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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 8,12-15
15 요술사들이 파라오에게 말하였다. "이것은 하느님의 손가락이 하신 일입니다."
요술사들이 누구를 인정하는 것입니까? 바로 이 재앙은 인간의 능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의 손가락이 정확히 표현하자면은 "엘로힘의 손가락" 이고 "신의 능력으로 한일" 이라는 어감으로 이해해야 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여기서 이것은 이란 표현을 주석성경에서 보면은 이도구, 즉 아론의 지팡이(불란서쪽 주석성경)를 가리킨다.라고 나옵니다. 신부님이 보시기에 "이것은" "모기들" 인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모기들이 복수이긴 하지만 단수로도 쓸수있는 그런 개념이기에 이것은 엘로힘의 손가락이 한 일입니다. 라는 뜻으로 설명하셨습니다. 하지만 주석학자들은 각각 다른 의견이 있을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파라오는 이미 둘째재앙, 개구리를 없애달라는 것을 통해서 야훼의 존재를 인정한 듯 보입니다. 그런데 이제부터는 그 요술사들까지 , 따라서 요술사들과 함께 이집트인들까지 야훼라는 히브리인들의 신이 정말 있을지도 모르겠다!!? 라는 생각으로 전체적인 사고의 체계가 야훼가 자신을 드러내는 것이 조금씩, 조금씩 퍼져나가 성공해가는 그와 같은 틀로서 이야기의 전개를 알아 볼수 있습니다.
하. 지. 만.
탈출 8,12-15
그러나 파라오의 마음이 완고해져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다.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였다.
우리말로 직역하자면,
파라오의 심장이 강해졌고(ויחזק לב פרעה), 심장이 강해져서 모세와 아론의 말을 듣지 않았다. 그것은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였다. 라고 탈출기의 저자는 이 마지막부분을 해석합니다. 따라서 야훼는 이미 그 모든 것을 알고 있었다. 라는 것으로 '전지' 하신 하느님을 표현합니다.
조금더 깊이 있게 텍스트를 보자면은, 앞선 말씀하신 모기들을 이야기하는 '킨님, כנם’이라는 단어는 그 어원에서 보면은 '무엇인가를 판다 ' 는 뜻입니다. 따라서 살을 파고 피를 빠는 ' 흡혈 '의 의미가 그 안에 조금 있는 것 같습니다.
흡혈하는 곤충들이 많이 있는데 대표적으로 "이(louse)” 벼룩" 같은 것들이 있습니다. 요즘엔 신문에서 계속 "진드기 " 같은 것들이 나옵니다. 그러한 "해충( vermin)”이라면 어떤 것이라도 될수 있는 개념이라고 하셨습니다.
하지만 대표적으로 피를 빠는 곤충이 모기이고, 먼지가 변했다는 의미에서 날아다니는 것이라 유추해서 현대어 번역들은 대부분 모기로 번역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것을 어떤 주석가들은 자연적으로 생각합니다. 이 모기소동 앞에 개구리들의 문제가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 개구리들을 모세가 기도해서 개구리들이 죽어 산처럼 쌓여있었습니다. 그런 시체들 때문에 모기들이 생겨난 것이 아니냐? 라고 앞에 있는 재앙과 뒤에 있는 재앙을 묶어서, 앞에서 물이 피로 변하니까 개구리들이 죽었고 , 개구리들이 죽어서 다시 모기가 생겼다는 앞선 재앙과 연결해서 논리적인 연결구조하에 설명하려는 주석가들도 있는데, 텍스트 안에서는 그와 같은 얘기들을 하지 않습니다.
텍스트 안에서는 각각의 재앙들을 독립적으로 얘기하는 경향이 있고, 우리는 그것을 존중해야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땅의 먼지들로부터 모기들이 생겼다는 말에 인터넷으로 그림을 찾으시다가 이집트의 신, 하늘과 땅을 관장하는 신인, Nut(하늘) 과 Geb(땅) 을 보게됩니다.
땅의 먼지를 쳐서 되었다는 모기는 Geb(땅) 이라는 신과 관련이 있습니다. 그 땅을 관장하는 신이 이집트인들을 보호해야 하는데도 아론의 지팡이가 땅을 치니까 땅의 먼지들이 모기가 되었다! 따라서
하느님이 이집트의 땅의 신보다 더 우월하다는 것이 등장하는 해석으로 이 이야기를 이해할 수도 있다. 라고 보는 주석가들도 있다고 하셨습니다.
이집트의 기록들을 보자면은,
역사가 중에 한명인 헤로도투스와 같은 사람들은 "이집트의 사제들은 매일 또는 적어도 이틀에 한번은 몸에 모든 털을 밀고 해가 있는 동안 두번, 그리고 해가 없는 동안 두번 찬물로 목욕을 하고 그리고 아마포로 만들어진 하얗고 긴 옷을 입었어야만 했다." 라고 말했습니다.
왜 그랬을까? 사제로서의 정결함에 외적 표현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모기들과 같은 것들이 이집트의 사제들까지 공격했다면은 사제들은 제사를 드리기 굉장히 어려운 상황이었을 거라는 주석가들의 의견도 있습니다. 신부님께서 이부분의 해석은 조금은 오바스러운 부분이라고 ....
