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 헤는 밤에 쓴 참회록
조문정
뉴스를 틀어놓은 TV 화면은
촛불로 가득 차 있습니다.
나는 근심 가득한 마음으로
화면 속의 촛불을 다 헤일 듯합니다.
가슴 속에 하나둘 새겨지는 촛불을
이제 다 못 헤는 것은
특검 연장이 안 된 까닭이요,
헌재 판결이 남은 까닭이요,
아직도 내가 따뜻한 방구석에 있는 까닭입니다.
촛불 하나에 민심과
촛불 하나에 눈물과
촛불 하나에 분노와
촛불 하나에 배신감과
촛불 하나에 희망과
촛불 하나에 차기 대선, 차기 대통령
대통령이여, 나는 촛불 하나에 옛 해외 지도자들의 이름을 하나씩 불러봅니다.
‘이승만’ 전 대통령, ‘리처드 닉슨’ 전 미국 대통령, ‘에제르 바이츠만’ 전 이스라엘 대통령, ‘모셰 카차브’ 전 이스라엘 대통령, ‘크리스티안 불프’ 전 독일 대통령, ‘오토 페레스 몰리나’ 전 과테말라 대통령, ‘샤를르 드 골’ 전 프랑스 대통령, ‘지우마 호세프’ 브라질 전 대통령, ‘롤란다스 팍사스’ 전 리투아니아 대통령, ‘압달라 부카람’ 전 에콰도르 대통령, ‘압두라만 와히드’ 전 인도네시아 대통령, ‘카르롤스 안드레스 페레스’ 전 베네수엘라 대통령, ‘페르난두 콜로르 지멜루’ 전 브라질 대통령, ‘알베르토 후지모리’ 전 페루 대통령, ‘페루난도 루고’ 전 파라과이 대통령,
탄핵당했거나 하야한 지도자들의 이름을 불러봅니다.
이네들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광장으로 달려가 촛불을 켤 수 있듯이
대통령이여,
그리고 당신도 가까운 청와대에 계십니다.
나는 무엇인지 사무쳐
이 많은 촛불이 펼쳐진 화면 위에
내 이름자를 써 보고
리모컨으로 전원을 꺼버리었습니다.
딴은, 밤을 새워 우는 촛불을
외면해버린 내 자신이 부끄러운 까닭입니다.
생각해보면 어린 때 의지를
하나, 둘, 죄다 잃어버리고
나는 무얼 바라
나는 다만, 홀로 침묵하는 것일까요?
촛불은 들기 어렵다면서
이렇게 쉽게 기자를 지망한다는 것은
부끄러운 일입니다.
남의 나라가 아닌 나의 나라
광장엔 촛불이 넘실거리는데
타인의 촛불이 어둠을 내몰고
탄핵이 실현되길 기다리기만 한 지금의 나,
나는 나의 참회의 글을 한 줄에 줄이겠습니다.
지금 이 젊은 나이에
왜 이런 부끄러운 고백만 하는가.
주말이면 주말마다 내 안의 촛불을 켜고
광장으로 달려가 보겠습니다.
탄핵이 실현되고 우리의 광장에도 봄이 오면
무덤 위에 파란 잔디가 피어나듯이
우리가 촛불을 밝혔던 광장에도
자랑처럼 햇살이 환할 거외다. (1131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