신남향좌, 손북향서립(主神南向坐 孫北向序立)” 으로써, 돌아가신 조상님의 신위(神位)는 대청마루가 가장 상석(上席)이었던 것이므로 대청마루의 북쪽에 남쪽을 향하여 안치하고, 자손들은 남쪽에서 그 조상님의 신위를 향하여 북향하여 서립(序立)하여 서열대로 서 있는 것인데, 사실상 제사를 모시게 되는 가옥(家屋)마다 좌향(坐向)이 각각 다를 수 있는 것이므로, 지도상의 방위를 기준하는 것이 아니고, 통상 대청마루의 주출입처를 남쪽으로 삼고서, 출입처의 가장 안 쪽을 북쪽으로 삼아 병풍(屛風)을 둘러치고 병풍앞에 제사상을 놓고 신위를 모시는 것이지요.
가옥의 구조상 대청마루가 없는 집에서는 안방의 윗목에 제사상을 차려놓고, 자손들은 따뜻한 아랫목에서 조상님의 신위(神位)를 향하여 서립(序立)하여 제사를 지내는 것이어요.
“주신위 좌동우서(主神位 右東左西)” 인 것이어요. 즉 신위(神位)를 주(主)로 해서 볼 때에 왼쪽은 동쪽으로써 위(上)의 위치이고, 오른쪽은 서쪽으로써 아래(下)의 위치인 것이어요. 신위(神位)의 입장서 보는 것이므로 살아있는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마치 반대인 것처럼 보이는 것일 뿐 사실은 살아있는 사람과 마찬가지 인 셈이지요.
“좌동상(左東上)”이라 함은 우리가 평소에 음식을 먹을 때에 제사상의 같은 줄에 진설되어 있는 음식의 종류 중에서도 좌측쪽에 진설되어져 있는 음식의 종류가 몸에 좋은 상위식(上位食)이므로 먼저 먹어야 좋고, “우서하(右西下)”라 함은 우리가 평소에 음식을 먹을 때에 우측에 진설되어져 있는 음식이 몸에 낮은 하위식(下位食)이므로 나중에 먹어야 좋은 것이다- 하고 가르쳐 주는 것이어요..
“과채적탕(果菜炙湯)이고, 면서병동(麵西餠東)” 이어요. 즉 맨 앞줄부터 첫째줄에는 과일과 과자종류의 음식을 놓고, 둘째줄에는 채소종류의 음식을 놓고, 셋째줄에는 적(부친것)종류의 음식을 놓고 넷째줄에는 탕(끓인것)종류의 음식을 놓는 것인데, 같은 줄에서도 면(밀가루)종류의 음식은 서쪽에 놓고, 떡(쌀)종류의 음식은 동쪽에 놓는 것이어요.
그런데 이때에 동서남북 실제의 방향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신위(神位)를 중심으로 하는 것이므로 신위의 입장에서 볼 때에 왼쪽은 동쪽에 해당되고 오른쪽은 서쪽에 해당되며, 탕(끓인것)이 제일 가까운 줄에 해당되고, 그다음이 적(부친것)줄이 되고, 그 다음이 채(채소) 줄이 되며 신위의 입장에서 맨 먼쪽에 있는 줄이 과(果=과일및 과자)의 줄이 되는 셈이지요.
이는 우리가 평상시 음식을 먹을때에 탕(물에 끓인것)종류의 음식을 가장 가까이하여 자주 먹어야하는 것이며, 두번째로 적(지진것)종류의 음식을 두번째로 가까이 하여 자주 먹어야 하는 것이며, 세번째로 채(菜蔬)종류의 음식을 가까이 하여 자주 먹어야 하는 것이며, 네번째로 단맛의 과(果)종류라든가 과자종류는 가장 멀리하여 드물게 먹어야 하는 것이며, 같은 종류의 음식 중에서도 밀가루 종류의 음식보다는 쌀 종류의 음식을 가까이 하여 먹어야 건강하게 오래도록 잘 살수가 있는 것이다- 하고 제사상 차림의 법칙을 통하여 우리네 자손들에게 엄하게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에요..