이집트의 본래의 풍습, 본래에 문화적인 상황과 이 텍스트를 연결해서 해석하려는 학자들의 주석적인 경향에 관해서 말씀해 주셨습니다.
마지막으로 8,15절에서 나오는 엘로힘의 손가락이라는 표현은
º 탈출 31,18 - 증언판에 관해서 나오는데
증언판은 하느님이 손가락으로 쓰는 그와 같은 대목으로서, '자상함' 의 표현입니다. 무언가 손가락으로 나를 부드럽게 만지는,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해주는 증언판의 내용입니다. 이것은 첫번째 증언판입니다.
첫번째 증언판이 깨지고 두번째 증언판을 가지러 모세가 또 올라가는데, 그 대목에서는 하느님의 손가락이라는 자상함에 표현이 등장하지 않던지, 생략되어있는 것으로 생각할 수 있습니다.
º 시편 8,4 - "당신 손가락의 작품들" 로 천체에 있는 달과 별을 이야기 합니다.
하느님이 손가락으로 달과 별을 만드셨다는 이야기로 하느님의 창조적인, 또는 하느님이 세상에 개입하시는 그와 같은 내용들을 표현합니다. 하느님의 능력에 대한 예찬
º 마태 23,4 - 그들은 무겁고 힘겨운 짐을 묶어 다른 사람들 어깨에 올려놓고, 자기들은 그것을 나르는 일에 손가락 하나 까닥하려고 하지 않는다.
율법학자, 바리사이들을 말하며 굉장히 법적으로 어렵게 만들어 놓고, 사람들을 돕기는커녕 손가락하나 까닥하지 않는다. 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이 부분의 경우에는 오늘의 교회가 반성해 볼 수 있는 부분으로, 오늘날 교회도 윤리적으로 신자들에게 엄격한 이야기들을 합니다.
교회에 입장에서의 의견을 충분히 알아듣고 중요하게 생각해야합니다.
예를 들어 생명은 중시해야 한다는 의미로 낙태에 관해서 이야기합니다. 그리고 그것은 중요합니다.
하지만 정말로 낙태해야만 하는 그런 상황에 있는 많은 사람들을 위해서 교회가 뭔갈 해야합니다. 물론 작은 것들이 있지만 신부님이 보시기엔 충분하지 않은것 같다고 하시며
사회적 상황, 환경 그리고 어떤 이유때문에 낙태해야만 하는 사람들을 돕기위해서 그리하여 생명이 세상에 빛을 볼수 있게 하기 위해서 조금더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노력들이 필요할 것 같다고 하셨습니다.
º 마르 7,33 - 당신 손가락을 그의 두 귀에 넣으셨다가 침을 발라 그의 혀에 손을 대셨다.
조금 이상하다고 하시며, 성경에 관한 질의 응답하는 공간의 글을 보신적이 있으셨는데
"예수님은 왜 침을 바르셨을까요?" 라고 물으시는 곳에 답이 없으셔서 신부님께서 "그러게나 말입니다." 라고 대답을 적으셨다는.....
하지만 옛날, 고대의 치유자들을 치유하는 풍습으로 침을 바르는 일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우리도 어릴적에 다치거나 그러면은 침을 발랐던 기억이 있습니다.(어머니들이 아이들에게 침발라 주는), 의학적으로도 약간의 소독작용은 되는 듯 합니다.
º 루카 11,20 - 내가 하느님의 손가락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면, 하느님의 나라가 이미 너희에게 와 있는 것이다.
유다인들이 예수님을 마귀(베엘제블)의 힘으로 마귀들을 쫓아내는 것이라고 말하자, 예수님께서 대답하시는 부분
º 요한 8,6 - 예수님께서는 몸을 굳히시어 손가락으로 땅에 무엇인가 쓰기 시작하셨다.
간음하다 붙잡힌 여인을 어떻게 할 것인가? 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손가락으로 무언가를 쓰고 계셨는데 무엇을 쓰셨는지는 아무도 모릅니다. 한데 어떤 청년이 신부님께 가르쳐 주셨는데, "너나 잘하세요." 라고 했다는....
손가락에 관한 이야기가 신.구약을 거쳐서 나오는데 뉘앙스는 하느님의 권능 중에 작은 권능 이지만, 작고 누군가를 돌보는, 그 작은 권능으로도 커다란 일을 하시는 하느님의 두 가지 표현을 여기에서 만나 볼수 있습니다.
이런 표현에는 세 가지가 나오는데,
하느님의 손가락, 하느님의 손, 하느님의 팔이 있습니다. 여기서 가장 센 것은 하느님의 팔입니다.
이제 탈출 8,16- 28 등에 소동(ערב, 아롭)
탈출 8,16-28
16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너는 아침 일찍 일어나 파라오 앞에 나서라. 그가 물가로 나오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고 그에게 말하여라. '나의 백성을 내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여라.
따라서 아침, 그리고 물가입니다.
