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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세계(2015)자유시로, 현대시조(2016) 시조로 등단한
김서정(본명 김순옥) 시인의 첫 시집(자유시 112편)임.
사랑의 무현금(無絃琴)
-김서정 시인의『우듬지 빈 둥우리를 지키는 바람』
김우연
1. 진정한 서정시인
김서정 시인은 참으로 서정(抒情)시인이다. 서정시는 사랑과 그리움이 시의 중심에서 소박하게 반짝거리는 시이기 때문이다. 김전 시인은 시집 해설에서 “순백의 깃발로 펄럭이는 사랑의 메시지가 행간마다 숨어 있어 따스함이 다가온다.”라고 하였다. 소로우는 “사랑이 없는 삶은 해탄(骸炭)이나 재와 같다.”라고 하였듯이 우리들의 삶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임을 알 수 있다.「시인의 말」을 살펴보면 시인은 생각하지 못한 ‘유방암’을 만나서 죽음 또한 태어남처럼 축복이라고 생각하면서 “초록빛 시를 생의 마지막 날 아들에게 안겨주고 싶었다.”라고 하고 있다. 이 시집은 이러한 생사의 기로에서 사유한 것을 바탕으로 하면서도 어둠이나 절망, 후회 등의 감정은 전혀 없으며 오히려 맑고 고운 초록빛의 생명력으로 가득한 물결로 일렁이고 있어 독자에게는 더욱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오늘날에는 물질적으로 풍요 속에서 정신적으로는 빈곤하며 또 정신적 질병으로 피곤해 하는 경향이 짙다. 그리하여 틈만 나면 ‘필링’을 외치며 자연을 찾아 떠나는 것을 목격할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은 순간의 충족으로 끝나고 다시 목마름과 피곤에 지치게 된다. 이럴 때 “이 세상이란 우리의 상상력을 펼치는 캔버스에 불과하다.(중략) 상상력은 정신이 살아 숨쉬는 ‘정신의 공기’이다.”라고 한 것처럼 진정한 ‘정신의 공기’가 필요할 것이다. 김서정 시인의 이번 시집은 이런 면에서 밝고 고운 상상력으로 푸르고 아름다운 숲을 이루고 있으며 ‘맑은 공기’로 가득하여 우리들을 상쾌하게 만들고 있다. 더욱이 시인은 암 투병 과정에서 글을 쓰는 과정에서 암도 완치되었으며 등단까지 하게 되니 본인은 물론이며 암 환자들에게도 희망의 메시지를 전달하게 될 것이다.
김서정 시인은 2015년 월간『문학세계』에 자유시로 등단하였으며, 2016년에는 계간『현대시조』에 시조로 등단하여 자유시와 정형시인 시조를 동시에 쓰는 시인이 되었다. 이 두 가지 능력으로 시를 쓰는 시인들이 가끔 있는데 이런 면에서도 크게 박수를 보낸다. 이번 시집『우듬지 빈 둥우리를 지키는 바람』은 자유시 112편을 모아서 펴낸 시인의 첫 시집이다. 이 시집의 작품을 몇 번 읽는 동안에 읽을수록 새롭게 다가오고 또 자연을 소재로 사계절을 다루면서도 작품마다 새로운 모습이었다. 이런 특징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를 몇 편의 작품을 통해서 살펴보고자 한다.
2. 사랑의 무현금(無絃琴)
이 번 시집은 사랑의 노래이다. ‘사랑’이라는 시어가 쓰인 작품(제목이나 본문 중 한 번 이상 사용)은 112편 중에서 56편으로 48%나 되고 있는 것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이 시집은 자연과 사랑의 두 기둥이 주축이 되고 있다. 자연은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우정으로 나타나며, 사랑은 사계절의 자연을 통하여 삼라만상의 온갖 변화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것 자체를 사랑이라고 하고 있다.
사실「시인의 말」은 이 글을 쓰면서 살펴본 것이며, 시집을 처음 읽고 나서 자연과 사랑에 대한 시인의 그 근원을 나름대로 추리해 보니 지리산과 가까운 산자수명(山紫水明)한 경남 거창이 고향이라는 것과 시어에서 ‘주님의 사랑’ 등의 종교적인 모습이 몇 곳에만 살짝 보인 것을 볼 때 기독교 신자가 아닐까 생각하였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이렇게 끝없는 사랑의 용천(湧泉)으로 시심이 솟아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화로 시인에게 무슨 종교가 있느냐고 확인해 보았다. 역시 독실한 기독교 신앙을 가졌음을 알았다. 시집을 읽고 독후감을 쓰면서 이렇게 확인해 보기는 처음이다. 그것은 시라는 것은 독자와 시, 독자와 시인 사이의 소통이기 때문에 얼마 전에 행사에서 본 적이 있고 또한「낙강」동인으로 작년에 입회하여 너무 반갑고 기대되기 때문이기도 하다. 젊고 아름다운 모습에 놀랐지만 시 또한 그 모습과 비슷하게 싱싱함을 느꼈다. 시를 읽고 나름대로 감상 또는 분석하면서 병마와 관련하지는 않았다. 이처럼 이번 시집은 자연을 통하여 그리움을 노래하면서도 자신만의 독특한 눈으로 보고 참신하게 표현함으로써 서정시의 본령에 충실하였으며, 종교적인 냄새도 거의 풍기지 않으면서 삼라만상의 변화를 신의 축복이라는 믿음을 겉으로 드러내지 않고 일상인으로서 참신한 표현을 통하여 자연의 변화 그 자체를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며 그 자체를 사랑으로 승화시켜서 표현한 것이 이번 첫 시집을 세상에 성공적으로 드러내게 된 비결이 아닐까 한다.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절대자의 사랑은 겉으로 드러나지 않은 ‘사랑의 무현금(無絃琴)’-줄 없는 거문고-의 보이지 않는 두 줄이다.
또한 시인은 객관적 상관물을 통하여 자기의 심정을 표현하는 것에 능숙하다. 특히 시 한편 전체를 감정이입으로 표현한 작품들도 여러 편이 있는데 독자에게 시적 쾌감을 주고 있다.
또한 변형묘사의 기법을 통하여 참신한 이미지를 표현하고 있어 독자들에게 아주 새롭게 다가오고 있다. 변형묘사란 “시인이 보이는 대로 대상들을 묘사하는 사실묘사와 변형묘사는 다르다. 시인의 입장보다 사물의 편에서 대상을 묘사하는 것이 변형묘사의 특징이다. 즉 시인이 보이는 것과 다르게 대상들을 바꾸어 묘사하는 것이 변형묘사의 특징이다. 이것이 ‘낯설게 하기’나 전경화(前景化)로 불리지만, 가장 적절한 표현은 ‘변형묘사’이다.”
이번 시집이 곱고 맑은 음성인 것은 동심(童心)으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온갖 사물이 의인법이 종종 쓰이고 있다. 이 동심의 근원은 어릴 때 아름다운 자연 속에서 자란 것을 바탕으로 오랫동안 어린이들과 함께 지냈기 때문으로 보인다. ‘창원 배꽃 어린이집 원장’역임이란 이력을 통해서 짐작할 수 있다. 이기철은 “문학작품은 인간 의식의 지향의 흔적이며 궤도다.”라고 하였다. 시 속에는 시인의 삶의 흔적이 반영되기 마련인데, 이번 시집에는 동심이 충만하였으며, 그만큼 진솔하기에 감동의 폭도 크게 울리고 있다.
이번 시집에 크게 두드러진 것 중에는 가끔씩 깜짝 놀라게 하는 ‘고유어’ 사용들이었다. 황치복은 “순수한 우리말은 우리 민족의 역사와 전통, 그리고 우리 민족의 정서와 성품 등이 반영되어 있다는 점에서 그것들은 전통적 미학을 실현하는 시조의 중요한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라고 하였는데 시조뿐만 아니라 자유시에서 고유어를 적확(的確)하게 사용하여 시의 품격을 높이고 있다.
시집은「제1부 비오는 날의 스케치(봄)」,「제2부 머물 수 없음에(여름)」,「제3부 가을 산책(가을)」,「제4부 추억의 그 자리에서(겨울)」,「제5부 살이 있음에」등 5부로 이루어져 있다.
