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노라면
가끔은 저게 진짜일까? 그런 생각들을 종종하곤 한다.
그런 나이지만 내가 경험하고 지금껏 따르는 이 삶이 가끔은 거짓말 같을 때가 있다.
그런데 늘 다시 생각해봐도 이 거짓같은 현실이 진짜 현실이고 삶이다.
하나님에 대한 경험은 지극히 친밀하고 지극히 개인적이며 지극히 신비롭고
동시에 헌신적이다.
세상에 이와 같은 헌신을 이야기 하고 촉구 하실 수 있는 신은 없다.
오직 내가 믿고 따르는 주님만이 말할 수 있는 사랑과 헌신!
학원을 열고도 내 안에는 무한한 두려움이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얼마난 두려운지... 이 세상에 제일 믿기 어려운 나 자신이 벌린 일이니 오죽했으랴.
더욱이 이것이 주님께로 온 사명임을 확신하지 못할 때는 더욱 그러하다.
나는 요즘에도 종종 하나님께
"언제 한번 주님이 저 불러주신적 있나요? 제가 먼저 늘 설레 발 치며 따라갔지?"
이런 기도를 하곤 했고 그럴때마다
'아버지가 이건 이거다. 저건 저거다 말좀 해주시기를' 구하곤 했다.
이런 두려움이 선교를 위해 마들어진 이 학원을
봉헌 예배도 여지껏 드리지 못할 만큼의 상황으로 몰아 넣었다.
이번 주는 부흥회 기간이었다.
강사 목사님은 심웅기 목사님이셨다.
월요일 설교는 사무엘상 1장의 한나의 이야기였다.
내게 있어 사무엘상 1장의 한나 이야기는 엄청난 의미가 있었다.
2016년 봄부터 여름까지 많은 눈물을 흘리며 아이를 낳지 못하는 한나로 살게 했던 말씀이었다.
그 당시 내게는 풀리지 않는 한 구절이 있었는데
그것은 하나님께서 한나로 하여금 이이를 임신하지 못하게 하신 것이다.
아이를 못 낳게 하신 분이 하나님이셨던 것이다.
그런데 심웅기 목사님의 입을 통해 해답을 듣게 되었다.
하나님은 기도 안하고 10명의 아들을 낳은 유혹하는 자 브닌나가 아닌,
기도하고 사무엘을 낳기를 원하셨다는 것이었다.
큰 깨달음이 왔다.
내게는 많이 익숙한 학원일에서 처음으로 당혹스러운 이 상황을 겪게 하신 이유가
바로 기도하고 사무엘을 낳기 위함임을 알게 된 것이다.
절망스런운 마음으로 기도하지 못함을 회개했고
내가 걸어갈 이 길이 한나와 같은 간절한 기도가 아니고서는 걸어갈 수 없는 길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수요일 저녁의 말씀은 엘리사와 생도의 과부와 기름병에 관한 설교였다.
생도가 열왕기에 나오는 아합의 신하 오바댜라는 말을 들을때 부터 눈물이 흐르기 시작했다.
그가 많은 빛을 진 이유가 아합이 선지자들을 죽이려 할때
선지자들을 50명씩 숨기고 숨겨준 그들을 먹이기 위해 진 빛이라는 말을 들으며
끊임없이 눈물이 났다.
하필이면 나같은 사람에게 돈하고 친하지도 않고 한번도 제대로 된 돈을 손에 쥐어본적도 없는 내게
북한을 위한 후방 사역을, 그것도 돈 보내는 사역을 시키시는 것을 이해하기가 어려웠다.
이해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에 보내고
이해 할 수 없는 방법으로 사역 전반에 대한 브리핑을 듣게 하시고
이해할 수 없는 방법으로 밀가루 값을 보내시고
미친듯이 무시할 수 없는 부담감을 주시니...
먹고 죽을 돈도 없어요 주님... 이렇게 말하고 싶고
마음은 굴뚝인데 제 마음을 아시면서 이러시니 죽을 것 같고
그저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기도를 하는데 기도가 깊어진 어느 순간에 성령이 강하게 내 오른 손끝을 아래로 잡아당기셨다.
아주 천천히 강하게 이끄시는데
예전에도 이런식으로 메세지를 주신적이 있어서 '이게 뭐지?' 하면서도 기도의 정도가 심하고
강도가 너무 세서 주님 힘들어요 이러다 손이 바닥에 닿겠어요 라고 속으로 말했다.
결국 손 바닥이 땅에 닿는 순간
1년전 심웅기 목사님이 전해 주었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기도하는 모습의 설교가 기억이 났다.
이스라엘 사람이 손을 들고 하늘을 향해 기도하는 것은 응답을 받지 못했다는 뜻이고
고개를 무릎 사이에 넣고 기도하는 자는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자라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내 얼굴을 무릎 사이에 넣고 계신 것이었다.
바닥에 손이 닿는 순간 의미가 깨달아져 통곡이 흘러 나왔다.
형용할 수 없는 감격이 몰려 왔다.
'하나님이 그리신 그림이 이것이었구나'라는 생각과 퍼즐들이 갑자기 자리를 찾기 시작했다.
한편으로는 기도 막혔다.
요셉도 아니고 다니엘도 아니고 사무엘도 아니고 다윗도 아닌 오바댜라니...
선지자들을 숨겨주다 많은 빛을 지고, 늦은 나이에 신학의 길을 가다,
그 빛을 갚지 못하고 병들어 죽으며 아들이 노예로 끌려 갈 상황을 만든 오바냐라니....
눈물이 흐르고 또 흐른다.
내가 가장 두려워 하는 일.
빛지고 죽는 일.
너무 괴로워 죽고 싶었던 세상에서의 내가
악착 같이 살았던 이유가 빛을 남기지 않기 위해서였는데... 그런 나에게 오바댜라니...
그런데 이상하게 감격이 몰려 왔다.
나야 말로 이 일을 하게 되면 내 힘이라고 자랑할 수가 없겠구나~
도저히 나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구나~
오직 주님이시니까 가능한 일이구나~
역시 주님이시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게 결국은 뭐가 뭔지도 모르면서 북한을 위하여 길을 나선
아무 말 대잔치를 해대던 나에게 주님이 이끄신 길이었음을 알게 되었다.
물론 안다.
이게 또 다가 아님을.
하지만 처음으로 하나님이 이게 나의 응답임을 알려 주신 대 사건이었다.
그것도 나만이 알 수 있는 방법으로 말이다.
기가 막힌 하나님의 일하심을 누가 따라 가랴?
응답 받은 자가 할 일을 안다.
심장이 고장난 것 처럼 저린다.
하나님이 보내라고 하시면 보낼 수 있게
기도하자 훈련되자 순종하자
아버지.... 내 이름은 오바댜 '여호와의 종'입니다.
이스라엘의 그 흔한 이름이 내 삶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