표를 보시면 첫번째 이야기에서도 똑같은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리고 파라오가 물가로 나올것에 대하 확신할 수 있는 이유는 물가로 가서 정치가로서, 왕으로서 당연히 치수를 한다는 의미에서 오늘은 나일강의 상태가 어떤가를 본다는 의미가 있고,
두번째로는 종교적인 목적으로 아침에 물가로 가서 제사를 드리면서 풍요로움을 비는 결국 이집트의 경제라는 것은 물에 달려있기 때문에, 풍요로움을 빌고 제사를 드리는 두가지 모습을 다 갖고 있는, 물을 살피고 다른 한편으로는 제사를 드리는 것으로 아침에 물가로 나가는 파라오의 모습을 해석할 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여기 이렇게
먼저 물가로 가고 파라오에게 이야기 합니다.
탈출 8,16-28
그는 물가로 나오면, '주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고 그에게 말하여라. '나의 백성을 내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여라.
야훼를 말을 전하는 예언자처럼 얘기합니다. " 야훼가 너에게 이렇게 말씀을 전하라고 했다. "
17 네가 나의 백성을 내보내지 않으면, 내가 너와 네 신하들과 백성들에게, 또 너의 궁궐로 등에 떼를 보내겠다
우리말로 표현하기는 어렵지만 언어의 유희기 있습니다. 네가 보내지(שלח 샬라흐.,보내다)않으면,... 내가 등에 떼를 보내겠다.
는 파라오가 보내지 않는 것은 이스라엘 자손들입니다, 반대로 야훼가 보내는 것은 등에 떼로 그안에 언어적 유희가 보이는 것이 "네가 보내지 않으면 나는 보내겠다." 라는 것이 보입니다.
넷째 재앙인, 등에 떼 (arov, 히브리어) 단수로 쓰여도 복수처럼 사용되는 것입니다. 영어에서도 동일한 것이 있습니다. fish 도 단수 복수가 동일합니다. 그래서 여기서도 등에, 그리고 등에 떼입니다.(단수로 등장하는 명사지만 복수로 쓰이는)
어떤 벌레인지는 모르겠는데, 앞의 것을 그리스 말로 번역을 보자면은 앞에있는 것이 small fiy 라면 뒤에 있는 것은 horse fly 서양에서는 말등에, 우리나라에서는 쇠등애가 맞겠습니다. 쇠파리보다 크고 손가락 보다는 작은 해충입니다.
앞선 셋째 재앙의 모기떼에서 여러가지 곤충들이 합류한 것이 아닌지, 그리고 인간에게 해를 끼치는 해충들의 조합이 아닌지로 아롭을 생각하기도 합니다.
따라서 주석가들도 정확히 알수 없다는 얘기로 구약 성경에서 곤충도감같은 것이 없다보니, 단어로는 등장하는데 실제로 어떤 것인지 알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탈출 8,16-28
그러면 이집트인들의 집과 그들이 사는 땅이 등에로 가득할 것이다.
이 앞부분까지는 '집' 이라는 단어가 항상 단수로 쓰였습니다. 그런데 이제부터 복수로 등장합니다. 그렇다면 재앙의 강도가 점점더 더해지는 것을 이런 표현들로 알수 있습니다.
18 절에서 고센 땅(ארץ גשן)과 ‘구분하다 (פלה 팔랄)' 가 나옵니다.
탈출기에서도 시편에서도 몇번 등장하는데, 여기서 '구분하다' 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특별히 선택하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이 분명합니다.
탈출 8,18; 9,4; 11,7 그리고 탈출 33,16 절인데 이부분은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새로운 곳으로 데리고 가는 장면에서 야훼하느님께서 '나는 안간다. 너희들끼리 가라.' 고 했을 때 모세가 항의하는, 청원하는 대목입니다.
여기서 '구분하다' 는 선택하고 보호한다는 의미로, 우리가 하느님의 백성이라는 것을 알게 되지 않겠습니까? 라고 말하는 '구분하다' 는 선택의 의미고 보호한다는 의미로 일관성 있게 쓰였는데 재밌는 것은 시편으로 넘어가면 아예 같은 동사가 쓰였는데 번역을 다음과 같이 했습니다.
º 시편 4,4 를 직역한다면,
주님께서는 당신에게 충실한 이를 구분한다는 것을 알아라. 어떤 구분이냐면, 특별한 일들을 보여주신다는 것으로, 내가 부르짖으면 주님께서는 들어 주신다.
그와 나는 보통 관계가 아니다.라는 이야기입니다.
º 시편 17,7 에서는
당신 자애로 기적을 베푸소서 = 당신 자애로 구분하소서 라는 뜻인데, 우리말 뿐만 아니라 외국의 성경에서도 구분하다를 특별하게 대한다, 기적을 보여줄 정도로.......
탈출 8,16-28
등에소동(ערב 아롭)
18 그러나 그 날에 나는 내 백성이 사는 고센 땅만은, 따로 구분하여 , 그곳에 등에가 없게 하겠다.
이는 나 주님이 이 땅에 있음을 네가 알려 하려는 것이다.
(고센 땅, ארץ גשן) : 직역하면,
나 야훼가 그 땅의 가운데에 있다는 것을 네가 알도록 하기 위하여)
여기서 그 땅(ארץ, 에르츠)은 어떤 땅일까요? 이집트 일까요? 고센일까요?