3. 시인의 마음
시는 정직하네요
한 점의 검정도 허락하지 않고
빛으로 가득 찬 마음에
풍성한 시어가 물결을 치네요
시는 사랑이네요
한 모서리의 금도 떠나야
초록이 가득 찬 심장에서
아름다운 언어가 쏟아져 나오네요
시는 나를 비우라고 하네요
작은 욕심도 재가 되어 버려야
가난한 마음에 가득한 시상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네요
시는 나를 비우라고 하네요
작은 욕심도 재가 되어 버려야
가난한 마음에 가득한 시상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네요
시는 자연을 노래하네요
자연이 주는 리듬을 타고 다닐 때
시는 음표가 되어 소리를 주네요
시는 땀으로 남아있네요
한편의 시가 태어날 때마다
인고의 강물이 흐르고 있네요
시는 새가 되어 날아가네요
마지막 마침표를 찍고
푸드득 나래짓 하는 소리가
여운을 남기고 있네요
시는 무지개가 되어 다가오네요
태양 뒤로 비를 소풍 보낸 빛깔은
세상에 용기 있는 한 사람이 되어
뚜벅뚜벅 걸어가게 하네요
아!
시인은 수정 같아야 하네요
-「시인의 마음」전문
이 시는 시인이 어떤 마음가짐으로 시를 써야 하는가에 대한 자신의 시론(詩論)으로 볼 수 있다. 1연에서는 ‘빛으로 가득 찬 마음’, 2연에서는 ‘사랑’, 3연에서는 욕심을 비울 것, 4연에서는 ‘자연을 노래’, 5연에서는 ‘땀(인고)’를 바탕이 되어 6연에서 드디어 한 편의 시는 완성된다고 하였다. 6연에서는 그런 시는 ‘무지개’처럼 아름다움을 품고 세상을 살아가는 용기를 얻게 된다는 것이다. 7연에서는 결국 시인의 마음은 ‘수정’처럼 맑아야 한다는 것이다. 통념에 따라 「시인의 말」을 앞머리에서 찾지 못한 나는 이 한 편의 시가 있고 표지에 “내 숨결이 멈추는 그날까지/ 사랑하는 사람들 가슴에 초록 서정을/ 색칠하련다.”라고 하였으니 이것만으로 충분하니까 시인의 말을 생략한 것으로 보았다.
이 작품의 주제는 ‘순수한 시 창작을 통하여 세상을 용기 있게 살아갈 의지가 생김’이라고 볼 수 있다. 시인의 시론(詩論)에 해당하는 이 시에서 시는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힘의 원천이 됨을 선언한 것이다. 이기철은 시란 무엇이냐에 대한 대답으로 “시는 인간 정신의 정화에 작용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 시의 화자가 시인 자신이라고 볼 때 ‘죽음’마저도 축복이라고 여기는 시인이야말로 어떤 수행자보다도 시를 통하여 자신의 영혼을 정화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변형묘사의 기법으로는 1연에서 “빛으로 가득 찬 마음에/ 풍성한 시어가 물결을 치네요”라며 마치 시심이 일렁이는 것을 물고기에 비유하여 표현한 것은 놀랍다. 2연에서는 “초록이 가득 찬 심장에서/ 아름다운 언어가 쏟아져 나오네요”라고 하였으며, 3연에서는 “가난한 마음에 가득한 시상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네요”, 4연에서는 “한편의 시가 태어 태어날 때마다/ 인고의 강물이 흐르고 있네요”, 5연에서는 “시는 새가 되어 날아가네요/ 마지막 마침표를 찍고/ 푸드득 날개짓 하는 소리가/ 여운을 남기고 있네요”, 6연에서는 “시는 무재기가 되어 다가오네요/ 태양 뒤로 비를 소풍 보낸 빛깔은” 등에서 아주 참신하게 변형묘사를 하고 있어 전편이 새로운 감각으로 가득하여 독자에게 읽는 기쁨을 주고 있다. 그러면서 쉽게 읽을 수 있으니 더욱 좋은 것이다. 우리 현대시단에는 크게 쉽고 감동을 주는 시와 난해시의 두 갈래로 발전해 왔다. 전자는 유치진, 천상병 등의 시인이며 1인칭으로 시적 화자가 시인인 경우이다. 후자는 「무의미의 시론」를 주창한 김춘수 등의 시인이다. 다만 김춘수 시인의 「꽃」은 그의 전기작으로 존재론적인 작품이라서 독자들에게 의미가 전달되는 바 있어 아직도 시 낭송에 애송이 되고 있기는 하다. 독자들을 무시하고 외면한 이 땅의 일부 현대시인들은 독자들과 소통이 거의 불가능한 난해시를 쓰고 표현에 치중하였으며 평론가들은 이런 작품을 높게 평가를 하여 독자들과 더욱 거리가 멀어졌다. 이런 면에서 김서정 시인의 이번 시집은 자신의 삶을 바탕으로 진솔하게 표현함으로써 독자들에게 무한한 감동을 주고 있으며 표현 또한 참신하여 시적 기쁨을 느끼게 한다. 이번 시집에서 시적 화자는 시인의 감정을 나타낸 것으로 볼 수 있었다.
내용을 볼 때 1연은 시 창작은 “빛으로 가득 찬 마음”이 필요하다고 하였다. ‘빛’은 흔히 ‘생명’의 상징이 아닌가. 또한 순수하고 밝은 마음을 뜻하기도 한다. ‘정직’한 마음이란 타인과의 관계에서도 정직해야 할 것이며 자신에 대해서도 정직하겠다는 각오로 보인다. 이기철은 좋은 시란 “시인 자신의 거짓없는 감동으로 씌어진 시”라고 한 것으로 볼 때 좋은 시를 쓰기 위한 마음가짐을 충분히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정직하고 순수한 마음가짐이 서정시의 본바탕이다.
2연에서는 ‘사랑’이 시의 원천이라는 것이다. 사랑으로 가득 찬 마음에서 아름다운 시어가 나온다는 것이다. 빛깔 중에서 초록이며 생명력이 가장 왕성한 빛깔을 상징한다. 생명보다도 사랑을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이 아닐까. 건강하게 산다고 하더라도 우리의 육신은 유한하다. 주어진 시간이 짧다고 하더라도 사랑으로 충만하면 ‘아름다운 언어가 쏟아져 나올 것“이며 주어진 것이 어떠한 상황이라도 축복이라고 생각하는 시인이라면 이미 행복의 초록빛 가슴으로 출렁이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연에서는 “시는 나를 비우라고 하네요”라고 하였다. 흔히 쓰는 말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말이기도 하다. 불가에서는 ‘증애(憎愛)’를 떠나야 중도(中道)를 얻을 수 있다고 하였다. 시인은 거창한 표현이 아니라 “작은 욕심도 재가 되어 버려야”라고 하였다. 얼마나 순수한 마음을 가진 것인가. 언제부터 이런 맘이 생겼는지는 알 수 없지만 어떤 상황에서 이런 마음을 깨닫고 결심했다면 그 마음을 변함없이 지키고자 노력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다. 의상조사의 법성게에서는 ‘초발심시변정각(初發心時便正覺)’(처음 마음을 발한 때가 문득 바로 깨달음이다)라고 하였듯이 나를 비우는 마음을 잃지 않는다면 “듣도 보도 못한 시어가/ 구슬을 꿰듯이 쏟아지는/ 시 세계에 풍덩 빠져” (「시인의 길」에서)라고 들 것이다. 그래서 “시상이 줄을 서서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4연에서는 “시은 자연을 노래하네요”라고 하였다. 이번 시집에서 시인은 인간세상보다는 ‘자연’에 눈길을 주로 돌리고 있다. 그것은 어릴 때 자란 자연이 몸에 익은 것도 그 이유가 될 것이며, 병마를 이기기 위해 자연에 눈을 돌렸을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인간과 달리 자연은 순수 그 자체이기 때문에 ‘순수함’을 노래하겠다는 것이다.