좌포우해(左脯右醢)이고, 어동육서(魚東肉西)이며, 두동미서(頭東尾西) 이어요. 즉 포(脯=말린것) 종류의 음식은 왼쪽에 놓고, 해(醢=소금에 절인 젓갈류) 종류의 음식은 오른쪽에 놓는 것이며, 어(魚=생선류) 종류의 음식은 동쪽에 놓고, 육(肉=육류) 종류의 음식은 서쪽에 놓는 것이며, 두(頭=머리)는 동쪽으로 향하게 놓고, 미(尾=꼬리)는 서쪽으로 향하게 놓으라는 뜻이어요.
즉 포(脯=말린것)종류의 음식보다는 해(醢=소금에 절인 젓갈류) 종류의 음식이 좋은 것이고, 육(肉=육류)의 음식보다는 어(魚=생선류)의 음식이 좋은 것이며, 미(尾=꼬리)의 음식보다는 두(頭=머리)의 음식이 좋은 것이니 좋은 것을 먼저 먹고, 자주 먹어야만 건강하게 오래 살 수 있는 것이다- 하고 우리네 자손들에게 평소 섭생(攝生)의 지혜를 가르쳐주기 위함인 것이어요.
그런데, 아주 묘(妙)하게도 우리가 평소에 음식을 먹어 섭취(攝取)해서 자기 목숨의 “생존(生存)을 유지하며 살아 간다”고 하는 뜻에 “섭생(攝生)” “섭취(攝取)”라고 할 때의 ‘당길섭(攝)’자에 생김새가 ‘귀이(耳)’자 셋으로 이루어져 있는 것이잖아요? 이는 곧 우리가 평소 음식을 먹을 때에도, 내 몸에서 필요로 하는 성분의 소리와, 내가 먹고자 하는 그 음식물이 내는 성분의 소리와, 하늘이 들려주는 정당성의 소리, 이 세 가지에 소리를 잘 들으면서 먹어야 되는 것이다- 하는 뜻이라는 거예요.
그런다음, 조율이시(棗栗梨柿)에 홍동백서(紅東白西)이고, 장채식혜(醬菜食醯) 이어요. 즉 과일은 조(棗=대추). 율(栗=밤). 이(梨=배). 시(柿=감)의 순서로 놓는 것이며, 홍(紅=붉은색)종류는 동쪽에 놓고, 백(白=흰색)종류의 것은 오른쪽에 놓으며, 채(采=채소)는 장(醬=간장)과 함께 놓고, 식(食=밥)은 혜(식혜=국)와 함께 놓으라는 뜻이래요.
즉 과일은 신위(神位)쪽에서 가장 먼 줄에 있으니 약처럼 가끔씩이나 먹을 일이로되, 뼈에 좋은 대추, 머리에 좋은 밤, 배에 좋은 배, 피부에 좋은 감의 순서로 좋은 것이라는 뜻이고, 백(白=흰색)종류의 음식보다는 홍(紅=붉은색) 종류의 음식이 좋은 것이니 먼저 먹고 자주 먹어야 한다는 뜻이며, 채(采=채소) 종류의 음식은 장(醬=간장. 된장. 고추장)과 함께 먹어야하는 것이며, 식(食=밥)은 혜(혜=국, 숭늉. 물김치. 삭힌 국물)과 함께 먹어야 몸에 좋다는 것을 우리네 자손들에게 삶의 지혜로써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지요.