학자들의 의견이 둘로 나뉘는데 신부님은 문법적으로 충실하게 본다면, 여기서 그땅은 고센으로 보는게 문법적으로 충실하다고 하셨습니다.
또 재밌게 볼수 있는 19절
19 나는 이렇게 나의 백성과 너의 백성 사이에 구별을 둘 터인데, 그 표징이 내일 일어날 것이다.' "
구분( פלה,팔랄),구별(פרה)비슷한 개념이지만 다른 내용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에서는
‘구별(פדות페두트)’인데 영어로 얘기하자면, distinction, separation(구분) 의 의미입니다. 이 명사는 여기서 구별을 한다로 사용.
구약에서 잘 등장하지 않는 명사입니다.
위 ( 탈출 8,19; 시편111,9;130,7;이사 50,2)에서 구원이 구별과 같은 말입니다. 시문학에서는 특별히 구원/ 구속(redemption)에 개념으로 쓰였습니다.
따라서 앞에서 구분하다, 여기서 구별하다 둘다 비슷한 개념으로 쓰였는데 구약성경에서 자주 사용되는 개념은 아닙니다.
앞서서 개구리떼에서도 모세가 파라오에게 언제 이것을 없애주면 됩니까? 라고 했을 때, 어떤 시간이 지정이 되죠? 네! "내일" 이라는 시간이 지정이 됩니다.
탈출 8,5
임금님과 신하들과 백성을 위하여 언제 기도해야 할지 저에게 분부만 내리십시오."
6절에서 파라오가
"내일( מחר)이다." 하고 대답하자, 모세가 말하였다.
나중에 우박을 내리는 재앙과 열번 째 재앙에서는, 즉시 떠나라! 는 시간적을 더 긴박한 그와 같은 것들이 후반부로 가면서, 전반부에서는 계속해서 '내일'이라는 하루 정도 여유가 있는 시간들이 후반부에 가서는 굉장히 급박해서 허리에 띠를 묶고, 지팡이를 들고 밥을 먹고, 동이 트기전에 바로 떠나야 하는 그와 같은 급박함이 나중에는 있습니다.
그리고 탈출 8,16-28에서의 20절
20 주님께서는 그대로 하셨다. 엄청난 등에 떼가 파라오의 궁궐과 그 신하들의 집으로 날아들었다.
여기서 모세와 아론은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고, 하느님이 말하고 하느님이 그대로 합니다. 모세와 아론은 그냥 말만 전할 뿐입니다.
그러자 엄청난 등에 떼가
이집트의 온 나라의 땅이 등에 때문에 폐허가 되었다.
엄청난 등에 떼가 등장하는 데요, 아까 등에 떼는 아롭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여기서 등장하는 히브리 말은 아롭, 그리고 '엄청난' 이라고 번역된 (카벧,כבד)이라는 표현입니다.
'카벧' 이라는 말은 굉장히 다양한 의미를 갖고 있습니다. 예를 들어 모세가 야훼 하느님께 "저는 입도 무디고, 혀도 (무딥니다, כבד)라고 했을 때도 '카벧' 이라는 말을 쓰게 됩니다. '카벧(כבד)이라는 단어의 본래의 뜻은 무겁다 입니다..^^
또는 야훼가 모세에게 "파라오의 심장이 완강해져, " 에서 '완강해져'도 '카벧(כבד)이라는 표현이 쓰입니다. 우리나라에서는 각기 다르게 쓰였음에도 불구하고 그 안에서 반복적으로 등장하는 동일한 단어에 다양한 의미에 대해서 놓치고 지나칠수 있는데, 만약 히브리 사람들이라면 어?! 재밌다! 모세의 입도 무겁고, 파라오의 심장도 무겁고, 등에 떼도 무겁네....
따라서 모세의 입이 무겁다는 것은 ? 모세의 무거움
파라오의 심장이 무거운 것은 ? 파라오의 무거움
등에 떼가 무거운 것은? 그것은 야훼의 무거움 입니다.
각각의 무거움이 있는데 결국, 누구의 무거움이 가장 무겁게 경쟁관계 안에서 이야기 되는지 주목할 수 있습니다.
20절
이집트 온 나라의 땅이 등에 때문에 폐허가 되었다. 이부분을 조금 다르게 번역한다면? 엄청난 등에 떼가 파라오의 집과 그의 신하들의 집과 이집트의 온 땅 안으로 왔고 그리고 그 땅이 등에 떼 앞에서 황폐해 졌다.
라는 뜻으로 이해할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단계적으로 파라오의 집- 신하들의 집- 이집트에 온 땅 으로 보는 것도 가능합니다.
여기서 황폐해지다. 라는 단어도 재밌습니다.
탈출 12,13에서 등장하는데 마지막 열번 째 재앙입니다. 여기서
황폐해지다( שחת ,샤핱)멸망시키다. 라고 쓰였습니다. '멸망했다'라는 것은 그냥 다시 일어 설 수가 없는 것입니다. 완전히 더 이상 새롭게 시작할 수 없는 생명력을 잃은 것을 뜻합니다.
탈출 12,23 같은 의미로 다음과 같은 단어가 쓰입니다. 페샤흐( פסח, 거르고 지나간다는 파스카)의 정확한 의미에 부합합니다.
