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래는 오늘 "한음 이덕형 선생의 묘소"를 가려고 길을 나선 것이다.
그런데 양수역에 도착하니 복도에 물소리길 패스포트를 판매하는 무인자판기가 있다.
동전을 바꿔 패스포트를 구입하고 나니 조금 욕심이 생긴다.
이번 길은 전에 지나던 원래의 물소리길이 아니고 차도(車道)를 따라 가 보기로 한다.
양수역 뒤쪽으로 나와 작은 골목길을 걷는다.
이길에도 전원주택과 비슷한 예쁜 정원을 가꾸는 집들이 많이 있다.
뒤쪽에서 보는 "양수리 성당"
벌써 서리가 왔나?
고추가 모두 시들었다.
차도로 나왔다.
원래는 이 다리를 건너자마자 왼쪽의 좁은 길로 가야하는데 그냥 차도로 가기로 한다.
처음에는 조금 걱정을 했는데 다행히도 길옆에 인도(人道)가 마련되어 있다.
옆에는 "원예조합공동사업법인"이라는데 각종 농기구를 수리한다.
한참을 걸으니 길 건너로 터널이 있는 원래의 물소리길(소리개고갯길)이 보인다.
옛날에는 터널이 없고 고갯길이였겠지만 이덕형 선생이 어머님 묘소를 가려면 이길을 지났겠다.
더 올라가니 정창손(鄭昌孫)묘의 안냇돌이 보인다.
그냥 지나치려는데 120m라는 표시가 나를 잡아 끈다.
정창손 묘역 입구.
"동래정씨"로는 최초로 영의정에 오르신 분이란다.
신도비.
묘역 안내도.
동산재(재실) 건립비.
정창손선생의 묘는 제일 위쪽에 있다.
동산재(東山齋)
들어갈 수는 있는데 오늘의 목적과 달라 들어가지는 않는다.
조금 더 가니 길옆에 "동고 이준경 사당(忠正祠)"가 있다.
이곳도 그냥 통과.
그런데 멀리 길건너 버스정류장옆에 빗돌이 보인다.
"숭덕재 이공 윤경묘소"(崇德齋 李公潤慶)입구란다.
지도에도 나오지 않는 묘소다.
게다가 이쪽으로 들어가면 낮은 지형의 논밭인데 어디에 묘를 썼는지,,,,,
반대편에는 "이준경선생 묘"(李浚慶 先生 墓)가 있어서 찾아보니 형제간이다.
계속해 걸으니 기숙학원 간판이 보인다.
원래의 물소리길과 만나는 것이다.
인도(人道)는 없지만 길이 넓어 그리 신경쓰지 않고 걸어도 문제가 없다.
거의 다 올라 와 목왕리 삼거리가 보이기 시작한다.
문득 앞에 보이는 산위에 묘소가 보여 사진을 찍어보니 이덕형 선생의 부모님 묘소다.
길 건너에서 보는 이덕형 선생의 신도비각.
삼거리를 지나 조금 올라가니 왼쪽으로 엄청 큰 은행나무가 보인다.
수령 570년의 은행나무.
여기에서 큰 실수를 하고 말았다.
은행나무를 보려고 작은 길로 들어가 은행나무를 보고 돌아 나왔는데 그 앞에 이덕형 선생의
행장비(行狀碑)가 있는데 그 뒤로 돌아나오며 못보고 지나쳤다.
은행나무를 지나면 집판을 예쁘게 가꾸는 음식점이 있다.
그런데 이곳은 예약손님만 받는다고 한다.
예약을 해야지만 음식준비를 한단다.
이덕형 선생 묘소 입구.
이덕형 선생 부인의 정려문.
재실.
이덕형 선생의 묘비.
이덕형선생 묘 앞에서 본 운길산.
이덕형 선생의 부모님 묘앞에서 본 운길산.
"이덕형 선생의 묘 탐방기는 따로 쓴다."
"신도비각"으로 가는 다리.
신도비각.
신도비 앞면.
신도비 뒷면.
신도비각앞에 앉아 간식을 먹으며 조금 쉬며 생각한다.
버스를 타고 "양수역"으로 갈까?
아니면 다시 걸어서 "양수역"으로 갈까?
그런데 지도를 보며 생각하니 여기에서 "양수역"으로가나 "신원역"으로 가나 거리가 비슷하다.
결국 조금 더 쉬고 "신원역"으로 가기로 결정한다.
여기서부터 한참을 숲길을 걸어야 한다.
