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5월 14일(일)
오전 4시 40분. 자는데 얼굴이 차다. 열어놓은 해치로 빗방울이 들어온다. 소나기다. 재빨리 해치를 닫고 선실내를 점검한다. 갤리에 해치를 잠그지 않았더니 빗방울이 들어온다. 모든 해치들을 점검하고 샤워를 한다. 샤워 후엔 세탁도 해서 비미니 아래에 넌다. 어떻게든 저녁이면 마를 거다. 랑카위 갈 때 까지 이런 날씨 패턴이 계속 되겠지. 배에 대한 대비를 하고 출항 해야겠다. 천둥과 벼락도 대단하다.
5월 7일 Galle 도착해서 14일 딱 일주일 됐다. 하지만 상당히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다. 이발을 해서 크로마뇽인에서 현대인이 되었고, 잘 먹어서 살도 좀 오른 것 같다. 스리랑카에서 몸은 회복되고 있다. 16일에 스코틀랜드 터그보트 선장 존 왓슨도 떠나고, 나도 18일 출항 에정이다. 회자정리거자필반(會者定離去者必返) 만남과 헤어짐이 있고, 다음에 대한 기약도 있다. 그러나 세계의 양쪽 끝에서 온 사내들의 이별에 어찌 회한이 없겠는가? 존과의 이별이 가슴에 묵직하게 다가온다. 하지만 머지않아 스코틀랜드를 방문하기로 약속했다. 어쨌거나 오늘 오전 10시부터는 다 함께 툭툭을 타고 Galle 시내 관광에 나설 거다. 내일은 내일, 오늘은 즐겁게 지내자. One life, sailing it!
오전 8시 34분. 어제 왔던 ‘데릭’이라는 스리랑카 아저씨가 왔다. 그는 마리나 터그보트에서 일한다. 그의 아들이 한국에 있다고 갑자기 전화연결을 해준다. 그는 현재 한국 완도에서 일을 하고 있다. 어쩐지 스리랑카 사람들에게 한국인 친구가 있다는 것은 뭔가 자랑할 만한 상황인가보다. 나더러 한국에 가면 자기 아들과 통화해 달란다. 아비 마음이겠지. 뭔가 한국서 아들에게 문제가 생기면 비빌 언덕하나 만들어 준다는 것. 나는 충분히 이해한다. 데릭은 치킨 카레를 만들어 왔다. 정성이다. 고맙기도 하고, 진짜 한국에 가면 그의 아들과 통화해 봐야겠다.
오전 9시 콜롬보에 있는 G가 라면 사진을 찍어 보냈다. 어떤 라면이 필요한가? 그래서 신라면 10개를 주문했다. 내 에이전트 전화번호를 주고 그에게 보내면 내가 그의 회사를 통해 계산해 준다고 했다. 신라면 10개가 7,500루피(32,227원)이다.
오전 10시 존과 크루들이 정확하게 왔다. 우리는 2대의 툭툭에 나누어 타고, 관광을 떠난다. 제일 먼저 언덕위에 높이 솟은 하얀 불탑. Japan 이 어쩌고 한다. 뭐지? 가보니 크고 하얀 탑에 신발을 벗고 올라가 관광을 하게 되어 있다. 내가 Galle 에 온 첫날 입항허가 때문에 바다에서 대기 중일 때 보였던 흰 탑이다. 탑을 다 돌고 곁에 붙은 법당 같은 곳에 들어가니 남묘호랑계교라고 영어로 적혀 있다. 그래서 일본 어쩌고 한 거로군.
두 번째로는 식물원이다. 온통 허브 식물원인데 사설인지 좀 넓은 집 마당만 하다. 거기서 우리나라 60년대처럼, 이가 아플 땐 이 식물 기름, 배가 아플 땐 저 식물 기름, 이 식물은 가지가 9개씩 뻗는데, 사람도 관절이 9개씩이라 이 식물 기름을 먹으면 만병통치 스타일이다. 약간 어이가 없다. 그러더니 갑자기 마자시 하는 곳으로 데리고 간다. 우리는 모두 질색하며 마사지를 거절한다. 다들 아픈데 없단다. 처음에 존의 종아리에 뭔가 흰 크림을 발라 두었는데, 나중에 그걸 닦으니 그 부분만 털이 없어졌다. 우리는 털 없는 존이라고 놀리기 시작한다.