여기서 파괴자가 황폐하게 하다, 멸망한다,와 같은 단어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더이상 재생될 수 없는, 더이상 일어날 수 없는 생명력을 완전히 잃은, 그렇게 만드는 파괴자의 존재로 같은단어를 사용한 언어의 유희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탈출 8,16-28
21 그러자 파라오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 말하였다. "가러라, 그러나 이 땅 안에서 너희 하느님께 제사를 드려라."
이집트를 떠나지 말고 제사는 드리라는 의미,( 이집트 땅안에서 )
그러자 모세가 파라오의 제안을 받아 들이지 않습니다.
22 모세가 대답하였다."그렇게 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저희가 주 저희 하느님께 바치는 제물을 이집트인들이 역겨워하기 때문입니다.
이집트인들이 역겨워하는 것을 그들이 보는 앞에서 저희가 제물로 바치면, 그들이 저희에게 돌을 던지지 않겠습니까?
직역하면, 그렇게는 안됩니다. 왜냐하면 우리들이 우리들의 엘로힘 야훼에게 재물을 바치는 것이 이집트에 역겨움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들이 그들의 눈 앞에서 이집트의 역겨움을 재물로 바친다면 그들이 우리들에게 돌을 던지지 않겠습니까?
여기서 이집트의 역겨움( תועת מצרים) 이라는 말은 문학적으로 소유격의 의미가 주어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고 때로는 목적어의 의미를 가질 수도 있습니다.
따라서 "이집트의 역겨움"이라는 말은 이집트인들이 역겹게 생각하는 것이라는 의미도 있고, 반면에 이집트인들이 하는 역겨운 짓 이란 뜻도 있습니다. 일차적으로 이집트인들이 역겹게 생각하는 것으로 우리가 이해해야 될 것 같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왜그럴까요? 이스라엘의 제사에서는 어떤 것들을 제물로 바치죠?
소나 양이나 동물들을 제물로 바칩니다. 이집트인들에게는 때때로 그와 같은 동물들이 신성한 동물들입니다. 이집트의 신들을 보면 '스타게이트' 라는 영화를 보면 이집트의 벽화에서 몸은 사람인데 얼굴은 매나 소, 개구리, 풍뎅이 와 같은 것을 신격화 시키는 이집트의 종교적인 특색인데 그 동물들을 잡아서 죽인다면, 이집트인들은 그것을 보고 좋아할까요? 분명 화를 낼것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역겨움' 이라는 것은 우리가 보고서 피하는 것이 아닌 그를 죽음에 이르게 할 수도 있는 것입니다.
앞선 조장들의 이야기에서도 조장들이 모세에게 "당신들 때문에 이집트인들에게 우리가 역겨움이 되었습니다." 같은 표현을 쓰는 것처럼 이것은 굉장한 어떠한 '증오' 와 같은 표현으로 이해할 수 있겠습니다.
여기서 제사를 드렸다가는 이집트인들이 우리들에게 돌을 던질 것 같습니다
이집트의 역겨움
종교적 모독에 따른 벌: 돌로 맞아 죽음!
º 탈출 19,13
º 신명 13,11;17,5
º 1열왕 21,13-15:
누군가가 야훼에게 역겨움이 되었다면, 돌을 던져 죽여야 하고, 공동체로부터 추방해야한다.
신명 17,1-5
성문은 재판하는 곳이었습니다. 이런 율법이 역으로 이집트에 반영이 되어있습니다. 그와 같은 제사를 지내면 이집트인들이 돌을 던져 죽일 것이다...
23 주 저희 하느님께서 말씀하신대로, 저희는 광야로 사흘 길을 걸어가 그분께 제사를 드려야 합니다."
야훼 우리들의 엘로힘이 말씀하신대로, 그리고 여기서 '사흘길' 이라는 표현을 기억해야 합니다.
24 그러자 파라오가 말하였다. '그렇다면 내가 너희를 내보낼 터이니, 광야에서 주 너희 하는님께 제사를 드려라.
25 다만 너무 멀리 가서는 안 된다. 나를 위하여 기도해 다오."
파라오 자신이 기도를 하면되는데, 자신이 섬기는 신이 아니라서 기도를 부탁함
여기에는 상당히 재밌는 유다의 역사가 있습니다. 유다가 나중에 유배에서 돌아와서도 계속해서 이민족들의 지배를 받습니다. 페르시아 왕국에 또는 헬레니스트 제국예 그리고 로마 제국에 ㅡ 그럴때 마다 각 제국에 통치자들은 자기 자신을 신격화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이 정복한 다른 지역에는 신전마다 자신의 모양을 본딴 신상들을 가져다 놓습니다. 따라서 제관들은 우선 자신의 신에세 제사를 드리고, 제국에 황제에게도 제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리고 신격화된 가장 대표적인 특징은 바로 고대의 동전에 자기의 모습을 그려넣는 것입니다. 유다인들은 이러한 것을 받아들였을까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나중에 마카베오 혁명이 일어난 중요한 이유중에 하나가 셀리코스 왕조의 제국주의 자인 안티오코스 4세가 자신의 모습을 본딴 신상을 예루살렘 성전안에 갖다 놓습니다. 그것이 성전을 모독했고, 성전이 완전히 불결해 졌다는 여러가지 이유 때문에 유다인들의 종교적인 마카베오 혁명이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다인들을 그렇게 자극하지 않으려했던 지도자들은, 조금은 외교적으로 풀려고 했던 지도자들은 유다인들의 그러한 점을 인정했고 특히 로마의 황제들은 "너희들이 나에게 제사를 지낼 필요는 없다. 하지만 너희가 너희 신에게 제사를 드릴 때, 나를 위해서도 제사를 지내라." 라는, 여기서 파라오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한것입니다. 나를 위에서 기도해 주고, 멀리 가지 마라는....