5연에서는 시를 쉽게 쓰는 것이 아니라 ‘땀’ 흘려서 쓴다는 것이다. 얼마나 치열하게 시작을 하였으면 한 편의 시가 태어날 때마다 “인고의 강물이 흐르고 있네요”라고 하였다.「시인의 길」에서 “맑은 시어를 수집하려고/ 수많은 밤을 올빼미로 보낸/ 작가의 마음”이라고 하였다. 시작에 투철한 시인임을 알 수 있다.
6연에서는 “시는 새가 되어 날가가네요”라며 한 편의 시를 완성하게 됨을 노래한다. 그럴 때 “여운을 남기고 있네요”라고 하였는데 ‘여운’이란 말 속에는 자식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을 연상케 한다. 그 한 편 한 편의 시를 모아서 첫 시집을 낼 때의 설렘과 두려움도 컸을 것이다.
그러나 7연에서 “시는 무지개가 되어 다가오네요”라고 하였다. 그리하여 “세상에 용기 있는 한 사람이 되어/ 뚜벅뚜벅 걸어가게 하네요”라며 시는 자신의 삶의 원동력이 됨을 알 수 있다. ‘뚜벅뚜벅’이라는 말 속에는 삶의 무거움과 경외감을 느끼게 한다. 새로운 길을 걸어가는 자, 새롭게 태어난 마음을 가지는 자에게 삶이란 얼마나 아름답고 경이로울 것인가.
그래서 마지막 8연에서는 찬탄이 저절로 나온다. “아!/ 시인은 수정 같아야 하네요”라고 함축적으로 마무리한다. ‘수정’이란 투명하고 순수함을 상징하고 있다. 시인의 가슴은 투명하며, 어떤 것에 고정적으로 얽매여 있지 않다. 그리하여 어떤 이념을 위하여 시가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삶을 위하여 시가 존재하게 된다. 그것은 삶이 감사와 축복과 사랑으로 출렁이며 자연과 일상의 모든 순간이 소중할 것이다. “아!”라는 이 한마디는 사랑의 시심으로 충만함을 어떠한 말로도 설명할 수 없이 터져 나오는 찬탄의 소리이며 우주의 소리이다.
이 시는 “-네요”라고 겸손한 어법으로 끝맺음으로써 율을 살리면서도 화자의 어조에 조용히 공감하게 하는 힘이 있다.
「시인의 마음」과 「시인의 길」두 편의 시은 시인의 시론으로도 훌륭한 시이며「시인의 말」을 대신하여도 훌륭한 한 편의 글이 될 것이다.
강물이 흘러
바위를 돌아서 가도
아픔을 이겨내고 유유히 흐르듯이
나뭇잎이 살점을 떨어지는
고통이 있어도
남아 있는 잎을 걱정하며
생명 다함에 순응하듯이
담쟁이덩굴이 얽히고 얽혀서
부득부득 올라가다가
어느 한 잎이 안녕을 날리며
새 사랑을 기약하듯이
해가 서산으로 넘어가며
밤이 어는 소리에 귀 기울여서
어둠을 시간을 잉태하고
또 다른 사랑을 주고 가듯이
시한부 생명 앞에서
자식을 위해 꺼져가는
아궁이게 불을 지피는
한 여인의 애절한 사랑이
눈물로 쓴 시가 되듯이
내가 필요한 것에는 초연하고
타인의 필요한 것을
애써 챙기는 아름다운
심장이 있듯이
사랑은
남 몰래 흐르는 눈물꽃이 피어서
예쁜 정원을 만들어 갑니다.
-「사랑」전문
이 시는 ‘사랑’의 본질이 무엇인가를 노래하고 있다. 에리히 프롬은 사랑의 본질은 받는 것이 아니라 주는 것이라고 하였다. 그런데 이 시에서는 “시한부 생명 앞에서/ 자식을 위해 꺼져가는/ 아궁이에 불을 지피는/ 한 여인의 애절한 사랑이/ 눈물로 쓴 시가 되듯이”에서 시적화자가 시한부 생명 속에서도 자식을 위한 애절한 사랑은 ‘눈물로 쓴 시’라고 비유하고 있다. “사랑은/ 남 몰래 흐르는 눈물꽃이 피어서/ 예쁜 정원을 만들어 갑니다.”라고 시한부 인생을 아름답게 승화시키고 있다. 그것은 사랑으로 피운 눈물꽃이며 숭고미를 느끼게 한다. 육체적 고통은 정신적으로도 무한히 나약해 지기 쉽다. 그럴 때 “푸석한 지푸라기가 왜바람에 날릴 때/ 소나무처럼 우뚝 설 수 있게/ 하는 소리/ 엄마 사랑해”라는 아들의 목소리에 시인은 삶에 대한 용기와 의지가 더욱 강해졌음을 알 수 있다. “엄마 사랑해” 이 한마디는 생명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래서 건강을 되찾을 때의 기쁨이란 그 무슨 말로로 표현할 수 없는 환희를 느낄 것이며 새롭게 태어난 마음으로 살아갈 때 삼라만상의 자연이 어찌 기쁨이며 사랑이며 행복이 아니겠는가. 신앙인으로서 절대자에 대한 감사의 마음으로 충만하게 된다. “한 그루 나무에/ 들숨과 날숨이 교차되면서/ 이파리가 살랑거린다/ 그 사이로 살아 있는 신호등이 있다/ 웃음 신호등이 켜지고/ 눈물 신호등은 꺼지고// 서광이 비치는 시간에/ 감사 신호등을 켠다/ 살아 있음에/ 살아 있음에”(「살이 있음에」에서)라고 노래하고 있다. 살아 있다는 것은 그 자체만으로도 큰 축복이며 행복이다. 그래서 감사의 마음을 가진다. ‘초록빛 시’ 생의 마지막까지 쓰겠다는 마음을 가지며 시가 생활이고 생활이 되어 슬픔과 고독을 넘어섰으니 이제 환희의 노래를 끝없이 부를 것으로 생각된다.
사족으로「사랑」이란 같은 제목의 작품이 있다. 이밖에도「소망」의 작품이 3편,「시」가 3편이 있어 번호를 붙이든지 해서 구별할 수 있도록 처리하는 것이 좋은 것이라 본다. 「∼향기」는 6편인데 모두 구별하여 시 작품의 개성을 잘 살렸다. 시에서 제목은 시의 얼굴이라고 한다. 개성 있는 얼굴 모습을 보여주기 바란다.
4. 봄의 노래
고운 흙에서 봄을 기다렸다
햇살이 한 움큼씩 내려오며
파릇파릇 새싹이 미소 띠었고
긴 침묵의 사랑을 알았다
봄이 소나타를 연주하고
나도 안단테로 악상을 살려
향긋한 춤을 추었다
쑥 꽃다지가 바구니로 가는 날
다리까지 오롯이 끙끙거리며 올라와
유년의 나를 깡그리 버렸다
아! 향토(鄕土)가 그림다
생명을 가없이 사랑하는
너에게 가고 싶다
-「냉이의 고백」전문
시의 화자는 ‘냉이’이다. 시 전체가 감정이입으로 표현하고 있다. 화자의 목소리가 바로 시인의 목소리이며 ‘냉이’와 ‘시인’의 정서가 합일되고 있는 것이다. 이 점이 김서정 시인을 초록 빛깔의 서정시인으로 우리 시단에 우뚝 서게 된 것이다. “시인과 자연이나 대상물이 하나가 되는 합일의 정서가 서정시의 장점이라고, 슈타이거는 강조했다. 슈타이거가 강조한 시인과 자연이 하나가 되는 경지의 표현이 청마의 절창인「그리움·2」이다. ‘파도야 어쩌란 말이냐/ 날 어쩌란 말이냐’에 끊임없이 밀려오는 파도처럼 반복되는 감당하기 어려운 사랑의 고통이 담겨 있다. 이 시편처럼 자연과 시인이 하나가 된 작품은 드물다”고 하였는데 김서정 시인은 시집에 대부분의 작품이 슈타이거가 강조한 시인과 자연(대상물)이 하나가 되는 합일의 정서를 이루고 있으며, 한 작품 전체를 감정이입으로 처리하여 더욱 높은 시적 성취를 이루고 있다.