특히 돌아기신 조상님의 제사상 차림의 법칙에서, 맨 앞줄 제일 첫 번째로 자리에 가장 먼저 턱- 허니 올라가 자리를 잡음으로써 제사상 차림에 중심을 꽉-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는 과일 있건대, 그게 바로 조율이시(棗栗梨柿)의 ‘대추(棗)’라는 거예요. 이 ‘대추(棗)’가 바로 조상님 전에 제사를 올리는 데에 가장 중요한 사람, 즉 이 사람이 없으면 조상(祖上)이고 나발이고, 가정(家庭)이고 뭐고..... 이루어 질 수가 없는 가장 중요한 사람이 있는데, “그 사람이 곧 가정의 ‘주부(主婦)’인 것이다-” 하는 사실을 우리 조상님들께서 제사상 차림의 법칙을 통해서 우리네 자손들에게 친히 가르쳐 알려주고자 하는 뜻이 담겨져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이것은 왜냐하면, ‘대추(棗)’자를 이루고 있는 윗 글자가 바로 ‘가시자(朿)’자 인데, 이 때의 “가시”라 함은 찌르는 “까시(刺)”를 뜻하는 말이 아니라, 순수한 우리말에서 여자를 일컬어 “가시내”라고 하듯이 ‘가시’란 “잉태가능한 여자”라는 뜻의 가시(朿)인 것이므로 조상님이 제사(祭祀)에서, 그 제사를 모실 수 있는 가정에서 가장 중요한 사람은 곧 “가정주부(主婦)인 여자인 것이다-” 하는 사실을 제사상 차림의 법칙을 통하여 우리 조상님들께서는 우리네 자손들에게 제사상 차림의 법칙을 통하여 친히가르쳐 알려주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의 여자들은 세계 다른 나라 사람들과는 달리, 결혼을 한 후에도 자기 자신의 이름(姓)을 지켜가고 있는 것은 물론, 죽어 제사상의 지방(紙榜)에서 까지도 자기 자신의 성(姓)을 지켜가고 있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민족의 제사(祭祀)란 요컨대 어떤 종교적 행사인 것이 아니라, 위와 같이 우리네 자손들이 평상시에 삶을 살아가는 데에 꼭 필요한 섭생(攝生)방법에 대한 삶에 지혜를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지, 결코 돌아기신 조상님 귀신들이 고딴 조율이시(棗栗梨柿)에 대추 밤 배 감..... 따위의 시시한 음식들을 좋아해 서리 고딴 음식들을 차려놓고 조상님 전에 제사를 지내는 그런 시시한 뜻이 아닌 것이어라- 이 말씀이에요.
그러헌즉, 제사를 지낼 때에는 헤어져 있던 가족들도 반드시 함께 모여서 식생활의 엄격한 섭생(攝生)방법을 몸소 실천하여 몸에 익혀 붙이도록 하고 있는 것이잖아요? 그리하여 제사를 지낸 음식들을 직접 서로 나누어 먹으면서 음복(飮福)이라하여 “복을 먹는 것이다” 하고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지요. 이러한 제사를 최소한 1년에 4번씩을 지내도록 되어져 있으므로 네 가지의 섭생방법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인데,
첫 번째로 돌아가신 조상님의 기제삿날에 올리는 “제사(祭祀)” 는 자기 가문에 사람들의 “선천적 체질(조상으로 부터 씨의 체질)”에 맞추어서 음식을 먹어야 하는 섭생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함인 것이고,
두 번째로 설날에 올리는 “차례(茶禮)” 는 겨울철의 섭생법을 가르쳐 주기 위함인 것이고,
세 번째로 8월 추석날에 올리는 “제례(祭禮)” 는 여름철의 섭생법을 가르쳐 주기 위함인 것이고,
네 번째로 산소에서 직접 제사를 올리는 “시제(時祭)” 는 비상시에 자연속에 묻혀서 살아갈 수 있는 섭생방법을 가르쳐 주기 위함인 것이라고 해요.
그렇기 때문에 제사상에 오를 수 있는 음식은 오직 그 계절에 난 제철의 음식과, 그 지방에서 난 음식만을 제사상에 올릴 수가 있는 것이어요. 즉 제아무리 좋고 비싼 음식이나 술이라 하더라도 그 지방에서 생산되지 않은 양주(洋酒)라든가 제철에 나지 않은 음식은 제사상에 감히 오를 수가 없는 것이며, 또한 제아무리 좋은 것이라 해도 겨울철에 난 수박 참외나 상추잎은 감히 제사상에 올릴 수가 없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는 거예요.
이것은 즉 우리 조상님들께서 제사상 차림의 법칙(진설법)을 통하여 제철에 난 음식과 제 지방에서 난 음식이 최고의 음식임을 가르쳐 주기 위한 것이어요. 그러나 요즘 세상에서는 “남”의 제사(행사)에는 적극적이고 엄격하게 받들어 모시면서도 도리어 “나”의 집안 제사(행사)는 엄격하게 받들어 모시지를 않기 때문에 현대의 사람들이 각자 자기 조상님들께서 가르쳐 주시는 그 숱한 섭생(攝生)의 방법과 삶의 지혜를 사뭇 간과(看過)하여 귀히 여기지 않고 있는 셈이지요.
