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도훈 교무--제3절 일원상(一圓相)의 수행(修行)
66. 원만구족 지공무사함과 삼대력
원만구족(圓滿具足)하고 지공무사(至公無私)한 것과
삼학(三學)의 공덕인 삼대력(三大力)과의 관계에 대해서 다양한 설정이 있다.
진리의 두 가지 측면을 세 가지로 연관지으려다보니 불가피하다.
하지만 언어적 유희에 그친 것은 아니다.
수행으로 검토되고 교학으로 정립하며 생기는 다양성은 필요하다.
그것은 수행을 해가며 수준에 따라 적용되는 것이 다를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전의 내용도 근기에 따라 다른 가르침이 혼재해 있어
하나의 관점에서는 모순일 수밖에 없는 것처럼 말이다.
진리는 텅 비었으되 신령스럽게 모르는 것 없이 알고 그곳 그 곳에 알맞게 나타난다.
이것이 삼대력(三大力)의 근간인 공원정(空圓正)이다.
또한 진리가 두렷하여 모자람이 없는 것은 비어서 두루 미치었기 때문이고,
지극하게 공변되어 우주 살림을 하지만 자신을 위해 일을 도모하지 않는다.
이것을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하다고 일컫는데 그 근간은 진공(眞空) 묘유(妙有)다.
이처럼 '삼대력'과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함'은 모두 같은 진리의 표현이다.
조금 더 세밀히 들어가면 원만구족에도 삼대력이 필요하고 지공무사에도 삼대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원만구족에는 삼대력이 수양을 중심으로 갊아 있고,
지공무사에는 삼대력이 취사를 중심으로 갊아 있다.
즉 삼대력은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한 것이나
'원만구족 지공무사'의 각각에도 삼대력이 필요하다.
하물며 좌선을 하는 데에도 삼대력이 필요하고
업체를 경영하는 데에도 삼대력이 필요한 것과 같다.
한 예로, 좌선을 할 때 삼대력이 없으면 정서가 불안하여 하기조차 어렵고,
좌선법을 몰라서 제대로 할 수 없다.
또한 의지가 없어 지속적이지도 못하게 된다.
반면 삼대력으로 좌선을 잘하면 마음 비움에 따른 근본지혜가 발현되고
마음의 힘과 의지력이 생긴다. 삼대력의 뿌리가 생기는 셈이다.
이 둘의 관계를
정(靜)적인 측면, 즉 일이 없을 때에는
주로 원만구족(圓滿具足)함에 기준을 두고 공부를 하고
일이 있을 때의 덕목인 지공무사(至公無私)함을 가지는 심정을 지니고 준비를 한다.
일상에 들어오면 일이 없을 때를 넘어 일이 단순할 때가 있다.
일이 급하지 않고 복잡하지도 않은 일로써 일이 있다가도 없고 없다가도 있는 때다.
이때는 원만구족한 것에 수양과 연구가 속하고, 지공무사한 것에 취사가 속한다.
여기에서 속한다는 것은 삼대력이 아우르지만 도드라짐을 일컫는 말이다.
그러나 일이 동(動)적으로 진행되면서
원만구족한 것에는 수양과 연구가 속하고, 지공무사한 것에는 연구와 취사가 속한다.
조금 더 급박하게 돌아가면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함이 아우르고 삼대력이 아울러 이루어진다.
원만구족하고 지공무사함에 따른 삼대력은 전체와 각각에 있으나,
각각에 따른 삼대력은 상황에 따라 경향성이 더하고 덜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