‘냉이’는 이 땅의 선조들이 기나긴 겨울을 보내고 이른 봄에 녹색 식물로 냉이를 먹던 중요한 나물이었다. 아주 흔한 소재로써「냉이의 고백」은 시적화자가 ‘냉이’가 고백하는 것으로 처리하여 시의 재미를 더하고 있다. 여기서 ‘나’란 냉이다. 1연에서는 긴 겨울을 지나면서 새싹을 돋게 하는 ‘햇살’은 누군가의 사랑이라고 한 것이다. 2연에서는 봄의 기쁨을 음악적으로 처리하여 청각과 춤이라는 시각으로 돋보이게 처리하였다. 3연에서는 쑥과 꽂다지가 나물로 바구니에 가는 날 자신도 살던 흙을 떠나야 했음을 노래하였다. 4연에서는 “향토(鄕土)가 그립다”며 뿌리 내리고 살던 고향을 떠올린다.
「냉이의 고백」은 사실은 시인이 냉이에게 감정이입을 한 것이다. 시인이 고향을 그리워하는 것이다. 그것은 냉이는 흙에서 사는 것이 가장 본연의 모습일 것이다. 이것은 시인이 자신의 순수성을 회복하겠다는 것이며 그 방법 중의 하나가 자연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또한 고향에 대한 추억을 떠올리며 마음만은 고향의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이다. 3연에서 “유년의 나를 깡그리 버렸다”는 말 속에는 유년 시절의 추억이라도 되찾겠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고향의 벗을 떠올리며 어린 시절을 회상하고 있다. “십 대의 향기가 산마루를 넘고 또 넘고/ 빗방울을 타고 왔네요.”, “찻집에 34년 이야기꽃이/ 만발하게 피어나고 피어나서”, “벗이여/ 덕유산 겨울처럼 여여히 가자/우리의 우정 꽃은/ 시(時)와 공간을 초월하여 피어날 거야/ 문재산 미녀봉에 너와 나를 날리며”(「비 오는 날, 그 친구」에서)라고 하였는데 비오는 날에 34년 만에 고향 친구를 만나서 십 대의 어린 시절을 떠올리며 이야기꽃을 피웠다는 것이다. 고향인 ‘문재산 미녀봉’은 등산객들에게 잘 알려진 유명한 산인데 거창에 있는 해발 933미터의 산이다. 시인에게 ‘우정’도 아주 중요하게 여러 곳에서 나타내고 있다. 그만큼 우정은 자신의 순수성을 회복하는 길이기도 한 것이다.
순수성을 회복하는 그 방법으로는「시인의 마음」에서도 이미 밝혔듯이 “시는 나를 비우라고 하네요”라고 했듯이 그 길을 이미 알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그것은 말이 아니라 실천이 중요할 것이며 이미 실천하면서 사유한 것이 꽃으로 피어난 것이 이번의 시집일 것이다.
표현은 2연과 3연 전체가 변형묘사의 기법으로 처리하여 또한 시적 성취를 이루고 있다. 또한 시 전체가 감정이입으로 처리하였는데 이와 같이 한편의 시 전체를 감정이입으로 처리한다는 것 자체가 시인의 독특한 색깔로 처리하여 높은 시적 성취를 보인 것이다. 이런 작품으로는「벚꽃 사랑」,「앞산의 고백」,「장마가 만난 사랑」,「담쟁이 일기」,「능소화의 흐느낌」등 여러 편에서 나타나고 있다.
중년의 가시가 일어나
찾아온 혼돈의 빛은
살개천에 두고 오고 싶었다
자연은 내가 원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은 연두로
사유를 출입하였다
천천히 아주 천천히
머리에 꽉 꽉 찬
휘청거리는 도시의 회색빛은
연두에게 손을 들고 말았다
상쾌한 바람을 유유히
즈려밟고
집으로 가는 길에
웃음 문을 열고 있다
징검다리도 나도
-「사라지는 것들」전문
이 시에서 ‘중년의 가시’, ‘혼돈의 빛’, ‘자연’, ‘도시의 회색빛’, ‘연두’, ‘웃음’ 등이 중요한 시어로 쓰고 있다. 크게 보아 삶의 의미가 ‘도시의 회색 빛’이 ‘연두’로 대전환이 이루어졌음을 말하고 있다. 대전환을 일으키게 된 원인은 ‘중년의 가시’로 연유한 ‘혼돈의 빛’ 때문이다. 그것은 현실의 삶에서 염증은 느꼈을 수도 있고 신체의 변화에서 올 수도 있을 것이다. 독자들은 자신의 체험에 바탕을 두고 나름대로 해석할 자유가 있다. 어떻게 감상하더라도 한편의 좋은 작품이다. 그러나「시인의 말」과 연관하여 볼 때 후자라고 볼 때 시인은 투병 생활을 하면서 자연과 더욱 많은 대화를 하고 결국 마음을 비우고 순수한 세계 또는 자연을 상징하는 ‘연두’의 세계에 잠긴다. 그리하여 건강을 되찾고 웃음을 되찾는다는 것이다. 그것도 시적표현으로 “집으로 가는 길에/ 웃음 문을 열고 있다/ 징검다리도 나도”라며 징검다리도 “웃음문을 열고 있다”는 표현도 평범한 것 같으면서도 시인은 사물과의 대화에도 능하기에 자연스럽게 변형묘사를 하는 것이다. 암이라는 충격적인 진단에서도 ‘자연’과의 대화로 건강을 되찾은 것은 모성애와 신앙심과 시인 자신의 고향 거창의 향수가 몸에 배어서 나온 여유로운 마음이 바탕이 되었을 것이라 본다. 이런 시들로 가득한 이번 시집은 의도적으로라도 좀 널리 알려서 시인과 비슷한 처지에 놓인 사람들에게도 희망의 노래로 전해졌으면 좋겠다. 건강한 사람들이 읽는다고 해도 왠지 기쁨으로 충만하게 하는 매력이 이 시집에는 숨어 있다. 시낭송에서도 이 시집의 여러 편들이 많이 애송되기 기원한다. 알 수 없는 표현을 해놓고 또한 그것을 현학적으로 무미건조한 평론을 하며 만족하는 것은 독자들을 멀리할 뿐이다.
이번 시집이 사랑으로 충만하고 있다고 했는데, 시집의 첫 작품에서 “사랑이 내린다/ 온 땅에 가득히// 그 사랑은/ 봄 갤러리”(「비 오는 날의 스케치」에서)라고 봄비를 사랑이라고 하였다. 산천초목을 살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평범하면서도 삼라만상이 다 사랑이라는 시인의 감정을 표현한 것이다. 그래서 표제시인 「봄날에 보았어요」에서는 “우듬지 빈 둥우리를 지키는 바람이/ 다시 돌아온 이름 모르는/ 작은 새를 만나는 봄날에// 왠지 무너질 것 같았던/ 한 그루 나무가/ 햇살 벗과 수많은 대화를 하고/ 연둣빛 새싹이 윙크하는 봄날에// 가장 아름다운 사람을 보았어요”라며 봄날을 묘사하였는데 역시 봄날의 온간 현상들이 모우 “가장 아름다운 사랑”이라고 노래한 것이다. “무너질 것 같았던/ 한 그루의 나무가” 생명력을 되찾은 연두빛을 바라볼 때의 환희를 노래한 것이다. 시인의 가슴은 사랑으로 충만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봄의 아름다움이라면 흔히 ‘벚꽃’을 연상할 것이다. 이번 시집에서 벚꽃을 다룬 작품이 몇 편 있다.「벚꽃 사랑」,「밤 벚꽃 향기」,「벚꽃 하얗게 날리는 날에」등에서 높은 시적 성취를 이루고 있다.
5. 여름의 노래
햇살이 나를 안을 때
그 부드러운 바람으로
강바람을 이겨내며
힘든 삶을 웃음으로 수놓았다
어느 날
담벼락 끝에 앉아
저 먼 곳에서 햇살 미소 지으며
가볍게 손을 흔드는
사랑하는 벗들을 보았다
저들의 삶이 빛나 보였다.
