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en I consider how my light is spent
Ere half my days in this dark world and wide,
And that one talent which is death to hide
Lodged with me useless, though my soul more bent
To serve therewith my Maker, and present
My true account, lest He returning chide;
"Doth God exact day-labour, light denied?"
I fondly ask. But Patience, to prevent
That murmur, soon replies, "God doth not need
Either man's work or his own gifts. Who best
Bear his mild yoke, they serve him best. His state
Is kingly: thousands at his bidding speed,
And post o'er land and ocean without rest;
They also serve who only stand and wait."
내가 내 빛이 다해 가는 것을 생각할 때
인생의 반도 채우기 전에, 이 어둡고 넓은 세상에서,
숨기면 죽음과 같은 그 하나의 달란트(재능)가
쓸모없이 내 안에 맡겨져 있는 것을,
비록 내 영혼은 더욱 간절히 그것으로
나의 창조주를 섬기고자 하며
돌아오실 때 꾸지람 받지 않도록 진실한 계산을 바치려 하나,
“하나님께서 빛을 거두신 자에게도 낮의 노동을 요구하시는가?”
내가 어리석게 묻노라. 그러나 인내가
그 불평을 막으려 곧 대답하길,
“하나님은 사람의 일도, 그분께서 주신 선물도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
그분의 온유한 멍에를 가장 잘 견디는 자가
그분을 가장 잘 섬기는 것이다. 그분의 나라는
왕처럼 장엄하도다. 수천이 그분의 명을 받들어
땅과 바다를 쉬지 않고 달려가나니,
그저 서서 기다리는 자들도 또한 섬기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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밀턴의 시 On His Blindness"는 한국 기독교 신자들(특히 고학력자)에게 성찰의 도구로 매우 효과적으로 활용될 수 있다. 특히 배움과 학력을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로 보는 관점에서, ‘할머니 신앙’의 순수함을 과도하게 이상화하며 지적 노력을 폄하하는 태도를 비판적으로 돌아보게 하는 강력한 텍스트가 된다.
Milton은 “that one talent which is death to hide”라고 표현하며, 마태복음 25장의 달란트 비유를 명확히 인용한다. 숨기면 죽음과 같은 재능을 땅에 묻어두는 것은 게으름이자 하나님에 대한 불순종으로 본다. 재능을 숨긴 자가 영적 죽음과 영원한 파멸을 당한다는 뜻이다. 여기서 talent는 재능·능력·자원을 포괄하므로, 현대적으로 해석하면 학력, 지적 훈련, 전문 지식도 포함된다.
마태복음 25:14-30의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하나님)이 종들에게 달란트(화폐이자 상징적 재능)를 맡기고 떠난다. 한 달란트를 받은 종이 그것을 땅에 묻어 숨기자, 주인이 돌아와 그를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 부르며 “바깥 어두운 데로 내쫓으라 거기서 슬피며 이를 갈리라” (25:30)라고 선언한다. 이는 영적 죽음·영원한 파멸을 상징하는 표현이다. 따라서 ‘death to hide’는 숨기면 그 사람에게 죽음(파멸)이 온다는 경고이다.
Milton은 이 비유를 빌려, 자신의 재능(talent, 시력 잃기 전의 시 쓰기·학문 능력)을 실명 때문에 제대로 쓰지 못하고 ‘숨겨진 채’ 방치되는 상황을 두려워한다. 그런 상태가 지속되면 하나님께서 돌아오실 때 자신을 꾸짖으시거나, 영적으로 파멸시킬까 걱정하는 것이다.
Milton의 삶 자체가 증거다. 그는 실명이라는 극단적 한계 속에서도 학문적·지적 재능을 포기하지 않고 구술로 《실낙원》을 완성했다. 이는 ‘서서 기다리는 것’만이 아니라, ‘주어진 달란트를 최대한 활용하려는 노력’을 보여준다.
한국 개신교 내의 반지성주의(anti-intellectualism)는 여러 연구와 논평에서 지속적으로 지적되는 문제이다. 한국 교회는 지적 탐구를 ‘교만’으로 치부하거나 감정·체험 중심 신앙만을 강조하는 경향이 현저하다. 고학력자들도 이를 따라 ‘할머니 신앙’(소박·순수·비지적 신앙)을 이상화하면서, 결과적으로 자신의 달란트를 ‘쓸모없이 묻어두는’ 삶을 살게 된다.
‘할머니 신앙’ 자체는 소중하다. 많은 자료에서 순수하고 헌신적인 믿음의 뿌리로 긍정적으로 언급된다. 문제는 이를 핑계로 지적 노력을 폄하·거부하는 태도이다. 한국 교회 반지성주의는 역사적 뿌리가 깊다. 미국식 근본주의와 기복신앙 등의 영향이다. 균형이 핵심이다. 소박함과 지적 노력은 대립하지 않는다.
〈잠언〉 4:7 ”지혜가 제일이니 지혜를 얻으라“처럼 성경은 지혜·지식을 적극 장려한다. 밀턴의 시는 자기 성찰과 균형 회복을 위한 훌륭한 문학적·신앙적 자극제가 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