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11일(금) 승선 9일 째 바다, 오전 흐림, 오후 비, 진눈개비
바다에 떠 있은 지 오늘로서 4일째, 북쪽으로 향할수록 흐린 날이 많고
기온이 떨어짐에 따라 진눈개비까지 내린다.
날짜 변경선을 통과하면, 알라스카 반도에서부터 먹물을 뿌려 놓은 듯한
까만 점들이 서남쪽으로 길게 흘러내리고 있다. 바로 베링 해의 남단에
포진하고 있는 알류산 열도다.
( 망망 대해. 바다, 구름, 하늘이 시간따라 만들어 내는 공간 예술은 감상하는 이를
환상의 세계로 안내한다.)
알류산 열도는 알라스카 반도로부터 남서쪽으로 1,900 km에 걸쳐 뻗어
내리며, 화산으로 이루어진 14개의 큰 섬과 55개의 작은 섬으로 이루어
졌다. 슈메긴 제도, 폭스 제도, 우니 막 섬, 언알라스카섬, 움내크 섬,
아닥 섬, 키카 섬, 볼다이 섬(Buldir I.) 에거투 섬, 에투 섬 등,
이들 섬 중 특히 유명한 곳은 언알라스카(Unalaska)리는 곳이다.
일명 “더치 하버( Dutch Harbor)" 라고 불려지기도 하는 이곳은 알류산
열도의 도시 중 가장 큰 항구 도시로 겨울 한철 킹 크랲 통발선의 출항
기지로 유명하다. 인구는 4376명( 2010 인구센서스)에 지나지 않으나
매년 1~ 2월 킹 크랲 통발선의 출항 시기가 되면, 미주 대륙 전역에서
한탕주의 꿈을 꾸는 청년들이 벌떼처럼 몰려든다고 한다. 운이 좋으면
짧은 기간에 수 만 불의 수익을 올릴 수 있기 때문이다.
세계적인 영상 저널, 디스커버리 채널(Discovery Channel)에서 에미상에
노미네이트 되었던 작품, “ 생명을 건 포획(Deadliest Catch)“을 상영하여
매우 감명 깊게 본 적이 있다. 킹 크랲 통발 선원들의 생활과 작업 내용을
소개한 작품이다. 폭풍과 폭우가 계속되는 악 천후 속에서 목숨을 걸고
6~ 8m의 파고와 싸우며 작업하는 내용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1942년 2차 세계 대전 때는 일본 해군 소속 이동 타격대 항공기들이
이곳까지 날아와 더치 하버를 공격하였다니,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다.
(선내에는 각종 오락 기구가 준비되어 있다. 우리도 과거 학창 시절로 돌아가서
탁구대를 애용하는 단골 손님 중 한 팀이 되었다.)
이 날 새벽, 프린세스 다이어몬드 호는 볼다이 섬(Buldir)을 통과 한 후,
동북 방향으로 항로를 잡아 베링 해를 건너서 우니막 해협을 향하여
전진하였다.
한 낮 12 시경, 쿠르즈 선의 위치는 북위 53도, 동경 179도.
가장 가까운 육지는 타나가(Tanaga Island)섬으로 배의 오른 쪽
방향으로 130Km( 70 Nautical Miles) 떨어져 있는 거리다. 구름이
낮게 깔린 우중충한 날씨 때문에 육안으로 보이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 바다, 구름, 하늘이 만들어 내는 환상 교향곡 )
오래간만에 휴대폰을 열어보았다. 외교 통상부에서 보내온 메시지가
뜬다.
[olleh 알림] 위급 상황시 [외교 통상부 ] 영사 콜센터
+82-2-3210-0404로 24 시간 연락 주십시오. 숫자 0을 길게 누르면
+가 됩니다. 5월 5일 오전 8 : 50
일주일 전 메시지인데, 그 동안 무심히 지냈다. 문득 우리는 참으로
좋은 세상에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든다. 출국 전 아무 신고도 안했는데도
어떻게 알고 북태평양 한 가운데 떠 있는 나에게 이런 메세기를 보낼 수
있단 말인가? 세상 어디를 가도 미아 되는 법은 없을 것 같다.
혹시 국제 통화가 가능 한가 국내 번호를 눌러보니, 불통이다.
( 배가 북쪽으로 이동 할 수록 기온이 내려가 그처럼 붐비던 수영장이 한산 해 졌다.)
배에서 무선 통화나 인터넷을 사용하려면 선박에 설치되어 있는 인공위성
통신망에 접속하여야 가능하다. 그런데 접속료와 사용료가 말이 아니다.
인터넷을 사용 할 경우:
1회 접속료 $3.95
정액제 사용료 100 분 $59.-(원화 7만원 )
150 분 $79.-
250 분 $99.-
500 분 $179.-
정액제 가입하지 않고 수시로 사용 할 때는 1분당 $0.79.-이며, 인쇄
비용은 1매당 $0.50.