생명을 불사르는 삶은 아름답다
그러나
생명을 사랑하는 삶을
더 아름답다
햇살 날숨이 이것을 알게 했다
오늘도 나는 담벼락을 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
고요히 고개 숙인다
내 날숨에 꽃이 피기를 칠월의 담벼락에서
-「담쟁이 일기」전문
이 작품도 시 전체를 ‘담쟁이’에 감정이입하였으며, 시인과 자연(대상물)이 하나가 되는 합일의 정서를 이루어 서정시의 장점을 잘 살리고 있다. 연구별을 하였으며 균형을 잘 이루고 있어 독자들이 쉽게 접근할 수 있도록 하고 있으며 시 낭송에도 적합하여 독자들에게 친숙하게 달려갈 수 있는 장점이 있다. 이것은 이번 시집에 공통적인 모습이다.
1연에서 ‘힘든 삶을 웃음으로 수놓음’ →2연에서 ‘가볍게 손을 흔드는 사랑하는 벗’ →3연에서 ‘생명을 사랑하는 삶’으로 의미가 점층적으로 승화되고 있다.즉 1)강한 비바람을 이겨내며 싱싱하게 자란 담쟁이 2) 담벼락 끝에 앉아 있는 담쟁이가 저 먼 곳에 있는 벗들에게 손을 흔들며 사랑을 보내는 모습 3) 자신을 위해 정열을 다 바치는 삶보다는 함께 살아가는 생명을 사랑하는 삶이 진정한 가치 있는 삶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그리하여 4연에서는 시적화자인 담쟁이는 “오늘도 나는 담벼락을 넘기 위해 애쓰지 않는다”고 자신의 깨달음을 노래하며 자신이 살아갈 길을 조용한 어조로 밝히고 있다. ‘담벼락’은 세속적인 욕망을 뜻한다. 그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남을 짓밟고 일어서거나 경쟁에서 이겨야 한다. 그런 삶을 살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래서 “고요히 고개를 숙인다”고 한다. 밖으로의 경쟁보다는 내부로 향한 눈길은 참다운 삶을 성찰하게 된다. 그리하여 “내 날 숨에 꽃이 피기를/ 칠월의 담벼락에서”라고 말하고 있다. ‘들숨’은 자신을 위한 삶이라면 ‘날숨’은 남을 위한 조그마한 사랑의 마음을 상징한다. 그리하여 칠월의 뜨거운 담벼락에서 꽃이 피도록 도우겠다는 것이다. 담쟁이를 화자로 하였지만 결국 시인의 목소리를 대변하고 있는 시적 장치로 재미를 더한다. 이 시에서 시인은 결국 물질적인 것이나 사회적인 지위 성취 등 세속적인 것에 삶의 목표를 두기보다는 저 뜨거운 칠월의 담벼락에서도 푸르고 싱싱하게 자라는 담쟁이들처럼 내 가족을 포함하여 주위 사람들과 함께 잘 사는 사회가 되도록 조그마한 사랑 또는 사랑의 마음을 보내겠다는 것이다. 불가에서는 남에게 베푸는 것을 진리의 말씀, 물질, 그리고 남에게 공포감을 주지 않는 것을 들고 있다. 시인은 아름다움 마음으로 밴드를 만들어서 기쁨을 나누는 것도 사랑이며, 평소의 밝은 모습으로 미소를 짓는 것도 무한한 사랑을 베푸는 것이다. 특히 아름다운 마음에서 우러난 시를 세상에 내놓은 것은 세상을 향한 무한한 사랑이다. 읽어서 적개심을 불러일으키는 것은 시인이 가야할 길이 아니다. 김서정 시인은 ‘생의 중요함’을 온몸으로 체험했을 것이다. “살아 있음에/ 살아 있음에”라고 감사의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이슬처럼 순수하고 아름다운 시들을 계속 노래하기 바란다. 생명력이 강인한 담쟁이 앞에서 얼마나 아름다운 생명의 환희를 노래하고 있는가. 독자에게 감동을 크게 주는 뛰어난 작품이다.
모든 순간에 아름다운 마음으로 바로보고 있음을 다음 작품을 통해서도 알 수 있다. “지구 마을에 아낌없는/ 사랑이 쏟아져 활활 타고 있다.”(「저녁노을」에서)라고 웅혼한 시상을 들어내면서 ‘사랑’을 노래한다. 이번 시집 전체가 ‘사랑’의 연주가 아닌가. 변형묘사를 통하여 참신한 시각적 이미지를 살렸다. ‘저녁노을’을 보면서도 ‘사랑이 활활 타는 것’으로 보는 것은 시인의 가슴이 온통 사랑으로 넘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6. 가을의 노래
하늘도 땅도 웃고 있는
만추에 바람 불어와
최고의 몸짓으로
사각거리는 언어를 날렸다
어느 누구의 눈길도
받지 못한 고독의 정점에서
꽃이 피어나 세상의 눈을
깡그리 사로잡았다
어느 날
중년 여인이 나를 찾아와
상념에 리듬을 타면서
펜 끝에 붓을 달고
시를 그림으로 그려냈다
시가 곱게 물들어져서
수채화가 되어 갈 때
그녀의 눈에서 사랑이
흘러내리고 있었다
내 눈에도 뜨거운 사랑이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
-「억새의 눈물」전문
이 작품도 전체가 감정이입으로 처리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김서정 시인의 장점으로는 객관적 상관물을 통하여 자신의 감정을 표현하는 것에서 한발 더 나아가 시 전체를 감정이입으로 처리하는 능력이 매우 뛰어났음을 알 수 있다. 이런 힘은 자연 속에서 자라면서 자연과 무한히 대화를 하여 순수한 동심을 간직하고 있기에 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자연은 인간의 정서를 순화시킨다고 하듯이 이런 순수한 시는 우리 내면에 찌든 미세먼지로 오염된 마음을 정화하는 힘이 있는 것 같다.
이 시는 꽃이 필 때까지는 눈길을 별로 받지 못한 억새가 시의 화자이다. 그런데 가을이 되어 꽃을 피우고 나니 화려하지 않은데도 어느 날 중년 여인이 찾아와 수채화를 그리며 사랑의 눈물을 흘린다고 하고 있다. 그 사랑의 눈물을 보면서 화자인 억새도 뜨거운 사랑의 눈물을 흘린다는 것이다. 중년 여인은 시인 자신일 수도 있고 시인은 관찰자일 수도 있다. 그러나 마지막 연에서 “내 눈에도 뜨거운 사랑이/ 철철 흘러내리고 있었다”라고 하였는데 억새에 감정이입을 한 것을 볼 때 중년 여인은 ‘시인 자신’이라고 보는 것이 더 타당한 것 같다. 또 2연에서 “어느 누구의 눈길도/ 받지 못한 고독의 정점에서/ 꽃이 피어나 세상의 눈을/ 깡그리 사로잡았다”라는 표현으로 볼 때 시인은 소외된 존재의 아름다움을 발견했을 때의 감동을 표현한 것으로 보며 결국 모든 생명은 아름답다는 것을 깨닫고 흘린 사랑의 눈물이라고 볼 수 있는 것이다. 결국 생명의 극한 상태 속에서 무한한 고독감을 느꼈을 것이다. 그런 경험을 한 시인은 억새꽃에서 화려한 봄꽃이 아닌데도 연민의 정을 느끼고 자신과 동일시하게 된 것 같다. 아울러 억새꽃은 어울려 함께 피어 있기에 아름다운 꽃이기도 하다. 가을 들녘의 억새꽃의 ‘사각거리는 언어’를 들으면서 인생의 가을의 문턱을 거닐고 있는 사람들은 새롭게 보이는 법이다.
조정래는 억새꽃의 아름다움에 대해서 “단풍과 억새꽃은 서로 북돋워주는 조화 속에서 가을산을 눈물겹도록 아름답게 수놓고 있었다.(중략) 억새꽃의 아름다움은 혼자 피는 것이 아니라 무리를 이루는 데 있고, 그보다 더 아름다운 것은 바람이 부는 대로 흔들리고 쓸리고 나부끼고 출렁이면서 하얀 꽃들의 파도를 이루는 데 있었다. 억새들은 그 가늘고 긴 키의 호리호리한 몸매를 서로 서로 의지해 가며 아무리 거센 바람이 불어도 부러지거나 꺾이는 일 없이 낭창낭창한 허리를 바람결을 타며 오히려 더 환상적인 군무를 이루어냈다. 굽이치고 솟구치고 자지러지고 너울거리는 억새꽃들의 하얀 춤사위는 그 어느 꽃도 흉내 낼 수 없는 아름다움이었다.”고 하며 억새꽃을 눈물겹도록 아름다운 꽃이라고 했는데, 김서정 시인의 ‘사랑의 눈물’과도 통하는 것 같다.