그러자 모세가 대답합니다.
25 모세가 말하였다. "보십시오. 이제 제가 임금님에게서 물러가 주님께 기도하겠습니다. 내일이면 파라오와 신하들과 백성에게서 등에 떼가 물러날 것입니다. 다만 파라오께서 다시 저희를 속이시고 이 백성을 내보내시지 않아, 주님께 제사를 드리지 못하게 하시는 일이 없기를 바랍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다만 이라는 부사입니다. 계속해서 언어의 유희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파라오는 " 다만 멀리가지는 마라." 를 통해
속이다
º 창세 31,7: 라반이 야곱을 속일 경우 (속인다, 라는 같은 동사가 등장)
º 판관 16,10.13.15: 들릴라가 삼손에게 자신을 "놀렸다"고 하는 경우( 놀렸다= 속이다)
따라서 '속인다' 라는 말은 자주 등장하지 않지만 놀린다, 조롱한다의 어감으로 '파라오가 야훼를 조롱해서는 안 된다.' 와 같은 뜻으로, 속이지 말라는 모세의 말로 이해.
하지만 파라오의 심장은 역시
28 그러나 파라오는 이번에도 마음이 완강해져 백성을 내보내지 않았다.
직역하자면; 하지만 파라오의 심장은 역시 이번에도 무거워져서 그 백성을 내보내지 않았다.
조금더 앞의 내용을 되짚어 본다면, 이 등에 떼를 얘기하는 아롭이라는 단어는 어떤 사람들은 “침파리”라고 번역하고 어떤 사람들은 “날개달린 개미” 라고 번역하고, 어떤이들은 모기에 파리가 더해진, 전체적으로 보았을 때 해충들의 떼인데 모기랑 등에 중 어느것이 파괴의 강도가 강하겠습니까?
바로 등에가 더 강한 것입니다. 먼지로 만들어진 모기보다 사람들에게 미치는 폐혜도 더 큰것 같습니다. 따라서 모기 떼일 경우에는 사람들이 좀 귀찮아하는 정도인데 등에 떼의 경우엔 이집트가 황폐해 졌다. 라는 재앙의 강도가 점점더 커지는 그와 같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27 그러자 주님께서 모세가 말한 대로 해 주셨다. 등에 떼가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과 그의 백성에게서 물러가 하나도 남지 않았다.
이 표현이 앞으로 메뚜기 떼에서도 등장합니다.
하나도 남지 않았다는, 야훼의 능력을 얘기합니다. 같은 표현이 14,28에도 등장합니다. 완전함에 관해서 얘기하고 있는 표현
등에 떼라고 얘기하는데 어떤 사람들은 풍뎅이를 이야기를 합니다. 그러면서 이집트의 신들 중에 풍뎅이로 형상화되는' 아문 라' 와 같은 신이 있었고, 넷째 재앙은 그에대한 것의 신학화로 받아들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고센 지방이라는 지명은 창세기에서 야곱이 자녀들과 함께 이집트에 들어갔을 때 파라오가 고센 지방에 머물게 했다는 이야기
그리고 욥기 7,5절에서도 비슷한 발음의 단어가 나옵니다. 고센(גשן)에서 온 고쉬( גוש) 라는 단어는 아마도 흙이라는 뜻일 겁니다. 따라서 고센 지방은 조금 비옥한 지역이 아니었나? 생각해 볼 수 있는데 정확히 어디있지는 모르겠습니다.
아마 이집트의 델타 지역에서 약간 동쪽에 위치한 지역이 아닌가, 라고 생각해 볼수 있다고 하셨습니다.
고센
º 여호 10,41 ; 11,16
º 여호 15,51
여호수아기에서 등장하는 고센 지역은 전부다 유다, 유다 남쪽의 지역, 네겝과 인접한 지역을 지칭하는 것 같습니다. 동일한 명칭이 서로 다른 지역이 이야기 된 것이지 같은 지역으로 생각하기는 어려울 것 같습니다.
몇몇 전문가들은 오늘날 이집트에 있는 와디 트메일랏(wadi tumeilat 계곡 ??)
이집트에 여러 신들은 동물의 모습으로 형상화됩니다. 푸타(황소의 모습),햅이라는 신, 숫양의 모습으로 형상화 된 크눕, 암소의 모습인 하토르, 등으로 이집트의 신화적 체계는 너무나 복잡하기에 따로 책한권을 쓸 정도로 복잡합니다.
다음으로는 다섯번째 재앙, 가축병/ 흑사병(히브리말로는 데베르, דבר dever)
탈출 9,1-7 가축병
1 주님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다. "파라오에게 가서, '주 히브리인들의 하느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하고 그에게 일러라.
