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훈아와 남진의 라이벌 시대가 있었다. 그 시대에 나는 사춘기를 지나 청춘의 강을 건너고 있었다.어제 나훈아의 공연 소식에 나는 며칠 동안 기대를 가지고 저녁 8시반이 되기를 기다렸다. 공연이 시작되면서 나는 깜짝 놀랐다.
네안데르탈인이 무대에 등장하는 줄 알았다 혹시 모창가수 너훈아가 깜짝 출연? 그런데 자세히 보니 얼굴에 주름살이 없어지고얼굴에 웬 보톡스를...아 실망.배신자..
카리스마있는 표정 그 눈매.. 입술 지긋이 깨물며 보내는 톡특한 나훈아의 미소를 나는 얼마나 기다렸는데..
옛날 맛의 구수하고 얼큰한 짬뽕을 시켰는데 퉁퉁불어 터진 면발이 배달되었을 때의 황당함 같은 느낌?? 그러나 보쌈안주에 소맥을 마시면서 공연에 취하다보니 어느새 한아름 나훈아 얼굴도 점점 작아져 보이더라.그래서 이해하기로 했다. 얼마나 멋진 모습으로 늙으며 변해가느냐는 오로지 나의 관심사지 연예인 나훈아의 관심사는 아니지 않는가. 용서하고 말았다.용서하니 네안데르탈 나훈아의 얼굴이 한가위 보름달 같았다 역쉬 용서는 좋은것이여!
그는 역시 가황이라는 칭호에 어울리는 무대를 연출했다. 신이 내린듯한 비음섞인 목소리로 부른 노래.. 고향역. 녹슬은 기찻길.사랑은 눈물의 씨앗.물레방아 도는데..등 수 많은 곡을 듣고 싶었다.노래방에서 감나무골은 나의 애창곡이다
그가 만든 노래의 가사와 곡을 살펴 보면 삶의 애환을 몸소 관통하며 쓴 노래라는 걸 느낀다. 어제 그의 말속에서 새롭게 알게된 두 가지. "곡의 원천은 많은 독서에서 나온다"는 것과 "삶의 변화를 끊임없이 추구한다"는 것이다. 그러한 삶을 동경하는 많은 사람에게 꿈과 희망의 메시지를 주었다고 본다. 나에게는 이미 그런 세상은 갈 수 없는 곳이며 멀어진 공간이 되고 말았지만,남은 생을 남진처럼 살것이냐 나훈아처럼 살아 갈 것이냐는 온전히 나의 몫이다.
나훈아와 남진은 많은 점에서 비교가 된다. 남진은 미남이고 나훈아는 호남이다. 남진의 가슴아프게와 우수는 맑고 깨끗하고 나훈아의 고향역과 녹슬은 기찻길은 구성지고 서글프다. 인생관의 차이도 선명하다 남진은 인생을 즐기면서 사는데 나훈아는 끊임없이 무언가를 향애 나아가고 있다. 나훈아의 인생관을 목표하며 남진의 생활에 안존하고 있는 나는 웃기는 인생이다
두사람은 뮤지션과 연예인의 차이가 아닐까 나훈아의 찐팬들은 남진과 비교되는 것 조차 불쾌해 한다고 들었지만,요즘 후배들과 친근하게 형 노릇해가며 즐기듯 살아가는 남진의 모습도 많은 이들이 부러워 한다. 근데 내가 보기에는 나훈아가 아티스트라면 남진은 그냥 트롯트 가수인 것 같다.
남진처럼 즐기며 나훈아처럼 삶의 변화를 꿈꾸는 삶을 살수는 없는가?없다..그건 욕심이다 나는 당장 지아비의 역할을 벗어날 수 있는 용기도 없고 능력도 배짱도 없다.머리를 길러서 묶고 수염이라도 길러서 외모의 변화부터 기도해 보고 싶지만, 추해보일까봐 걱정. 마눌 잔소리 걱정. 가게 이미지 걱정. 영남민요 공연걱정...흑흑..
지척에 큰집 두고서 정부방침 따른다(사실은 형수님과 질부들 눈치보느라)고 방콕에서 추석날 아침 <남진과 나훈아 비교론> 을 쓰는 나는, 지금 코로나가 가져다 준 작은 일탈을 즐기고 있다 악보 두 장을 골라 놓았다. 남진의 <우수> 와 나훈아의 <물레방아 도는데>이다 오늘은 시간내서 연주 녹음을 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