다음으로는 작은 카페 들러 목을 축였다. 더운데 걸으니 다들 힘이 빠진 모양이다. 작은 피자를 시켜 한 조각 씩 나누어 먹었다. 세 번째로 간곳은 해변의 나무 기둥위에 올라가 낚시 하는 장소다. 중국인 단체 관광객들이 온다. 별거 아니다. 파도치는 해변에 나무 기둥과 앉을 자리를 만들어 놓고 그 위에 올라가 원시적인 나뭇가지 낚시 대와 낚시 줄에 미끼도 없이 조그만 바늘을 달아 고기를 낚는 거다. 우리 일행은 아무도 못 잡고 원주민에 7센티쯤 되는 고기 한 마리를 낚았다. 그걸 어디다 쓰나? 우리는 10분도 안 돼 흥미를 잃고 다음 장소로 이동한다.
가다가 기차 건널목에 차단기가 내려져 있다. 기차가 멈추어 있다. 기차 문에 사람들이 매달려 있고, 창문도 다 열려있다. 하얀 옷을 입은 학생들이 타고 내린다. 내가 촬영하며 손을 흔드니 다들 같이 웃으며 손 흔들어 준다. 우리나라 30년 전 모습이다. 나는 이런 레트로한 분위기가 너무 좋다. 한국의 KTX는, 문은 물론 창문도 열리지 않는 고속철이다. 스리랑카처럼 아기자기한 열차는 이제 사라졌다. 기차는 추억과 낭만의 대상에서 이동수단으로 치환됐다. 빠른 속도의 이동수단. 더 이상의 의미는 없다.
이동한 곳은 실론 화이트 티 재배장이다. 설명하는 인솔자를 따라, 숲 속을 이동하며 차에 대한 설명을 듣는 것인데, 배타는 아저씨들이 관심 있을 리 없다. 우리는 일찌감치 대열에서 나와 곧장 차 파는 곳으로 간다. 향기는 좋은데, 티백으로 된 제품이 없다. 그냥 찻잎이니 여러 가지 다구를 사야한다. 우리 일행은 구매를 포기한다. 그냥 수퍼마켓 가서 티백 제품을 사야지. 오늘 관광은 지난세기 스타일의 만병통치약 판매 관광이었다. 얼마 안 되는 돈이지만 그나마 아까운 생각이 든다. 시골 노인네들 버스에 태우고 건강식품 파는 듯한 행태다.
오후 1시 30분이 되어 돌아오는 길에 해변의 레스토랑에 들러 볶음밥과 볶음 국수로 식사를 한다. 양이 상당해서 배터지게 먹었다. 스리랑카의 볶음밥은 먹을 만하다. 식사 중에 천둥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진다. 거대한 파도가 해변을 쓸고 지나간다. 2004년에 쓰나미가 있었고 그때 많은 사람들이 죽었다고 하니 쫄린다. 제네시스는 괜찮을까?
오후 4시. 천천히 식사를 마친 존과 크루들은 곧장 Fort의 카페 바스틸레 bastille로 이동한단다. 가서 저녁까지 느긋하게 맥주 마시다가 저녁식사를 할 모양이다. 나는 일단 마리나로 돌아간다. 가서 폭우에 문제없는지 제네시스를 확인하고, 7시에 다시 바스틸레 bastille로 가기로 한다.
마리나에 도착하니 폭우다. 마리나 가드들이 들어가는 차를 세워 나를 태워준다. 나는 차를 얻어 타고 배에 도착한다. 그새 비가 그쳤다. 계속 폭우가 오다말다 하는 게 몬순인가 보다. 해치를 점검하고 빗물 새는 곳을 확인한다. 며칠 전 실리콘 작업한 게 효과가 크다. 그래도 한군데는 여전이 빗방울이 떨어져 있다. 내일 또 확인해야겠다.
오후 7시. 툭툭을 타고 Fort로 향한다. 500년 전에 네덜란드 인들이 쌓은 성채다. 나는 독일인들이 쌓았는 줄 알았더니 더치 피플이었다. 카페 바스틸레 bastille 에 도착하니 마리아치가 있다. 기타소리가 아주 경쾌하다. 연배가 있는 마리아치라서 옛날 Pop을 잘 안다. 함께 목소리 높여 노래도 부른다. 오늘이 존의 마지막 외출 날이란다. 화요일에 출항하지만 내일 월요일에는 하루 종일 배에서 출항준비하고, 저녁도 배에서 먹고 화요일 떠난다. 여기는 맥주 한 캔 600루피 (2,578원) 이고 몰디브는 10달러니까 여기서 몇 박스 사가라고 하니까. 배에는 맥주 안 실을 거고 몰디브에서도 안마실거란다. 노모어 비어! 라고 선언하고 내일부터 디톡스를 할 거라고 한다. 오 대단하다. 오늘까지만 마시고 내일부터는 금주라니! 역시 선장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