같은 명령이 7,26; 10,1 에서도 등장합니다.( 표를 표시면 확인해 보실수 있습니다) 따라서 2, 5, 7 째 재앙에서 파라오에 대한 명령만 등장하는 것입니다.( 기본적인 파견만 등장)
그리고 파라오에게 가서 야훼가 이렇게 말했다
사자형식(使者 形式)
º 야훼가 이렇게 말했다
(ko amar adonai כה אמר יהוה)
º 히브리인들의 엘로힘
예언자들이 하느님의 말씀을 전한다고 해서 사자형식 이라 하고 파견된 사람들의 형식이다. 라는 의미이고 히브리 사람들을 만났을 때 " 코 아마르 아도나이" 라고 말을 한다면 " 어.!! 한국에서 예언자가 왔나보다 !!" 라고 놀라실 거라고....^^
우리의 전례 안에서도 예언자 형식이 담겨있습니다. 독서가 끝나고 " 주님의 말씀입니다." 라고 얘기 했을 때 거기에 담겨 있는 예언 형식입니다.(내가 하는 것이 아닌, 하느님께서 나를 통해 전하는 말씀입니다. 라는 의미)
9,1절에서는 파라오에게 가서 '코 아마르 아도나이"를 말하면서 "야훼" 라는 말을 한번 더 설명합니다. 히브리인들의 하느님, 즉 히브리인들의 엘로힘인 야훼가,
우리말로 설명하자면,
이집트인들도 신이 있다면, 히브리인들도 신이 있는데, 그 히브리인들을 아끼고 보호하는 신인 야훼가 너에게 이렇게 전하라고 얘기했다.
그리고 이렇게 얘기합니다.
그에게 이렇게 일러라,
"내 백성을 내보내어 나를 예배하게 하여라.
2 네가 그들을 내보내기를 거부하고, 계속(עוד)그들을 붙잡아 둔다면,
하느님의 인내심이( 분노 게이지가) 조금씩 차고 있는 겁니다.
3 주님의 손이 들에 있는 너의 집짐승들, 말과 나귀와 낙타와 소와 양을 지독한 흑사병으로 칠 것이다.
여기서의 (집짐승/가축 מקנה)이라는 것은 가축을 의미합니다. '주님의 손이' (손가락이 아닙니다) 너의 가축들을 칠것이다. 어떻게? 지독한 흑사병으로
또 여기서 '지독한' 이라고 얘기하는 것은 '무겁다' 와 같은 형용사 입니다. 따라서 지독한, 무거운 흑사병, 무거운 등에 떼, 무거운 파라오의 심장, 무거운 모세의 입 등이 같은 표현입니다.
흑사병이 어떤 병일까? 중세때의 페스트와 같은지? 어떤 사람은 탄저병( anthrax,안트락스)이 아마 여기서 얘기된 것이 아닐까? 라는 이도 있습니다.
나중에 나오는 종기에 관한것도 탄저병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는 이도 있습니다.
가축들을 병으로 죽게 하겠다. 몇년전에 소나 말을 살처분 한적이 있었습니다. 그역, 조류 독감, 으로 공포에 떤 적이 있었습니다.
4 그러나 주님은 이스라엘 의 집짐승과 이집트의 집짐승을 구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의 것은 하나도 죽지 않게 할 것이다.' "
이스라엘의 가축들은 구분됩니다. 등에 떼에서도 가축들이 괜찮았으니, 가축병에서도 가축들은 보호되는 일관성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의 것은 하나도 죽지 않게 될 것이다. 여기서는 하나도 죽지 않았다. 모든 것을 완전하게 하나의 예외도 없이 하시는 야훼 하느님의 권능에 관해서 알수 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표현이 등장하는
5 그리고 주님께서는 '주님이 내일 이 땅에서 이 일을 이룰 것이다.' 하시며 때를 정하셨다.
직역; 그리고 야훼는 야훼가 내일 이 땅에서 이룰 것이다. 하시며 때를 정하셨다.
문장이 약간은 이상한게 '야훼가 얘기하면서 야훼가' 라는 표현 자신을 3인칭으로 지칭하는 표현은 여러 의견들이 있습니다.
'때를 정하셨다' 에서 때(히브리 말로 모엗, מועד)이라고 얘기합니다.
신부님께서 예전에 그리스 말의 개념으로 시간에 관한 두 가지 개념이 있다고 하신적이 있습니다. 크로노스(양적인 시간, 달리기 속력의 몇분 몇초라는 표현, 크로노 메터라는 시계를 사용),
카이로스( 배에서 소리가 나는 것을 보니 밥먹을 '때'가 되었다, 지혜문학에서 '사랑할 때가 있으면, 미워할 때가 있고 웃을 때가 있으면, 울때가 있다는 질적인 개념의 때) 여기서 말하는 "모엗"은 질적인 의미에서의 "때" 입니다.
그런데 똑같은 모엗( מועד)이라는 단어가 창세 1,14
하느님께서 말씀하시기를
하늘의 궁창에 빛물체들이 생겨, 낮과 밤을 가르고,
표징과 절기(מועדים)날과 해를 나타내어라.