숲길 초입에서 엄청나게 큰 버섯을 본다.
식용이 가능한 "큰갓버섯"이라는데,,,,,,,,
가져다 먹어 볼 생각은 전혀없다.
엇그제 비가 많이 왔는지 길이 물길이 됐다.
그리고 지난 봄에 지날 때 숲길을 확장했었는데 그 길은 없어지고 다시 오솔길이 됐다.
길 중간 중간에 산밤이 떨어지기 시작한다.
가면서 하나 둘 줍는다는 것이 돌아와보니 한됫박이나 될 정도로 꽤나 많다.
이덕형 선생이 운길산 아래에 살 때 지은 시.
여기까지 오면 1차 숲길은 다 걸었다.
여기서 나가면 차도로 걸어야 한다.
차도 버스 정류장 앞.
차도를 조금 걸어 올라가면 다시 골목으로 내려와 흙길을 걷는다.
이내 넓은 개활지(開豁地)가 나온다.
아마도 주택단지를 만들려다 중지한듯하다.
길을 따라 숲으로 들어가면 오른쪽 낮은 언덕으로 넘어가게 된다.
숲길로 들어가며 작은 물길을 건너면 그리 경사가 크지않은 언덕길을 오른다.
조금 오르면 이곳의 유일한 작은 다리와 지그재그 길로 오른다.
계속 이어지는 소로는 걷기에 아주 좋은 길이다.
오르다 보면 앞에 평상(平床)이 보인다.
다 올라왔다는 표시다.
저 평상에 앉아 늦은 점심으로 빵과 우유를 먹는다.
"샘골고개"정상.
"샘골고개"에서는 양쪽으로 능선길이 있는듯하다.
길이 꽤나 선명하게 보이는 것이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듯하다.
"샘골고개"에서 "신원역"까지는 계속 내려가는 길이다.
한참을 내려오면 이정표가 없는 길림길이 나온다.
물소리길을 간다면 무조건 오른쪽으로 가야 한다.
그 아래 인증대가 있기 때문이다.
산짐승이 내려오는 것을 막는 휀스를 지나면 1-2인증대가 있다.
그런데 스템프가 고장이 났다.
스프링이 잘못됐는지 움직이지를 않는다.
손으로 위아래로 움직여서 잉크를 뭍혀서 찍어야 한다.
인증대를 지나면 이내 집들이 보이기 시작한다.
산길을 벗어난 것이다.
삼거리길이 나오면 물소리길은 좌측으로 꺽어야 한다.
그렇치만 나는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가보려고 한다.
삼거리의 이정표.
원래의 길과 반대인 오른쪽 길로 걷는다.
바람때문일까?
벼들이 수확할 때가 됐는데 많이 넘어졌다.
기찻길 아래까지 오니 신원역이 800m란다.
이곳에 유일한 언덕이랄것까지 없는 오름길.
이 설명대로라면 "부용산"에 옛 성(城)이 있다는 이야기이다.
언젠가 시간이 날 때 한번 가 보고 싶다.
강가에 찻길과 자전거길이 같이 간다.
엣날에 이 근처에 "강한정"이란 정자가 있었단다.
설명문 옆에 정자가 있지만 "강한정"은 아니다.
강가로 다가가서 보니 "두물머리"에서 시작되는 "용담대교"가 끝나는 곳이 이곳이다.
차를 타고 지날 때는 위를 올려다 볼 여유가 없으니 이곳을 볼 수가 없다.
정초부(鄭樵夫)는(1714 ~1789) 조선시대의 노비(奴婢)출신 시인이였다고 한다.
그런데 이것을 쓴 사람은 왜 중국의 간자체(簡字體)로 썼을까?
東湖泛舟(동호범주)
東湖春水碧於藍 (동호춘수벽어람)
白鳥分明見兩三 (백조분명견양삼)
柔櫓一聲飛去盡 (유노일성비거진)
夕陽山色滿空潭 (석양산색만공담)
동호의 봄 물결은 쪽빛보다 더 푸르고
백조의 두 세마리 분명하게 보이것만
노젓는 소리에 다 날아가고
노을진 산빛만 빈 호수에 가득하네
조금 더 가니 자전거라이더를 위한 조그마한 매점이 있다.
목이 말라 시원한 맥주 한 캔을 사서 단숨에 마셨다.
오늘 원래는 이덕형선생의 묘소를 참배하려고 했는데 뜻밖에 물소리 1코스를 걸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