물을 소재로 하여 “산책길 사람들과 함께 흐르는 물이/ 빛이 바래지지 않는 태초의 사랑/ 흐르고 흐르나 하네”(「하천의 소리」에서)라고 노래하였는데, 이 작품 역시 하천의 소리에 전편을 감정이입으로 시적 성취를 높인 작품이다. 이 시에서도 “산책길 사람들과 함께 흐르는 물”이라는 말 속에는 남과 더불어 살아가는 모습이 반영되어 있으며, 억새꽃도 무리를 이루는 것과 통한다. 시인이 의도하였든 하지 않았던 시인의 의식 속에는 남과 더불어 살아가고자 하는 의식이 무의식에 잠재하고 있음을 느낄 수 있다. “빛이 바래지지 않는 태초의 사랑”이란 맑은 물처럼 타고난 고운 심성을 그대로 간직하라고 자신에게 조용히 외치고 있는 말이 아닌가. 이처럼 시집 어느 작품을 막론하고 사랑에 바탕을 둔 순수한 심성을 노래하고 있다.
7. 겨울의 노래
생의 잔인한 이별로
넝마가 펄럭이는 역두에서
먹먹한 가슴을 만지는 손이
설익은 자본주의 사치 같아서
부끄러웠다
끙끙 신음하며
떠내려온 이파리 앞에서
맘 놓고 아스팔트에 내놓는
딸각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저들에겐 눈물인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삶과 죽음 사이에 있는
서러운 바람 이불을 바라보며
따뜻하게 입고 있는 코트는
삭풍도 비켜가는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
가난이 묵언인 한 줄기 바람 영혼을
진정으로 온기가 있는 손으로
잡을 수 있는 사랑이 없어서
부끄러웠다
이미 떨어진 구멍 난 이파리가
맑은 초록 노래로 역두를 쓸고 간다
-「역두(驛頭)에서」전문
이 작품은 이번 시집에서 유별난 작품이다. 대부분 자연을 제재로 자신의 생각이나 정서를 표현했는데, 인간을 주목하여 쓴 작품이기 때문이다. 이런 작품으로는 야구의 이만수 감독을 제재로「만수꽃 향기」등 몇 편만 볼 수 있다. 그런데‘사랑’이 이 시집의 전편에 흐르고 있으며 봄에는 화려한 벚꽃을 많이 노래하면서도 눈에 잘 보이지 않는 작은 ‘냉이’과 가을의 ‘억새꽃’에서처럼 소외 받는 존재에 대해서도 눈길을 보내었다. 이 작품에서도 인간 사회를 바라보면서도 소외된 존재를 향한 사랑이 부족했음을 부끄러워하는 작품이다. 역설적으로 그만큼 화자인 시인은 사랑의 마음이 가슴에 충만한 것 같다. 그렇지 않고서야 부끄러워할 수 없기 때문이다. 앞으로는 자연 뿐만 아니라 인간 사회, 우리 이웃을 좀더 관찰하고 연민하고 사랑을 보낼 때 시인의 시심은 더욱 풍성하고 깊어지리라 본다.
이 시는 특별히 설명하지 않아도 다른 시와 마찬가지로 독자에게 전달이 잘 되고 있다. 난해시를 마구 써내는 일부의 시인들도 있지만 이미 시단에서도 그들의 시에 대해서는 긍정적이지 않다. 소설이나 시를 읽는 독자 중에서 전체 내용이나 구성에 관계없이 단 한 구절만 맘에 들어도 독해하는 독자들도 있다고 하지만 바람직하지 않은 길을 갈 필요는 없을 것이다. 대도시가 병들었고, 또 대도시가 미세먼지로 가득하다고 해서 아름다운 시골까지 병들 필요도, 미세먼지로 가득할 필요는 없다. 서정시는 서정시 본령의 길을 걸어가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역두(驛頭)에서」는 독자들에게도 소외된 존재들을 돌아보게 만드는 힘이 있다. 정말 좋은 작품이다. 노숙자를 ‘넝마’, ‘떠내려온 이파리’, ‘한줄기 바람 영혼’으로 적절하게 비유하여 시적 성취를 높혔다. 더욱이 각 연의 마지막에 ‘부끄러웠다’를 반복하여 리듬을 살리면서도 부끄러움을 더욱 심화하도록 효과적인 장치가 되었다. 특히 ‘부끄러웠다’는 것은 자신의 탓에 바탕을 두고 있다. 현재 우리 사회에서는 양극화의 문제, 남남 갈등, 남북 갈등, 생태계 문제를 둘러싼 4대강 보, 원자력 발전 운영 등의 문제들이 너무나 많다. 그러나 권력을 가진 자들은 항상 자신을 기준으로 자기들인 ‘선(善)’의 척도인 양 착각하면서 남탓으로 돌리기에 바쁘다. 진정으로 선(善)한 사람들은 자기 탓으로 돌려야 한다. 하늘에서 갑자기 떨어진 사람은 없다. 남 탓만 일삼는 이 시대에 부끄러움을 아는 것은 진정으로 이 사회를 개혁하려는 첫 발걸음이 될 것이다. 존 버니언의『천로역정』에서 “영혼이 없는 몸은 생명이 없는 살덩이나 매한가지잖아요. 행동이 따르지 않는 말도 똑 같아요. 신앙의 핵심은 실천에 있어요”라고 하였는데 행동이 따르지 않는 말은 별의미가 없다는 것이다. 실천하기 전에 진정으로 반성할 때 실천하는 힘이 생길 것이다. 이런 면에서 이 작품은 ‘사랑’을 생각하도록 하는 힘이 있다. 특히 2연에서 “딸각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저들에겐 눈물인 것 같아서/ 부끄러웠다”라고 했는데, 끙끙 신음하는 이파리에 발자국 소리는 저들의 가슴에 송곳으로 찌르는 아픔을 주는 소리로 연상되고 있다. 청각의 이미지가 아주 적절히 표현되었다. 마지막 연에서 “이미 떨어진 구멍 난 이파리가/ 맑은 초록 노래로 역두를 쓸고 간다.”라고 했는데, 비록 구멍 난 아파리이지만 초록의 노래를 부른다는 것은 화자의 감정을 이파리에 이입한 것으로 노숙자에게 희망이 있었으면 하는 화자(시인)의 바람이 나타나 있어 따뜻하다.
소나무 향기가 겨울에 와서
고사리 손들을 호 호 불어 주었다
앞산의 노래가 교실 가득히
날아다니며
불현 듯 그 시절이 눈물을
놓고 간다
경아 희야 철이 훈이도
솔방울 눈물에 속살거리고
일제 강점기와 6․25가 남긴
부모님 자국 위에
그 누구도 볼멘소리를 얹지 못했던
희뿌연 그림들이
운무처럼 내려오면
5학년 1반 솔방울 난로도
뒤따라 와서 고향을 깔아준다
그때는 그랬다
솔방울에 우리 꿈이 타올랐고
골짜기 사랑이 촉촉이 가슴을 적셨다
가난했지만
-「추억의 그 자리에서」전문
서정시를 본질적으로 추억을 바탕으로 한다. ‘그리움’이 없다면 어찌 서정시를 쓸 수 있겠는가. 이 시는 일제강점기와 6.25 전란의 상처가 남긴 가난한 시대였지만 꿈을 가진 아름다운 시절이었다고 회상하고 있다. ‘솔방울’로 난로를 피웠든데 “솔방울에 우리 꿈이 타올랐고”라는 표현은 희망적이고 아름답다. 마치 구상 시인의 ‘초토의 시’에서 “판잣집 유리딱지에/ 아이들 얼굴이/ 불타는 해바라기마냥 걸려있다” “하고 전란 중 부산 피란민들이 모인 동네 어린이들이 ‘해바라기’처럼 밝은 해맑은 모습을 하고 있다고 노래하면서 그들에게 희망적으로 노래한 것을 연상하게 한다. 이 시에서도 어려운 시절이었지만 시인은 그 시절이 아름답기만 하다. 그래서 그 친구들의 이름을 하나 하나 부르고 있다.