여기서 우리말 성경뿐만 아니라 외국의 많은 성경들도 모엗이라는 단어가 등장하는데 때라고 하지 않고 절기로 표현합니다. 가을, 겨울의 일반적인 계절의 의미로 생각하는데 신부님은 이 부분을 그렇게 보지 않으십니다.
절기, 질적인 때를 히브리 사람들의 개념에서는 봄, 여름, 가을, 겨울의 개념이 희박합니다. 고대 근동에서 중요한 것은 우기와 건기, 비가 오는 때냐 비가오지 않는 때냐,가 중요합니다.
그래서 신부님의 이 부분의 모엗(절기, מועדים)은 축제의 때인것 같다고 설명하셨습니다.(창세 1,14) = 축제의 시간
지금은 특별한 시간인데, 그것을 어떻게 알게 되느냐? 해와 달로 알게 된다.라는
우리가 알게 될 열번째 재앙에서 파스카 축제는 니산달 15일입니다. 또는 14일(14일 저녁부터 15일로 넘어가는) 그와 같은 시기입니다.
그런데 그 니산달을 해와 달, 춘분에 걸려 있는 낮과 밤의 길이가 똑같아지는 시기에 새로 초승달이 뜨면은 그때가 니산달이라고 합니다.
따라서 니산달이 언제 시작한지는 부정확합니다.. 어느날 정말로 초승달이 떴는데 하늘의 구름이 껴서 흐리면 그러면 그 다음날이 니산달 초하루가 되어 버립니다.(왜냐면 과거의 사람들은 축제를 관측할 방법들이 없었습니다)
춘분에 낮과 밤이 비슷해지는 첫번째 초승달이 언제 뜨는 가를 보게되는데(니산달), 그러면서 축제의 시간이 결정이 되니까 창세 1,14의 절기도 질적인 때로 보아야 한다고 설명하셨습니다.
신약에서도 이러한 '때'라는 단어을 자주 쓰고 중요하게 생각하는 그와 같은 복음이 있습니다. 바로 요한 복음입니다.(이제 때가 다가왔다....)
그래서 요한 복음을 '때의 책' 이라고 할 수 있는 카이로스 라는 종말의 때, 종말론적 시간의 의미를 말합니다.
구약에서는 축제의 의미에서의 때(모엗)가 중요하고, 신약에서는 종말의 시간이라는 카이로스(때)가 중요한데 그것이 둘다 양적인 시간이 아니다.(예: 20**년 *월 *일 )즉, 시간과 날짜를 지정해서 종말이 온다는 사람들은 옳지 못한, 누군가를 속일 의도가 있는 이들이다. 라고 설명하셨습니다.
그때는 아무도 모릅니다.
탈출 9,1-7
6 이튿날 주님께서 이 말씀대로 하셨다. 이집트의 집짐승들은 모두 죽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집짐승들은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
다음날 야훼는 이 일을 하였다.고 하는데 이 일이라는 것이 무엇일까요? 바로 가축병입니다.
여기에서도 모세와 아론은 어떤 역할을 하지 않습니다. 말만 전합니다( 말도 전했는지, 안했는지 알수 없습니다) 하지만 다음날 이 일은 일어나고 모세와 아론은 아무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나서 이집트의 가축들은 모두 죽고, 이스라엘 자손들의 가축들은 한 마리도 죽지 않았다. 모두와 한 마리도 죽지 않은 그와 같은 대조들!!
그리고 파라오가
7 파라오는 사람을 보내어, 이스라엘의 집짐승은 한 마리도 죽지 않은 것을 확인하였다. 그러나 파라오는 마음이 완강해져 백성을 내보내지 않았다.
여기서도 언어의 유희가 있습니다. 파라오가 사람은 보내고(보내다,שלח 샬라흐)그런데 이스라엘은 보내지않습니다.
이 짧은 9,1-7까지의 단락 안에서도 여러가지 언어의 유희가 함께 있습니다. 이집트의 가축들은 모두 죽고, 이스라엘의 가축들은 한 마리도 죽지 않고, 파라오는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 사람을 보내지만, 이스라엘은 보내지 않고,
가축병은 매우 무겁고, 파라오의 심장도 매우 무거워 지고(완고해 지고),,,,그러면서 다섯번 째 재앙의 이야기가 마무리되어 집니다.
재앙 이야기를 계속 읽으면서 굉장히 머리들이 혼란스러우실 겁니다. 완전히 똑같은 내용도 아니고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다른 내용도 아닌 비슷한 내용들이 반복되면서 전체적인 흐름이 조금씩 변해가는 그와 같은 틀을 볼수 있을거라고 하셨습니다. 혼란스럽지 않으면 그게 더 이상한 것입니다^^
왜냐면 신부님께서도 혼란스러우시니까요.
하지만 그 혼란스러움 가운데에서도 점점 무엇이 드러나고 있는지, 그 흐름이 어디로 흘러가고 있는지를 주목하시면서 전체적인 재앙 이야기 마지막 부분을 다음 시간에 계속해서 읽어가자고 하셨습니다.
(최승정신부님의 탈출기I 에서 히브리어는 참조하였습니다.^^)
첫댓글 고맙습니다~^^
감사합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감사합니다!