그러헌즉, 예컨대 사람이 만성적인 병으로 고생을 하게 되는 것은, 평상시에 자기 자신이 무엇인가 평소의 식생활 섭생(攝生)을 잘 못했기 때문인 것이잖아요? 제사상에도 오르지 못할 음식을 마구 먹다가 병을 얻게 된 셈이지요. 그래서 병을 얻지 않는 방법이라든가 혹은 병을 얻었을 때에 고치는 방법은 평소의 생활방법과 섭생(攝生)방법을, 제사상 차림의 법칙(진설법)에 좇아서 제 철에 난 음식을 먹고, 그 지방에서 난 음식을 먹어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주고 있는 것이어요.
이러한 이치는 평소에 자기의 조상님 제사에 충실히 참석하여 제사상 차림의 법칙을 몸에 익혀서 저절로 알고 있게된 사람들은 이미 은연중에 다 알고 있어서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평범히 실천하고 있는 데도 자연의 섭리(攝理)에 그대로 척척 맞아 떨어져서 아무 탈 없이 저절로 건강한 삶이 되어지고 있는 것이지요. 그래서 평소에 자기 조상님의 제사를 잘 모시고 있는 사람은 괸히 헛되이 쓸데없는 것에 현혹되어서 자기 스스로가 자기의 건강을 해치는 일을 좀처럼 잘 하지 않게 되어지는 것도 바로 이러한 이치 때문인 것이래요.
즉 겨울에는 괜스리 여름에 나는 채소와 여름에 나는 과일을 좋은 줄로 잘 못알고 욕심부려 비싼돈을 주고 사서 자꾸 먹어 대지를 않는 것이며, 여름에는 괜스리 겨울에 나는 찬 얼음의 성분을 가진 음식을 좋은 줄로 잘 못알고 욕심부려 자꾸 먹어 대지를 않습지요.
왜냐하면 그렇게 자연에 거슬려 꺼꾸로 섭생(攝生)하여 먹어대는 들 제아무리 튼튼한 육체의 “씨”를 자기 조상으로 부터 물려받았다 치더라도, 자기의 몸속에 있는 오장육부가 제대로 배겨낼 수가 없는 것이거든요. 여름에 찬 얼음성분의 음식을 마구 먹어대는 것은 머리를 하얗게 만들어 애늙은이가 되게 하는 것이 잖아요? 그리고 겨울에 연해 빠진 여름의 채소를 마구 먹어대는 것은 위장을 못쓰게 만들어 버리게 하는 것이 잖아요?
그래서 튼튼한 위장을 4개나 가지고 있는 소가 겨울에는 마른 볏짚의 여물을 즐겨 먹고, 여름에는 질긴 억새풀을 즐겨 먹는 것이잖아요? 따라서 이러한 자연의 이치를 우리네 자손들에게 가르쳐 주고자 겨울철에 맞이하는 설날의 제사상에는 반드시 말린 고사리 음식과 말린 시래기 나물의 음식을 올리도록 되어 있는 것이어요. 즉 겨울철에는 말린 채소의 나물이나, 말린 시래기 식물성 음식을 많이 먹어야 건강에 좋은 것이라는 삶에 지혜의 뜻을 우리 조상님들께서는 제사상 차림에 법칙을 통하여 우리네 자손들에게 친히 가르쳐 알려 주고자 함인 것이어요.
실제로 살아있는 가족들이 모두 함께 모여 하루를 즐겁게 노는 “정월대보름날”에는 왼 종일 나물을 말려서 만든 음식만 먹도록 하는 풍습이 지켜져 내려오고 있는 것도 바고 이러한 이치 때문인 것어지요. 그러므로 만약 자손이 만성위장병 환자가 되었을 때에는 자기 집안의 이러한 제사상차림에 원칙을 되돌아보고 잘 지켜나야 할 일인 것이어요.
즉 제사상 차림의 법칙이 집안마다 지방마다 다르게 그처럼 까다롭고 엄격한 것은, 즉 살아있는 사람에게 그 집안의 “씨(氏)”에 따른 근본체질과, 그 지방의 환경에 맞는 바른 생활관습과 바른 식생활의 섭생(攝生)방법을 우리 조상님들께서 우리네 자손들에게 제사상 차림의 법칙을 통하여 친히 가르쳐 주고자 하는 진실한 뜻의 삶에 지혜의 방편인 것이어요.
그러므로 이러한 점들을 잘 참고하셔서 우리 전통의 미풍양속인 “제사(祭祀)지내기”를 통하여 좋은 삶에 지혜를 잘 깨달으시어 부디 건강하고 좋은 명절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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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년 9월 19일
아라리오 홍 사 권 올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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