그런데 이 시의 3연에서 “일제 강점기와 6․25가 남긴/ 부모님 자국 위에/ 그 누구도 볼멘소리를 얹지 못했던/ 희뿌연 그림들이/ 운무처럼 내려오면”이라고 하였는데, 거창은 6.25때 ‘양민학살 사건’으로 억울한 죽음을 당한 사건으로 큰 상처를 안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그 누구도 볼멘소리를 얹지 못했던”이라는 것은 1) 일제강점기와 6.25가 남긴 가난의 현실속에서 좀더 물질적으로 넉넉했으면 했지만, 그렇게 베풀 수 없는 현실을 알기에 부모님께 말씀드리지 않았다는 어른스러운 마음을 가졌 시절을 회상 2) 거창 양민학살 사건의 고통을 어들들이 말 못한 세월 속에 쉬쉬하면서 지내던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것을 비유하여 “희뿌연 그림들이/ 운무처럼 내려오면”이라고 표현 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시상 전체가 밝고, 가난 했지만 꿈을 가진 어린 시절이며, ‘골짜기’ 즉 고향에 대한 무한한 사랑을 기억 속으로 회복하는 것으로 보아 1)로 읽는 것이 더 타당할 것이다. 6.25만 있는 것도 아니고 일제강점기를 언급한 것을 볼 때 더욱 1)이 타당한 해설일 것이다. 그러나 독자의 입장에선 시인의 의도와는 관계 없이 2)도 스쳐지나가는 것은 어쩔 수 없다. 전체의 해석과는 동떨어진 해석일지라도.
8. 고유어 사용
이번 시집에 고유어 사용으로 더욱 빛이 났는데, 시인이 시어를 다듬기에 노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흔하게 사용되는 고유어를 제외하고 다른 글에서도 가끔 볼 수 있는 시어들 중 일부와 다른 시집이나 글에서는 쉽게 볼 수 없어 김서정 시인의 빛깔을 드러내는데도 한 몫을 한 시어들을 살펴본다. 이러한 고유어 사용으로 시집이 더욱 빛이 나고 무게가 있어지고 독자들에게도 사유의 폭이 넓어질 수 있어 기쁨을 주고 있다.
눈에 크게 띄는 고유어로는 <소소리바람, 흐놀다, 설핏하다, 윤슬, 시나브로, 마파람, 꺼이꺼이, 산득, 또바기, 명지바람, 색바람, 몬존하다, 산드러지다, 온새미로, 틀수하다, 모도록, 곰살궂다, 왜바람, 희치희치한> 등이다.
1) 소소리바람, 흐놀다
소소리 바람이 삼월 봄을 안고/ 추워서 파르르 떠는 온몸에/ 사월이 흐놀고 흐논다(「아름다운 삶」에서)
2) 몬존하다
네 영혼이 비치는 노래는/ 누구도 흉내 낼 수 없는/ 몬존하게 아름다운/ 가을이었고(「코스모스」에서)
3) 틀수하다
억새의 틀수한 산빛 몸짓은/ 하늘빛 마음을 또 알게 한다/ 묵묵히 지내온 사랑이/ 제자리에서 가족 이름으로/ 날리고 있다(「가을 이야기」에서)
4) 희치희치하다
희치희치한 묵은 우정을 만났다.(「부산 보수동 헌 책방」에서)
5) 산드러지다
구월이 부르는 곳에/ 나뭇가지가 내려와/ 바람에 앉아서/ 산드러진 휘파람으로 휘돌고(「가을 오솔길」에서)
1)의 ‘소소리바람’은 ‘이른 봄에 살 속으로 스며드는 듯한 음산하고 찬 바람’이라 하여 적절히 사용되고 있다. 그런데 ‘흐놀고’는 타동사로 기본형은 ‘흐놀다’이며 ‘그리워하다’는 뜻이다. 그런데 타동사는 목적어가 필수 성분이기 때문에 ‘사월이 흐놀다’는 문법에 어긋난다. 고어 ‘흐늘다’는 타동사로 ‘흔들다’의 뜻이니, ‘사월이 흐늘다’도 문법에 어긋난다. 그래서 ‘사월이’를 ‘사월로’고쳐서 “사월이 흐놀고 흐논다”고 하면 ‘사월을 그리워하고 그리워한다’가 되니 문맥이 통하는 것 같다. 즉 주어는 ‘소소리 바람’이니 ‘소소리바람이 추워서 떨면서 사월을 그리워하고 그리워한다’라고 볼 수 있다. 어쨌든 ‘흐놀고 흐논다’는 ‘소소리바람’,‘설핏한’ 등의 고유어와 함께 이 시를 온돌방처럼 향수를 불러일으키며 따뜻함을 심화시키고 있다.
2)의 ‘몬존하게’는 형용사로 기본형이 ‘몬존하다’로 ① 성질이 차분하다, ② 얼굴이나 모습이 위풍이 없이 초라하다는 뜻이다. 코스모스는 여러 색깔이 어울려서 필 때의 모습은 아름답다. 그러나 선물로 주거나 꽃병에 꽂는 데도 인기가 있는 꽃은 아니다. 그러면서도 늦여름이나 가을 들녘에 무리 지어 피어 있는 코스모스 꽃이야말로 말로 형용할 수 없이 아름답다. 그 아름다움을 ‘몬존하게’하게 라고 개성적이면서도 적확(的確)하게 사용하여 시를 더 풍성하고 아름답게 하고 있다. 이번 이집에서 ‘몬존하게’ 이 한 단어를 세상에 드러냄으로써 이 한가만으로도 충분히 이번 시집이 빛나고 있다.
3)의 ‘틀수한’은 형용사로 기본형은 ‘틀수하다’이며, ‘성질이 너그럽고 깊다’ 뜻을 가진다. “억새의 틀수한 산빛 몸짓”에서 시어로 ‘틀수한’이라는 시어가 시의 깊이를 더하고 있다. 아마 화자가 가장 힘든 시기에 가족들이 보내준 사랑이 조용하면서도 깊은 사랑인 바 그것을 ‘틀수한’이라고 아주 적절하게 표현한 것이다.「가을 이야기」의 제목과도 어울리며 “보드레한 울타리로 있는/ 우리 집 남자들이/ 오후의 묵언으로 서 있다”라며 뒤에 이어지는 내용을 볼 때 억새처럼 화려하지 않지만 흰 색깔로 울타리가 되어주는 너그러운 가족의 사랑(남편과 자식)이라고 이어지고 있으니 시인이 비유와 적확한 언어 사용은 높이 칭찬할 만하다.
4)의 ‘희치희치한’은 부사 ‘희치희치’에서 ‘- -하다’와 결합하여 형용사로 쓰이고 있다 부사 ‘희치희치’는 ①피륙․종이 등이 군데군데 치이거나 미어진 모양 ② 물건의 반드러운 면이 스쳐서 드문드문 벗어진 모양이라고 사전에서 설명하고 있다. 시인은 “희치희치한 묵은 우정”이라고 자연스럽게 표현하는 능력이 놀랍다.