큰맘 먹고 $59(\70,000)에 100분짜리 정액제를 신청했다. 그런데
사용료에만 놀랄 일이 아니다. 1 7 카페를 열어보려고 시도했는데
접속 후 부팅 시간만 무려 5분 이상 걸린다. 카페에 입성해서도 중간에
통신망이 끊겨 공지 게시판을 흝어 보는데도 20분 정도가 쉽게 지나간다.
아들에게 간단한 안부 메시지를 보내는데도 25분이 걸렸다. 결국 100 분
짜리 정액제 요금은 별로 써보지도 못하고 한화 7만원을 그냥 날려 버렸다.
6층에 있는 인터넷 카페에 들러 항의를 했지만, 나보다 목 하나는 더 커
보이는 여자 메네저로스는 큰 눈망울을 굴리며 어쩌겠느냐는 듯, 미소만
짖고 있다. 오 ! 하나님!, 맙소사! 나도 어쩔 수 없이 멋쩍은 웃음만
머금고 나왔다.
( 밤 사이 눈이 내려 선원이 눈을 치우고 있다. 5월 중순인데 눈을 본다는 것이
신기하게 느껴진다.)
그 날 저녁, 우리는 14 층 뷔페식당에서 미국인 노인 부부와 자리를 같이
했다. 백발이 무성한 그들 부부는 미국 동부 뉴저지에서 왔다고 했다.
세련 된 매너에 호감이 가 대화는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하얀 색깔의 백발이 인상적이어서 나이를 물으니, 남자는 65세, 여자는
62세, 의외로 늙어 보여 또 한번 놀랐다.
“ 당신네들 나이는 삼대 불가사의 중 하나요. 당신들 나이를 대충 70대
중반으로 예상하고 있었거든, 그런데 60대 중반이라니, 놀라울 뿐이요.
우리는 마누라가 68살, 내가 72살이요.“
( 침실 커텐을 제치면, 바다의 교향곡이 . . . . . )
그들도 지지 않는다.
“ 참으로 놀라지 않을 수 없구려, 동양 사람들은 생김새가 모두 똑
같고, 나이를 알아보기는 정말 어려워요. 당신들을 40대로 보았거든.
그런데, 당신이 말한 3대 불가사이란 무엇을 의미 합니까? “
“ 첫째가 서양사람 나이 알아 맞히기, 두 번째는 여자 나이 알아
맞히기, 셋째는 동물 나이 알아 맞히기. “
모두들 파안대소. 그들도 우리와의 대화가 즐거웠던 모양이다.
뷔페식당에서는 좀처럼 얻어먹기 힘든 와인을 주문하여 식사시간은
예전보다 길어졌다.
( 북태평양에 와 있다는 현실이 꿈만 같다. 어떻든 평범한 제스쳐는 분위기에
어울리지 않을 것 같다. 그래서 . . . . .)
그들에게는 두 딸이 있었는데, 모두 분가 시키고, 두 내외만 뉴저지에서
조용한 생활을 보내고 있다고 한다. 작년까지 남편은 직원 6명을 거느리고
산업 디자인 회사를 경영하다가, 다른 사람에게 물려주고, 여생을 아내와
즐겁게 보내기 위하여 이번에 중국 여행을 갔다가 쿠르즈 편으로 돌아
오는 길이라고 했다.
중국 여행에서 그들은 감당 할 수 없는 충격을 받은 모양이다. 중국에서
보고 듣고 느낀 것들에 대해서 쉴 새 없이 쏟아 놓는다.
( 승객들의 침실이 있는 복도, 방 번호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면 윗층, 아래층으로
헤메기 일수다.)
2010년 6월 우리도 3박 4일 코스로 북경을 다녀 온 적이 있었다.
자금성과 만리장성, 그리고 새로 깔린 넓은 도로와 엄청난 규모의 건물들,
올림픽 경기장, 질주하는 자동차, 활기 찬 상가, 급변하는 중국의 모든
것을 그대로 보여 주었다. 그 때 받은 충격은 지금도 잊을 수가 없다. 아마
이들도 그 이상의 충격을 받은 것 같다. 그리고 그의 푸념 같은 마지막
말은 귀 울림이 되어 나의 귀 속에서 오랫동안 맴돌았다.
“ 미국 사람들, 이제는 정신 바짝 차려야 되겠어, 이대로 가면 미국이
중국에게 무릎을 꿇어야 할 때가 머지않아 올 거야. “
미국인들로부터 자책의 말을 듣는 것은 내 생애 처음 있는 일이다.
첫댓글 그 당시 오정일 동창이 만난 그 사람과 대화 한 것이 벌써 현실로 돌아 왔습니다. 오늘날 미국과 중국이 무역전쟁 시작하는 것이 바로 그것 아니겠습니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