5) ‘산드러진’은 형용사로 기본형이 ‘산드러지다’이며, ‘태도가 맵시 있고 경쾌하다’는 뜻이다. “나뭇가지가 내려와/ 바람에 앉아서”라는 묘사는 쉽게 할 수 없는 것인데 김서정은 자유롭게 표현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시를 한 편 한 땀을 흘려서 쓴 결과일 것이다. 아울러 순수 동심에 바탕을 두고 있기에 바라보는 사물들을 항상 새롭게 볼 수 있는 마음의 눈이 열려 있는 것 같다. “산드러진 휘파람으로 휘돌고”에서 ‘휘파람을 불고’라고 했으면 상투적인 표현이 되었을 것인데 ‘휘돌고’라고 표현하여 참신한 표현을 하여 시에 새로운 생명력을 불어 넣고 있다. 거기다가 ‘산드러진’이라는 표현으로 나뭇가지를 지나는 바람소리가 아주 경쾌한 소리를 내고 있음을 연상하게 된다. 바람소리를 휘파람으로 표현하되 ‘휘돌고’라는 시각적 이미지로 바꿈으로써 ‘공감각적 표현’으로 시적 표현을 한층 더 깊게 하여 시적 쾌감을 더하고 있다. 이처럼 시인의 고유어 사용으로 시의 내용을 더욱 풍성하게 할 뿐만 아니라 표현의 미를 한층 멋지게 살리고 있다. 독자로서 깜짝깜짝 놀라면서도 그 기쁨은 이루 말 할 수 없다. 앞으로도 계속 이런 작업들을 해 나간다면 더욱 좋겠다. 이미 사용한 용어들을 새로운 시를 쓸 때에도 사용함으로써 독자들이 익숙해지고 또 널리 확산되기를 바라는 마음이다.
이 밖에도 ‘꺼이꺼이’는 부사로서 ‘큰 목소리를 목이 멜 만큼 요란하게 우는 모양’이며(「폭우가 만난 사랑」)이며, ‘또바기’는 부사로서 ‘언제나 한결같이 꼭 그렇게’(「하늘의 수채화」), ‘명지바람’은 명사로서 ‘보드랍고 화창한 바람’(「민들레 홀씨」)이며, ‘색바람’은 명사로서 ‘이른 가을에 부는 신선한 바람’(「별하나의 사랑」), ‘온새미로’는 부사로서 ‘가르거나 쪼개지 않고, 전체의 생긴대로’이며 이제는 제법 많이 알려진 단어로 아름다운 우리말이며, ‘모도록’은 부사로서 ‘채소․풀 등의 싹이 빽빽하게 난 모양’(「그리움」)이며, ‘왜바람’은 명사로서 ‘방향 없이 이리저리 부는 바람’(「겨울 편지」)인데, 여러 시편에서 ‘왜바람’을 사용하고 있으며 이번 시집에서 ‘사랑’, ‘생명’, ‘행복’, ‘감사’, ‘초록’, ‘삶’, ‘우정’, ‘주님’, ‘평화’, ‘우듬지’ 등과 함께 시적 형상화를 위하여 중요하게 사용되고 있는 단어 중의 하나이다. 그런데 이 ‘왜바람’을 자유자재로 적절하게 사용하고 있었다. 이 밖에도 ‘윤슬’, ‘하늬바람’ 등의 고유어 사용으로 시가 더욱 아름다워지고, 내용도 풍성해졌다. 특히 적확(的確)하게 시어를 사용한 새로운 이미지 창조는 시집을 더욱 빛나게 하고 있다. 다만 한 가지 우리가 흔히 쓰는 용어 중에서 ‘나목(裸木)’은 내가 알기로는 일본에서 들어온 단어로 조선시대까지는 ‘낙목(落木)’으로 써 왔다. 그러나 발음상 부드럽고 또 흔히 사용은 시인의 선택의 자유라고 본다. 대부분의 시인들이 쓰고 있고 사전에도 올라와 있으니 말이다. 그러나 흔히 사용하는 단어 중 「민들레 홀씨」에서 ‘홀씨’는 ‘포자(胞子)’를 뜻하며 ‘포자’는 ‘균류(菌類)나 식물이 무성생식을 위해 형성하는 생식 세포’라고 한다. 그러니 ‘민들레 홀씨’라는 말은 생물학에서도 옳지 않는 말이니 시에서 사용은 자제해야 할 것으로 본다. 물론 사용했다고 해서 독자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지만. 그냥 ‘씨’ 또는 ‘씨앗’이 옳은 말이다.
9. 초록 서정을 기대하며
이상으로 김서정 시인(본명 심순옥, 호 敬天)의 첫 시집 「우듬지 빈 둥우리를 지키는 바람」을 간단히 살펴보았다.
이 시집은 한 마디로 ‘사랑’의 노래이다. 동심으로 가득하며 새로운 눈으로 자연 현상을 관찰하면서 모든 자연 현상의 생명력을 축복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그 자연에 무한한 사랑을 느끼고 있다. 자연을 보면서 그 모든 것을 ‘사랑의 무현금(無絃琴)’으로 연주하고 있었다. 이러한 심성의 바탕에는 아름다운 고향에 대한 그리움과 독실한 기독교 신앙이 바탕이 된 것 같다.
시의 표현에서는 객관적 상관물을 이용하여 자신의 심정을 표현하는데 능숙하며, 특히 한 편의 시 전체를 감정이입으로 처리하는 능력은 돋보였다. 또한 4계절의 자연물을 소재로 하면서도 시마다 새롭게 표현하고 있는데 이것은 변형묘사(낯설게 하기)의 능력이 매우 뛰어나기 때문이었다. 또 고유어를 적확(的確)하게 사용하여 시를 더욱 풍성하고 아름답게 하고 있다. 연 구별의 통하여 균형의 미를 살리고 있다. 특히 시집 전체가 쉽게 이해되는 시로 표현하면서도 구성력이나 비유적 표현들을 동원한 구성력이 탄탄하였다. 그래서 애송하기 좋은 시들이라는 장점도 있다. 시인은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병마로 어쩌면 생의 마지막이 될지라도 ‘초록빛 시’를 남기겠다는 투명한 사유로써 쓴 시들이 바탕이 되어 그 이후로 맑은 노래를 부르고 있다.
이제 ‘시인의 말’ 대로 “내 숨결이 멈추는 그날까지/ 사랑하는 사람들 가슴에 초록 서정을/ 색칠하련다”고 소박한 꿈을 밝혔는데, 이번 첫 시집에는 진정으로 ‘초록의 서정’으로 충만하였다. 앞으로도 계속 사랑으로 충만한 초록의 서정의 강물을 흘려보낼 것이라 믿는다.
다만 좀더 욕심을 부린다면 시인의 시선이 자연에 주로 머물렀는데, 인간이나 역사, 생태 등 좀더 다양하게 넓혀나간다면 더욱 풍요롭게 깊이를 더할 것이다.
“터져서 더 아름다운
맑디맑은 빛”(「이슬(2)」에서)
앞으로도 이슬과 같이 맑고 고운 사랑의 노래를 끝없이 부를 것이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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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김우연 시인님
눈물이 나려고 합니다
부족한 시인에게 큰 기쁨을 주신
시인님께 감사드립니다
문학의 길에서 귀한 분의 시평이
제게는 큰 축복의 글로 남습니다
열심히 노력하는 시인으로
남겠습니다
가을이 조금씩 느껴집니다
이 아름다운 계절에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공유하겠습니다
어제는 광주 5.18묘역 단체로 참배, 운주사 와불을 뵙고 왔어요...밴드보다 파일로 보기 싶도록...좋은 시에 해설이 부족한 글입니다..
5.18 묘역, 운주사 와불~
아직 가 보지 못했는데
여행 일정이 잡히면
가 보고 싶습니다
긴 시평, 감사와 감동과
소중한 문학 재산으로
남습니다
저는 시를 보는 눈이 부족하지만, 소통! 시와 독자, 시인과 독자와의 소통을 원하는 바람이에요. 그래서 구름을 쫒아가며 용기를 내었어요.
바람님의 시평을 만나는 구름님들은
문학의 장에서 소통의 축복이
가득하리라 생각됩니다
시적인 댓글 감사합니다
어쩜 이토록 유효적절하게 시평을 잘 해놓을가요 ㅎㅎ
시평이 있어 시를 이해하기에 훨 수월합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
청원 선생님이 좋아하시니 힘이 납니다. 항상 고운 시심 펼치시니 그 자체 행복일 것 같습니다.
시조, 시를 넘나들며 좋은 평론을 올려주시네요.
늘 노력하시는 선생님께 존경을 표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백로입니다. 호두와 밤이 아람을 벌었겠네요.
예리한 칼럼..진솔한 수필 등...시조 이 외에서도 빛을 발하고 계시는 '피아노 치는' 시인님의 좋은 글들을 잘 읽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